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적들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인하여 올출이 군막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피었다.
목책이 부서지고, 군사들의 사상자가 나돌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화포 공격에 놀란 군사들이 허우적거리다가 화로를 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군막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펑! 퍼펑! 퍼엉!
다시 한번 성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올출은 깜짝 놀랐다.
“불을 꺼라! 불을 꺼!”
지휘관들이 군사들을 통솔하며 불을 끄라고 지시하였다.
빠아악!
강력하게 공성병기에 내리꽂는 화포의 위력.
석포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이 너무나 크다 보니, 올출은 멍하니 망가져 가고 있는 공성병기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원수! 위험합니다!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올출의 부장이 와서 말하자, 올출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서 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긴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대열을 갖추어라! 군사들이 동요한다!”
“…하지만!”
“어서 대열을 갖추란 말이다! 이 상황에서 적들이 성문을 열고 나온다면 전멸이다!”
올출은 빠르게 생각 해내었다.
피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전멸만은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펑! 퍼펑!
계속해서 성에서 불을 내뿜으며 쇠구가 날아와 진영에 꽂혔다.
올출은 이런 상황 속에 냉정을 찾았다.
“대체 저놈들이 쏘는 게 뭐야!”
“이런 개 같은!”
서언은 고려 군사들을 빠르게 피신케 하였다.
최대한 진영 밖으로 말이다.
“진영으로 나가라! 나가서 재집결하라!”
“나가! 빨리 나가!”
화르르르.
불길이 번졌다.
“으아아아아!”
군막에 불이 붙으면서 그 안에서 군사들이 허우적댔다.
서언이 급히 군막으로 뛰어갔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불길이 거세지고 곳곳으로 불길이 번졌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와 쇠구들이 날아오니, 자신도 정신이 없었다.
“기병을 내보내라.”
“예! 폐하!”
금군 대장은 곧장 움직여 성루 아래를 보며 소리쳤다.
“성문을 열어라! 기병은 돌격하라!”
명이 떨어지게 무섭게 군사들은 일제히 성문으로 달려가 문을 활짝 열고 자리로 돌아왔다.
“전군 돌격하라! 하아압!”
장수가 먼저 말을 타고 내달리며 앞으로 나아가자, 기병들 역시 장수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성문 밖으로 나가 적진으로 돌격하였다.
두두두두두.
빠른 속도로 적진 코앞까지 진군(進軍)한 기병들은 족족 보이는 대로 창으로 찌르고 내리치며 금나라 잔당들을 소탕해 나갔다.
“피해라! 기병이다!”
“기병이다!”
기병이라는 소리를 들은 올출은 뒤를 돌아보았다.
진영을 뚫고서 기병들이 금나라 군사들을 학살하고 있었으며 성에서는 더 이상 쇠구가 날아오지 않았다.
이에 올출은 명을 내렸다.
“저놈들을 몰아내라! 어서!”
대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올출을 명을 내렸다.
“와아아!”
군사들을 창을 들고서 기병에 대적(對敵)하며 싸워 갔지만, 역부족이었다.
“대원수, 피하십시오. 여기는 가망이 없사옵니다!”
“피하기는 어디로 피한다는 말이냐! 말을 가져와라!”
“네이노오옴! 올출!”
무섭게 말을 타고 달려오는 적장이 눈에 들어오자, 올출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달려오는 기병의 창을 쳐내기에는 말이다.
푸욱!
“커헉!”
남송 장수의 창은 올출이 아니라, 옆에 있는 부장의 가슴을 꿰뚫어 버렸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상황이라, 올출은 잠시 말을 잃었다.
“대, 대원수…….”
가슴을 꿰뚫린 부장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퍼억!
대원수를 지켜보던 다른 부장 역시 들이치는 기병에 창에 옆구리를 찔리며 죽음을 맞이하였다.
“갑시다! 올라타요!”
“대원수 가야 합니다!”
