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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120화 (120/159)

120화

현수가 사저 대문 앞에 도착하였다.

벽을 쭉 둘러싸고 그 모퉁이마다 하나씩 망루를 설치하여 사병들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현수의 저택은 거의 작은 성이라고 볼 수 있었다.

쇄자갑을 입고 경계를 서고 있는 사병들이 현수를 보고 예를 올리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귀를 울리었고,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 발짝 안으로 들어서자, 현수를 알아보는 사노비들이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위위경.”

“오냐, 일들 보거라.”

가복들은 인사를 하며 모두 제 위치로 돌아갔다.

뒤늦게 현수를 알아본 최 집사가 뛰어와 인사하였다.

“오셨습니까, 위위경.”

“잘 지냈는가?”

“예. 위위경. 그리고 감축드리옵니다.”

“하하하! 고맙네. 안사람들은 어디 있나?”

“몸채에 계십니다.”

“음… 그래. 아, 혹시 씨 종자 들어왔나?”

“예. 위위경.”

“그거 절반은 상단으로 보내 재배하게 하게. 나중에 다 자라거든 향유로 만들게 하고, 나머지 반은 정원이랑 마당 곳곳에 심어서 키우게.”

“예. 위위경. 근데 이 종자가 무엇입니까?”

“음… 로즈마리라는 식물인데… 나중에 약으로도 쓰고, 음식으로도 기름으로도 쓰고 그래.”

“예. 위위경.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집사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더니, 자리를 옮기었다.

이에 현수는 곧장 몸채로 향하였다.

어느 집보다 크고, 아름답게 지어진 몸채였다.

몸채의 방만 다섯 개인 데다가 마루도 넓어 뛰어놀아도 문제가 없었다.

그중 제일 큰방이 현수의 방이었고, 큰방의 좌, 우의 방이 두 공주의 방이었다.

현수는 계단에 올라서며 신을 벗더니, 안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리는 큰방으로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덜컹.

상위에 차를 놓고 나란히들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본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잘들 계시었습니까?”

현수가 두 공주와 새로 맞이할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세 사람 역시나 밝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남송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많이 걱정하였습니다.”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이제 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들 저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을 건데 걱정을 끼쳐 송구스럽습니다.”

현수는 그렇게 말을 하며 큰 방 안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시옵니까. 아버님. 어머님을 통해서 아버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사옵니다.”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아이를 보고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굽히었다.

“오냐, 지난번에 잠시 보았지?”

“예. 아버님.”

자신을 아버님이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가 예쁘게 웃어 보였다.

“네 이름이 수아라고 하였는데, 수아가 맞느냐?”

“예. 소녀 수아이옵니다.”

“아가, 네 이 아비의 여식이 되었으니,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지 이 아비에게 말하거라. 이 아비가 다 해주마. 그리고 너는 이 집안의 장녀이다. 앞으로 아우들이 성장할 것이니 네가 잘 돌봐야 한다.”

“예. 아버님. 소녀, 아버님의 말씀 깊이 새기겠사옵니다.”

“하하하하!”

현수가 웃으면서 수아의 손을 꼭 잡아 주고는 옆에 있는 양복을 바라보았다.

“수아야, 여기 옆에 있는 아이도 동생처럼 생각하고 잘 이끌어 주고 지켜줘야 한다.”

“예. 아버님.”

“오냐, 오냐… 하하하!”

현수는 양복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아는 현수의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양복을 좀 더 세심하게 챙기었다.

후에, 현수가 작은 두 개의 요람을 발견하고는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곤히 아주 잘 자는 두 아이를 보며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이를 안아 보려고 하였지만, 곤히 자고 있는 아기가 깨어날까 봐 현수는 조심스럽게 검지로 아이의 볼을 슬쩍 만져 보았다.

“둘 다 사내아이입니다.”

연희 궁주 왕씨의 말에 현수는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셨으니, 어서 아이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수안 궁주 왕씨가 현수에게 말하였다.

현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수안 궁주에게 물었다.

“누가 큰 아이입니까?”

현수의 질문의 수안 궁주 왕씨가 답해 주었다.

“언니 아들이 큰아들입니다.”

“아, 그래요?”

수안 궁주 왕씨가 왼쪽 요람에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하자, 현수는 큰아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첫째는 착할 선(善)을 써서 유선이라 하고, 둘째 아이는 흰 백(白)을 써서 유백이라고 합시다.”

“이름이 참 좋습니다.”

이름이 좋다고 말하는 수안 궁주 왕씨였다.

사실 정해둔 이름은 아니었고, 현수가 그냥 생각난 대로 지은 이름이었다.

좋아하는 두 사람에게 대놓고, 그냥 생각난 대로 지은 거라고 말을 할 수가 없던 현수는 슬그머니 두 사람의 손을 한쪽씩 꼭 잡아 주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막상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하는지 난처했다.

“부인과의 혼사는 언제 올리십니까?”

“…응?”

연희 궁주 왕씨가 먼저 물어왔다.

“어, 그게… 황태비 마마께서 날짜를 알려주실 겁니다.”

태후 전에서 이야기가 잘 되었는지 두 공주와 새로 맞이할 부인과의 사이가 좋아 보여 다행이었다.

남송으로 떠나기 전 혼례를 올리자고 하였지만, 돌아오는 뱃길에서는 고민이 많이 되었었다.

문제가 되면 어찌하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세 사람의 관계를 보아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오늘 밤은 어디서 주무실 겁니까?”

곧이어 난처한 질문이 들어오자, 현수는 당황하였다.

생각도 못 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이에 두 공주는 현수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놀리지 마십시오.”

황태비의 조카가 얼굴이 붉어졌다.

