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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74화 (74/159)

074화

“어떤가?”

“괜찮습니다. 한 분은 다행히 급소 부분은 모두 피해간 터라 곧 회복되실 것이고, 정주 공도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지만 이제 괜찮으십니다.”

의원의 말에 정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주에 도착하여 인근 사찰에서 아버지 정중부와 가족들의 신위(神位)를 안치하고, 기도를 드린 뒤에 내려오는데, 정주 공이 왔다는 소식을 정주민들에게 듣게 되었다.

지사가 정주 공의 명도 없이 임의대로 세금을 징수하였기에 그 징수한 것을 정주 공이 모두 정주민들에게 돌려주라고 한 것이었다.

정주 공 덕분에 정주민들이 관아에서 그동안 징수해 가던 것들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한다.

정균은 정주 공이 어떤 놈인지 궁금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정주민들에게 정주 공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주막에서 며칠 묵었던 이가 정주 공이라는 것이다.

정균은 주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고 정균은 정주 공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이에 정균은 정주 공을 찾아 가보자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일어나 밤늦게까지 정주 공이 어디 있는지 정주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소리에 이끌려 들어온 곳이 바로 정주 공의 저택이었던 것이다.

“하… 너랑 나랑은 도대체 무슨 인연인지.”

정균은 누워 있는 현수는 보며 작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보게. 의원.”

“예. 장군.”

“내가 없는 사이에 절대 누구도 들이지 말게. 잠시 갔다 올 데가 있어서 말이야. 그리고 지금 정주 공이 저리 있는걸 누구도 알아서는 아니 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주 공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고 있었는데, 마침 갚을 방법이 있어 다행입니다.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누구 하나 절대 들이지 않겠습니다.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탁함세.”

정균은 의원에게 부탁하고는 발길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균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관아였다.

정균은 관아의 상태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누구시요?”

“육위 장군 정균이다.”

정균의 말에 군사들은 휘리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사는 어디 있느냐?.”

“예? 모르겠습니다. 오늘 지사 나리가 통 안 보이시던데… 다른 분들도 그렇고요.”

“하아…….”

정균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장 군사를 풀어 지사를 찾아 잡아 와라! 알겠느냐!”

정균은 위엄 섞인 목소리로 외치자, 화들짝 놀란 군사들은 일제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제 현수를 습격한 게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객들도 누구였는지 말이다.

지사, 이놈이 범인인 게 틀림없었다.

* * *

해가 질 무렵 이의방이 군을 대동하고서 정주에 도착하였다.

정주의 성문은 활짝 열려 있어 쉽게 입성을 할 수가 있었다.

대체 왜 이리 많은 군사들이 온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모여들어서 숙덕거렸다.

“지금부터 정주에 있는 귀족들을 모조리 끌어내라! 그놈들이 가진 재산 또한 몰수할 것이다! 만약 귀족 놈 중에서 완강하게 버티는 놈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베어도 좋다!”

“예! 합하!”

장수들이 군사를 이끌며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정주민들은 깜짝 놀라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자칫하다가는 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대로 관아로 가라!”

“예! 합하!”

무장을 단단하게 한 사병들은 급히 관아로 향하였고, 이의방은 호위하는 사병 삼십여 명을 이끌고서 현수의 저택으로 향하였다.

* * *

현수의 저택으로 들어선 이의방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치우지 않은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여기저기 피가 낭자했고,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이의방이 말라 있는 핏방울 자국을 보았고, 내팽개쳐진 현수의 검도 보였으며 곳곳에는 발자국 들이 찍혀 있었다.

대충 어떤 상황이었는지 감이 잡혔다.

“술을 마시고 있었구먼. 그리고 저쪽에서 한 번에 공격을 감행해 왔고…….”

이의방은 문이 부서진 쪽으로 다가가서는 발자국을 세밀하게 살펴보며 발자국을 따라 한번 걸어보았다.

“흠… 자객이 아니군.”

자객이라면 절대 이런 보법이 나올 수 없었다.

티가 나기 때문이다.

이의방은 몇 번씩이나 자객의 습격을 당해본 만큼 자객에 대해서는 정말 빠삭하였다.

“배운 놈들이군.”

현장을 살피어 보던 이의방의 눈에 책이 들어왔고, 책을 집어 들어 펼치자 눈살을 찌푸렸다.

저벅저벅.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오자, 이의방은 시선을 돌렸다.

정균이었다.

“왔느냐.”

“…….”

정균은 이의방의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둘은 아직 살아있소.”

“그래… 다행이구나. 그나저나 이게 어찌 된 거냐?”

“두 사람이 일어나면 물어보시오. 나도 잘 모르니.”

딱딱한 말투의 정균.

이의방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지사, 지사가 시킨 일 같소. 물론 도망갔지만.”

정균의 말에 이의방은 주먹을 꽉 쥐었다.

“찾았느냐?”

“찾고는 있소.”

“현수는 어디 있느냐?”

“인근 의원에 데려다 놓았소이다.”

“앞장서라.”

“나는 이 시신을…….”

“앞장서라지 않느냐?!”

이의방이 무섭게 호통치자, 정균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몸을 뒤돌아 나갔다.

이의방은 정균을 곧장 따라 나갔다.

* * *

얼마 후, 이의방은 정균이 안내해준 의원으로 들어섰다.

