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95화 (95/159)
  • 095화

    “폐하, 적들의 저항이 거세옵니다! 일단 퇴각하셔야 하옵니다.”

    부장이 남송의 황제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아니다! 조금만 더 공격하면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부장은 제자리로 돌아가 군사를 지휘하라!”

    “예! 폐하!”

    황제의 명은 절대적이었다.

    부장은 그런 황제의 명을 거역하지 않고, 말머리를 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지휘를 계속하였다.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남송의 군사를 막느라 금의 병력은 점점 줄어 들어갔다.

    “힘을 내라! 대송의 군사들이여! 성의 함락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황제는 군사들을 격려하면서 사기를 북돋았다.

    충차에 계속 물을 뿌리며 불길을 잡는 송나라 군사들.

    그렇게 충차로 성문을 힘차게 쳐냈다.

    빠지직.

    드디어 성문이 뚫리려는 소리가 들렸다.

    “힘을 내라!”

    충차 옆에서 방패를 위로 들고 군사들과 함께 충차를 밀어붙이는 장수들이었다.

    “으아악!”

    하지만 성곽 아래에서 쉴 새 없이 돌무더기가 떨어지자, 충차의 공격은 그대로 멈추었다.

    화아악!

    “으아아악! 뜨거워!”

    돌무더기가 떨어지고, 얼마 뒤 염초를 섞은 기름이 뿌려지면서 불길이 치솟았다.

    군사들과 장수들은 성문에서 온몸을 구르고 날뛰기 시작하다 화기(火氣)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며 활활 타올랐다.

    “이런!”

    그 모습을 지켜본 남송 황제는 친히 말에서 내려 군사를 이끌고 충차로 뛰었다.

    “충차를 빼라! 불을 꺼라!”

    황제의 명에 군사들은 황제를 호위하며 충차로 달려 들어가 돌무더기에 깔린 충차를 꺼내었다.

    꺼내지 못한다면 성문은 쉽게 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장수들은 방패를 들고, 화살과 돌 떨어지는 걸 방어하며 군사들이 돌무더기와 충차를 뺄 수 있게 엄호(掩護)하였다.

    하지만 금나라 군사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충차를 쉽게 빼지 못하도록 성문 쪽으로 집중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에 성문 쪽에 시체들이 점점 쌓여 갔다.

    “폐하, 뒤로 물러서시옵소서! 적들의 공격이 거세옵니다!”

    “이제 다 되었다! 그대도 짐을 도와 충차를 빼라!”

    황제는 무수한 화살들이 뻗치는 상황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했다.

    군사들의 호위를 받아가면서 돌무더기를 손수 치우며 충차를 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군사들은 감격한 듯 소리쳤다.

    “폐하께서 손수 돌무더기를 치우신다! 우리도 폐하를 돕자!”

    한 군사의 외침에 수많은 군사들이 성문 쪽으로 냅다 뛰어가 돌무더기를 치우기 시작하였다.

    “서둘러라! 적들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예! 폐하!”

    군사들은 속도를 내어 돌무더기를 치워 갔다.

    그리고 남송의 진영에서는 기름 항아리가 무수히 성곽을 넘어가고 있었다.

    쨍그랑!

    경쾌하게 깨지는 항아리 소리가 들리면서 불이 매섭게 퍼졌다.

    “불을 꺼라! 창고에 불이 붙었다! 어서 가서 불을 끄란 말이야!”

    금나라 장수는 식량창고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부장들은 군사를 이끌고서 식량창고로 향하였다.

    식량창고에 불이 붙을 것을 예상하여 미리 진흙을 바르고 젖은 짚단을 올려두었지만, 이는 얼마 가지 못하였다.

    어마어마한 열기로 인해 젖은 짚단은 이미 말라 버렸고, 쉽게 불이 타올랐다.