서언과 아하료가 다가와 올출을 말 위에 태워 고려군 쪽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원진! 원진을 유지해서 나아가라!”
서언은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군사들은 일시에 원진을 꾸리며 창을 앞으로 내밀고 방패로 막으며 전진해 나아갔다.
“기병이 온다! 궁수 준비!”
서언의 외침에 병사들은 멈추고 원진 안에 있던 궁수들은 일제히 시위를 당기었다.
“발사!”
쉬쉬쉬쉭!
일제히 기병이 오는 곳으로 화살을 날리며 기병을 제지하였다.
“군영을 빠져 나간다! 앞으로!”
“앞으로!”
턱! 턱! 턱!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금나라의 군영을 빠져나가려고 하였지만, 쉽지는 않았다.
기병들은 빠른 속도로 고려군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궁수 전방으로! 준비!”
서언이 다시 명을 내리자, 보병들은 일제히 멈추어 섰다.
“발사아아!”
쉬쉬쉬쉭!
화살이 연달아 비처럼 쏟아지며 기병을 맞추었다.
“장군… 포위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어쩌라는 말이냐? 이곳을 탈출해야지 사람을 보낼 것이 아니냐!”
점점 포위망이 가까워지면서 겹겹으로 에워싸기 시작하자, 서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상태로는 기병을 뚫고 나갈 수 없었다.
강제로 뚫고 나간다고 해도 후방이 문제였다.
서언은 그대로 군사들에게 정지령을 내리고 원진을 절대 풀지 않았다.
“고려군의 진형이 제법이구나.”
“폐하, 어찌하오리까?”
황제는 잠시 생각했다.
고려군을 저대로 보내느냐 아니면 전멸을 시키느냐.
전멸시켜도 차후가 문제였다.
“폐하, 감히 말씀드리옵니다만… 고려군을 저렇게 놓아주어서는 아니 됩니다.”
“어차피 고려군은 금나라 원군에 응하였으니, 마땅히 고려군을 전멸을 시켜야 올 은줄 아룁니다.”
“그래. 그대의 말이 옳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된다니?”
“고려군은 서북면에 있는 군사를 보내었사옵니다. 저들의 행보를 보시옵소서. 웬만하면 우리와 싸우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고려군을 전멸을 시킨다면 분명 고려는 대군을 일으킬 것이옵니다. 또한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고려는 해군이 건재하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 남송에 상륙한다면… 고려군이 임안을 칠 수도 있사옵니다.”
고승윤의 말에 황제는 머뭇거리기는커녕 당장 기병을 회군시키라 명을 내렸다.
금군 대장은 외쳤다.
“북을 쳐라!”
“북을 쳐라!”
두웅! 두웅! 둥!
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고려군을 포위하던 기병들은 회군하는 모습이 보였다.
* * *
“폐하, 신 유영 아뢰옵니다. 보급과 군량에 문제가 있어 북진은 어려울 듯하니… 회군하시기를 청하옵니다.”
“뭐라?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라!?”
“폐하, 이미 태상황제께서 후방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어찰을 보내셨습니다. 현재 있는 보급과 군량으로 북진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사옵니다. 또한 화포가 있다고 한들 화약과 쇠구를 보급을 받을 수 없다면 개봉은 쉽게 함락당할 것이옵니다.”
유영의 말에 황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회군을 하느냐 아니면 죽기를 각오하고 북진을 해야 하느냐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썼다.
“유 대인, 그 무슨 말씀입니까. 50만 대군입니다. 그 대군으로 북진을 못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생각해보시오. 고려군도 있소이다. 거기에 지속적인 장기전으로 인하여 보급품과 군량이 떨어지고 있소. 후방의 지원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자네는 정녕 모르는가?”
금군 대장 한 장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폐하, 아뢰옵니다. 부디 신의 간청을 깊이 생각하여 주시옵소서.”
