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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100화 (100/159)

100화

“예부 상서, 예부 상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여기 육부의 모든 상서분들은요?”

“허면… 위위경은 지금 우리를 몰아내고, 그들로 육부를 채우시겠다는 겁니까?”

참지정사 조영인이 매섭게 물었다.

“그건 아니지요. 지금 자리를 이렇게 다 차지하고 있는데 어찌 그렇게 하겠습니까,”

“…….”

“하지만 전문적이지는 않지 않습니까. 저는 전문적인 그들을 상서에 앉히자는 말입니다.”

“위위경, 그럼 상서들이 자리를 비우면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보문각, 춘추관, 국자감, 태학… 많이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문장 잘 쓰고, 글 잘 읽고, 유학에 대해서 풍부하게 알면 밥을 먹여 줍니까? 쌀이 나옵니까? 아니면 돈이 나옵니까?”

“영리 행위는 유학에서는 근본으로 치지 않소이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한문준이 말하였다.

“하지만 기술을 갖고 있다면 적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지요. 기술 하나 잘만 익혀보세요. 어디 가서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학문은요? 어디 애들이나 가르치며 호구(糊口)하는 데는 문제 없겠지요, 만약 그 애들도 못 가르치는 상황이 온다고 생각해보세요. 학문보다 더 값어치가 있는 게 무엇인지.”

현수의 말에 신료들은 입을 다물었다.

학문보다 값어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기술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 조정에서는 각 부에 있는 아랫사람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 정작 알아주지 않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호부에서 옥(玉)이 나왔다고 해봅시다. 그 옥이 최상인지 최하인지 호부 상서는 알고 계십니까?”

“얼핏 봐서는 알겠지만… 정확히는…….”

“예. 그러시겠지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로 육부를 채워 나간다면 나라의 발전은 거듭할 것입니다.”

현수는 할 말을 다 마치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합하, 무슨 말씀이라도 해보시지요…….”

계속 눈을 감고, 듣기만 하던 이의방에게 한문준이 말하자, 이의방이 두 눈을 떴다.

“틀린 말은 없지 않소이까. 전의감의 수장이 태의인 것처럼… 각 부의 수장들도 전문직들로 채워진다면 위위경의 말처럼 고려는 발전할 것이고, 나라의 기틀을 더욱더 단단해질 것이 아닌가.”

“하, 합하… 하오나… 저희 고려는…….”

“알지, 알아. 그래서 내가 뒤집어 버렸지 않나. 뒤집어 버렸는데, 설마 한 번 더 못 뒤집을까?”

이의방은 피식 웃었다.

“신, 예부 상서 유응규… 위위경의 말 한마디 틀린 거 없다 보옵니다.”

“신, 병부상서 이문저… 예부 상서와 같은 생각이옵니다.”

“위위경의 말에 동의하옵니다.”

공부상서까지 합세하였다.

“대충 보기나 할 줄 알지… 위위경의 말처럼 제대로는 보지 못하지요. 하지만 학식을 제대로 갖춘 이들이 아니라면 상서직에 오르는 것을 반대합니다. 누구나 다 상서 직에 앉는다면 그게 어찌 조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현수도 공부상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되어 찬성하는 바였다.

“의견을 내어 나에게 알려주시오. 위위경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서의 자리를 채우는 건 상서성과 중서문하성의 담당이니, 일임하겠소. 결론이 지어지면 보고하시오.”

“그러하겠사옵니다. 합하.”

“위위경은 잠시 남고, 모두 그만 나가보시오.”

신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중방 밖으로 나갔다.

“네 말 따라, 무신인 내가 이 자리에서 국정을 운영하고 있으니… 저들도 반대는 못 할 게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일 거야. 내가 다는 도와주지 못할 것 같구나. 앞으로의 방향은 잡은 게냐?”

“아직이옵니다.”

“아직이라… 그래… 상서들이 버티고 있는 한, 쉽게 끌어내리지는 못하지. 네가 그들을 상서에 자리에 올리고 싶다면 밑에서부터 한 단계씩 올라와야 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사옵니다. 합하.”

이의방이 현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합하,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라.”

* * *

그날 저녁.

황룡사 연못에서 태자와 허승이 대화하고 있었다.

“…뭐라?”

“태자 전하께오서 원하신다면… 소장 허승, 김광립과 함께 태자 전하를 보좌할 것이옵니다.”

“내 아무리 폐하와 거리가 멀어졌다고는 하나, 어찌 자식이 되어 아비를 친다고 할 수 있겠는가.”

태자가 돌아섰다.

“내 듣지 않은 것으로 할 테니… 이만 돌아가게.”

“태자 전하, 지금이 기회이옵니다.”

“조정에서 나의 장인인 이 상국이 버티고 있네. 허튼 생각을 하려거든 당장 버리게.”

“…전하.”

“돌아가라지 않는가.”

허승은 고개를 숙이며 정자에서 내려가 대웅전으로 향하였다.

“어찌 되셨습니까?”

대웅전 뒤편으로 오자, 김광립이 다가와 조용히 허승에게 물었다.

“그냥 우리끼리 한 다음 태자를 올려야겠네. 유약한 황제를 폐위하고, 태자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신다면… 고려는 대광명(大光明)을 되찾을 것이다.”

“하, 하지만… 이의방이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명분도 없지 않습니까.”

“명분?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예?”

김광립은 깜짝 놀랐다.

* * *

“이제… 가을인가?”

저녁이 되자, 날씨가 제법 쌀쌀 해졌다.

