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병부상서의 생각은 어떤가?”
“예. 합하. 예부 상서의 말에 일리가 있다 보옵니다…….”
“그, 무슨!”
이준의가 발끈하자, 이의방이 제지하였다.
“계속해보게…….”
“보내온 내용처럼 신무기가 어떤 건지 알아내야 합니다. 비록 남송이 공개할지 안 할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저희가 사신을 보낸다면 저들은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려와 남송의 제대로 된 접전이 없었기 때문이옵니다.”
병부상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긴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남송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중서시랑평장사 윤인첨이 말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남송은 금에 대항해 승리하였고 북벌을 주장하던 황제는 북벌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그 결과 금나라를 대패시켰고 우리는 금나라에 원군을 보냈으니… 패전국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고려군이 제대로 접전을 벌인 것도 아니고, 군은 아직 건재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패전국이 조공을 하는 꼴로 보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희가 언제 송나라 황제의 생일을 제대로 챙겼겠습니까.”
윤인첨의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송에 황제에게 생일이랍시고, 사신을 보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럼 이렇게 하세. 승전을 축하한다고.”
“합하, 그럼… 금나라와의 관계가…….”
“어차피 대패했는데 무슨 상관인가. 더군다나 우리도 황제국이야. 금나라가 뭐가 무서워서 눈치를 봐야 하는가.”
신료들은 이의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합하, 그럼…….”
“어찌 되었든 간에 알아볼 필요는 있으니, 승전을 축하한다고 사신을 보내게. 그리고 금에 있는 우리 군에게 별일 없으면 돌아오라 장계를 띄우고, 예부 상서, 사신단을 꾸릴 준비를 차질 없이 준비하고 호부 상서는 어떤 선물이 좋을지 준비하여 보고하게. 나는 폐하를 알현하겠네.”
“예. 합하.”
두 사람이 대답하자, 이의방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방 밖으로 나갔다.
* * *
“…쇠구?”
“예. 들리는 이야기로는 불을 뿜는 쇠구라고 했던 거 같습니다.”
“뭐? 불을 뿜는 쇠구?”
“예. 그렇습니다. 뻥뻥 소리를 내면서 쇠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일 때문에 조정이 시끄럽다고 하더군요. 그 신무기를 알아본다고 남송 태상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신을 보낸다고 합니다.”
악정의 말에 현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사신… 누구로 갈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가?”
“예. 그렇습니다. 설마… 위위경께서 직접 가시려는 겁니까?”
“그래. 그 불 뿜는 쇠구 말이야…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생각하신 게 맞다니요?”
악정의 물음에 현수는 곧장 위위시 밖으로 나가 이의방에게로 향하였다.
얼마 후, 황제를 알현하고 나온 이의방은 중방으로 가던 도중 현수를 만났다.
“아, 위위경.”
“합하.”
“어인 일로 왔는가?”
“합하, 남송 사신으로 저를 보내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사신으로 보내 달라는 현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얼마 후에 두 공주께서 출산하실 텐데… 그 무슨 소리냐.”
“합하, 부탁드립니다.”
현수는 간절하게 이의방을 보며 부탁하였다.
“…이유는?”
“불 뿜는 쇠구… 그것 때문입니다.”
“뭐?”
“제가 가면 그 신무기를 가져올 수 있을 듯합니다.”
“그것이 정말이냐?”
이의방은 현수의 말에 혹하였다.
“예. 제조법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걸 쓰는 것까지 말입니다. 다는 아니더라도 그 일부분은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생각한 게 맞다면… 충분히 고려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저기 저쪽 가서 이야기 좀 하자.”
이의방은 현수를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확실히 그걸 가져올 수 있겠느냐? 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거라니? 넌 그게 뭔지 안다는 말이냐?”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걸 가져와 보겠습니다.”
“오냐, 보내주마. 혹시나 가져올 수 없다면 모르는 척하고 그냥 놓고 오거라. 그건 조정에서 알아서 할 테니.”
“예. 합하.”
현수는 고개를 숙이며 곧장 다시 위위시로 향하였다.
위위시로 돌아온 현수는 정균, 천시호, 악정을 불렀다.
“합하를 만나 뵙고, 사신으로 가겠다고 청하였네. 자네들이 도움이 필요해.”
“예?”
“그게 무슨…….”
“불 뿜는 쇠구, 그 정체를 좀 알아보려면 말이야.”
“저는 위위경과 함께 갈 것입니다.”
천시호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내키지 않으면…….”
“가겠습니다. 위위시 수장이 가겠다는데 그 휘하가 안 따라가면 위위경이 뭐가 됩니까.”
정균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그에 반해 악정이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위위시를 살피게. 중요한 일이 있으면 추밀원부사에게 이야기하고.”
“…예?”
“가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잖나. 나라에 충성하였는데 나라는 자네 아비를 버렸지, 가족들도 잃은 마당에 나 같아도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네.”
현수는 악정의 마음을 이해했다.
“…송구합니다.”
“송구할 게 뭔가. 자네는 이곳에서 위위시를 나 대신 맡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네.”
현수의 말에 악정은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었다.
“위위경,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불 뿜는 쇠구를 알고 계시는 겁니까?”
