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89화 (89/159)

089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무리 황제 대신 내가 정무를 본다고 하지만, 황실이 없으면 나도 없는 것이지 않은가! 세상은 바뀌었어. 내정이 안정되었고, 고려의 영토였던 함경도 또한 되찾았네. 그런 이 시점에 결국에는 터질 게 터지지 않았는가. 어찌 신료들이란 작자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단 말인가!”

“송구하옵니다. 합하.”

“합하, 용서하시옵소서.”

장수들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었다.

“자네들이 신료들과 함께 나서게. 나서서 말리란 말이네. 만약 말렸는데도 계속해서 폐위를 거론하면 내 손으로 끌어낼 것이야!”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를 내뱉는 이의방이었다.

“합하, 취하셨습니다.”

“취하긴 뭘 취했단 말이냐!”

현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합하, 왜 이러십니까. 여기는 송악산입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 황궁이옵니다.”

“들으라 해!”

쩌렁쩌렁하게 이의방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의방은 그대로 술자리를 파하면서 말을 타고 사병을 이끌어 송악산을 내려갔다.

“이걸 어찌하면 좋은가…….”

“정주공… 합하께서 진심은 아니겠지요?”

이영령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한번 한다면 하는 분 아닙니까.”

현수 역시 자리를 파하고서 말을 타고 이의방의 뒤를 따랐다.

* * *

이의방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잘한 일인가…….’

끌어내린다는 말은 하도 열이 받아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아이고, 미쳤지 내가…….”

이의방은 마른 세수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합하, 정주공께서 오셨습니다.”

“아, 들라 하라.”

덜컹.

방문이 열리며 현수가 안으로 들어섰다.

“합하.”

“어, 그래. 앉아라.”

현수는 자리에 앉았다.

“합하, 아까 하신 말씀 말입니다.”

“내가 미쳤지… 아무리 열 받아도 그런 말은 내뱉으면 안 되는 것이었어.”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기억 안 난다고 하십시오. 그게 좋은 방법입니다.”

“…….”

“합하께서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그랬으면 좋겠구나. 하하하.”

* * *

“어디서 온 군사들이요!”

“나는 좌우위 상장군 문하시랑평장사 겸 동경 유수 이의민이다. 성문을 열어라.”

이의민은 크게 외치며 말하였다.

“성문을 열어라!”

끼이익.

성문이 활짝 열리자, 위풍당당하게 군사들과 개경으로 입성하였다.

이의민은 개경으로 돌아와 기분이 좋은지 미소가 끊어지지 않았다.

“이보게!”

저 멀리서 자신을 마중 나온 박존위, 돈장, 이영령이 보이자, 이의민은 활짝 웃었다.

“어서 오시게. 이 상장군. 아니, 평장사!”

“하하하하!”

“얼마 만입니까.”

“그러게. 자네들도 여전하구먼! 여전해!”

“하하하하!”

“합하께서는 존체(尊體) 건강하신가?”

“여전하시네. 어서 가게. 합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말이야.”

“그러세.”

모두 이의민의 저택, 천동택으로 향하였다.

천동택에 당도한 이의민은 말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의방을 보며 이의민은 큰절을 올리었다.

“합하, 존체 강녕하셨사옵니까.”

“그래. 이 장군. 자네도 여전하구먼!”

이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숙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뭣들 하느냐? 이 나라의 이 상국 합하이시다. 어서 예를 갖추지 않고.”

“예. 아버지.”

“예. 알겠습니다.”

“합하, 절 받으시오소서.”

두 청년은 이의방에게 큰절을 올리었다.

“합하, 이놈들은 제 자식 놈들입니다.”

이의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의방은 크게 기뻐하였다.

“세상에… 그 어린애들이 이리 자랐단 말인가! 아비를 닮아, 용력(勇力)이 출중해 보이는구나.”

“이번 무과에 응시할 것이옵니다.”

“그래. 그래야지. 자, 안으로 들어가자고. 상을 내라 일렀네.”

“예. 합하. 들어가자.”

“예. 아버님.”

이의민과 더불어 자식들 그리고 상장군들은 이의방의 뒤를 따랐다.

“동경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나.”

“아니옵니다. 동경에서도 많은 걸 느끼고 배웠사옵니다.”

“그러한가? 하하하.”

“또한 합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확실하게 다 잡아놓았습니다. 이제 염려 놓으시옵소서.”

“동경유수로 계시더니, 예전의 평장사가 아니십니다.”

“아니, 내가 예전에 내가 아니면 지금은 뭔데 그러나?”

이의민이 장난스레 묻자, 돈장이 답하였다.

“재상(宰相)의 풍모를 가지셨습니다.”

“에이, 이 사람이! 하하하!”

“하하하하하!”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크게 웃었다.

“합하, 함경도를 수복한 것을 진심으로 감축드리옵니다.”

“고맙네. 그 영토를 다시 수복한 게 정말 나는 기뻐. 자네들도 시간 나면 함경도에 한 번씩 가봐야지.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조만간 함경도는 크게 번창할 것이야.”

“예! 합하!”

이의방은 호부 관리들이 어떤 결과를 보내올지 매우 궁금해하였다.

함경도, 척박한 땅이지만 분명 기회를 가진 땅이다.

“평장사.”

“예. 합하.”

“개경으로 돌아왔으니, 자네가 평상시처럼 내 옆을 지켜주게.”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소장은 합하를 평생 모실 것이옵니다.”

이의민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이의방은 웃기 시작했다.

“나는 자네가 이래서 좋아! 자네는 영원히 내 오른팔이네! 하하하!”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어 갔다.

