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82화 (82/159)

082화

끼이익.

피슈웅!

“윽!”

여진족이 말에서 떨어지며 죽었다.

현수는 시위를 당기며 쏘다가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향해 뭐라 뭐라 외치는 여진족.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 너부터 죽여주마.”

현수는 자신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는 여진족을 보며 시위를 강하게 당기더니, 곧장 쏴버렸다.

피슝!

퍽!

“젠장…….”

화살이 빗나가 어깨에 맞았다.

현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걸고 당기었다.

쉬이익.

퍼억!

이번에는 제대로 명중이었다.

“하하하!”

현수는 크게 기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족은 몰살을 당하였다.

단 한 명도 살아남은 자가 없었고, 근처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물론 고려군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났지만, 여진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겼다. 대승이다!”

“와아아아아!”

장졸들은 소리치며 기뻐하며 소리쳤다.

“정주공, 시체들은 어찌합니까?”

“땅을 깊게 파고, 한곳에 묻어라.”

“예! 정주공!”

승리는 단번에 이루어졌다.

대승을 기록한 것이다.

승리를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추장들의 무식한 돌격으로 덕분에 여진족의 군사는 전멸하였다.

이로써 함경도는 고려의 것이 되었다.

또한 남은 여진족 병사들은 추장과 부추장을 잃었으니, 고려군에게 항복하든지 도망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홍중방!”

“예! 정주공!”

“기병을 이끌고 북진(北進)하시오!”

“예. 정주공.”

이 기세를 놓칠 수가 없었다.

홍중방은 기병들을 수습한 뒤, 그대로 북진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악진은 고개를 저었다.

무식한 추장들 때문에 여진족의 정예병이라 할 수 있는 군사들이 모두 전멸하였다.

이제 여진족에게는 가망이 없었다.

여진족들은 이런 상황을 알게 되면 모든 걸 다 버리고 도망갈 게 분명했다.

고려군을 피해 도망가더라도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것이었다.

여진이 힘을 회복하려면 수년 아니, 수십 년이 걸릴 것이었다.

악진은 말머리를 돌렸다.

며칠 후, 홍중방이 함경도 갑산에 도착하였다는 파발을 받았다.

현수 또한 군을 수습하고 군을 나누어 북진을 시작하였다.

좌우위 대장군 오광척은 북서쪽으로 진군하도록 하여 성을 세울 만한 곳에 진을 치게 하였고, 천우위 대장군 장박인은 동북쪽으로 올려보냈다.

이 외 삼군도 북진하며 현수가 명을 내린 대로, 성을 지을만한 터에다가 진을 치고 군을 배치하였다.

“정주공.”

“응?”

“정탐병들이 정탐을 나갔다가 도망간 여진족을 잡아 왔습니다.”

“그래? 그거 잘됐군. 여진족 위치를 알아내서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야지. 끌고 와,”

“예. 정주공.”

천시호가 군막 밖으로 나가더니, 오라에 묶인 여진족을 군막 안으로 데려와 무릎을 꿇리게 하였다.

두터운 가죽옷을 입은 채, 똑바로 현수를 바라보는 여진족이었다.

짝!

“이놈이! 감히 누구를 똑바로 쳐다보는 게야…….”

천시호가 무섭게 인상을 쓰며 말하자, 현수는 그러지 말라는 듯 손짓하였다.

“나를 풀어주시오.”

“오, 고려 말을 할 줄 아느냐?”

현수는 신기한 듯 여진족을 바라보았다.

“고려의 국경을 오가며 배웠소.”

“풀어줘라.”

“대장군!”

“괜찮아. 자네가 있잖아. 그리고 옆에는 정균 형님이 있고.”

천시호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현수의 명인지라 오라를 천천히 풀어주었다.

이에 여진인은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잡혀 온 놈치곤 마치 제 발로 온 것처럼 당당하게 현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악정이라 하오.”