옆으로 다가온 연희궁 공주 왕씨와 수안궁 공주 왕씨가 묻자, 현수는 두 공주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 안았다.

“별을 보고 있었습니다.”

“별이요?”

“태어날 아이의 별은 어떤 별인지 보고 있었지요.”

두 공주는 회임(懷妊)하였다.

결혼한지 몇 달되지 않았는데 이건 겹경사였다.

황실에서는 지속적으로 태의를 보내 두 공주를 살폈고, 천동택에서도 좋은 약재들로 하여금 약을 보내왔다.

“약은 어떠십니까?”

“괜찮습니다.”

“저도요.”

두 공주가 답하자,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위위경… 아이 이름은 지으셨습니까?”

연희궁 공주 왕씨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입니다. 태어나면 그때 지어야지요. 괜히 아들 이름 붙였다가 딸이면 어찌합니까.”

“그래도 뭐 어떻습니까.”

“음… 딱히 떠 오르는 이름이 없어서…….”

“천천히 생각하십시오.”

연희궁 공주 왕씨가 말하였다.

“둘 다 아들이면 어찌합니까?”

이번에는 수안궁 공주 왕씨가 되물었다.

“음… 나도 모르겠는데.”

현수의 말에 두 공주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위위경,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어. 그래. 손님 좀 만나고 올게요.”

“예.”

“다녀오세요.”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곧장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박지영이 와있었다.

“어서 오게. 자, 안으로.”

현수는 박지영을 데리고서 별당으로 향하였다.

“위위경, 저를 어인 일로 찾으셨습니까?”

박지영은 곧장 물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사병 때문에 불렀네.”

“예? 사병에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박지영이 깜짝 놀라 물었다.

현수가 사병들의 총 책임을 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아니야. 다름이 아니라… 부탁이 있네. 내가 지금 위위경이다 보니, 내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지 않나. 혹시 무(武)가 뛰어난 여인들은 없을까? 사병들에 대해서는 자네가 잘 알지 않는가.”

“그 부분이라면… 만화루에 한번 찾아가 보시지요.”

“만화루? 만화루면… 기방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위위경께서 찾으시는 이들은 기방에 있을 겁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기루에 왜 무(武)가 뛰어난 자들이 있어…….”

현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각 기루마다 다 있습니다. 그건 전통과 가까운 것이지요. 기루에 기녀들을 지켜 주어야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기루에 남자를 두게 되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여성들로 이루어진 무(武) 단체가 대부분 기루에 있습니다. 또한 만화루는 개경뿐만이 아니라, 서경, 동경, 남경 심지어는 전라, 경상에까지 그 기반을 두고 있으니, 찾기는 편하실 겁니다.”

박지영의 설명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화루에 한번 찾아 가봐야겠군.”

“예. 위위경.”

“그럼, 말이야… 그런 여인네들을 누가 가르치도 아나?”

“글쎄요… 저도 거기까지는 모르옵니다. 위위경.”

“그렇구먼. 고맙네.”

현수는 품속에서 은병이 든 주머니를 박지영에게 건넸다.

“아닙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

“가져가. 나는 많으니.”

현수는 주머니를 박지영에게 다시 건네자, 박지영은 두 손으로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꽤 묵직한 게 소은병이 몇 개는 들어있는 듯하였다.

“그걸로 사병들과 한 잔씩 하게.”

“감사합니다. 위위경.”

“아니야. 내가 그동안 제대로 가보지도 못하였어. 그나저나 갑이는 잘 있는지 모르겠구먼.”

“아, 갑이 말입니까? 이번에 조장이 되어서 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 벌써 조장이 되었어? 하하하! 언젠간 내 찾아갈 테니, 얼굴이나 보자 그래. 개경에 있어도 제대로 얼굴 한번 못 봤구먼.”

“예. 위위경.”

박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별당 밖으로 나갔다.

* * *

다음 날, 현수는 만화루를 찾아갔다.

“위위경, 어서 오십시오.”

“행수 안에 있느냐?”

“예. 안에 계십니다.”

“오늘은 술이 아니라, 행수를 좀 만나러 왔는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기녀는 고개를 숙이며 행수가 있는 곳까지 안내하였다.

“행수 어른, 위위경께서 뵙자 청하십니다.”

“뫼시어라.”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현수가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위위경”

행수가 몸소 문 앞까지 와서는 현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더니 자리로 안내하였다.

천천히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자, 행수도 덩달아 자리에 앉았다.

“어인 일이십니까?”

“여기에 오면… 무가 뛰어난 여인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현수의 물음에 행수는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예. 있습니다. 헌대… 위위경께서 어인 일로 그런 아이들이 필요하신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위위경으로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두 공주님의 호위가 필요하오. 두 분을 가까이서 모셔야 할 테니, 아무래도 여인들이 낫지 않겠소?”

“하하하!”

현수의 말에 행수는 입을 가리며 크게 웃었다.

“예, 맞는 말씀이기는 하지요. 얼마나 계약을 하시길 원하시옵니까?”

“계약이라니?”

“기루에 속한 아이들을 데려다 쓰시는 건 계약이지요.”

“음…….”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아예 데려다 쓸 생각인데.”

현수의 말에 행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문제라도 있는가?”

“위위경, 송구하지만… 그 아이들을 데려가시려면 기적(妓籍)에서 빼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값은 만만치가 않으실 겁니다.”

“얼마를 원하시오?”

“한 아이당 은병 15개는 받아야 합니다.”

“그 정도면… 실력에는 문제가 없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행수는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현수는 당당하게 나오는 행수의 말을 믿어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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