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화
“감사합니다. 하하하!”
“동벽상공신에 위위경까지 되셨으니… 크게 한턱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예. 집에서 크게 잔치를 열겠습니다.”
“무과가 코앞이니, 무과에 급제한 이들까지 불러 잔치를 여심이 어떠하십니까?”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하하하하하!”
신료들은 기뻐하였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병부상서가 말하며 병부로 돌아가자, 다른 신료들도 무과 시험으로 바쁜지 속속히 자리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저희는 위위시로 갑니까?”
“그래. 위위시로 가야겠지. 가세.”
현수는 절월을 들고서 장수들과 함께 궁성 안에 있는 위위시로 향하였다.
만월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위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 * *
얼마 후, 위위시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의외로 위위시의 집무실은 꽤 컸다.
집무실 옆방으로 향하였다.
녹사, 급사, 장사랑, 서리가 앉아 위위시의 실무를 보고 있었다.
“다들 반갑네. 이번에 위위경이 된 유현수네.”
“위위경을 뵙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6위 장군이자, 위위시 소경이네. 앞으로 자네들과 함께할 사람이야.”
“소경을 뵙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관리들을 보며 악정도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악정이라 하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위위경,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저희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렇게 하겠네. 수고들 하게.”
관원들과 통성명하고는 옆방을 나와서 집무실로 들어와 보았다.
옆방보다 큰 집무실.
한쪽에는 침상이 놓여있고, 반대편에는 상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딱히 볼만한 건 없었다.
다만 집무실에 채워야 할 게 이것저것 많았다.
현수는 곧장 상석에 마련되어 있는 줄을 두어 번 잡아당기었다.
“위위경, 찾으셨습니까.”
“들게.”
덜컹.
방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온 녹사는 허리를 숙이었다.
“여기에 좀 채울 게 있는데… 하나는 개경전도, 그리고 집필묵이랑, 손님들 오시면 마실 수 있는 차, 이불, 베개 등… 자네가 좀 보고 채워주었으면 하네.”
“예. 위위경. 그리하겠사옵니다.”
녹사는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악정, 자네는 이제 실무를 보게. 그리고 두 사람은 견룡군, 순검군의 훈련을 맡아주게.”
“그리하겠사옵니다.”
“예. 장군.”
세 사람은 답하였다.
* * *
얼마 뒤, 견룡, 순검, 숙위의 훈련장에 당도한 네 사람이었다.
“누구십니까!”
“위위경, 유현수다.”
“추웅!”
군사 두 명과 문을 지키고 있던 부장이 인사하였다.
안에서는 기합 소리가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제대로 하고 있네.”
현수는 천천히 세 사람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절월을 들고 현수는 곳곳을 살피면서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절도 있고 기합 소리가 우렁찬 군사들의 사기가 넘쳤다.
“저… 어느 군에서 나오셨는지요.”
현수 일행을 보자, 뛰어온 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위위경이시네.”
천시호의 말에 부장은 군례를 올리었다.
“소장 견룡지유 강선유, 위위경을 뵈옵니다.”
“음, 그래.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지유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위위경이 되신 걸 감축드리옵니다.”
“고맙다. 군사들과 너희들에게 음식을 내릴 것이니, 그리 알고 있거라.”
“고맙사옵니다. 위위경.”
“견룡지유.”
“예. 위위경.”
“자네와 견룡행수와 막역지우(莫逆之友)라지?”
“그러하옵니다. 위위경.”
“황실의 웃어른을 공경하고, 황실을 잘 보필해야 할 것이네.”
“존명(尊命)!”
강선유의 외침에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고생하게.”
“예! 위위경!”
* * *
병부 입구에 붙인 종이에 고려 전역에서 과거를 보러온 이들의 이름을 적어갔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의 인파가 너무 많아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도 없었다.
나름대로 고려에서 장사(壯士)라고 하는 이들이 전부 모인 탓에 시비가 붙어 티격태격하는 이들도 보였다.
하지만 힘만 있어서는 안 되었다.
예전에는 용력(勇力)만 보고 뽑았다면 지금은 병법에 익히고, 이를 실전에서 쓸 줄 알아야 했다.
“형님, 사람 한번 많습니다.”
“고려 전역에서 몰려든 장사들이다. 당연할 것이다. 더군다나 무과 시험을 치르는 것이니, 예전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툭.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어깨가 부딪혔다.
“어이, 사과는 해야 할 거 아니야.”
“하하하,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아우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웃어?”
“미안하다고 하면 되었지. 웬 시비냐!”
“충수야.”
달려드는 이를 보며 말리는 건 최충헌이었다.
“우리는 싸울 의향이 없으니, 그만 물러 가주시오.”
최충헌은 정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일이냐!”
길이 잠시 막히자, 병부에 속한 산원이 나왔다.
“당신, 운 좋은 줄 알아.”
최충헌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그들은 천천히 갈 길을 갔다.
최충헌과 충수 역시 병부로 향하였다.
* * *
“아, 형님… 나중에 옵시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뭐 하는 거요.”
이지광이 툴툴대며 말하였다.
“뭐하기는 기다리지.”
“그냥 아버지한테 말해서 올려 달라고 하면 그만 아니오.”
이지광은 여전히 투덜거렸다.
평장사 이의민에게 말하면 알아서 올라갈 것인데 이지영은 그렇지 않고서 직접 병부로 나와 이름을 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 상대가 될 놈이 있는지 잘 봐둬라.”
