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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119화 (119/159)

119화

며칠 후, 아침 일찍 실록편찬과 열전 편찬이 확정되었다.

대전에는 한문준, 문극겸, 이준의, 유응규 외 여러 신료가 자리하였다.

이들은 황제에게 문안을 올리고, 늘 있던 것처럼 황제를 받들었다.

록편찬을 아뢸 준비가 끝난 문극겸이 앞으로 나섰다.

“폐하, 중서문하성에서 선황제의 실록편찬과 열전 편찬하기로 결의(決意)가 되었사옵니다.”

“모두 실록과 열전편찬을 허락하였소이까?”

“예. 폐하. 지난날 있었던 선황제의 실록을 편찬하여 후대에 귀감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결정하였사옵니다.”

한문준의 말에 황제는 이의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상국, 이 상국의 뜻도 대신들과 같소이까?”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의방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전에 관해 물었다.

“열전은 어떤 열전을 쓰려고 하는 것이오?”

“충신, 간신, 역신에 관해 쓸 것입니다. 태조 성조 때의 인물들 모두 포함해 공과 사를 확실하게 적어 그 후대에 알리면 이 나라에 만대에 이르는 충신들이 나올 것이옵니다.”

문극겸의 말에 황제는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대전에서 황제에게 실록과 열전편찬을 고하고 중방으로 돌아왔다.

“편찬하는 데 있어서 춘추관의 사관들에게 눈치를 보지 말고 다 적으라 하게.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면 우복야의 말에 일리가 있는 말들이었어. 언제까지 미룰 수 없는 것들이니 말이야.”

“합하, 하옵고… 국자감에서 성적이 출중한 학생들을 데려다가 춘추관에서 쓸까 하옵니다.”

“인재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하지만 학생들을 실록 편찬하는데 데려다가 쓰는 거면 좀 그렇지 않나?”

학생들을 데려다 쓰면 학생들 마음대로 사초의 기록을 보고, 이상한 글을 적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의방의 물음에 문극겸이 답하였다.

“합하, 학생들에게 사초를 맡기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학생들은 그저 편찬에 있어서 손발이 필요하기에 데려가려는 것이오니, 합하께서 우려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옵니다.”

문극겸은 이의방이 무슨 생각 하는지 알고 있다.

“위위경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이들은 그냥 배제해버려야 하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합하.”

* * *

그날 저녁, 이의방은 무비의 저택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부인, 내가 있을 궁전이나, 관청을 새로 짓는 걸 어떻게 생각하시오?”

“궁이나 관청을 새로 짓는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아, 지난번에 평장사가 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말입니다. 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외다.”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평장사 이의민이 한 이야기를 무비에게 말해주었다.

평장사 이의민이 그 이야기를 한 후, 계속해서 이의민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관청이나 궁을 짓는다면 어떨까 하며 상상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걸 짓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은 말을 이번에 무비에게 꺼낸 것이었다.

“관청을 짓는 자는 겁니까? 아니면 이 상국께서 지내실 궁전이 필요한 것입니까?”

“궁전에서 지낸다니… 가당치 않소이다.”

이의방이 술잔을 내밀자, 무비가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이 고려 땅에서 이 상국께서 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시지요.”

무비는 이의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키는 대로 하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 눈치가.”

“하하하!”

이의방의 말에 무비는 크게 웃었다.

물불 안 가리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던 이의방이었다.

사람 죽이는 데도 거리낌 없는 그가 이제 눈치가 보인다니.

무비 입장으로서는 웃긴 것이었다.

“새 관청을 지어 이 상국의 위엄을 보인다면 그 누구도 이 상국에게 도전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상국께서 궁전을 짓는다면 이 개경이 아니라, 다른 곳에 지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곳에 짓고, 경계해야 한다니?”

“신하와 황제가 나란히 궁전을 사용하는 법은 없습니다. 이 상국께서 궁을 지어 그곳에서 정무를 보고 생활한다면 반드시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상국의 뒤통수를 치고 그 자리를 꿰차고 앉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신 겁니까?”

이의방은 아차 싶었다.

그리고 궁전을 짖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 궁전 대신 내가 직접 근무할 집무실을 만든다면… 궁전이 아니니 상관이 없겠군”

이의방은 좋은 생각이 난 듯, 입꼬리를 올리었다.

하지만 집무실과 새로운 관청을 짓는다면 명분이라는 게 필요하였다.

다짜고짜 기존에 있던 관청을 버리고 새로운 관청을 지어 사용한다고 한다면 분명히 좋지 않은 시선과 목소리가 나올 것은 자명한 일이었니 말이다.

이의방은 무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새로운 관청과 집무실을 짓는다면 어떤 구실로 짓는 게 좋겠소?”

“구실이 필요할까요? 최고 집정 대신이 짓겠다는데 그건 누가 말리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반대하는 자들이…….”

“걱정하지 말고 이야기나 한번 흘려 보세요. 반대하는 이들은 없을 테니.”

무비는 확신의 찬 대답을 해주었다.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술잔에 술을 채워서는 마시었다.

“그나저나 관청을 어디다 짓는 게 좋을까?”

“개경 전역을 전부 다 뜯어고친 이 상국께서 정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하!”

무비의 말에 이의방은 크게 웃었다.

* * *

남송 임안에서 배를 타고, 고려에 당도하였다.

고려 벽란도에 당도하기까지 날씨가 좋지 않아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수가 관복을 갖추어 입고서 사신들과 대전에 들러 황제를 알현하였다.