“난 유현수다. 그런데 네놈은 범상치 않은 놈 같구나.”

악정은 피식 웃었다.

“내 본래 이름은 악정이고, 여진족들에게서는 악진이라 불려왔소.”

“그래서?”

“추장들이 내 말을 들었다면 고려군은 함경도에 한 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했을 거요.”

“…뭐라?”

현수는 정색하였다.

“당신들이 선발대로 보내었다가 기습을 당하지 않았소. 만약 그런 식으로 계속 기습공격을 했다면 당신들은 함경도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한 채 전멸했을 거요.”

“네 이놈!”

정균이 눈을 부라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당장 목을 치려 하자, 현수는 정균을 제지하였다.

“그렇군. 그럼 왜 도망가지 않고 여기로 온 것이냐?”

“갈 곳이 없으니까.”

“뭐?”

“당신 같은 장수는 처음이오. 자비를 베풀기는커녕, 모두 죽이지 않았소.”

“그래, 그렇지. 여기는 전쟁터니까.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곳이다. 괜히 포로 하나 남겨두었다가 내 목을 노리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다 죽였다.”

“그 이유에서 내 발로 여기 온 것이오.”

“무슨 말이냐.”

“이젠 죽이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악정의 말에 현수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악정이 궁금해졌다.

“묻겠다. 내가 너를 살려주면 너는 나에게 무얼 줄 것이냐?”

“함경도의 지형을 다 알려드리리다.”

“뭐라?”

“나는 이곳에서 가보지 않은 곳이 없소.”

“크하하하하하!”

현수는 크게 웃었다.

“재밌지 않소, 형님?”

“난 죽여야 할 놈으로 보인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현수는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악정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말이다.

악정 역시 이 자리가 자신에겐 도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진족을 따라 다니다가는 개죽음을 당할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였다.

그렇게 살기는 싫어서 도박을 감행한 것이었다.

“그거참… 재미있군. 제대로 배운 놈인 듯한데… 하나만 물어보자. 고려군의 보병은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냐?”

“최고였소. 금나라, 남송의 보병에 비할 바가 아니오. 보병들이 진을 짜고 뒤에서는 석포를 날려 기병을 제지 시킨 다음, 추진력을 늦추어 보병을 뚫지 못하게끔 하는 고려군의 전술은 그야말로 최고였소.”

“푸하하하하!”

현수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만약 석포(石浦)가 없었다면 고려군의 보병은 전멸하였을 것이오.”

악정의 말에 현수는 웃음을 멈추었다.

“살려주는 대신… 내 옆에서 일하지 않겠나?”

현수의 말에 악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수에게 큰절을 올리었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송 악비의 아들 악정이 장군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잠깐만… 뭐라고?”

현수는 지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균 역시 깜짝 놀란 눈치였다.

“악비의 아들?”

“악비면… 그 악비?”

“예. 제 아비는 남송의 장수 악비입니다.”

“살아있던 건가? 듣기로는… 악비의 자식들 모두 죽었다고 들었는데.”

정균이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다 죽었지요. 저만 빼고 말입니다. 저는 아비와 어미의 얼굴도 기억조차 못 하는 핏덩이 때 남송을 떠났으니까요.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거라곤 단도 한 자루뿐입니다.”

악정이 천시호를 바라보자, 천시호는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어 악정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돌려주면서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참 재미있는 인연이군. 어찌 되었든… 자네는 나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하였으니, 내 지켜보겠네.”

“예. 장군.”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천시호와 정균은 악정을 믿을 수가 없는지 내심 악정을 경계하였다.

* * *

그날 저녁.

현수는 악정을 불러들여 지도를 펼쳤다.

“자, 말해봐.”

악정은 현수 옆에 자리에 앉아 설명하였다.

“지금 장군께서 계시는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함주… 그래… 함주지.”