이의방은 의원에게 은병 두 개를 건네었다.

“수고하였다.

“가, 감사합니다…….”

의원은 두 개의 은병을 받고는 넙죽 허리를 숙였다.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현수의 상태를 본 이의방은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어찌할 생각이오?”

정균이 물었다.

“본보기를 보일 것이다. 본보기를 보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

“기주가 도망갔는데 무슨 수로 본보기를 보인단 말이오.”

“기주가 도망갔다면 귀족 놈들에게 보여주어야지…….”

이의방은 이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관아로 향하였다.

* * *

그날 저녁 이의방은 귀족들을 심문하였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귀족들은 그 자리에서 가차 없이 베어 버렸고, 나머지는 관아로 끌고 왔다.

형리(刑吏)들이 주리를 틀고, 숯불에 달군 쇠막대기를 온몸에 지져 대었다.

관아에서는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였으며 비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의방은 고문을 멈추라는 말이 없이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네놈들이 정주 공을 시해하려고 한 것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했단 말이냐!”

고문을 가하면서 질문을 하는 이는 흥위위 상장군 박존위였다.

“상장군! 결코 저희는 그런 일을 벌인 적이 없습니다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지만, 듣지도 않는 박존위였다.

“닥쳐라! 여기 장부에 너희들이 받아먹은 걸 확실히 적어 둔 기록이 있지 않느냐. 이 장부 때문에 큰일이 날까 염려하여 손을 쓰려고 한 게 아니냔 말이다!”

“으아아아아아아!”

다시 숯불에 달군 쇠막대기로 이번에는 지져버린 곳을 다시 지지자, 귀족은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멈추어라.”

이의방은 멈추라는 말을 하고서는 한쪽에서 현재 심문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형부 낭중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낭중은 들으라.”

“예. 합하.”

“저놈들이 황실의 일가라고 할 수 있는 정주 공을 시해하려고 한 것도 모자라, 거짓으로 이를 모면하려고 하니… 내일 저자에서 능지처참(陵遲處斬)할 것이며 저놈들의 일가는 모두 참형(斬刑)에 처하고 어린것들은 교형(絞刑)에 처할 것이다. 저들의 재산은 모두 정주 공의 것이니, 모두 정주 공의 저택으로 옮기도록 한다. 또한 정주 공을 시해하려다 죽은 놈들은 목을 베어 효시(梟示)하라. 다 적었느냐?”

“예. 합하.”

이의방의 말에 고문을 받던 귀족과 식솔들은 모두 놀란 나머지, 기절을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합하! 저희는 결단코 아니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주세요!”

살려달라는 말을 이의방은 듣지 않았다.

“내일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거행하라!”

“예! 합하!”

박존위는 형리들에게 신호를 주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던 정균은 이의방의 뒤를 따라갔다.

“꼭 그럴 필요가 있소? 어린것들은 무슨 죄란 말이오.”

“저렇게 해야지 뒤탈이 없다.”

“그럼 나는 왜 죽이지 않은 거요!”

이의방은 가던 길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 정균을 바라보았다.

“저 어린것들이 뭘 잘못했다고 교형에 내리는 것이오. 정주 공을 해하려고 한 건 지사이지, 저 귀족들이 아니란 말이오!”

“재수가 없는 게지. 그저 본보기다.”

“이의방!”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돌아가라.”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요!”

정균이 노발대발하였다.

이건 법이 아니라, 참혹한 살인과 진배없었다.

지사에게 받아먹었다고 저리 처참하게 죽이는 자가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정균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 처형이 시작되었다.

팔다리에 밧줄을 묶고 말을 이용하여 끌어당기자, 귀족들은 고통에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약 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툭! 투툭!

뼈가 빠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의방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처형을 잠시 멈추었고 말의 이동은 더 없이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간다면 팔다리 뼈가 빠지고, 살이 찢어져 죽을 것이었다.

“저놈들을 모두 풀어주어라!”

이의방의 명이 떨어지자, 군사들이 죄인들에게 달려가 밧줄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툭!

투툭!

온몸을 부르르 떨며 쉽게 일어설 수 없자, 군사들은 그들의 옷깃을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보았느냐! 네놈들을 살려주라는 소리가 들리더냐!”

“…….”

귀족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너희들은 다시 사는 것이다! 더 이상 백성들을 핍박하지 말고 함부로 세를 거두지 말라! 알겠느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 합하!”

부녀자들은 고맙다며 연달아 외치었고 능지처참에 당할 뻔한 귀족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쉽사리 어떤 말도 내뱉을 수도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런 이의방은 더 이상 나무라지 않고, 자리를 파하며 일어섰다.

“낭중은 들으라!”

“예! 합하!”

“지사의 용모파기(容貌疤記)를 그리고, 현상금을 내걸어 수배토록 하라는 명을 형부에 전달하여라. 산 채로 잡을 필요 없으니, 즉시 보이는 대로 목을 치라 하라!”

“합하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이의방은 마지막으로 명을 내리며 돌아섰다.

현수를 죽이려고 한 죽은 이들은 목이 잘린 채로 저자에 효수되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효수된 머리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에이! 더러운 놈들!”

“빌어먹을 놈들! 잘 죽었다!”

대놓고 욕을 하는 이도 있었고, 저주를 퍼붓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넋 놓고 본 정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빠르게 고려 전역으로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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