    군사들은 물 항아리에 물을 퍼서 물을 뿌렸고, 다른 군사들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 물에 적신 멸화자로 내리치며 불을 끄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기름 항아리가 여기저기 떨어지며 불을 일으켰다.

    성 아래 있는 군사들은 불을 끄기 위해 혼비백산(魂飛魄散)하며 움직였고, 성곽으로는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민가에 불이 붙었다!”

    성 아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금의 장수는 시선을 돌렸다.

    민간에 불이 옮겨붙어 삽시간에 옆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바람의 영향으로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콰아앙! 콰아앙!

    이때 성문을 다시 충차로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독한 놈들…….”

    금의 장수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충차 앞에서 지휘하는 남송의 황제를 보고는 곧장 활을 빼 들었다.

    화살을 활에 얹히고는 시위를 당기며 남송 황제를 조준하였다.

    쉬이익!

    퍼억!

    “윽!”

    “폐하!”

    옆에 있던 부장이 급히 황제에게 다가와 부축하였다.

    “남송 황제가 화살에 맞았다!”

    금의 장수는 소리쳤다.

    이 소식에 금의 사기는 엄청나게 오르면서 남송의 군사들을 공격하였고, 남송의 군사들은 황제가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는 소식에 금방 사기를 잃었다.

    “폐하!”

    “공격하라… 공격해야 한다.”

    “폐하, 군사들이 사기를 잃어 우왕좌왕(右往左往)하고 있사옵니다!”

    남송의 황제는 방패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장수들의 틈을 보자, 정말로 군사들이 사기가 떨어져 얼 타는 모습이 보였다.

    “폐하…….”

    “하아… 개봉(開封)이 코앞이거늘… 여기서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남송 황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전군… 퇴각하라!”

    “예! 폐하!”

    부장은 곧장 퇴각령을 내렸다.

    군사들은 황제를 부축하여 남송 군영으로 빠지기 시작하였다.

    “퇴각하라!”

    부우우우─

    둥! 두웅!

    남송 군사들은 소라를 불고, 북을 쳤다.

    이 소리에 장졸들은 삽시간에 퇴각하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은 군사들이 최대한 챙기며 말이다.

    “남송군이 물러간다!”

    “와아아아아아!”

    장수의 말에 금의 병사들은 승리에 도취(陶醉)하여 크게 소리쳤다.

    * * *

    얼마 후, 남송 황제의 군영에 태의가 와서 황제를 살피었다.

    “어떠하신가?”

    “다행히 치명상은 피하셨사옵니다. 황제 폐하께오서는 안정이 필요하시옵니다.”

    “회군(回軍)해야 하는 것인가?”

    “회군은 없다! 크윽…….”

    “폐하!”

    장수들은 무엇보다도 황제의 안위(安危)를 걱정하였다.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왕 장군.”

    “예. 폐하.”

    “군을 다시 소집하여 성을 공격하라.”

    황제는 거칠게 숨을 쉬며 말하였다.

    “폐하, 군사들의 사기가 꺾이고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사옵니다. 지금 이 상태로 나갔다가는 다시 싸우기는 어려울 것이옵니다.”

    고승윤이 답하자, 황제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알겠으니… 그대들도 그만 물러가 쉬도록 하라.”

    “예. 폐하.”

    장수들은 두 손을 올리며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금군 대장, 그대도 그만 물러가 쉬라.”

    황제의 말에 금군 대장은 양손을 올리며 답하였다.

    “괜찮사옵니다. 폐하. 신은 이곳에 남아 폐하를 지킬 것이옵니다.”

    황제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대는 짐의 옆으로 와 자리하라.”

    “어찌 신이 폐하께서 자리하신 자리에 앉을 수 있겠사옵니까.”

    “괜찮다. 어서.”

    금군 대장은 허리를 숙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더니, 황제의 옆자리에 앉았다.

    “다리 펴고, 좀 쉬도록 해.”

    “예. 폐하.”

    “하아… 금군 대장. 올해 나이가 몇인가.”