황제는 성루에서 불타고 있는 적의 진영을 보았다.
활활 타고 있었다.
게다가 대패(大敗)한 금나라 잔당들이 기병을 피해 달아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남송이 금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하아… 여기서 만족해야 하는 건가?”
“폐하, 화포가 있는 한 금나라는 쉽게 공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벌은 잠시 미루시옵소서.”
유영은 계속해서 황제를 설득해 나아갔다.
* * *
“모두 괜찮으냐!”
“예! 장군!”
서언은 모든 군사들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안전지대까지 벗어난 고려군이었다.
그제야 서언은 남송쪽 성에서 날아온 쇠구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신무기인가?”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공격.
거기에 엄청난 사거리와 파괴력까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장군, 가까운 성으로 가야 합니다.”
“남송은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는 듯하니, 불이 꺼지면 시신이라도 가져가야지.”
서언의 말에 부장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었다.
“그나저나 참으로 무서운 무기구나. 공성병기든 뭐든 다 박살을 내었어.”
“예. 저도 처음 보는 무기입니다.”
“지금 전령을 띄워라. 개봉으로 가서 대패했다고 전하고, 절대 개봉으로 와서는 아니 된다고 유수와 병마사께 전해드려야 한다.”
“존명!”
부장은 곧장 움직였다.
처음 맞이하는 적의 공격에 서언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 훨훨 타올라라… 이게 북벌의 시작이니…….”
황제는 성루에서 아직도 훨훨 타오르고 있는 금나라의 진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장수들 역시 불타는 진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불이 모두 꺼지고, 잔불만이 타오르고 있는 군영에서 고려군은 금나라와 아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개봉으로 회군하고 있었다.
성루에서 그 모습을 보던 남송의 황제는 몸을 돌아섰다.
“고 장군.”
“예. 폐하.”
“각 성을 방어할 수 있는 군사를 제외하고, 모두 회군한다.”
“폐하의 명을 받으옵니다!”
남송의 대군은 이곳에서 멈추어야만 했다.
하루 동안 성루에 서서 생각하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황제는 성루에서 몸을 돌려 성 아래로 내려가며 작게 읊조렸다.
“노기충천할 제 난간에 기대서니, 비바람만 소슬하구나… 눈을 쳐들고 멀리 바라보며 하늘 우러러 길게 포효하니…….”
* *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금나라가 대패(大敗)를 하였어?!”
두 달 만 소식을 받은 이의방이었다.
“그것도 전멸에 가깝다고?”
금나라가 남송의 신무기에 대패를 하였다는 것에 이의방과 신료들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불을 뿜으며 쇠구가 날아와 군영을 일제히 초토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고려군도 피해를 입었으며 남송의 군대는 회군 하였다는 장계였다.
“남송이… 회군을 해?”
이의방은 뭔가 이상하게 느꼈다.
승기를 잡은 남송이 군을 이동하지 않고 회군을 하였다는 게 말이다.
더불어 금나라 역시 쉽게 군을 움직이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먼.”
이의방은 장계를 내려놓았다.
“합하, 곧 남송 태상황제의 생일이옵니다. 그날에 맞추어 사신을 한번 보내보시는 게 어떠하옵니까?”
유응규가 이의방에게 권하자, 앉아 있던 이준의가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 금나라와 우리 고려가 손을 잡고 있는데 저들에게 승전 축하한다고 선물이라도 보내자는 말이오?”
“생일입니다. 승전이 아니라요. 그리고 남송의 상황을 봐서 금에 있는 군을 철수를 시키든지 할 게 아닙니까.”
“그게 그거지 않소. 저들의 공격으로 인하여 우리 군사들이 다치고 죽었는데 선물을 보내자니, 그게 할 말이오!”
“우복야! 말씀이 심하십니다! 저 또한 군사들의 희생에 대해서 매우 유감입니다!”
“그만!”
언성이 높아지자, 이의방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