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01화 (101/159)

101화

“위위경, 한 아이만 있으시면 되겠습니까?”

“아니오. 열 명은 있어야 하는데 가능하겠는가?”

“예…? 열 명씩이나요?”

“두 분을 호위하는데 한 명 가지고는 어림없지.”

현수의 말에 행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시지요.”

현수도 자리에서 일어나, 행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큰 채에 들어와 뒤편으로 좀 더 이동하자, 크게 지어져 있는 행랑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 행랑채의 넓은 마당이 인상적이었다.

“대단하구먼… 소나무에 가려져 있어 몰랐는데.”

큰 채에서 술을 마시며 등(燈)이 밝혀진 뒤편을 보면서 참 은은하니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하였는데 그 뒤편에 이런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지는 몰랐다.

그뿐만이 아니라, 행랑채 뒤로는 아주 높게 쳐진 담장과 더불어 큰 바위, 소나무가 있었다.

“저 소나무들 때문에 이 행랑채에 아무도 관심이 없을 거야.”

“예. 그러하지요.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데, 사병이 있어도 되는 건가? 오해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다른 집들은 사병들이 있는데 기루라고 해서 없으라는 법 있겠습니까?”

“흠… 그건 그렇구먼.”

“그리고 여인들은 이곳 말고도 산채에서도 거주합니다.”

“산채(山寨)? 아니… 산채도 있단 말인가?”

“위위경에게만 특별히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나 말고는…….”

“모릅니다.”

행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행수 덕분에 모르는 일을 알게 되었네.”

“위위경께서는 큰 손님인데다가 유일하게 저희들을 사람 취급해주시시지 않습니까.”

“사람 취급이라… 하하! 이 사람아, 기녀도 사람인데 그리 말을 하면 쓰나.”

행수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앞을 보며 이름을 불렀다.

“옥화야, 선화야.”

행수가 여인의 이름을 부르자,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행수.”

“너희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여덟 아이를 데려오거라.”

“예. 행수.”

두 여인은 고개를 살며시 숙이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곧이어 다른 여인들도 등 뒤에 검을 착용하고 나왔다.

“너희들이 가장 자신 있는걸 보여주거라.”

행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흩어진 여인들은 곧장 수리검을 한 번에 다섯 개씩 소나무에 던졌다.

탁! 타타탁!

소나무에 박힌 수리검들은 단 한 개도 빗나간 것 없이 모두 정확하게 꽂혔다.

“어떠십니까?”

“50보 떨어진 곳에서도 가능하겠소?”

행수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여인들은 50보까지 자리를 옮겨서 수리검을 던졌다.

팍! 파파팍!

이번에는 강하게 던졌는지 수리검들이 소나무에 깊게 박힌 것을 보며 현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마음에 드십니까?”

“좋아. 아주 좋아. 준비시키시오. 대금은 사람을 시켜 보낼 테니.”

“감사합니다. 위위경.”

행수의 말에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만화루를 나섰다.

“행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옥화가 다가와 물었다.

“위위경께서 너희들을 사셨다.”

“…예?”

행수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어, 어찌…….”

“공주님을 호위하기 위함이라는구나. 오늘부터 기적에서 모두 너희 이름을 제할 것이다. 이제 너희는 위위경의 명을 받아야 한다.”

모두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공주를 호위한다는 구실로 자신들을 어떻게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은 기녀임에도 기녀가 아닌 존재로 계속해서 살아왔다.

만화루에서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값나간 정보들만 속속히 전달했다.

그것으로 기루에서는 많은 이득을 보았고, 만화루를 남부럽지 않은 기루로 만들었다.

하지만 말이 호위이지, 실상은 그게 아닐 수도 있었기에 그녀들은 얼굴빛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행수, 만약… 만약입니다만…….”

“저분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다. 예전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게는 두지 않을 것이다. 혹시 무슨 일이 있다면 반드시 나를 찾아와라.”

행수는 단호하게 답하였다.

* * *

저택으로 돌아온 현수는 집사를 시켜 소은병 150개를 만화루로 보내게 하였다.

그리고는 정자에서 차를 마시며 두 공주와 자리하였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수안궁 공주 왕씨가 물어왔다.

“아, 두 부인을 위해 호위를 구했습니다.”

“호위요?”

“예. 호위요. 한 열 명 정도 꾸렸으니… 제가 자리를 비우고 있어도 두 분을 호위할 겁니다.”

“또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연희궁 공주 왕씨가 물었다.

“아닙니다. 다만, 걱정돼서 호위를 두겠다는 겁니다. 두 분도 아시다시피, 남송과 금나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요.”

남송과 금나라는 아직까지도 접전중이었다.

금나라로 원군을 보낸 고려군 역시 금 수도에서 개봉으로 파견된 이후로, 별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전세(戰勢)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항상 준비해야만 하였다.

“황제 폐하를 호위하시는 위위경이신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하, 위위경이라고 해도 계속해서 폐하의 곁에 머무르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제가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견룡지유, 견룡행수가 황제 폐하를 호위하니 괜찮습니다.”

