123화
“흠…….”
“왜 그러십니까? 위위경?”
“아니면 경상도에서도 목화를 키워보는 게 어떨까요? 경상도에서 재배하고 개경으로 보낸다면 전라도를 거쳐야 하지만… 어차피 전 백성이 사용할 거 누구는 어렵게 구하고 누구는 쉽게 구하고 이러면 가격도 만만치 않을 테니, 미리 준비하는 게 어떻습니까?”
“경상도에서도 재배가 되면 좋긴 한데… 성공하더라도 운송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위위경.”
“평장사께서 도로를 정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듣기로는 전라도에서 경상도까지 거의 완공이 되어 간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거기가 끝나면 다른 곳도 공사할 거라고 들었는데…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아직 결정이 난 게 아닙니다. 도로를 정비한다고 하면 산림을 개간(開墾)해야 하고 지날 수 없는 곳에 다리를 건설해야 합니다. 개경까지 아니, 고려 전역을 정비한다고 한다면 엄청난 금액이 들어갑니다. 다리건설은 위위경께서도 해보셔서 시간과 금액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특히나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는데… 경상도에서 목화재배에 성공하였다고 하여도 비효율적입니다.”
공부상서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전라도에서 시작하고, 경상도 목화재배는 완성되는 대로 하는 거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위위경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희도 거기에 따라 준비를 하겠습니다.”
“다만 전라도로 가기 전에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야기해 보게.”
“일단 사천감에서 측후(測候) 측정을 잘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산학(算學)에 밝은 자도 필요합니다.”
“측후와 산학에 밝은 자?”
“예. 측후에 따라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일제히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사천감 관리가 기록하게 해야 할 듯하며 산학은 목화에서 얼마만큼의 양이 나오는지 산학으로 계산해서 한 가구가 사용할 양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겠네. 사천감과 호부에 이야기를 해보겠네.”
“저는 이만 합하를 뵈러 가겠습니다.”
“예. 위위경. 들어가십시오.”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공부상서와 공부시랑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짜 나아갔다.
* * *
현수가 중방으로 들어오자, 상 위에는 요동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사관은 자리에 없었다.
“왔느냐.”
“예. 합하.”
“앉거라.”
이의방의 말에 현수가 자리에 앉았다.
“그래, 너와 못다 한 이야기가 많지. 네가 남송에 있었을 때 천시호에게 보내왔던 서찰 말이다. 판 추밀원사, 병부상서들을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였다. 호부 상서는 지금 재자(才子)를 준비해서 공부에 보태고 있어. 나중에 시간 나면 따로 만나서 이야기들 해봐.”
“예. 알겠습니다.”
“군기 감장과 정 호부 상서, 공부 상서에게 화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할 거다.”
“하옵고… 그 부지를 찾고 짓는 건 괜찮습니까? 그 용도를 아는 이들은 없는 것이겠지요?”
“이놈아, 내가 그리 허술한 사람으로 보이느냐?”
“아니옵니다. 합하.”
현수는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걱정도 많다. 새 무기가 들어오는데 어찌 걱정이 안 되겠느냐.”
이의방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합하, 상서들과 군기감장, 군기감정을 만나면 제가 집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이 일은 전문가가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화약과 화포에 관련해서는 하나도 모르옵니다. 저 대신 전문가가 나선다면 문제없이 잘 될 것이옵니다.”
현수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네 뜻대로 하거라. 그나저나 훈련은 어떻게 할 것이냐? 화약과 화포면 그걸 사용하는 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데.”
“걱정 마시옵소서. 응용방법은 그 둘에게 맡기면 되옵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거라.”
“예. 합하.”
“상인들이 보내오는 소식을 들어보면 북조도 영 말이 아닌 모양이구나. 몽골의 지속하는 약탈이 거듭되다 보니 힘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남송도 국토회복을 더 이상 진행할 생각은 없어 보이고… 이제 문제는 금나라인데. 지금은 금나라가 몽골의 방패가 되어 주고 있다지만, 금나라가 무너지면 남송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라 생각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현수는 이의방의 말이 무슨 말인지 직감하였다.
몽고가 고려를 침공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을 하는 셈이었다.
금나라가 몽고 손에 무너지면 차례로 다음 목표는 남송이 될 것이었다.
남송 또한 무너지면 그 다음 표적은 고려가 될 것이 뻔했다.
이의방은 각국의 정세와 고려의 내부사정 자체를 이미 꿰뚫고 있었다.
그런 이의방이 몽고에 시선을 돌렸다는 건 신경이 곤두서있다는 것이었다.
“고려, 아니면 남송이 목표가 될 것이옵니다. 그게 십 년 후일지 이십 년 후일지… 저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가 엎어질 때로 엎어진 상황에서 현수도 장담할 수 없었다.
“현수야.”
“예. 합하.”
“내가 함경도 정벌을 하다가 생각한 게 있는데… 현재 거란족이 차지하고 있는 요동을 우리 영토로 삼는 걸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오죽하면 저 여진족 놈들이 따로 세력을 두었겠느냐… 너의 생각이 듣고 싶구나.”
“합하, 요동 전체는 안됩니다.”
“요동 전체는 아니 된다니? 이유가 무엇이냐?”
“압록강을 넘으면 요동이라고 하나, 그 산세를 벗어나야지만 비로소 드넓은 평야가 보이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얼 하려 하시옵니까. 요동을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 아무것도 없는 평야에서 무얼 어떻게 하실 것이 오며 또한 백성들의 이주는 어찌하려 하시옵니까. 현재 요동을 집어삼키면 오히려 적들에게 더 많은 걸 내주는 것과 같사옵니다.”
