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86화 (86/159)

086화

얼마 후, 영접관에서 금나라 사신을 맞이하였다.

“합하, 어제 일은 들었습니다. 남송의 사신이 사신의 본분을 저버리고, 저택의 담을 넘었다면서요.”

금나라 사신의 말을 역관이 통역해 주자, 이의방은 답하였다.

“그렇소이다. 그런데 충정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오. 참으로 기개가 높은 자였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사옵니다. 합하께서 저희 금나라를 도와주신다면 군사들의 보급과 군량은 물론이고, 장졸들의 녹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완안홍준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이의방은 완안홍준을 보며 물었다.

“군사들에게 당연히 지급해주어야 할 것들 아니오? 그럼 우리 고려에는 무얼 줄 것입니까?”

역관은 이의방의 말을 전하였다.

“금병 1000관, 은병 300관입니다.”

이의방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구미가 당겼다.

‘함경도를 재건하는 데 금병이 최소 100관이 들어간다 치면…….’

충분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금병과 은병을 함경도에 쏟아부으면 조정의 재산은 그대로 유지가 될 것이니 말이다.

“금병 2000관, 은병 500관, 비단 3천 필 그 이하로는 아니 되오.”

이의방의 말을 다시 역관이 전하자, 완안홍준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고려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남송과의 접전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서북면에 수만의 군대가 아직 해산치 않았소이다. 내 명이 떨어지면 바로 금으로 향할 것이니, 부디 잘 생각하시오.”

완안홍준은 선뜻 답을 내주지 않았다.

요구를 너무 많이 한 것이다.

거기다가 고려군이 온다면 먹이고 보급하고 녹까지 주어야 하니, 금병 2000관 아니… 그 이상이 들어갔다.

“그럼 생각할 시간을 드릴까요?”

완안홍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신 일행들과 함께 객관으로 돌아갔다.

* * *

얼마 후, 이의방은 남송의 사신을 만났다.

갑주를 입은 고승윤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자리에 앉았다.

“어제 일은 송구합니다.”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괘념치 마시오. 나는 그리 속 좁은 사람이 아니오. 그나저나 본론으로 이야기 들어가 봅시다. 우리 고려군이 남송을 지원하면 남송에서는 무얼 해줄 것이오?”

“고려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시오.”

“금나라가 지원해준다는 그대로 하겠습니다.”

“보급, 군량, 녹까지 말이오?”

“예.”

고승윤이 당당하게 답하였다.

“금나라는 금병 2000관에 은병 500관과 더불어 비단 3천 필을 준다고 하던데… 남송도 줄 수 있소?”

이의방의 말을 역관이 다시 전하자, 고승윤은 깜짝 놀랐다.

‘금나라가 그 정도로 지원이 가능하단 말인가?’

속으로 생각하였다.

“못하겠다면 가보시오.”

이의방은 단호하였다.

하지만 이의방은 두 나라 사신이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믿질 건 없었다.

군사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피도 보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어찌해야 하지? 폐하께서는 내게 전권을 위임하셨다… 그 이상을 불러야 하나?’

고승윤은 머뭇거리다가 답하였다.

“드리겠소. 아니, 금나라가 준다는 것에 배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남송을 도와주십시오.”

남송 사신이 선뜩 답을 내어주자, 이의방은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중신들과 의논하여 답을 내어 드릴 테니. 객관으로 돌아가 계시오. 한 번에 다 그걸 줄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구려.”

“그건 나도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도와만 주신다면 한 해에 한 번씩 고려를 방문하여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고승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객관으로 돌아갔다.

이의방 역시 중방으로 돌아갔다.

* * *

“하아…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려가 엄청난 요구를 해오는군. 지난 수십 년간 바쳤던 걸 이 한방에 다 가져가는구나.”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송이 우리가 주는 거에 배로 주겠다고 했답니다.”

완안홍준은 두 눈을 감았다.

“하아…….”

“이미 남송에서 배로 준다고 하였다니, 우리도 그에 맞는 걸 주어야겠지. 이미 폐하께서도 각오하신 일이네. 속히 이의방을 만나야겠다.”

완안홍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일행들과 함께 황궁으로 향하였다.

* * *

“합하, 금나라와 손을 잡는 게 좋을 듯합니다. 잘만하면 이득을 취하는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도 있사옵니다.”

“그렇습니다. 금나라 편에 선다면 소식을 들은 남송은 퇴각할 것입니다.”

“저들이 바보입니까? 저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도와준다면 받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신료들의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금나라도 바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송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거 아닙니까. 후방지원도 안 받고 그냥 들이댄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야… 우리는 후방지원을 하면 되지 않겠소.”

“후방지원요? 금나라가 X신입니까! 후방지원이 아니라, 같이 공격하자 할 겁니다. 그럼 사상자가 얼마나 많이 나오겠습니까.”

병부 상서 이문저가 성내며 말을 하였다.

“병부상서, 어찌 언성을 높이시오. 진정하시오.”

우복야 이준의가 말하자, 답답한지 병부상서 이문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의방 역시 이문저와 같은 생각이었다.

신료들의 말을 거스르고, 스스로 결정은 내리기 어려웠다.