“위위경.”

“예.”

“제가 정주에 가면 아니 되겠습니까?”

“정주요? 정주는 왜요?”

“정주에도 한 번도 가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연희궁 공주 왕씨의 말에 현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가보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가셔도 됩니다.”

현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었다.

순간 잘 있을 그 녀석이 떠올랐다.

“정주에 가면 이만한 아이가 있을 겁니다.”

“네?”

“아이요?”

“네. 그 아이는 서역에서 왔습니다. 고려에 버려진 아이지요.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좀…….”

쉽게 노예 상선의 성노예라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무엇인데 그리 감추려 하십니까?”

“감추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말하기가 좀…….”

“무엇인데요?”

두 공주들은 오히려 현수가 말 못 하는 것에 대해서 더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에 현수를 추궁하듯이 계속 물었다.

“말씀해주십시오.”

“서역 아이면 제대로 말이 통할 리가 있겠습니까?”

“아… 그게…….”

“예?”

“노예선의 성노예였습니다.”

“…….”

“…….”

두 공주는 현수의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정주에 성노예로 버려진 아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현수를 이상한 사람취급 하기 시작했다.

“저… 혹시…….”

“그런 거 아닙니다!”

현수가 버럭 소리쳤다.

“아니, 왜 화를 내십니까…….”

“화낸 거 아닙니다…….”

두 공주가 처음으로 현수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현수는 어떻게 수습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공주는 연달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인간이야? 어떻게 그런 애를 갖다가!”

“…예!?”

“아무리 노예라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아, 아니… 지금 무슨…….”

“정말 실망이네요. 전 위위경을 그리 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수안궁 공주 왕씨가 말하자, 현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서 이렇게 죽일 놈 취급하니 말이다.

“됐다. 일어나자.”

연희궁 공주 왕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으세요! 말 안 끝났습니다!”

현수도 욱하며 소리치자, 두 공주는 매섭게 현수를 노려보았다.

“대체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왜들 이러는 거요! 내가 그 아이를 데려왔고, 그 아이는 정주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돌보고 있는 아이요! 대체 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거요!”

기가 막혔다.

자기들 상상으로 지금 자신을 오해하였으니 말이다.

“저, 정말입니까?”

먼저 버럭하였던 연희궁 공주 왕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소. 내가 무슨 정신 나간 놈도 아니고, 그런 짓을 왜 합니까!”

“…….”

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송구합니다.”

“저도…….”

주눅이 든 두 공주의 말에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분이 상상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현수의 말에 두 공주는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도 미안합니다. 화를 내려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제가…….”

“아니에요.”

현수가 말을 멈추고서는 그 두 사람 사이로 다가가 자리에 앉으며 부인을 감싸 안았다.

“부인 말씀대로 정주에 좋은 정원 만들어 놓으라 했어요. 여기보다는 훨씬 더 좋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제가 기쁩니다.”

현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다음날, 약속대로 호위하러 온 이들이 당도하였다.

어제 보았던 모습과 달리, 일상복을 입고 왔다.

그리고 뒤에는 수많은 짐들이 놓여있었다.

“위위경을 뵙습니다.”

열 명의 여인들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현수의 양옆에는 두 공주와 함께였다.

“앞으로 너희들이 이분들의 수족이 되어야 하느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위위경…….”

열 명이 모두 답하였다.

“집사.”

“예. 위위경.”

“저들을 후원(後園)에 마련되어 있는 행랑채로 안내해주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따라오게.”

집사는 그녀들을 대동하고서 후원에 자리 잡고 있는 행랑채로 데려갔다.

미리 정원을 지으면서 따로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정자, 연못, 정원, 행랑채 등 구조를 많이 지으며 집의 구조를 변경하였다.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개경의 제일 큰집을 일컬을 때 이의방의 저택인 천동택이 아니라, 위위경 유현수 저택을 말했다.

* * *

개경은 잠잠하니, 늘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조정에서도 여타 할 건의들이 없었다.

고려 전역에서도 특별한 일들이 없고, 오히려 나날이 삶이 좋아져 가다 보니 백성들은 고려와 이의방을 칭송하였다.

이의방 집권 이후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으나, 이제는 이의방이 행해오던 일들 덕분에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하하하!”

“합하, 태평성대(太平聖代)도 이러한 태평성대는 없을 것이옵니다!”

“왜 아니 그러겠습니까. 합하의 정적들을 모두 제거한 후, 합하께서는 누구보다도 백성들을 위한 일을 하셨습니다. 귀족들을 보시오. 합하의 말 한마디면 쥐 죽은 듯이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사찰에서도 이제 세금을 받고, 귀족들에게서도 받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땅이 없는 백성들에게 땅을 내어주어 땅으로 인한 걱정도 없게 되었습니다.”

“우복야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하하하하!”

신료들은 크게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중방에서 오랜만에 크게 술판을 벌였고, 모두 흥겹게 취하며 마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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