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14화 (114/159)

114화

이의방과 천시호는 중방으로 들어왔다.

“네가 건네준 서찰에… 한 치의 거짓도 없겠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위위경께서 직접 소장에게 건네주신 서찰이옵니다. 저 또한 그 내용을 저는 단 한 차례도 읽어 본 적이 없사옵니다. 합하.”

“그래. 알겠다. 네가 돌아왔으니, 위위경이 돌아올 때까지 네가 직접 위위시를 맡아라.”

“예. 합하.”

“그나저나 칼 맞은 데는 괜찮은 게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급히 궁을 빠져나와 고려로 돌아온 탓에 위위경의 안위(安危)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허나, 안에 피갑을 입고 있으셔서 크게 다치지는 않으셨을 것이옵니다.”

“피갑을 입고 있었다?”

“예. 합하.”

“하면… 황제가 그럴 그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게냐?”

“배에서 저희들끼리 그저 농담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진짜 그런 일이 생길지 생각도 못 하였습니다. 위위경께서 장난삼아 시도나 한번 하자고 하셨습니다.”

“허, 참나… 그냥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실행됐다니… 그게 먹히지 않으면 어찌하려고 하였느냐?”

“고려에서 가져간 물품들을 빼돌려 주화파 신료들을 포섭하려 했사옵니다.”

“…뭘 빼돌렸어?”

“청자와…….”

“됐다, 됐어.”

이의방은 더는 듣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만 물러가거라.”

“예. 합하.”

천시호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 중방 밖으로 나갔다.

“밖에 있느냐?”

덜컹.

방문이 열리며 녹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찾으셨사옵니까. 합하.”

“내일 아침 일찍 판 추밀원사, 공부상서, 호부상서, 병부상서, 군기감장, 군기감정을 중방으로 들어오라고 전해라.”

“예. 합하…….”

이의방은 나가보라며 손짓하였고, 녹사는 허리를 숙이며 곧장 밖으로 나갔다.

* * *

다음 날 아침.

이의방은 이들이 들어오기 전 모든 이들을 50보 밖으로 물렸다.

중방의 호위 병사들 역시 50보, 100보 밖으로 보내 경계 태세를 갖추게 하였으며, 지금 불러들인 이들이 밖으로 나갈 때까지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합하, 무슨 일로 저희를 따로 뵙자고 하셨사옵니까.”

판추밀원사가 먼저 물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오늘 내가 한 말을 듣고, 어디 가서도 이야기하지 말게. 내 말 어기면 다 죽는 게야.”

이의방은 들어서자마자 살 떨리는 소리를 했다.

이에 모두가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키었다.

수년간 신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던 이의방이었다.

힘을 휘두르지도 협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중방을 이끌어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시작부터 협박하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바짝 긴장하였다.

“그냥 웬만하면 술도 한잔 마시지 말게. 아시겠나?”

“예. 합하…….”

판추밀원사와 상서, 군기감장은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자네들도 위위경이 남송으로 간 이유를 들었을 것이네. 대충이라도 알고 있을 거야… 어제 천시호 장군이 와서 내게 상황을 자세히 전달해 주었네.”

“…….”

“위위경이 목숨을 걸고, 화포와 화약이라는 걸 구했다는군.”

“지난번 이야기했던 쇠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판추밀원사 유문후의 물음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공부상서.”

“예. 합하.”

“개경 근처에 군기감보다 더 큰 관청을 하나 새워야 할 건데, 그 크기가 군기감의 세 배는 되어야 하네. 인원은 삼백여 명 정도가 좋겠구만.”

“…….”

“또한 벽돌로 건물을 지어야 하네. 항시 화재를 대비하여 거대한 솥을 곳곳에 배치도 하고. 자네가 그 부지 좀 보고 작업 시작하게.”

“예. 합하.”

“그리고 호부 상서가 재자(才子) 좀 밀어주기를 바라네. 군기감에서는 손기술 좋은 이들 준비해주고… 자세한 건 위위경이 오는 대로 다시 이야기하자고. 다시 말하겠지만, 이 사실은 당분간은 자네들만 알고 있어.”

“예. 알겠사옵니다.”

“지금 나라에서 큰 공사는 다 끝이 났지?”

“예. 합하.”

공부상서 박육화가 답하였다.

“그럼 죄수들은 요즘 어디서 뭐 하고 있나?”

“대부분이 철광으로 옮겨 노역시키고 있사옵니다. 합하.”

“내가 말한 곳에 인부로 징집하고, 다 지어지는 대로 다시 철광으로 돌려보내게.”

“예. 합하.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판추밀원사, 어사대부하고 이야기를 좀 해서 전주로 사람을 보내서 상황 좀 살펴봐.”

“어인 일이시온지요…….”

“전주에서 익명으로 관부의 직인까지 찍어서 장개가 하나 올라왔는데… 향, 소, 부곡의 자리였던 곳에서 조정의 명을 참칭(僭稱)하고 재물을 수탈한다는군.”

“예!?”

“판추밀원사가 어사대부와 의논하여 알아본 후 처리하고 보고하게.”

“예. 합하…….”

향, 소, 부곡의 자리라고 한 곳은 저번 난 이후, 제대로 취급을 받고 있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옛날같이 그들을 대하지 아니하였고, 향 소 부곡으로 부르는 대신 크기에 따라 주, 현, 군으로 편입시켜 부르곤 했다.

그런데 전주에서 재물을 수탈한다고 하니, 빨리 손을 써야 했다.

“이만 물러들 가보시오.”

이의방이 손짓하자, 신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방 밖으로 나갔다.