“그나저나… 무과 시험은 어떻게 치러지옵니까?”

“이 사람… 대놓고 알려달라고 하는구먼!”

이의방은 손가락으로 이의민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예끼! 이 사람!”

“하하하!”

장수들은 크게 웃었다.

“아, 별것도 아닌데 그냥 알려줘!”

“미안하지만, 못 가르쳐주네. 병부에서 내는 걸 어찌 알겠는가.”

“그래. 나 또한 모르는 일이네. 음서를 폐지하지 않았더라면, 자네 세 아들은 진작 별장직은 하고 있었을 것인데… 미안하구먼.”

“합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이의민은 고개를 숙이었다.

“평장사.”

“예. 합하.”

“서경 유수로 경대승이 가 있으니… 좌우위 상장군 내려놓고, 자네가 임시로 응양군 상장군을 맡게.”

“예. 알겠사옵니다. 합하.”

이의민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양군 상장군 자리가 비었으니, 누군가는 임시라도 맡아야 했다.

마침 이의민이 돌아왔기에 이를 맡게 한 것이었다.

“오면서 들은 소식인데… 정주공이 두 분 공주님과 혼례를 올린다면서요.”

이의민이 이의방을 보며 물었다.

“그렇네. 잘된 것이지. 두 공주님도 괜찮아 보이니 말이야.”

“여복(女福)이 타고났어. 여복이.”

돈장의 말에 장수들은 키득 키득 웃기 시작했다.

“왜들 그리 웃어?”

“아니,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말입니다.”

“그럼 하지 말게. 상상하기 싫어지니.”

이의방도 웃기기는 웃긴지 웃으면서 손짓하였다.

“푸훕!”

장수들은 일제히 술을 먹다가 뿜었다.

“크하하하하!”

“자네 동경에서 첩을 몇 들였다면서?”

“아, 예. 합하. 그렇사옵니다.”

“축하하네. 내 이를 듣고서도 좋은 선물을 못 보내었어.”

“아니옵니다. 합하께서 저를 이 자리까지 올려주셨는데… 선물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사옵니다.”

“자네가 그리 말을 하니, 더 주고 싶어지는구먼.”

“아니옵니다. 합하.”

“자네 아들들이 무과에 장원급제한다면, 내가 장군직을 내어주겠네.”

“합하, 망극하옵니다.”

* * *

“너네들 사고 치지 마라. 여기서 사고 치면 아버지의 위신은 땅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미쳤다고 개경까지 와서 사고 치겠습니까.”

이지순은 이지영, 이지광이 또 사고를 칠까 봐 매우 걱정되었다.

벌써 동경에서 사고친 것만 해도 말도 아니었다.

이의민이 동경에 들어서며 귀족들을 제압하였다.

말을 듣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목을 베었다.

동경의 귀족들은 그런 이의민은 가장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백성들은 날이 갈수록 이의민을 칭송하였다.

이지영, 이지순은 그런 아버지의 위신을 믿고서 귀족들의 처와 딸을 유린하며 전횡(專橫)을 일삼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이의민이 몇 번이나 혼을 내었지만, 이에 그치지 않았다.

“무과에서 장원급제한다면 아주 재미난 구경을 보여주겠소이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들었잖소. 재미난 구경을 보여드린대도.”

이지순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몰랐다.

더불어 무과에서 장원급제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경쟁자도 많았으니 말이다.

저렇게 거만 떨다가는 장원은커녕 첫 시험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거만 떨지 말거라. 무과에 응시하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아버지의 용력을 이어받았는데… 그까짓 무과에서 장원을 못 한다는 게 말이나 되겠소이까.”

이지영은 미소를 지었다.

“병부에서 어떤 시험이 나올지도 모른다.”

“아, 그냥 믿고 계시라니까…….”

“형님, 우리 동반으로 장원합시다.”

“…뭐?”

이지광이 웃으면서 말하자, 이지영은 피식 웃었다.

“그래. 같이 장원에 들어보자.”

* * *

다음 날 아침.

이의민은 응양군 군영으로 향하였다.

이미 응양군에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군사들과 응양군에 있던 장수들은 모두 이의민의 명을 받아야 하였다.

하지만 응양군에서도 이의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장수들도 있었다.

“오늘부터 응양군을 맡게 된 이의민이다. 앞으로는 내가 훈련을 시킬 것이다. 또한 보고되는 것을 직접 받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예. 상장군.”

대장군, 장군, 중랑장, 별장들은 고개를 숙이며 곧장 해산했다.

이의민이 뒤로 돌아서자, 앞에 서 있는 이가 있었다.

두경승이었다.

“두 상장군.”

“하하하!”

두경승은 이의민을 보며 웃기 시작했고, 이내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서서는 손을 부여잡았다.

“이 얼마 만인가.”

“그동안 잘 지내셨는가.”

두경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죽지도 않고 개경으로 돌아왔네.”

“하하, 사람… 여전하구먼!”

“여전한 건 자네야! 응양군을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렇네. 합하께오서 그리하라 하시니 말이야.”

두경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위군의 수장을 너무 오래 비워두었으니, 합하께서 자네를 불러들이신 거 같네.”

“그렇지. 내 경대승이 임시로 서경 유수로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나도 임시야… 때가 되면 돌아가든지 해야지. 어떤가? 오늘 술 한잔하는 게?”

“음, 좋네. 마침 자네를 보니 술 한 잔이 생각나던 참이었거든.”

“그래. 알겠네. 내 이따 연통을 넣겠네.”

“기다리고 있겠네.”

두경승과 이의민은 이야기를 미루며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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