“상대가 될 놈이 없지 않소…….”
“그건 봐야 아는 거 아니겠느냐. 장차 아버지에게 도움 될 놈들이면 좋겠다.”
“아, 그런 거요?”
이지영의 말에 이지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드는 이들 때문에 병부에서 군사들을 내보내어 금줄을 쳐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시오!”
고려 전역에서 몰려든 장사들은 군사들의 말을 따랐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기 시작하자, 북적대었던 병부 앞은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 * *
“거, 진짜… 사람 한번 참 많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앞으로 무과까지는 사흘 남았으니, 많을 수밖에. 병부에서도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야.”
“그나저나… 무과에 합격한 이들은 어디로 보낸다고 합니까?”
천시호가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함경도가 유력해. 개경은 절대 아니라는 소리지. 함경도와 서북면 흥화진이라고 들었네.”
“그게 전부 위위경께서 말씀하신 거 아닌가.”
정균의 말에 현수는 뜨끔했다.
지난 중방 회의 때 논의한 사항이었다.
무과를 치르고 합격한 이들은 어디로 보내는 게 좋을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현수가 함경도와 흥화진으로 보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내놓았더니, 대부분의 신료들이 수긍 해버렸다.
물론 그중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장군 출신들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한마디로 반발을 잠재웠다.
‘보내야지. 첫 장부터 편안하게 군 생활하려고 시험 본 거면 당장 집어치우라 해.’
이때 장수들은 현수를 원망하는 눈초리로 보았었다.
“엄청 추울 건데…….”
“여름이라 해도… 그 추위는…….”
정균과 천시호는 자신들이 있었던 곳을 상상하더니, 온몸을 들썩였다.
“살갗이 얼어붙는 거 같았습니다.”
“그렇긴 해…….”
쿠르르응!
마침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어두워지며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자, 가서 술 한 잔씩들 하세.”
“예. 위위경.”
현수는 말머리를 돌려 저택으로 향하였다.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갑옷을 벗었다.
“일찍 오셨습니다.”
“네. 그렇게 바쁜 일이 없어서 일찍 오게 되었습니다.”
두 공주가 현수를 맞이하였다.
둘째 공주인 수안궁 공주 왕씨가 갑옷을 정리하려 하자, 현수가 이를 제지하였다.
“무거우니 그냥 두세요. 제가 하면 됩니다.”
“그, 그래도…….”
수줍어하는 공주의 말에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갑옷을 받아들었다.
“술상이나 좀 봐주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희궁 공주 왕씨가 답하며 말하며 밖으로 나갔고, 수안궁 공주 왕씨는 방에 남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저기… 집을…….”
“뭐가 불편하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현수는 공주의 손을 부여잡으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말을 해보세요. 문제가 있으면 내 뜯어고치든지, 아니면 때려 부숴버리든지 할 테니. 속 시원하게 말씀을 해보십시오.”
“그게… 송구하지만…….”
머뭇거리는 공주의 말에 답답한 현수였다.
하지만 꾹 참았다.
“정원을 좀… 만들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공주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여기 전체를 정원으로 만들어 드리지요. 하하하!”
“예!? 아니 됩니다. 그럼 어디서 잠을 자겠습니까…….”
“하하, 듣고 보니… 그건 그렇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원 하나가 대수입니까? 아주 크고 넓은 정원을 하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들이 와있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수안궁 공주 왕씨는 밝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덜컹.
방문을 열며 현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술상은 금세 차려진 듯 보였다.
“왜, 먼저 마시지들 않고.”
“위위경께서 오셔야 마시지 않겠습니까.”
“하하, 이거 미안하게 되었네.”
“위위경, 술을 더 가져왔습니다.”
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이게.”
방문이 다시 열리면서 술 항아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 집사.”
“예. 위위경.”
“저택 뒤편으로 한 스무 채쯤 알아보게. 붙어 있든 안 붙어 있든 말이야. 굳이 뒤편이 아니어도 되네.”
“스, 스무 채씩이나요?”
집사는 깜짝 놀랐다.
“그렇네. 돈은 얼마가 들어가도 좋으니, 알아보고 당장 사들이게. 정원을 만들어야겠으니, 대목장도 부르고. 정주에도 만들 것이네.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위위경.”
집사는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아니, 뭐에 쓰시려고 그렇게 많이 사들이십니까?”
천시호가 물었다.
“정원을 좀 만들어 달라 하시니, 내 만들어 드려야지.”
“하하, 위위경께서 정원을 만드신다고요?”
“내가 만드는 게 아니고, 사람 시켜 만들어야지요. 형님.”
“그게 그거 아닙니까. 그나저나… 정원을 만드시는 데 그렇게 많은 토지가 필요합니까?”
“암… 필요하지. 집 한 채 가지고 정원을 만들면 크기가 얼마나 된다고 그러나. 집들을 사서 다 때려 부수고 만들어야지.”
“돈도 많으십니다…….”
“지하 창고에 쌓여 있는 게 재물이야.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재물들인데 아껴봐야 뭐하나. 흉년이 든 것도 아닌데. 저자에 굶어 죽는 백성이 있나, 뭐가 있나. 세상 살기 좋으니, 나도 쌓아둔 재물을 좀 써보겠다는 게 아닌가.”
“하하하하하!”
세 사람은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