* * *

“이 집이야?”

“예. 위위경. 이곳에 양소라는 자가 있사옵니다.”

길을 안내해준 남송의 관리가 말하였다.

임안에서 좀 외진 곳에 기거(起居)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현수가 직접 찾아왔다.

기술자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하였고, 어차피 고려로 데려갈 거 미리 안면이라도 트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다.

양소의 집은 생각보다 너무 조잡한 집이었다.

한 나라 전직 관리의 집이 맞나 싶어질 정도였다.

비록 작은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집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이런대서 산다고?”

문 앞에서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현수는 관리를 보며 물었다.

“예. 위위경. 이 집에서 기거하고 있습니다.”

“아니, 기술자 맞아? 기술자 집이 이런다고?”

대체 기술자라고 하면 나라에서 우대해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고려에서도 군기감에 속한 장인들, 그리고 각 관청에 속한 각기 가진 기술 장인들을 우대해주고 챙겨주었다.

분명 남송도 고려처럼 기술자들을 우대해주고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건 현수의 착각인 듯했다.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산 거야?”

현수는 관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옵니다.”

관리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이만 가보게.”

“아, 예… 위위경.”

남송의 관리는 현수의 말을 듣고, 다시 돌아갔다.

관리가 돌아간 것을 확인한 현수는 차마 대문이라고 할 수 없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몰랐지만, 집안은 나름대로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대나무 들을 엮어서 만든 집이라 그런지 운치는 정말 좋았다.

다만 겨울이 되면 정말 추울 것만 같았다.

“미쳤구먼… 저걸 집이라고 짓고 산 게야? 겨울에는 어떻게 버텨?”

현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은 사람이 없는 듯싶습니다. 위위경.”

악정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에 현수가 몸을 식겁하며 돌아섰다.

한 남성이 차가운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고, 작은 원형 통을 자신에게 겨누고 있었다.

그의 뒤에 빼꼼히 고개를 살짝 내미는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이 양소요?”

현수가 그를 바라보며 묻자, 악정이 통역하였다.

통역을 들은 양소가 답하였다.

“누구냐고 묻습니다.”

“고려국 사신이오. 이번에 당신을 데리고 갈 사람이죠.”

양소는 악정의 말을 듣고서 원형 통을 내려놓았다.

이에 정균이 미소를 지으며 한 손에 들고 있던 술병과 몇 가지 싸 온 음식을 보여 주었다.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현수가 천천히 다가가서 양소에게 살며시 고개를 숙이었다.

“반갑습니다. 양공. 들어서 아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위위경 유현수라 하오이다. 그리고 그간의 사정을 내 조금 들어서 일단 먹을 걸 좀 가져왔습니다.”

현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송의 관리들을 불러 미리 양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양소는 머리는 비상하였고, 남다른 사고방식에 자유분방한 성격이라고 했다.

그로 인해 주전파 신료들에게 무척이나 신임받는 기술자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가 설계하고 만들어낸 화약 무기들이 잦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주전파 신료들조차 점점 양소의 화약 개발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양소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점차 커졌다고 전했다.

양소는 조금만 더 손을 보면 완성할 수 있다며 주전파 신료들을 설득하였으나, 막대한 개발비로 인해 결국 양소의 개발은 물거품이 되었다.

양소는 그로부터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개발하지 못하고, 기존에 만든 화약과 화포만을 대량 생산만 해왔다.

그러던 중 주화파가 주전파가 여태껏 해온 것들이 세금을 낭비하였다면서 질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양소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고 했다.

양소와 현수 일행은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하였다.

남자 혼자서 관리하기에는 넓은 방이었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고려로 가야 할 걸 받아들였는지, 양소는 모든 짐을 다 싸 놓은 상태였다.

타타탁!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뛰어다니는 양소의 딸을 보며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딸이 참 예쁘네요. 저도 곧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데… 혼자서 아이 키우기 어렵지는 않습니까?”

현수의 물음에 양소가 답하였고, 악정이 통역해주었다.

“하하, 대단하십니다!”

양소의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의 첩으로 들어갔고 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사직하고 난 뒤, 먹고 살기가 난감하여 양소는 공방에 들어가서 일했지만, 납품한 물건에 하자가 많다며 잘렸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도 다른 곳에 일하러 들어가면 열흘도 못 버티고 나오게 되었고, 결국에는 임안 어디에서든지 일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생활이 궁핍해지다가, 참다못한 양소의 아내가 양소와 아이를 버리고 다른 남자의 첩으로 가게 되었다.

첩으로 들어간 남자가 바로 진우형이었다.

현수는 이러한 이야기를 양소를 잘 아는 이를 통해서 들었다.

이 이야기를 알면서도 양소가 아픈 곳을 피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그런 일을 겪으면서 어떻게 버텨왔는지는 양소에게 직접 묻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술병을 들어 양소에 작은 술잔에 한잔 채워 주었고, 현수의 잔에도 술잔을 채웠다.

이에 악정과 정균의 표정이 굳어졌다.

“위위경, 지금 술은…….”

“괜찮아. 오늘 같은 날은 마셔야 하는 날이네. 국가의 보배가 들어오는데 이깟 술 한잔 따위가 뭐가 대수인가.”

현수가 양소와 술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위위경, 어제 베인 곳이 아프다고 하시며 잠을 주무시지 못하시지 않았습니까…….”

“되었네. 그냥 오늘은 마시세.”

“저희가 걱정돼서 그러합니다.”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술병을 들어 악정과 정균의 술잔에도 술을 채워 주었다.

서로 술을 마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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