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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76화 (76/159)

076화

현수는 강화도에 가기 전에 저자를 쭉 둘러보기로 했다.

부두로 와서 살피어 보니, 싱싱한 해산물들을 파는 상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말린 전복부터 해삼, 오징어, 문어 등 다양한 해산물들이 보였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보네. 장사는 어떤가?”

“정주 공께서 저희를 잘 보살펴 주시니, 장사가 매일 같이 잘됩니다.”

“그런가? 그것참 다행이네. 말린 해삼이랑 전복과 생선 좀 준비해주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일러서 다 싸놓으라고 해. 사람을 시켜 가져가게 할 테니.”

“예예! 알겠습니다!”

상인은 기분 좋게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물건을 정리했다.

현수가 돌아서서 천천히 주변을 다시 둘러보려 하자, 부두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현수는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이고… 애를 왜 이렇게 버리고 갔다나?”

“그냥 가자고. 어차피 죽은 거 같구먼. 관군이 알아서 하겠지.”

“아이고 불쌍해라…….”

“노예선이 왔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죽어서 그냥 버린 거 같은데.”

“버릴 거면 바다에 버릴 것이지… 왜 여기에 버렸대. 쯧쯧쯧.”

사람들은 도와줄 생각도 없는지 그저 자기들끼리 이야기만 하다가 속속히 자리를 떠나갔다.

현수가 사람들이 떠나가는 자리에 도착하니, 서역에서 온 아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산 건지, 죽은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슬로 묶였었는지 팔다리에는 멍이 들어 있었고, 얼굴 역시 만신창이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있었는데 미약하게나마 숨은 쉬고 있었다.

현수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가서는 천천히 목을 들추면서 아이를 들어 올리고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

* * *

얼마 후, 현수는 아이를 의원을 불러 살피게 했고, 곧바로 훈련장으로 와서 군사 훈련을 살피었다.

“보병과 궁병의 훈련 속도가 빠르군. 200보 이상 떨어져 활을 쏘아도 명중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이야. 또한 보병의 진법 훈련 역시 명을 한번 내리면 바로 진을 구성할 만큼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

정균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병이 죽는 이유가 뭔지 아나?”

“응?”

“결국에는 지쳐서 죽는 거야. 진법 훈련도 좋지만, 체력을 계속 키우도록 하게. 싸우다가 지쳐 죽지 못하도록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

“기병은 어떻소, 형님?”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어.”

“합하께서 명을 내리시면 정주와 강화에 방어할 수 있는 군사를 두고 우리는 출진 할 겁니다. 차질 없이 준비해줘요.”

“걱정하지 마라. 꼭 그렇게 할 테니.”

현수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말이야… 강화도 성은 내년이나 내후년쯤이면 완성되겠더군.”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성으로 강화도 전체를 둘러싸실 생각을 하신 겁니까. 그 정도면 엄청난 규모가 아닙니까. 섬을 둘러싸고 외성에 내성까지… 대단하십니다.”

“대단하기는… 혹시 모르니 쌓는 것이네.”

강화도에서는 지금 대공사를 하고 있었다.

강화도 전체를 요새화하는 것이다.

강화도를 빙 둘러 성벽을 쌓고, 곳곳에 노포, 석포를 쏠 수 있도록 포대 또한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망루와 수많은 수성 병기, 낭아박, 야차뢰를 곳곳에 설치하였으며 일전에 해적들이 상륙한 곳에는 목책과 돌을 이용하여 견진(堅振)을 설치하였다.

성이 불에 타더라도 목책이 무너지면 돌이 있으니, 그 돌을 떨어트려서 최대한으로 적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옹성, 관, 포대 등을 외성과 내성에 설치한 강화도는 철옹성과 같았다.

멀리서 보면 미완성일지라 하더라도 굉장한 광경이었으며 적들에게는 자동으로 압박감을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정주 공, 이번 정벌에는 얼마나 데려갈 요량인가?”

“일단 합하가 남겨놓으신 군사들은 강화 수비를 해야 하기에 두고 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혹… 형님은 그 이상을 남겨두었으면 합니까?”

“당연하지. 정주와 강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의 수비군으로 2만은 두어야 해. 성벽에 군사들을 세운다고 쳐도… 최소 2만이야.”

당연한 말이었다.

외성, 내성 그리고 망루에 배치할 군사들을 생각해야 하였다.

“미처 그 생각 못 하였네. 지금 정주와 강화에 군을 합쳐서 얼마인가?”

“7만 명가량입니다.”

“그럼 2만을 남기고, 5만을 데려가겠네.”

서북면에서 4만의 군을 출정시켰고, 동북면에서는 약 2만의 군사를 이동시켰다.

중앙군은 10만 명이었다.

전 고려에 징집령(徵集令)을 내렸으니, 총 고려군은 최소한 20만은 되는 것이었다.

“문제가 없겠군.”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출정 준비 잘 시켜줘.”

“걱정하지 마라.”

* * *

“흐음…….”

이의방은 자리에 앉아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송이 군사를 움직인다고?”

고려가 지금 함경도 정벌을 시작하였으니, 남송이 움직이는 건 예상할 만한 일이었다.

남송은 이 기회를 노려 금나라와 접전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남송의 효종은 악비가 이루지 못한 일을 자신이 이루겠다면서 천하에 표하였다.

그로부터 계속해서 군사력 증강을 하였다.

