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98화 (98/159)

098화

현수의 말대로 쌓아놓은 재산은 어마어마하였다.

개경 저택 곳간에 쌓여있는 재산과 지하 창고에 쌓아둔 재산을 다 풀어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정주 역시 거두어들이는 세금과 상업으로 인해서 재물이 셀 수 없을 정도 쌓여있었다.

“이참에 여기와 정주저택에 지하 창고를 더 넓혀야겠어.”

“지하 창고를 더 넓혀요?”

“그래. 지하 창고. 그래서 금병, 은병, 금괴 할 거 없이 다 가져다 놓는 거지. 그렇게 재물을 모아서 나중에 쓸 때 쓰는 거야. 내 집 아래에다가 땅을 파서 말이야.”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술잔에 술을 채웠다.

“자, 마시자고!”

술잔을 들며 먼저 한잔을 마시자, 세 사람도 잔을 들어서 술을 마셨다.

“그나저나… 무과 급제자들을 함경도로 보낸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게 왜?”

“장군들의 자제들이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일은 절대 없어.”

현수는 확답을 내놓았다.

“…예?”

“중방에서 그러시더구먼… 이번 무과에 참여하지 않은 자제들은 다시는 과거 못 보게 한다고. 하하하!”

“다들 죽어 나가겠군요.”

“아이구, 벌써부터 춥습니다.”

“하하하!”

* * *

무과에 응시할 명단 작성이 마쳐졌다.

며칠이 흐른 뒤, 무과 시험이 치러졌다.

황제가 상석에 앉아 무과 시험을 관람하였다.

많은 무과생들은 황제가 직접 나왔다는 소식에 병부 앞에서의 그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긴장을 가득한 상태였다.

“폐하, 이제 시작할까 하옵니다.”

이의방이 황제에게 허리를 살며시 숙이며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방은 병부상서를 바라보며 기척을 주었다.

“지금부터 무과를 시작한다!”

두웅! 두웅!

북소리가 무과 장을 뒤덮었다.

이에 많은 무과생들이 줄을 섰다.

그들의 앞에는 병부의 관리들이 일렬로 나란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상위에는 수십여 개의 두루마리가 놓여있었다.

금줄이 풀리자마자, 무과생들 십여 명이 각 관원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앉거라.”

“예.”

“본관과 이름을 대거라.”

관원의 말에 무과생은 본관과 이름 생년월일까지 이야기를 했고, 관원은 명단을 확인하였다.

장막이 일렬로 줄을 치자, 관원은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어 펼치며 무과생에게 보여주었다.

지형도였다.

“이 지형에서 네가 풀어내야 할 것은 바로 이 산 아래 진을 치고 있는 군영이다. 적들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으니… 너는 어찌 빠져나가겠느냐?”

난해한 문제였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지형도에는 빼곡하게 산 위를 둘러쌓은 적병이 있었고, 헤쳐나가야 할 곳은 바로 중앙이었다.

중앙에 배치된 진형은 정말 난해한 것이었다.

“일각 안에 풀어 보거라.”

“…예?”

“딱 일각이다.”

관원은 단호하게 시간제한을 하였다.

그러면서 모래시계를 거꾸로 눕히자, 모래알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들도 전부 다 다른 문제였다.

제대로 자신 있게 문제를 푸는 이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허허, 어찌… 단 한 사람도 풀지를 못하는가.”

“송구하옵니다. 폐하… 이번 시험이 유독 어려워 그런 것이옵니다.”

황제는 무과생들에게 굉장히 실망한 듯 보였다.

일각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관원은 문서를 덮고서는 다른 문제를 내놓았다.

“손자가 이르기를… 나라 밖에서 전쟁을 치르는 기간이 길어지면 국가재정이 부족해진다고 하였다. 이는 어떤 편에서 나오는 말이냐.”

관원의 말에 무과생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을 묻겠다.”

“손자가…….”

“다, 다음에 오겠습니다.”

주눅이 든 채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는 무과생의 말에 관원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더 공부하게. 손자병법은 필수이니, 그 손자만 달달 외우게나.”

“예.”

무과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한 사람이 아닌, 한 열에 서서 시험을 보던 이들 모두가 말이다.

이를 보던 황제는 혀를 찼다.

“저 쉬운 걸 대답 못 하면 어찌하나…….”

“혹 위위경은 답을 알고 있으면 짐에게 답해보라.”

옆에서 현수의 말을 들은 황제가 묻자, 현수는 바로 답하였다

“예. 폐하. 작전 편에 나오는 말로, 속전속결(速戰速決)로 끝을 내라는 말이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의 재정과 국력이 쇠퇴하여 역으로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황제는 현수의 말에 굉장히 만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열, 세 열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답을 내놓는 이들이 없었다.

이의방은 저런 무과생들의 모습이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줄을 서 있던 무과생들 역시 자신이 없는지 속속히 이탈하였다.

심지어 몇몇은 처음 보는 무과도 아니었다.

이로써 어중이떠중이들은 모두 나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가시오.”

남아있는 무과생들에게 부장들이 앞으로 가라며 말을 하자, 무과생들은 앞으로 나아가 자리에 앉아 시험을 치르기 시작했다.

그 무과생들은 대부분이 합격을 받았다.

관원들은 등수를 매기며 명단을 정리해 나갔고, 합격한 이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과거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번 시험으로 끝이 않게 아니었기에 다음 시험에서 성적을 내려면 더 공부하여야했다.

“이번 시험은 참… 재미없네.”

이의방의 말에 병부상서가 고개를 숙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있어야 하나?”

“두 시진 후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두 시진이라…….”

“그러하옵니다. 합하.”

병부상서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에게 다가갔다.