“어머, 벌써 올라타려고 하십니까?”

수안 궁주 왕씨의 말에 그녀는 더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손까지 붉어졌다.

현수 역시 얼굴이 발그레 올라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에 있는 줄을 몇 번 당기었다.

“흐하하하!”

현수의 행동에 두 공주는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었다.

“부르셨습니까.”

“상 좀 봐오게.”

“예. 위위경.”

“흠흠… 그만 놀리세요. 아직 혼례 전인데, 너무 그러는 거 아닙니다.”

“뭐가 아니 된다 그러십니까?”

“저기 아이들도 있는데… 자꾸 그러지 마시오.”

“어차피 돌아오셨으니, 미리 합궁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어후, 내부인들의 말씀을 당할 재간이 아니 됩니다. 아무렴 부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하하하!”

현수는 그렇게 웃으며 양소 일가 이야기를 꺼내었다.

“저 아이의 아비가 오면 우리 집 객방(客房)에서 지내게 될 겁니다. 저 아이와 아비를 가족 이상으로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리 이야기를 들어 객방에서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준비를 다 해두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인. 그리고 저 부녀의 집을 내가 새로 지어 줄 건데, 집이 지어지면 부인들께서 살림살이 좀 잘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아이 어미는 없는 것입니까?”

“죽었소.”

수안 궁주 왕씨의 물음에 아이의 어미에 대해서는 죽었다고 말하였다.

부인들이 알아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쪼르륵.

연희 궁주 왕씨가 찻잔에 차를 따라 현수 앞에 놓자, 현수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었다.

“오미자차로군요.”

“예. 이번에 상단에서 상질(上質)의 차를 보내왔습니다.”

연희 궁주 왕씨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송에서 좋은 침향을 구해왔으니, 한번 사용해보세요. 마음에 들면 내가 더 구해오란 이야기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위위경.”

“저… 위위경.”

수안 궁주 왕씨의 부름에 현수가 수안 궁주에게로 시선을 돌리었다.

“예.”

수안 궁주 왕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 쪽으로 가서는 나전칠기 장식으로 된 함을 가지고 돌아와 현수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무엇입니까?”

“남송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한 벌 장만하였습니다.”

현수가 나전칠기 함 뚜껑을 열자, 귀한 황칠나무 액으로 칠한 쇄자갑이 안에 들어있었다.

쇄자갑을 들어 올려 창문 빛을 쐬자, 은은한 금빛이 나돌았다.

“앞으로 입고 다니시길 청하는 바입니다.”

수안 궁주 왕씨의 말에 현수는 피식 웃었다.

“부인, 고려 땅에서 내가 칼 맞을 일은 없을 겁니다. 있더라도 수십의 호위가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부인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입으십시오. 아무리 고려라 해도 어떤 일을 당할지 어찌 알겠습니까?”

“하하,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그럼 내가 필요할 때 입는 거로 하겠습니다.”

현수가 쇄자갑을 함 속에 다시 넣으려고 할 때였다.

“안됩니다!”

버럭 소리치며 단호하게 말하는 수안 궁주 왕씨에 현수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내 수안 궁주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니, 금세 눈물이 양 볼에 흘러내리었다.

“어? 음… 어…….”

순간 당황한 현수가 쇄자갑을 내려놓고 한 손으로 수안 궁주 왕씨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입겠습니다. 내 항시 입고 다닐 테니, 눈물을 거두세요.”

“수안아, 위위경께서 당황하시니 어서 눈물을 거두거라.”

연희 궁주 왕씨의 말에 수안 궁주가 눈물을 닦아 내었다.

“부인이 나를 생각해서 만들어 준 갑주이니… 내 직접 입어봐야지요.”

현수가 곧장 겉옷을 벗으며 쇄자갑을 걸쳤다.

가죽끈으로 매듭을 지으며 다시 겉옷을 입은 후, 자리에 앉으며 수안 궁주 왕씨에게 말하였다.

“부인의 말대로 항시 입고 다니겠습니다.”

현수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식은 찻잔을 들고 마시었다.

* * *

그날 저녁.

예고한 대로, 황궁에서 큰 연회가 열리었다.

양소는 황제에게 친히 어주를 받았으며 많은 신료와 인사를 나누었다.

악정이 신료들의 말을 통역해주었던 탓에, 양소는 원활하게 신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몸은 괜찮으냐?”

“아! 예. 형님…….”

술병을 가지고 다가온 경대승이었다.

현수가 술잔을 들어 올리자, 경대승은 술을 따라 주었다.

“많이 당황했다. 남송 사신으로 가서 대놓고 칼 맞았다며?”

“그 칼 맞아서 이렇게 기술자도 데려오고 한 거 아닙니까.”

미소를 지으며 경대승에게 말하고 술을 벌컥 마시었다.

“그래… 몸은 괜찮고?”

“예. 남송에 있으면서 몇 주 고생했지만, 지금은 문제없습니다. 그나저나 서경 유수로 갔다가 오셨다면서요?”

“그래. 거기서 혼례도 올렸지.”

“크으!”

현수가 경대승의 말을 듣더니,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평생 혼자만 살 거 같던 형님이 혼례를 올리셨다니… 조만간 선물을 보내겠습니다.”

“선물? 선물은 오히려 내가 줘야 하는 게 아니냐?”

“아이고, 선물 같은 거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수는 손사래를 치며 말하였다.

경대승은 그런 현수의 술잔에 한잔 더 술을 따라 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어떻게 하기는요… 그냥 늘 하던 대로 해야지요. 참, 형님 문제없죠?”

“문제라니?”

현수가 슬쩍 한쪽을 가르치자, 경대승은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평장사 이의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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