“하면… 요동을 그냥 놓아두자는 이야기냐?”
이의방의 말에 현수는 붓을 들더니, 흥화진에서부터 요서가 시작되는 부분의 위까지 선을 그었다.
“요동 남부만 차지하자는 게냐?”
“예. 합하. 흥화진에서 압록강만 넘으면 바로 치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옵고, 요동 남부는 거란족들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이옵니다. 이곳만 집어삼킬 수만 있다면 고려의 백성들이 정착하는데 길어야 오 년이옵니다.”
“흠……”
“거란족들이 차지하고 있는 성들 외의 나머지 성들은 이미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성들이옵니다. 그 각 산성을 살피어 재건할 수 있다면 요동 전체를 수복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 될 것이옵니다.”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거란의 사정을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 현수에게 놀랐다.
“벽란도에서 배를 타고 여기로 가면 거란족들이 있는 항구가 나옵니다. 이 항구에서 주로 거래를 해오고 있던 상단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옵니다.”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수가 그어 놓은 요동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럼 주로 여기에 시설들이 있을 건 다 있겠구나?”
“이 지역은 풍부한 농토가 가득한 곳이온데, 시설이 없겠사옵니까.”
현수가 지금 이렇게 농토 위주로 말하고 있지만, 자기가 알고 있던 역사대로라면 지금 그어 놓은 지역은 지하자원이 넘치는 연안 일대였다.
거기에 석유와 천연가스까지 매장되어 있는 영토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현대 지식을 통해서 알아보았을 때 발견된 광물의 종류는 115종이며 저장량이 파악된 광물만 64종이었다.
그 많은 광물이 요동 남부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찾아내기만 해도 고려에 엄청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거로 생각하였다.
“고민 좀 해봐야겠구나. 네 말대로 이렇게 그어 놓으니, 거란이 달라 보여.”
“무엇이 말이옵니까?”
“요동 전체를 집어삼키는 게 아니라, 거란족이 기반을 닦은 곳만 먹는다는 게 아니냐. 그럼 현재 함경도 보다는 덜 손이 가겠지. 이제 거란족이 기반을 닦은 곳을 어떻게 운용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한다는 이야기다.”
“합하, 하오시면…….”
“네 말대로 감행하겠다. 해군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왔구나. 너는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 감문위 사군의 총사를 맡아 육로로 가거라. 할 수 있겠느냐?”
“합하의 말씀을 받드옵니다.”
현수는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아, 네가 남송에서 가져온 화포와 화약을 이번에 사용해보겠느냐?”
“아직 이르옵니다. 제가 가져온 화약과 화포는 훈련 용도에만 사용할까 합니다. 그리고 화약을 더 만들어야 하오니, 합하께서 신경을 써주시길 다시 청하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 알아서 할 테니.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이야기하고.”
“예. 합하.”
“그럼 조만간 나와 함께 강화도에 다녀오자꾸나. 가서 훈련상태도 보고 어떻게 상륙할지 의논도 해보고 그래야지. 너도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그 상투 자르는 거 말이야.”
“예. 합하.”
“그거 병부에서는 통과시켰어. 강동 용천, 귀주 동북 면에는 화주에 화장터 짓고 승병은 종군하는 쪽으로 하였다.”
“감사합니다! 합하!”
“승군도 보통 승군이 아니야. 무승인데, 경(經)도 잘 읽어. 화장해주는데 경이라도 잘 읽어 줘야 할 거 아니냐.”
이의방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합하, 부인사의 대장경 말이옵니다.”
“어, 대장경 왜?”
“변란을 대비하여 대장경을 나누어 옮겨놓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아니, 변란이랑 대장경이랑 무슨 상관이야?”
“대장경은 나라의 보물입니다. 그걸 만드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공들였습니까. 그 대장경이 혹여라도 불에 타서 없어진다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네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구나. 잘 만들어 놓은 보물이 다 타버리면 무슨 소용이겠냐. 그 대장경을 어디로 옮기려고 하느냐?”
“예전에 합하의 명으로 대승 형님과 남쪽을 다녀온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본 두 곳이 적당할 듯합니다. 한 곳은 전라도 금마군에 미륵사이오며, 또 한 곳은 경상도 동경에 황룡사입니다.”
“미륵사와 황룡사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승통을 불러 의논해보마.”
현수가 미륵사와 황룡사를 선택한 이유는 두 사찰이 고려 전역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승려 또한 많은 곳이며 나라에서 관리를 우선적으로 해주는 곳이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시절에 건립된 사찰이고, 황룡사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건립된 사찰이다 보니 국교를 불교로 하는 고려에서는 두 사찰은 성지중의 성지였다.
그래서 두 곳에 나누자고 건의를 한 것이었다.
“지난번에 병부에 일러 군사 수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데, 60만에 이르는 군대가 보유되었더구나.”
“모두가 합하의 큰 복이시옵니다.”
“흥복(興福)이라? 그래, 흥복이 맞기는 하지. 허나, 그 60만에 이르는 군대가 있으면 뭐 하겠느냐. 훈련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니, 장수들을 파견해서 훈련상태를 살피게 하는 게 어떻겠냐?”
“좋은 생각이옵니다. 서경 좌장 김존심, 서언을 경상도 일대를 돌게 하옵시고, 전라도는 흥위위 대장군, 홍중방 좌우위 대장군 오광척으로 하여금 전라도를 돌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굳이 그들을 보내는 이유는?”
“파병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들을 보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