“폐하, 앞으로 두 시진 후에 시험이 시작된다고 하오니, 이만 환궁하시는 게 어떠하시옵니까?”

“두 시진? 그래… 그래야겠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관과 내관을 대동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신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에게 인사를 하였다.

현수 역시 천천히 황제의 곁을 지키며 환궁(還宮)하였다.

두 시진 이후 황제가 다시 과장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 합격한 무과생들은 과거장으로 걸어들어왔다.

호명 아래 순서대로 수박 대련부터 시작해서 각 병장기, 말타기, 활쏘기 등을 선보였다.

“흐음… 저놈은 자네처럼 시원치 못하구먼.”

“하하, 누구나 다 뛰어난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건 그래. 아무렴 자네가 고려의 최고의 신궁인데 자네를 따라갈 자가 없지.”

응양군 상장군 이의민과 용호군 상장군 두경승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쉬이익!

터억!

과녁을 벗어났다.

대부분이 과녁에 한 발 이상을 맞추지 못하였다.

“히야압!”

기합 소리를 우렁차게 내면서 수박 대련을 하는 무과생들.

수박은 누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모두가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이지영, 이지광이었다.

“자네 두 아들은 수박 하나는 대단하구먼.”

“아직이야. 자네 만큼 하려면 멀었어.”

이의민은 두 아들의 수박 실력을 보며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놈 보게. 검 하나 쓰는 게 일품입니다.”

“오, 정말 그렇습니다.”

몸을 민첩하게 움직이며 검을 휘두르는 무과생을 보며 장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장수들은 계속 무과를 지켜보았다.

“흐아아압!”

그때 기합 소리와 함께 당차게 수박을 맞붙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대단하구먼, 대단해… 저렇게 용력(勇力)이 출중한 이가 있다니.”

“이거… 자네하고 내가 한판 붙어봐야겠는데?”

이의민의 농 섞인 말에 두경승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수박으로 겨루던 두 사람은 서로 힘을 겨루며 서로를 제압하려고 했다.

한 사람이 기술로 제압하려 들면 상대가 버티고서 역으로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둘 다 용호상박(龍虎相搏)입니다.”

“용호상박은 무슨…….”

“내가 나가면 당장 다 때려눕힐 수 있겠구먼.”

이의민의 말에 두경승은 이의민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저 혈기왕성한 장사들과 자네가 붙는다고? 하하하.”

“이 사람아… 나는 한 손으로 상대할 수도 있어.”

“자자, 힘자랑은 그만두시고. 이제 좀 보시지요.”

돈장의 말에 두 사람은 다시 집중하며 대결을 지켜보았다.

병부에 소속된 이들은 무과생들의 검, 창, 궁, 수박 실력을 보며 상, 중, 하에 표기하고 있었다.

“자네… 저놈 말이네. 궁은 뛰어난데 창은 별로구먼.”

병부 관원들끼리 서로 소통을 하면서 등급을 매기고 있었다.

창을 휘두르던 장사는 관원들에게 하, 중, 하를 받았다.

“막기, 치기 자세는 매우 뛰어난데 힘이 없어. 부실해. 다음!”

창을 들고 있던 무과생은 고개를 숙이며 창을 원위치시킨 뒤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다음 무과생이 앞으로 나왔다.

“어디 사는 누구인가?”

“평택에서 왔으며 평택 안씨, 이름은 준성입니다.”

“안준성…….”

관원은 이름을 쭉 보다가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게.”

“예!”

안준성이라는 무과생은 곧장 창이 있는 곳으로 가서 창을 들고 창술을 선보였다.

“…….”

툭.

“…….”

창술을 선보이던 도중에 창을 떨어트렸다.

순간 관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장수들 역시 안준성이라는 무과생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자세도 형편없었고, 찌르는 폼을 보니, 창 한번 쥐어본 적이 없는 놈이었다.

“이야아아압!”

툭!

창을 놓친 건지, 던진 건지.

땅바닥에 다시 한번 맥없이 창이 떨어졌다.

안준성이라는 무과생은 뒤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다시 창을 들었다.

“다음!”

보다 못한 이의방은 큰소리쳤다.

“저놈을 끌어내라!”

“예! 합하!”

부장들이 곧장 앞으로 나서며 무과생에게로 다가서자, 무과생은 갑자기 과장을 벗어나 이의방 쪽으로 가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합하!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딱 한 번만요.”

싹싹 빌면서 애걸복걸(哀乞伏乞)하는 무과생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심지어 눈물, 콧물까지 흘리는 꼴이었다.

보다 못한 황제가 이의방에게 말하였다.

“상국, 저리 간절히 부탁하는데 소원 한 번 들어주시는 게 어떻겠소?”

“…예. 폐하.”

이의방은 무과생 안준성을 보며 물었다.

“네놈이 자신 있는 게 무엇이냐?”

“…예?”

“자신 있는 종목이 무엇이냔 말이다.”

“병법, 지형, 진법입니다.”

“그래? 병부상서.”

“예. 합하.”

병부상서는 무과생을 보며 물었다.

“손자와, 오자의 차이가 무엇이냐.”

병부상서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무과생은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말하였다.

“손자는 단기전이며, 오자는 장기전입니다. 손자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병법서로써 기본 병서 중에서도 기본입니다. 손자는 시계, 작전, 모공, 군형, 병세, 허실, 군쟁, 구변, 행군, 지형, 굳이, 화공, 용간으로 총 13편에 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오자는 무경칠서 중 한 권으로, 오자의 내용은 도교 철학의 기초를 이용한 속임수, 즉 진법이 많습니다. 또한 오자는 전략과 정략을 중시에 두고 있습니다.”

마치 외운 것처럼 술술 말하는 무과생에게 이의방은 호기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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