    “서른다섯이옵니다.”

    “좋은 나이로다. 그 나이면 천하를 가슴에 품을 수 있지. 하하하.”

    “폐하, 더 말씀하지 마시옵소서. 상처가 덧날까 염려되옵니다.”

    “이까짓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 젊은 날, 악비의 죽음을 내 눈으로 보았다. 참으로 잔혹했지. 어찌 나라가 충성스러운 장수를 버릴 수 있을까 하고 원망도 하였다. 짐이 황위에 오르고 난 뒤, 악비를 막수유라며 사지로 넣어 죽이자, 짐은 진회를 처단하였을 뿐이 아니라, 그 잔당까지도 처단하였다. 그리고는 내 한세충을 찾아가 조정에 복귀할 것을 부탁하였으나, 노구(老軀)를 이끌고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거부를 하였고, 대신 너를 데려가라 하였다.”

    “…….”

    “너와 내가 북벌을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내정을 안정시키었다. 그리고 북벌을 원하고 나라의 본토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대거 등용하였느니라. 이제 그 첫걸음을 내디뎠거늘… 짐의…….”

    말을 하다가 옆에서 기척이 없자, 말을 멈춘 황제는 옆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피곤하였는지 금군 대장은 눈을 감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하하하.”

    옆에 있던 환관은 눈치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네. 이걸 좀 덮어줘.”

    “폐하…….”

    “어서.”

    황제가 덮고 있던 호피를 건네어 주자, 환관은 호피를 받아들고서는 조심스럽게 금군 대장에게 다가가 호피를 덮어주었다.

    “잘 자두거라. 일어나면 다시 시작할 것이니.”

    황제도 이불을 덮더니, 두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 * *

    다음 날 아침.

    황제가 눈을 뜨자, 옆에서 두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을 지키고 있는 금군 대장이 보였다.

    “폐하, 기침하셨사옵니까.”

    “그래, 윽!”

    황제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쉽게 일어나지 못하였다.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그래… 괜찮아. 태의를 부르라.”

    “예. 폐하.”

    금군 대장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얼마 후, 태의와 금군 대장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태의는 황제에게 다가가 인사를 여쭙고 다시 환부를 살피었다.

    “어떠냐?”

    “폐하, 화살촉으로 인하여 환부의 붓기가 상당히 올라왔습니다. 회복하는데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옵니다.”

    “이까짓 화살… 아무것도 아니다.”

    황제는 이를 악물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옷을 가져와라.”

    “예. 폐하.”

    금군 대장은 옆에 걸려있는 갑주를 들어 올리었다.

    황제가 이를 악물며 참고 일어나서는 갑주를 입자, 금군 대장이 뒤에서 갑옷의 매듭을 묶어 주었다.

    이로써 황제는 다시 친정에 임할 준비를 마치었다.

    * * *

    두웅! 두웅! 두웅!

    당당하게 말을 탄 채 장수들과 함께 군사들에게 손을 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군사들은 황제를 향해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군사들은 일제히 공격할 준비를 마치었다.

    이번에는 성을 함락하는 방법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계속해서 화살과 석포를 쏘아 올리고 기름 항아리를 날려 적들을 우왕좌왕하게 한 뒤, 이 틈을 타 공격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폐하, 석포를 제 위치에 놓았사옵니다.”

    “정란과 공성탑에 군사들을 태우게. 적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서 정란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예. 폐하.”

    장수들이 고개를 숙이더니, 군사들에게 속히 명을 내렸다.

    “전군, 정란과 공성탑에 올라타라!”

    “정란과 공성탑에 올라타라!”

    장수들의 명에 부장들이 속속히 명을 반복하였다.

    공성탑에 보병에 태우고, 정란에는 궁수들을 태웠다.

    정란에 올라탄 병사들은 방패로 양측 면과 정면에 방패 병을 세워 적들의 화살 공격을 대비하였다.

    두웅! 두웅! 두웅!

    북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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