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화
병부상서가 재차 물었다.
“오자병법에 각 군사들을 대처하는 방법이 쓰여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의병에게는 예로서, 강병에게는 겸양된 자세로 설득을 해야 하며, 폭병에게는 속임수 즉… 진형을 구축해서 싸워야 하고, 역병에게는 권모술수(權謀術數)로 대적해야 합니다.”
“전쟁에 일어나는 원인은 다섯 가지라 하였다. 무엇이냐.”
“명분, 이익, 증오심, 혼란, 기근입니다.”
병부상서는 외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공망이 저술한 육도에 나오는 부분인데… 지형, 병기, 지리, 승패, 이중에나 무엇이 빠졌는지 아느냐?”
“천문입니다. 병부상서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천문, 지리 편에 나옵니다. 육도에는 천문을 가늠하고 관리하여 기후와 징후에 대해 살펴 민심의 방향을 알아내라 하였습니다. 전쟁에 나설 때 역학자를 대동하라고 쓰인 것은 기후와 징후에 대비하여 군의 사기를 살피라는 말과 같습니다.”
무과생 안준성의 말을 듣고 뒤에 있던 무과생들은 숙덕거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장수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고 있었다.
“실력은 개판인데… 병법 하나는 최고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무과 시험입니다. 무(武)를 할 줄 모르면 소용이 없는 것 아닙니까.”
병부상서는 다시 무과생 안준성에게 물었다.
“장수들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무엇인지 아느냐?”
“첫째, 군대가 진격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군하라는 명을 내리거나, 군대가 후퇴해서는 안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후퇴 명을 내리는 건 사냥개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경우와 같습니다. 둘째, 모든 군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데 군정에 간섭하면 안 됩니다. 셋째, 군사의 권한을 알지 못하면서 군의 직책을 맡으려 하면 안 됩니다. 이에 군사들은 회의(懷疑)를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묻는 거에 술술 대답하였다.
“…지형도를 가져와라.”
“예.”
병부상서의 말에 관원은 미리 지워놓은 지형도를 가지고 왔다.
“건네주거라.”
병부상서의 말에 관원은 안준성에게 다가가 지형도를 펼쳐 주었다.
“저 지형도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느냐?”
지형도를 세밀하고 자세히 살펴보던 안준성은 미소를 지었다.
“이는 적들이 강양 쪽으로 포위를 한 상태이며 고립된 군사들은 강을 끼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배수의 진을 치면 적들도 긴장한 상태일 것이니, 섣불리 공격해오지 못할 것입니다. 적들이 지치도록 시간을 번 다음 강을 타고 빠져나가면 되옵니다.”
“잘 보거라. 강을 타고 빠져나가는 게 정말 맞느냐? 더불어 어찌하여 적이 먼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느냐?”
“병부상서, 제게 주신 이 지형도에 답이 있지 않습니까.”
“…뭐라?”
“이 삼각형은 군영 즉, 진지일 것이고, 여기에 휘어진 일자는 갈대가 아닙니까. 불화살을 당기면 갈대밭에 불이 붙을 게 뻔한데 어느 누가 함부로 진격을 해오겠습니까. 또한 갈대를 엮어서 군막을 철회하고, 그 기둥에 엮어 군사들이 강을 타고 내려가도 됩니다.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말입니다.”
정확히 맞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확답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일리는 있는 말이구나… 하지만 바람의 방향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갈대밭에 적들이 불을 지르면 어찌할 것이냐? 불을 지른다면 그건 다 죽는 게 아니냐.”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군영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이용해 불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장수의 기질과 역량에 따라 군사들이 살고 죽는 것이니… 그 상황에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부상서 이문저는 관원을 불러들여 작게 말하였다.
“저자의 기록표를 가져와라.”
“예.”
관원은 다시 급히 어디론가 갔다.
얼마 후, 관원은 처음 시험 보았을 때 작성한 기록문을 가지고서 병부상서에게 건네었다.
병부상서는 기록문을 받더니, 안준성의 기록표를 찬찬히 보았다.
지형, 지리, 병법, 진법 모두 상(上)이라고 찍혀있는 도장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의방에게 보였다.
“합하, 모두 상입니다.”
“하지만 무(武)에 재능이 없는 녀석을 합격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병부에서 어찌할지 의논하여 보고하게.”
“예. 합하.”
병부상서 이문저는 고개를 숙이며 다시 자리로 갔다.
“돌아가거라.”
“…예?”
“돌아가 있으란 말이다.”
“아, 예! 병부상서 어른,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안준성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기회를 주었던 황제와 이의방에게도 절을 올린 뒤, 물러 나갔다.
“계속 시작하라!”
“예! 합하!”
두웅! 두웅!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호명된 이들은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무를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현수 또한 안준성이라는 무과생을 유독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 * *
며칠 후.
“하, 이거 참… 곤란한 일입니다.”
“병부상서, 이자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무과가 끝이 나고 이제 장원을 뽑았더니, 이제는 안준성의 처리가 골치였다.
대체 순위를 어떻게 매겨야 할지 답이 서지 않았다.
장원이 된 이는 이의민의 장자, 이지순이었고 방안은 최충수, 탐화는 최비였다.
