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80화 (80/159)

080화

“병마사께 보고한다.”

“예! 장군.”

함경도의 산세를 정확하기 모르기에 어디서 여진족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길목들은 좁고 좁아 기병이 움직이기에는 너무나도 열약하였다.

“정탐병(偵探兵)을 꾸려라. 삼인 일조로 하여 산세를 다시 살피게 하고, 나머지는 장성으로 들어간다.”

“예! 장군.”

부장들은 속히 움직였다.

여기서 약 두어 시간만 가면 장성이었다.

장성에서 재정비해야만 하였다.

천리장성을 넘어선 선봉대는 기습으로 인한 피해로 인해 군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 *

정주로 돌아온 지 열흘이 흘렀다.

후방지원을 하라고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자기에게 출전을 하라니.

대체 이의방의 속내는 알 수가 없었다.

“정주 공, 출전준비를 모두 마쳤사옵니다.”

“알겠네.”

현수는 경번갑을 입고 끈을 묶더니, 검을 패용한 뒤 밖으로 나갔다.

동문 밖으로 나오니, 중앙군 3군이 집결해 있었다.

대장군, 장군, 중랑장, 별장 등의 장수들이 현수에게 군례를 올렸다.

“추웅!”

현수가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서 말 위에 오르자, 장수들 역시 말에 올랐다.

* * *

보름 정도 흘러, 어느새 천리장성 앞까지 당도하였다.

현수가 올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한 박수경은 장성 안으로 군을 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정주 공.”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나저나 기습을 당하셨다고요.”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이 정도 피해가 어디입니까.”

현수는 밝게 웃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제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나무들을 모조리 뽑아 버렸습니다. 대군이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 여진의 위치까지 파악하였고, 계속 살피기 위해 정탐병을 수시로 보내고 있습니다. 길목 또한 다 정비를 해놓았습니다.”

박수경의 설명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진족 놈들이 산속에서 거주하는 거라면 …위치는 파악이 된 거요?”

흥위위 대장군 어사대부 홍중방이 물었다.

“예. 파악되었습니다. 오시기 전 여진의 부락 몇 개를 해쳐 놓았습니다.”

“집결해 있는 곳은요?”

“바로 여기입니다.”

박수경은 산이 아닌, 평지를 가리켰다.

“말이 달리기 매우 좋은 장소입니다. 여진은 말을 이용해 수시로 약탈을 일삼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으로 저희 고려군을 끌어들여 공격을 감행할 생각인 듯싶습니다.”

현수는 박수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진이 집결해 있는 곳은 산 하나를 넘어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럼 최대한 산속에서 우리를 괴롭히겠다… 이건가?”

“염려 마십시오. 산세가 험하기는 하나, 어디서 매복을 하든 간에 바로 간파할 자신은 있습니다.”

동북면 병마사 박수경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기병이 움직이기에는 어떤가?”

“기병이 움직이기에는 불편할 것입니다.”

“그럼 기병과 보병이 싸우라는 건가?”

흥위위 대장군 홍중방이 말하였다.

“애초에 합하께서는 이걸 대비해, 보병과 궁병을 많이 늘리신 겁니다. 그리고 훈련도 얼마나 힘들게 시켰습니까.”

“정주 공, 아무리 그래도 무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함경도로 가기 전에 미리 사전 조사를 마쳤습니다. 웬만한 산지들의 길을 평탄화시켰지요. 골목이 좁더라도 기병을 운용하기에는 편안하실 겁니다.”

정벌이 시작된 이후, 동복면 병마사 박수경이 직접 함경도의 지형을 살피면서 길을 닦아 놓았다.

“혹시 말이오… 함경도에 우리 백성들이 있다거나 하진 않소?”

“양수척들이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양수척?”

“예. 오갈 데 없는 놈들인지라… 함경도에 있을 수도 있…….”

아차 싶은 박수경이었다.

양수척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갈 데 없이 고려 전역을 떠돌며 먹고 사는 양수척들.

그런 양수척들이 함경도에 있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박수경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양수척부터 찾아봅시다. 혹여 그놈들이 첫 선발대가 있던 곳에 길잡이를 하였던 거라면… 모두 죽여버려야겠습니다.”

현수는 인상을 구기었다.

“양수척들은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할 놈들입니다.”

오래전, 현수가 이의방에게 양수척을 양민화를 해보자는 제안을 하였다.

물론 반대가 있었기는 하였지만, 일을 진행하게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포기 해버리고 말았다.

일단 어떻게 해서든 좀 안착시켜 보려 하였건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였던가.

떠돌이 생활을 즐기던 이들을 정착시킨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살던 방식이 달라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말이다.

어찌 되었든 양수척의 일부분은 안착을 시켰지만, 다른 양수척들은 이런 삶이 버거운지 모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정주 공, 오시기 전에 한 번 더 정탐병들을 보내었습니다. 정탐병들의 보고를 듣고 움직이심이 어떠하십니까?”

“그래야지. 출전하기 전에 군사들에게 마음껏 먹게 해주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수경은 답하였다.

“정주 공, 장수들끼리도 술 한 잔 어떠하십니까?”

홍중방이 물었다.

“술은 여진족을 몰아내고 마십시다.”

“아, 예. 그렇게 하지요.”

현수는 자리를 파하였고, 장수들은 밖으로 모두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와 돼지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 * *

다음 날 아침,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일어나 있는 군사들은 없었다.

이참에 아예 푹 쉬게끔 하고 싶었다.

나갔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고, 이게 마지막 잠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기침하셨습니까.”

“어서 오게.”

“정탐병들이 왔습니다.”

