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75화 (75/159)

075화

일주일 뒤, 쾌차(快差)한 현수는 누워 있을 때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이의방은 보수공사에 합류할 감문위 군사, 이의방의 개인 사병, 또 귀족들의 자산을 현수의 앞으로 남겨두었다고 했다.

이것으로 보수공사를 하라며 지시를 하였단다.

“몸은 어떤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정주 공은 어떠십니까?”

“많이 나아졌어. 자네가 일어나서 내 옆을 지켰다고 들었네. 고생했어.”

“고생이라니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천시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어났소?”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정균이었다.

진짜 그날 정균이 현수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작 죽었을 것이다.

“들어오시오.”

덜컹.

방문이 열리며 정균이 안으로 들어섰다.

“몸은 어떠하오?”

“괜찮소. 그나저나 우리 두 사람 구해주어 고맙소.”

현수의 말에 정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주 공을 해하려 한 지사는 잡지 못하였소. 아무래도 어딘가 꼭꼭 숨은 듯한데… 다만 그 식솔들은 잡아, 목을 베어 저자에 효수하였소.”

“고생했소.”

현수가 어깨를 살짝 만져 보자, 어깨에는 열감이 느껴졌고 환부가 딱딱하게 부어 있었다.

“만지시면 안 됩니다. 의원이 부기가 빠질 때까지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합니다.”

천시호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몸을 눕히며 눈을 감았다.

* * *

망이 망소이의 난이 진압된 지도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둘의 죽음으로 반란이 진압되자,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켰다.

다른 곳은 그대로 둔 채, 반란에 가담하였던 이들의 목을 베어 본보기로 삼았다.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변해갔다.

군사력을 대거 증강(增强)하였고, 보병과 궁수를 대거 늘렸다.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 삼군 중 일부는 동북면으로 이동시켰다.

그곳에서 여진족의 동태를 살피게 하였으며 군량과 보급은 최대한으로다가 동북면으로 보내었고, 나머지는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합하.”

“음… 그래 군사 훈련은 어찌 되어 가는가?”

“신병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정예군으로 양성되었사옵니다.”

“2차로는 문제없는 것인가?”

“그러하옵니다. 합하!”

신호위 상장군 이영령이 답하였다.

이의방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최원호에게 물었다.

“무과에 합격한 이들은 어떠한가?”

“예, 합하. 출중하옵니다. 이대로 계속 훈련을 시킨다면 군사들을 지휘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옵니다.”

“전투에 막상 들어가면 겁을 먹을 수 있으니, 단단히 훈련시키도록 하라.”

“예! 합하!”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훈련장을 계속 돌아다녔다.

수많은 군사들이 갑옷을 걸치고 창을 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어깨에 두 섬에 가까운 쌀을 짊어진 채로 뛰어다녔고, 다른 쪽에서는 진법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정찰병들을 단련시키고 있었다.

기병, 보병, 궁병 할 거 없이 강하고 매섭게 훈련시키는 부장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이의방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군의는 어찌 되었는가?”

이의방의 물음에 상장군들은 쉽게 답하지 못하였다.

“아니, 왜 대답이 없어?”

“송구하옵니다. 합하. 아직 군의의 인원을 충당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어찌하여?”

“군의들을 양성하기가 어렵습니다. 명을 내렸지만,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사지가 잘린 군사들을 지혈해야 하고, 살을 꿰매야 하는데 이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게 이유겠지요.”

“의원들… 의원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을 훈련 시키면 되지 않은가?”

“전의감에서 의원을 보내주기는 하였지만… 군의로 훈련시키기에는 역부족이옵니다. 이들도 사지가 잘린 군사들을 치료하기에는 그 경험이 많이 없습니다. 훌륭한 군의를 만드는 것은 오로지 경험인지라…….”

이영령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알지. 그럼 이리 해보게. 굶어 죽은 거지들이 있지 않나. 그 거지들을 데려와서 연습을 시키는 게 어떤가. 아니면 사형수들로 연습시키든지.”

“…예?”

“어차피 죽은 놈들이잖아. 그걸로 연습을 시키면 되지 않겠나.”

“하지만…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내 명이라고 전하고, 속히 시행하게. 겨울이라 시체 썩는 냄새는 나지 않을 테니, 얼마나 좋은가. 연습을 시킨 후에 시체들은 모두 태우고, 제사나 잘 치러줘.”

이의방은 그렇게 명을 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발길을 옮기자, 이영령은 최원호를 바라보았다.

“이걸 어찌하면 좋겠소?”

“합하의 명이니, 따라야겠지요.”

“하아… 장산원을 불러와라.”

“예! 상장군.”

옆에 있던 부장이 곧장 움직였다.

최원호와 이영령은 함께 훈련장을 돌아다녔다.

* * *

정주에서는 예성강과 강화를 잇는 다리를 총 3개 건설하였다.

이로 인해 물건을 수송(輸送)하기에도 편리했고, 사람들이 편히 오갈 수 있었다.

무리없이 마차가 오갈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 다리였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태풍이 불 때는 다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였다.

다리를 만들 땐 대부분 죄수를 이용하였다.

남녀 가리지 않고 일을 시켰고, 감문위 공병들도 불러들였다.

현수는 자신의 녹봉을 가지고서 물건을 사고, 그 물건 통해서 상단 하나를 붙잡아 교역하였다.