그리고 나머지도 쭉 순위를 매겼는데 이제 안준성만이 남은 것이다.
“흐음… 그럼 이리합시다. 안준성은 병부에서 특채로 뽑은 것으로. 어떠십니까? 이렇게 하면 별다른 말은 안 나올 거라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뽑는다면 무과를 치렀던 이들도 뽑아 달라고 득달같이 달려오지 않겠습니까?”
“한 분야에 특출난 인재가 있어서 뽑았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 같습니다. 허면… 병부상서의 말씀대로 진행하는 겁니까?”
“그리 해야지요.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네.”
병부시랑의 말에 병부 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안준성만 따로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병부상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부 밖으로 나가 중방으로 향하였다.
중방에 도착한 병부상서는 이의방에게 안준성이라는 무과생 처우에 대해 말을 하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하였다.
* * *
무과 시험이 끝난 지 한 달이 흘렀다.
무과에 합격한 이들은 전부 함경도, 흥화진으로 배속(配屬)되었다.
무과 합격생들은 견룡, 순검군 아니면 응양군, 용호군, 6위에 배치될 줄 알았지만, 예상치 못한 결정에 합격생들은 모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지영, 이지광은 배속된 것을 따지려고 아버지를 찾아갔다가 욕만 얻어먹고 돌아왔다.
최원호의 자제, 최충헌과 최충수 역시 욕만 먹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합격생들은 모두 나누어져 함경도와 국경선인 흥화진으로 이동하였다.
장원급제한 이지순은 서경으로 가고, 탐화를 한 최비는 함흥으로 갔다.
“그러니까… 형부 상서 자리에 앞으로 율학을 통달한 이를 뽑자… 이 말씀이신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니, 왜요?”
“전의감의 태의도 잡과 출신 아닙니까. 왜 형부 상서 자리에는 잡과 출신이 오르면 안 되는 겁니까.”
현수는 중방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공부상서, 호부 상서 역시 잡과에 합격한 이를 배정한다면 오히려 국가에 실용적인 방법을 내놓을 수 있지 않습니까.”
“위위경, 우리 고려는 유학을 중시하고, 유학을 정치이념을 유학을 두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잡과 출신을 육부의 상서로 위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십니다. 더군다나 인종 황제께서 위위경이 말씀하신 과목들을 모두 국자감에 배속시키셨습니다. 나라에 기술 역시 천민이 아니라면 언제든 학부에 들어와 배울 수 있고요.”
“잘 알지요. 그런데 인종 황제께서 진행에 오신 일들이 제대로 이행됐습니까? 환관들과 내관들에 의하여 국자감과 태학은 오히려 변질(變質)되었습니다. 유학을 중시하는 나라라면 지금 합하도 그 자리에 앉아 계시면 아니 되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들 말씀이 그렇지 않습니까. 유학을 배우지 않은 자는 절대 요직에 앉을 수 없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이의방은 가만히 현수의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합하가 왜 나옵니까.”
유응규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들어보세요. 문하시중을 역임하신 분들은 대부분 유학을 하신 문신분들 아닙니까. 헌대 합하께서는 무신이었단 말입니다.”
신료들은 이의방의 눈치를 살피었다.
하지만 이의방은 두 눈을 감고만 있었다.
어디까지 가나 보고 싶은 것이다.
“육부 상서들의 태반이 유학 출신입니다. 그에 반해 전부 아랫사람들은 잡과 출신 아닙니까.”
“위위경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아직 문(文)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 문(文)이 무(武)를 잡고 억압하였다가 어찌 되었습니까.”
“…그 이야기는 왜 또 하십니까.”
“틀린 말이 아니니, 한 말입니다.”
현수는 신료들의 말발에 절대 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오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승상씨는 덕만 닦고 군사력을 소홀히 하다가 망국의 화를 입었고, 유호씨는 군사력만 믿고 전쟁을 일삼다가 사직을 말아먹었다고요. 합하께서는 국정을 쥐면서 내정을 안정시키셨습니다. 물론 대부분을 무력으로 하셨지요, 거기에 비하면 지금은 어떠하십니까. 무력보다는 말로 하려고 하십니다. 그게 무얼 뜻하는 겁니까? 합하께서는 힘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걸 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중방에 앉아 있는 신료분들은 아직도 그 유학과 사대주의를 가지고 계신다는 게…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군요.”
“위위경, 유학은 학문이네. 그런 학문을 저버리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야. 어찌하여 이 모든 제도를 바꾸려 하시는가.”
이부상서가 차분하게 말하였다.
“저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사서삼경, 아니… 오경만 읽어도 충분히 공자 말씀, 맹자 말씀을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필요없는 학문에 관해 죽을 듯이 연구하고 있다는 게 답답해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다른 쪽에도 신경을 쓰자 이 말입니다. 호부 상서, 지난번에 금나라가 가져왔던 물품 말입니다. 그거 직접 산술 하였습니까?”
현수는 호부 상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장부만 작성하고, 나머지는 아랫사람들이 하였지요.”
“호부 상서, 만일 호부 상서 자리에 그 아랫사람이 올라와서 일하였다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을 하였을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장부만 작성할 게 아니라 직접 계산까지 하였겠지요.”
현수의 말에 호부 상서는 시선을 피하였다.
현수의 말 따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