“아니, 자세한 것은 모르네. 추정되는 건 아마 화포와 화약일 거야.”
“예? 화포와 화약이라니요?”
정균이 물었다.
“화약은 염초와 섞어서 만든 일종의 화력을 증강시킬수 있는 것이고, 화포는 그 화약이라는 것을 넣고 쓰는 대포이네.”
“위위경이 그걸 어찌 아십니까?”
천시호가 물었다.
“아, 얼핏 들었어. 확실치는 않지만… 뭐… 가보면 알겠지?”
현수는 얼버무리듯 마무리를 지었다.
“그나저나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뻔하지 않은가. 그것들을 찾아야지.”
“한마디로 복면 쓰고 들어가서… 찾으라는 소리군요.”
정균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거 하죠.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하하하하!”
현수는 크게 웃었다.
* * *
현수는 홀로 앉아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시작인가? 잘하면 역사가 바뀌고, 못하면 역사 그대로 흘러가는 건가?’
칭기즈칸으로 인하여 고려, 몽고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에서 패배하여 고려에 굴욕적인 ‘충’자 돌림 왕들이 탄생하였다.
여기서 잘하면 역사를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후대에 저 광활한 초원의 왕이 모든 왕국을 무너뜨렸지만, 고려 하나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역사가 교과서에 쓰인다고 생각하자, 현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 * *
“병마사 어찌하면 좋소?”
“어찌하긴요… 합하의 명이 떨어지는 그때까지 이곳에 있어야지요.”
“벌써 두 달이 흘렀습니다. 금나라는 거의 전의를 상실해 있어요.”
“남송의 신무기로 인해서 사기가 저하 된 것이지요.”
“그나저나 거참 이상합니다… 왜 남송은 가만히 있는 건지…….”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송이 너무 조용하니, 불안감이 들어왔다.
“내부에 문제라도 있는 게 아닐까요? 태상황제와 남송의 황제와 사이가 좋지 않다 들었는데…….”
“설마요. 아무리 전쟁을 하는 데 불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설마가 사람 잡는 법입니다.”
서경 유수 조위총의 말에 병마사 우학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가 문제예요. 병마사 말대로 우리가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미리 회군을 하겠다고 금 황제에게 서신을 보내보지요.”
“아닙니다. 괜히 그렇게 했다가 고려와 금의 사이가 벌어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합하께 다시 장계를 보내겠습니다.”
“예?”
“제가 그 전에 금나라의 사정에 대해서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조위총은 집필묵을 준비한 상태에서 붓을 들고서 종이에 써 내려갔다.
[합하께 아룁니다. 금나라는 남송의 신무기를 본 뒤로 사기가 급격하게 저하 되었습니다. 또한 금나라의 소식을 들은 것은 그대로 아룁니다. 금나라 북방, 즉 몽고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사옵니다. 금나라 전역에서 징집령이 내려졌으며, 16세부터 30세까지 모두 전쟁터로 불려 나가고 있사옵니다. 그뿐만이 아니오라, 금나라의 내정 상태도 영 좋지 못한 듯하니, 후일을 위하여 북방의 경계를 더욱 강화할 것을 청하옵니다. 서경 유수 조위총.]
“자, 보시지요…….”
조위총은 자신이 쓴 글을 우학유에게 보여주었다.
“더 들어가야 할 내용이 있는지요. 있다면 다시 쓰고요.”
“아닙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덜컹.
방문이 열리며 금나라 장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인 일이시오?”
“금나라와 남송이 다시 화친(和親)을 한다고 합니다.”
역관이 이를 통역해주었다.
조위총과 우학유는 어이가 없었다.
전쟁 시작해놓고 나서 다시 화친한다고 하니 말이다.
“금나라에서 먼저 화친을 제의하였고, 사신이 출발했다는 통보입니다.”
“…미쳤구먼.”
“조정에서도 화친은 아니 된다면서 난리를 친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북방이 우선이니 화친을 해야지요.”
“남송이 받아들이겠소?”
“받아들일 겁니다. 남송의 태상황제는 싸우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이니까요. 태상황제가 있는 한, 남송 황제는 앞으로 다시는 날뛰지 못할 겁니다.”
“아니, 권력에서 물러섰으면 조용히 뒷방 늙은이 노릇이나 할 것이지… 왜 조정에 간섭하는지 참…….”
우학유가 혀를 찼다.
금나라 장수의 말에서 남송의 현 정치 상황이 얼마나 개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폐하께서 보내신 전언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귀국을 하셔도 좋다 하십니다. 그럼 이만…….”
금나라 장수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다시 써야겠네.”
“하하하.”
조위총은 다시 자리에 앉아 장계를 쓰기 시작하였다.
* * *
“위위경, 악정 소경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들이게.”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악정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훈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뭐… 항상 있는 훈련 아닌가.”
현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 말이 있으면 하게.”
“저 그게…….”
악정답지 않게 조금 뜸을 들였다.
“…남송 문제인가?”
“아, 예.”
현수의 물음에 악정이 대답하였다.
“앉게.”
“예. 위위경.”
악정이 자리에 앉자,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있는 찬장으로 가서 청자로 만들어진 술병과 두 개의 잔을 가지고서 상위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