정탐 나간 군사들이 고개를 숙이었다.

“어떠하더냐?”

“별다른 움직임 들이 없습니다. 매복할만한 곳까지 모두 살피었습니다. 하지만 산세가 너무 험하여 감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기습도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할 수는 없었다.

현수는 정탐병의 말을 듣고서 잠시 생각하였다.

“병마사.”

“예. 정주 공.”

“선발대를 다시 보내어 그동안 파악해둔 여진 부락을 공격하라 이르게. 그곳을 거점으로 정탐 병들을 계속해서 보내게. 아예 함경도 지형 지도를 만들어 버리자고.”

“그리하겠습니다.”

박수경은 고개를 숙이더니, 정탐병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 * *

한편 개경에서는 보급대로 보낼 군사들과 보급품을 확인하였다.

이의방이 직접 챙기다 보니, 하나도 소홀하게 준비를 할 수 없었다.

벌써 소 수레 수백여 대가 준비되어 있었고, 물건들도 산처럼 쌓여 있었다.

쌀과 화살, 병장기, 물 항아리, 군사들이 입을 경번갑, 약재들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감문위 군사들은 열심히 보급품들을 옮겼고, 감문위 대장군 최원호가 이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합하.”

“어찌 되어 가고 있나?”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달이네. 한 달 내로 준비시켜서 각각 동북면, 서북면으로 보낼 것이다.”

“예. 합하.”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옮겼다.

곳곳을 살피던 이의방은 한곳에 멈추었다.

“합하!”

자신에게 급히 뛰어오는 승선이 급히 와서 장계를 올렸다.

“무엇인가?”

“서북면 병마사 우학유가 보내온 장계이옵니다.”

“그래?”

이의방은 장계를 받아들더니, 그 자리에서 펼치었다.

“하하하하하!”

이의방은 크게 웃었다.

우학유가 보내온 것은 다름 아닌 승전보였다.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던 서북면이 마침내 거란족 일파들을 모두 쳐내고 옛 고려의 영토를 모두 되찾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거란족들이 하도 저항하여 금나라 역시 토벌을 미루고 있었다.

또한 몽고의 문제로 인해서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은 거란족을 고려가 공격하여 영토를 모두 수복한 것이다.

금나라로 사신을 보내려 할 때마다 거란 때문에 항상 먼길로 돌아갔던 고려였다.

이제 그럴 일도 없어졌다.

사신 길과 교역일 모두 직통으로 연결이 되었다.

“이게… 마지막 승전보가 될 것인가? 음하하하.”

이의방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살피어 보았다.

“연주 도령 현담윤의 아들… 현덕수가 크게 공을 세웠다라… 이거 좋은 소식이야. 연주에 큰상을 내려야겠어.”

이의방은 장계를 들고서 곧장 중방으로 향하였다.

중방에 들어선 이의방은 신료들과 연주 도령 현담윤과 현덕수에게 어떤 상이 좋을지 의논을 하였다.

크게 공을 세운 이들에게 합당한 상을 내려야 했으니 말이다.

“현담윤은 본래 연주 출신으로, 연주의 토박이이옵니다, 연주에 도호부를 설치하시고 현담윤을 도호부사 겸 군으로 봉하여 연주를 다스리게 하십시오. 또한 상으로 은병과 금병을 하사하심이 어떠하시옵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럼 현덕수에게는 무슨 상을 내리는 것이 좋을까?”

“현담윤과 현덕수는 음서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연주를 보고 있는 부자이옵니다. 합하께서 음서를 폐지하신 때에 현담윤을 군으로 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겨지옵니다.”

“아니… 그럼 뭐 어찌하라는 건가? 연주를 보고 있는 현담윤을 연주에서 쫓아내자는 건가?”

“그건 아니옵니다. 현담윤에게 은병과 금병을 하사하심이 옳을 줄 아룁니다. 더불어 현덕수는 현 현담윤의 자제이면서도 좌장직을 하고 있던 자이오니, 그를 개경으로 불러들여 중랑장에 임하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큰 공을 세운 자를 고작 중랑장이라니.”

우복야 이준의가 발끈하였다.

장군직을 주지 못할망정 개경으로 불러들여 중랑장을 시키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공을 세웠으니, 상찬은 마땅히 해야 하지만… 문과도 무과도 보지 않은 이에게 중랑장을 내리는 것도 과합니다.”

유응규에 말에 이준의는 시선을 돌렸다.

“중랑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더불어 현담윤은 오랫동안 연주를 잘 다스려 왔으니, 군으로 봉하고 차후에 다시 연주를 다스릴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조영인이 말하였다.

“오, 그거 그럴듯한 이야기요.”

“이부상서.”

“예. 합하.”

“다른 장수들 또한 어떤 상을 내릴 것인지 여기서 의논하여 가져오게.”

“예… 합하.”

* * *

곳곳에서 여진 부락을 함락시키고, 여진족의 수급(首級)을 베고 거점으로 삼았다는 소식이 왔다.

여진족에 양수척 무리가 끼어 있었다는 보고도 왔었다.

“슬슬 움직여 봅시다.”

현수는 소식을 받자마자, 출전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이었다.

보병과 궁병을 선두로, 산을 넘는다.

이게 1차계획이다.

2차 계획은 홍중방이 기병을 이끌고 넘어오는 것이었다.

여진 부락을 거점으로 만큼 산세의 안전은 확실하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현수는 군을 이끌고서 장성 밖을 나갔다.

군사들을 이끄는 과정에서 다시 1차로 정균에게 3천의 보병과 2천의 궁병으로 하여금 앞질러 가게 하였다.

가면서 곳곳에 깃발을 세우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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