금나라도 남송의 도발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각 성을 보수하고, 군사를 증강시켰다.

그렇게 두 나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계속 연출하였다.

이 상황에서 고려가 움직이니, 남송이 따라 움직인 것이다.

남송이 행동을 개시하며 고려에도 몇 차례나 사신을 보내왔다.

거란과 여진을 정벌한 후에 금을 쳐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고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남의 나라 전쟁에 우리 군사들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려가 거절하였음에도, 남송에서는 금을 공격해주면 상당한 지원을 하겠다고 하였다.

남송에서는 세 차례나 사신을 보내 혼인 이야기까지 꺼냈지만, 이의방은 모두 거절하였다.

결국 남송은 고려와의 동맹은 포기한 상태로 금을 치기 위한 준비를 다 마치었다.

“남송의 지원을 거절한 게 실수일까?”

“합하, 아닙니다. 오히려 잘하신 일이옵니다. 남의 전쟁에 우리 군사들이 피를 흘릴 이유가 없사옵니다.”

문극겸이 말하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의들이 문제야… 아직 군의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난감하군.”

“합하, 동북면에는 군의들이 많습니다. 여진족을 상대하다 보면 다친 군사들이 수두룩해서 비교적 동북면에는 군의가 많은 편입니다.”

“시체를 가져와서라도 군의를 만들라고 한 나도 생각해보면 미친놈 아닌가.”

이의방은 피식 웃었다.

“합하, 합하께서도 아시겠지만, 함경도에 들어서면 죄다 여진족의 영토이옵니다. 이참에 함경도를 수복함과 동시에 더 멀리 가심이 어떠하옵니까?”

“더… 멀리 가라?”

“좋은 생각인 듯하옵니다.”

“병부상서도 그리 생각하나?”

“예. 합하.”

이의방은 수염을 매만졌다.

“합하! 동북면 병마사께서 급보를 보내오셨사옵니다!”

“들거라!”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군사가 안으로 들어서더니, 장계를 곧장 올리었다.

이의방이 서둘러 장계를 펼치며 살폈다.

“빌어먹을…….”

“왜 그러십니까?”

“동북면병마사 박수경의 장계에 따르면… 여진족이 규합(糾合)하고 있다는군.”

“여진족이 움직이는 게 저희보다 빠를 것이옵니다.”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내리겠다. 지금 즉시 너는 병마사 박수경에게 가서 군을 이끌고 규합하는 여진을 각개 토벌하라 전하거라.”

“예! 합하!”

파발 군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곧장 다시 밖으로 나갔고, 이의방은 필(筆)을 잡아 종이에 글을 써 내려갔다.

[군사를 움직여 적들을 각개 토벌하고 상황보고를 계속하라.]

짧게나마 글을 적은 후,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사자문양의 도장을 꺼내어서 직인을 찍은 후 종이를 접어 서리에게 건넸다.

“지금 즉시 파발을 띄워라. 지금 떠난 파발과 비슷하게 맞춰서 당도해야 한다.”

“예. 합하.”

서리는 종이를 받아 들고서 바로 나갔다.

“병부상서, 추가로 군사 2만을 동북면으로 보내도록 하게.”

“예, 합하.”

이의방은 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보다가 나무 조각을 들어서는 함경도에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말이네… 아직 정주 공은 혼인을 하지 않았지?”

“예. 그러합니다.”

“그럼 정주 공의 혼사처 좀 알아보게. 본인은 아예 장가를 갈 생각이 없으니, 강제로라도 보내야겠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합하.”

문극겸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아니면 이참에… 두 공주님은 어떻겠습니까.”

우복야 이준의가 말하였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요. 오히려 성사만 된다면, 폐하께서도 조금 더 안심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극겸은 황제의 성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의 형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까 매우 불안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의방의 딸이 태자비가 되어도 아직 안심하고 있지 않았다.

“폐하께서 승낙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승낙을 하실 거 같은데요. 정주 공이 사위가 된다면 폐하는 그제야 안심하실 겁니다. 황위에 오르신 이후로 심적으로 편한 날이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글쎄… 공주가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입에 넣어봐야 알겠지.”

이의방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요즘 들어 골치 아픈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두경승과 경대승이었다.

황실을 지키겠다면서 경대승은 자신의 사병집단인 도방을 창설하였고, 황실에 충성하게 하였다.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이의방이었으나, 우선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거기에 두경승은 도방을 지지하기까지 하니, 골치가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니었다.

특히 경대승의 사병집단이 이의방의 함경도 정벌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척박한 땅을 왜 정벌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이의방이 충동적으로 당장 도방으로 쫓아가려 하였다가 윤인첨의 만류로 겨우 참았다.

“저기 말이야. 현수를 황궁에 남겨놓는 게 어떨까?”

“…예?”

“아니, 같이 출전(出戰)하는 게 아니오?”

“아무래도 뒤가 찜찜해서 말이야…….”

“뒤에는 동경유수 이의민이 있지 않은가.”

“이의민과는 거리가 멀어서 말이네.”

“그럼 이리하시지요. 이의민을 불러들이고, 경대승을 잠시 서경 유수로 보내심이…….”

“아니, 그럼 동경은 누가 보나?”

“제가 가겠습니다.”

문극겸의 말에 이의방은 팔짱을 끼며 생각에 빠졌다.

문극겸의 말대로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생각해서 다른 결정을 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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