“함주에서 올라가면 함흥입니다. 이 함흥 가는 길에 있는 강 하나만 지나면 평탄한 평지가 나옵니다. 함흥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있지만, 농사도 어느 정도 되는 편입니다. 거기서 더 지나가면 함흥에서 세 갈래 길이 나올 것입니다. 여진족들이 함경도를 다니면서 만들어 놓은 길들입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평탄하게 함경도를 전체 장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진족… 여진족들은?”

“모두 도망갔겠지요. 많은 부족들이 합쳐서 한 번에 공격한 것인데 고려군에게 전멸을 당했습니다. 장군은 자비를 베풀지 않고 모두 죽이지 않았습니까. 소문은 금세 돌았을 겁니다.”

“그럼 자네 말은… 여진족들은 없을 것이다?”

“예. 있더라도 고려군이 나타나면 도망가는 여진족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악정의 말에 현수는 미소를 지었다.

“정 장군, 천 장군.”

“예. 정주공.”

“예. 정주공.”

“각 군사 일만씩 이끌어 악정의 말대로 북진하게.”

“…예?”

정균은 악정을 바라보았다.

악정은 표정 하나 변하는 게 없었다.

“알겠습니다.”

“명을 받으옵니다.”

정균과 천시호는 고개를 숙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다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가?”

“정벌을 하신 후에 무얼 하실 생각입니까?”

“정주에 가서 마저 일을 봐야지. 아니면 개경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든지.”

“정주는 어떤 곳입니까?”

“바다가 보이고, 개경과 가까운 곳이지. 서역 상인들이 오가는 벽란도와도 가깝네. 근데 왜?”

“궁금해서… 그러합니다.”

“하하, 함경도는 빠삭한데 나머지 세상은 더 봐야겠구먼.”

“장군만 하겠습니까.”

“하하하하하!”

현수는 크게 웃었다.

* * *

보름 후, 이의방은 함경도에서 온 보고를 받았다.

보고를 받은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어지지 않았다.

거란족은 완전히 소탕되었고, 옛 영토를 수복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여진족은 무식하게 때려 박아 준 덕에 함경도는 아주 쉽게 수복하였다.

“하하하.”

“이게 모두 합하의 복이십니다.”

“복은 무슨… 다 장수들이 유능한 덕이지.”

이의방은 미소를 지었다.

“호부 상서, 함경도가 이제 고려의 영토가 되어 가니… 이제 호부에서 예산을 추려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의방의 말에 호부 상서는 답하였다.

“합하, 안 그래도 호부에서 따로 사람을 보내어 살피어 볼까 하옵니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 보내도록 해. 함경도 지형은 어떻고, 필요한 건 무엇이고… 백성들을 이주시킬만한 곳이 있는지 잘 살피어보라고 해.”

“예. 합하.”

“그리고 지금 개경에 남은 군사들은 이제 해산시켜도 되겠어. 하지만 훈련은 게을리해서는 아니 되네.”

“명심하겠사옵니다. 합하.”

장수들은 답하였다.

“고려에 오랜 염원(念願)이 풀어지는 듯하구먼… 천리장성을 넘어 우리의 땅을 되찾았으니 말이야. 예부 상서, 금나라에서는 별다른 소식 없지?”

“예. 합하. 금나라에서 딱히 여타할 소식은 없사옵니다.”

“합하, 남송에서 들어온 소식이 온대… 남송의 황제가 친정(親征)을 한다고 합니다. 이미 남송의 군사들은 양양성에 집결해 있고 군사만 약 오십 만에 이른다고 하옵니다.”

“황제가 친정을 한다… 골머리 썩히는 싸움이 되겠구먼.”

“그래도 저희에게는 이득이 될 수 있는 전쟁입니다. 양국 간에 전쟁이 극심해지면 결국 저희에게 손을 내밀 것이 분명하니, 저희는 그 두 나라 사이에서 좋은 조건으로 두 나라 중 한 곳을 택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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