예전보다 참을성과 인내력을 가지고 신료들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결코 틀린 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중서시랑평장사, 지문하성사, 참지정사는 어찌 대답이 없으시오?”

이의방은 중서시랑평장사 윤인첨, 참지정사 조영인, 남경 유수에서 돌아온 지문하성사 한문준에게 물었다.

“오래전 합하께서 남의 전쟁에 끼어드는 것은 안 좋게 보셨지요. 저 또한 합하와 같은 생각입니다.”

참지정사 조영인이 말하였다.

“중서시랑평장사,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만약 지원해야 한다면… 금나라가 옳을 듯합니다.”

“지문하성사, 경의 뜻도 같소이까?”

“예. 그러하옵니다. 금나라를 지원한다면 반반일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반반이라니?”

“남송이 회군할 수도, 공격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옵니다.”

“병부상서, 남송이 군사를 보낸 틈에 역으로 우리를 공격한다면 막을 수 있겠는가? 남송의 수군은 고려군과 맞먹을 정도로 강하다 들었는데.”

“능히 막을 수 있습니다.”

병부상서가 아닌 현수가 답하였다.

“병부상서에 물었다.”

“합하, 남송이 바다를 건너면 서해입니다. 서해의 해군 절도사가 바다를 봉쇄하여 막으면 그만이옵고, 혹시 상륙한다면 정주에서 막으면 그만이옵니다. 더불어 정주를 거쳐 개경으로 올라온다고 한들 저들은 보급로부터 끊어지게 되어 대패하게 될 것입니다.”

정주가 기반이라 그런지, 현수는 오히려 병부상서 이문저보다 상세히 설명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정주공의 말씀 하나 틀리지 않사옵니다.”

이문저의 말에 이의방은 헛웃음을 쳤다.

“이러다 정주공이 병부상서의 자리까지 노리겠구먼. 응? 하하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제가 정주와 강화를 맡고 있기에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이옵니다. 병부상서만큼 잘 모르옵니다. 합하.”

“하하하하!”

이의방은 웃었다.

“합하, 금나라 사신들께서 오셨사옵니다.”

“그래? 어서 뫼시어라!”

이의방은 헛기침하였다.

덜컹.

방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사신 일행.

이의방에게 고개를 숙이었다.

“어서 오시오.”

“답을 드릴까 합니다.”

금의 사신, 완안홍준의 말을 역관이 전하였다.

“이야기해보시오.”

“합하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또한 제가 돌아가는 즉시, 금병 50관과 은병 200관, 비단 500필을 먼저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의방은 완안홍준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시오. 금에서 보내는 것이 도착하면 그 즉시 서북 면에 주둔한 군사들을 보내겠소이다.”

“감사하옵니다. 합하.”

완안홍준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금으로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합하, 결국에는 금을 선택하신 것이옵니까?”

이의방은 미소를 지었다.

“주겠다지 않는가. 사상자가 나오면… 그걸로 충당해야지.”

“송나라는…….”

“끝났네.”

이의방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 * *

“뭐!? 금나라를 지원하겠다고 하였소!?”

“예. 합하께서 그리 전하라 하셨사옵니다.”

역관은 이의방의 명을 받아, 송의 사신에게 이를 전하러 왔다.

고승윤은 역관의 말을 듣더니,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아… 폐하를 어찌 뵈어야 할 것인가…….”

역관은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장군, 이만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야겠지. 어찌 폐하를 뵈어야 할지…….”

“돌아가서 폐하께 말씀을 올리고, 폐하께서 어찌 결정을 내리실지 봐야 합니다. 여기서 낙담하실 때가 아니옵니다. 장군.”

“그래… 그래야지… 속히 양양으로 돌아간다!”

“예! 장군!”

고승윤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과 온 부장들을 데리고 곧장 객관을 떠나갔다.

* * *

“병부상서.”

“예, 합하.”

“받게. 서북면 병마사 우학유와 서경 유수 조위총에게 내리는 명령서네.”

“알겠사옵니다. 급히 전령을 띄우겠사옵니다.”

병부상서 이문저는 두 손으로 명령서를 받아 들더니,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 이제 이놈들에게 맡아야겠지…….”

명령서를 쓴 후에 다음에는 교지를 썼다.

[대장군 조원정을 안북도호부사 겸 서북면 병마사로 임명한다.]

우학유가 계속 서북면에 있기에는 그 재능이 뛰어났기에 돌아올 때 개경으로 불러들이려 하는 것이었다.

이의방은 교지를 다시 보며 오른손으로 도장을 들어 그대로 교지에 찍고는 아랫부분에 수결 하였다.

조원정뿐만 아니라, 이영진, 석린 역시 교지를 준비하였다.

[장군 이영진을 안북도호부장 겸 서북면 좌장으로 임명한다.]

[장군 석린을 안북도호부지사 겸 서북면 우장으로 임명한다]

흥화진은 수년 동안 국경 강화만을 목표로 해왔다.

동, 서북면을 돌면서 흥화진도 살핀 결과 예상외로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군사들도 훈련이 잘 되어있었고, 목책으로 임시로 일구어 놓은 곳은 어느새 성벽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이의방은 천천히 다시 도장을 들어서 두 개의 교지에도 도장을 찍은 후, 수결하였다.

“하아…….”

이의방은 한숨을 내리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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