남송과, 금나라, 대리국, 서하국 그리고 색목인 상인들을 상대로 교역을 하니, 세금으로 받는 것에 비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정주 공,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모셔라.”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현수의 물건을 맡아 대신 팔아주는 상인이었고, 두 사람은 색목인이었다.

“처음 보는 분들이구만?”

“예, 정주 공. 이분들은 대식국에서 오신 분들이신데 정주 공을 만나 뵙기를 청하여 이리 모셔왔습니다.”

상인은 정중하게 현수에게 말하였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자리에 앉으라며 손짓하자,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반갑소. 나는 고려국의 육위 대장군이자, 정주 공 유현수라고 하오.”

현수가 먼저 자신을 소개하자, 색목인들 역시 유창하게 자기소개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살라딘의 명으로 이곳에 온 바히르암입니다. 이 친구는 제 부관 에시아입니다.”

현수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누구라고?”

“예. 저희는 살라딘의 명을 받아온 바히르암과 에시암입니다.”

“살라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분명 유명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어떤 일을 했던 건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왜 나를 만나고자 한 것이오?”

“염초(焰硝)를 구해주셨으면 합니다.”

“응?”

염초는 주로 화공에 쓰이는 것이었다.

이를 구해달라고 자신에게까지 왔다는 건 필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현수는 망설임 없이 그 둘에게 물었다.

“무슨 용도로 쓰려고 하는 거요? 염초는 우리도 쉽게 구할 수 없을뿐더러, 군기감에서 직접 관리하는 터라 사사로이는 구해줄 수가 없소이다.”

“남송에서도 구하지를 못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정말 방법이 없겠습니까?”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구해줄 수 없소. 염초는 쉬이 구할 수 있을 게 아니오. 우리도 염초가 필요하다면 나라 간의 상황을 보고 교역합니다. 만약 사사로이 교역하였다가는 극형에 처할 수도 있소이다.”

“우리는 급합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바히르암이 물었다.

대체 무슨 용도로 염초가 필요하길래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수는 물었다.

“염초는 어디에 쓰려고 하기에 여기까지 온 거요?”

“전쟁에 필요합니다. 남송에서는 염초를 방대하게 가지고 있지만, 남송의 왕이 염초를 풀지 않고 있어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바히르암이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어 펼쳤다.

주머니에 있는 건 다름 아닌 물방울 다이아였다.

“귀한 보석이지요. 쉽게 구할 수 없는 겁니다. 염초를 구할 수만 있다면 열 개를 드리겠습니다.”

“…….”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현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주머니를 밀어냈다.

“거절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당신보다 윗선에 연락이라도…….”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소이다. 내 나라의 무기를 파는 일입니다. 우리도 정벌에 나가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정벌만 아니면 그대들에게 염초를 팔았을 겁니다. 이번에는 아쉽게 되었네요.”

“하아…….”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살며시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정주 공…….”

“음, 그래.”

“이번 거래 내역의 장부이옵니다. 정리되는 대로 가져다드리겠사옵니다.”

“항상 수고를 해주는구만. 고맙네.”

“아니옵니다. 정주 공께서 내어주시는 물건들 덕에 저희가 항상 이득을 보고 있지요.”

“내가 말한 금창산(金瘡酸)은 많이 들여왔겠지?”

“물론이옵니다. 정주 공. 정주 공께서 말씀하신 대로 금창산을 많이 구해왔사옵니다. 석회에 삼칠과 백급이 들어간 최상의 약재들로 만들어졌사옵니다. 더불어 삼칠과 백급을 졸여 만든 연고와 고약 또한 남송에서 들여왔사옵니다.”

“고생하였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 * *

전국 각지에서 군사들을 징집(徵集)하고 있다.

징집한 이들에게 녹을 주겠다고 하니, 전국의 장정들이 속속히 모여들고 있었다.

농사짓고 있는 백성들을 강제적으로 징집할 수 없으니, 보상으로 급여를 내건 것인데 이렇게 효과를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북면은 우학유를 좌장으로, 서경 유수 조위총을 우장으로 하여금 거란 잔당을 치게 하였다.

여진과 손을 잡는 것을 방지하고자, 공격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조위총의 아들인 조경이 국자감에 들어왔다.

조위총의 아들이 국자감에 들어왔다는 건 잘된 일이었다.

아비의 뒤를 이어 서경 유수가 된다면 서북면이 더 안전할 것이니 말이다.

“정주 공.”

“들어와요.”

문이 열리면서 정균이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정균의 표정은 많이 좋아졌다.

“여기에서 무얼 하고 계시는가?”

“뭐하긴… 돈 세고 있지.”

“하하하.”

“훈련은 어찌 되어 가나?”

“당장 출진을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준비시켜 놓았네.”

“고생했습니다. 정 장군. 그나저나… 강화도의 해군은 어때요?”

“서해 해군 절도사가 유능한 부장들을 보내어 훈련을 시키고 있소.”

“가본지 벌써 석 달인데… 이참에 갔다 와야겠군.”

“가서 또 배에 타보려고?”

“그래야지. 이래 봬도 강화도 주인인데… 그리고 육지에서만 싸우라는 법도 없으니까 타야지. 처음 탔을 땐 아주 그냥 죽을 뻔했지만.”

“하하하! 나도 그때는 죽을 뻔하였지.”

현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나온 김에 지금 가봐야겠어. 얘기 좀 부탁해요.”

“그래.”

현수와 정균은 함께 밖으로 나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