“내 위위경의 이야기는 천시호 소경에게 들어 알고 있소. 무탈해 보여 다행이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옵고… 남송에서 화약과 화포 제조 기술자를 데려왔사옵니다. 양소라는 자는 남송의 큰 기술자이면서 관리였으니, 폐하께서 친히 어주(御酒)를 내려 주시오면 크나큰 영광일 줄 아뢰옵니다.”

“내 공의 말대로 하겠네. 공의 노고가 컸도다.”

“예. 폐하.”

“이 상국이 남송에서 온 제작 기술자에게 합당한 자리와 직책을 내리는 게 어떠하시오?”

“안 그래도 신이 생각해놓은 직책이 있사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이의방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대전에서 남송에서 돌아온 사신들에게 크나큰 연회를 베풀어 그들을 위로할 것이니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여라.”

“예. 폐하.”

내관이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물러갔다.

현수가 뒤를 바라보며 양소에게 나와서 인사를 하라며 손짓하자, 양소는 앞으로 나와 황제에게 예를 올리었다.

“어서 와라. 그대가 고려의 귀부(歸附)한 것을 짐이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이제 고려에 귀부하였으니, 그대의 본관을 안산으로 하겠노라.”

황제의 말을 역관이 통역해주자, 양소는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었다.

양소의 절에 황제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현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위위경, 두 공주가 무사히 출산하였으니, 일찍 자택으로 돌아가 쉬도록 하게. 연회에는 참석지 않아도 좋다. 하하하!”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 밖으로 나갔다.

신료들 역시나 황제가 나감과 동시에 대전 밖으로 나갔다.

탁!

“몸 좀 어떠하냐?”

이의방이 대전 밖으로 나오자, 현수에게 물었다.

“다 나았습니다. 합하.”

“그래도 너무 무모하였다.”

“하하,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별일 없었지요?”

현수는 선의문을 들어서자마자, 마중 나온 신료들을 봤다.

그들 신료는 웃고 있지만, 신료들끼리 서로를 한번 눈이라도 마주치는 순간, 안색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이에 현수는 쉽게 신료들에게 묻지 못하였다.

천시호라도 있었으면 물어보겠으나, 천시호는 위위시 일로 나오지 못하였다.

“분위기가 안 좋지?”

“아, 예… 합하.”

“실록편찬 하기로 해서 그래. 다들 민감해해.”

실록편찬이라는 말에 현수는 침을 꿀꺽 삼키었다.

실록편찬이 현 정권에 있어서 무얼 의미하는 건지 알기 때문이었다.

“합하, 실록편찬은…….”

“너도 반대하는 게냐?”

“그게 아니오라… 자칫하면 합하께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하하! 시간 나면 춘추관에 한 번 들러 잘하고 있는지 봐봐.”

이의방은 미소를 지었다.

“예. 합하.”

“그럼 나중에 보자…. 할 이야기도 많으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 일찍 들어가 봐. 그리고 아버지가 된걸. 진심으로 축하하마.”

“예. 합하. 감사합니다.”

이의방의 말에 현수는 허리를 숙이자, 정균, 악정 역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이의방은 신료들을 대동하며 중방으로 향하였다.

“악 장군, 정 장군.”

“예. 위위경.”

“양공 데리고 궁궐이랑, 황성에 각 관청을 알려주고 내 사저로 데려오게.”

“예. 위위경.”

“위위경,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축하한다.”

“악 장군 고맙네. 형님도 고맙습니다.”

현수가 자리를 떠나자, 악정은 양소에게 말하였다.

“궁 위치와 각 관청을 설명해 줄 테니, 함께 가십시다.”

“저… 위위경께서는 정확히 어느 직책이신 겁니까? 이제 고려에 왔으니,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알아야 할 듯해서 여쭙습니다.”

“위위경은 황제 폐하를 호위하는 견룡, 순검군을 통솔하는 직책이요. 남송에 있었을 때 잠시 들었겠지만, 위위경은 그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집정 대신이신 합하의 사병까지 모두 관리하고 계신 분이오. 궁궐과 각 관청을 안내해준 뒤. 관직 도표를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해드리리다.”

“감사합니다. 악 장군.”

“뭐라는 거요?”

정균이 악정에게 물었다.

“아, 위위경의 직책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해서요. 나중에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뭐 알아야 하는 게 한두 개도 아니고… 차근차근 진행합시다.”

“예. 장군.”

* * *

현수가 태후전에 들어섰다.

황태후와 황태비에게 남송에서 가져온 유향(乳香)과 몰약(沒藥)을 바치었다.

“위위경, 몸이 안 좋은데도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챙겨주니 고맙구려.”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이건 그저 약소한 선물일 뿐이옵니다. 태후마마와 태비마마께서 원하시는 게 있으시오면 따로 말씀해주시옵소서. 두 분께서 원하시는데 이 세상에서 구해오지 못할 게 무엇이겠사옵니까.”

“하하하, 위위경의 아첨은 날로 늘어가는 듯하네.”

“신은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하옵고… 유리거울은 만족하시는지요?”

“고맙네, 위위경. 아주 마음에 든다네. 아, 이제 돌아왔으니 혼례도 올려야지.”

태후의 말에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었다.

“황태비가 위위경이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고 먼저 사천감에 소식을 넣었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황감(惶感)하옵니다.”

“어서 사저로 돌아가 보게. 두 공주가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예. 태비 마마.”

황태비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뒤로 물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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