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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73화 (73/159)

073화

“지사는 처리했으니… 이제 귀족인가? 받아먹은 만큼 뱉어내게 해야지. 아니지… 싹 다 털어버리는 것이 낫겠네.”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술잔에 술을 채우고는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나저나 말이야. 집이 너무 큰데 이참에 자네 부인과 딸 아이도 여기로 데려오는 게 어때? 우리 둘이 있으면 적적할 듯해서 말이야.”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가 어찌 정주 공 저택에서 머물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야. 생각해보니, 언제 개경으로 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내 말대로 하게.”

“감사하옵니다. 정주 공.”

천시호는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를 만난 게 참 다행이야. 벌써 우리가 만난 지도 꽤 됐지?”

“처음 정주 공을 뵈었을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셨는… 하하하!”

“천진난만하였다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웠지. 모든 게 낯설었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어. 그런데 시간이라는 게 정말 무섭더군.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야.”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술잔에 술을 채우고는 마셨다.

그 뒤로 사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천시호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대승이 형님이랑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들 사는 거 구경하고, 귀족 놈들 횡포도 보고, 그리하였는데… 거기서 느낀 게 하나가 있어. 바로 힘의 중요성이야. 힘이 있다면 그 횡포를 부리던 귀족 놈들을 한 손에 휘어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물론 합하 덕에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 전에 정주 공은 합하의 은인이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 하지만 그때 생각하면… 솔직히 나도 반신반의였어…….”

현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술잔에 술을 채워 마셨다.

“대승 형님에게 무예를 배우고, 병법을 배우고 그러다가… 형님이랑 크게 싸운 적이 있어. 힘에 대한 추구 방식이 달라서 말이지.”

“…….”

“나는 고려라는 이 천하의 경영에 대해서 말을 하였는데 형님이 그러더군. 어찌 황제 위에 신하가 있을 수 있냐며 언성을 높였네. 그래서 내가 그랬지. ‘있을 수 있지요.’라고. 능력만 된다면 무얼 못하냐고 하였더니 형님이 그러더군. 그건 반역이라고. 그래서 나도 반박을 했지. 그럼 우리다 역적이냐고. 뭐… 이러쿵저러쿵… 몇 번씩 그런 이유로 싸웠어.”

현수는 이야기하다가 슬쩍 말을 흩날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지막에 크게 한판 싸우고 나니까. 개경에 돌아와서 서운함이 들더라고. 대승 형님도 그러한지 관계가 멀어지게 되더군. 형님은 알아주지도 않는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고… 나는…….”

뭔가 씁쓸한 듯 현수는 말을 멈추고서 다시 술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합하 덕분에 많은 걸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귀족들의 횡포는 많이 잦아들었으며, 합하께서 썩어빠진 지사들을 쳐내시고 새로 지사들을 보내어 민심을 다독이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일을 하셨으니, 너무 섭섭해하지도 슬퍼하지도 마십시오.”

“…….”

“그뿐입니까. 혜민국의 비리를 처리한 후에는 놀라울 정도의 혜민국이 거듭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경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혜민국을 설치하고 잡과를 실행하여 백성들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를 일구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

천시호의 말에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술잔을 들어 술을 마시었고, 슬슬 눈이 풀리려 하는 현수의 표정을 본 천시호가 말하였다.

“취하신 듯합니다. 정주 공, 이만 주무시지요.”

“음… 그래야 할 거 같네. 하하하”

현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무언가가 지금 옆에서 지나간 거 같았다.

아니, 확실히 지나갔다.

“천 장군.”

“저도 보았습니다. 불청객인 듯싶습니다.”

천시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고, 현수는 침상에 놓인 검을 바라보며 천천히 침상으로 가서는 검을 들었다.

“누가 보낸 지 딱 보이네.”

“소장도 알겠습니다.”

쉬이익!

탁!

퍽!

“큭!”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리검이 날아 들어왔다.

하나는 막아내었지만, 하나는 막지 못하고 현수의 어깨에 박혀 버렸다.

“정주 공!”

쉬익!

이번에는 수리검 십여 개가 한 번에 날아 들어왔다.

천시호가 달려들어 온몸으로 현수를 감쌌다.

퍼퍼퍽!

“커헉!”

“천 장군!”

십여 개의 수리검을 현수 대신 맞아준 천시호는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행인 것인지 수리검은 천시호의 급소는 피해갔다.

콰앙!

문짝을 때려 부수면서 안으로 들어온 십여 명의 복면인들에 현수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이 죽일 놈들… 지사가 시키더냐! 아니면 귀족 놈들이 시키더냐!”

현수는 천시호를 한쪽으로 눕혀놓고서 검을 뽑아 들었다.

촤앙!

거칠게 검을 뽑아 든 현수는 검을 꽉 움켜쥐었다.

대장군 검이라 그런지 검집은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었고, 검날은 예리하면서 은은하게 빛이 났다.

“자세를 보아하니… 배운 놈들이네.”

현수는 복면인들이 취한 자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려의 군인이라면 배우는 기본자세였다.

군영에서 체계적으로 배운 자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현수는 어깨에 박힌 수리검을 강제로 뽑아내더니, 한 자객에게 힘껏 던졌다.

자객이 수리검을 내리쳐 막아내자, 현수는 곧장 자객들에게로 달려 들어갔다.

십여 개의 검이 현수를 찔러 들어오자, 현수는 굴러 피하고 자객들의 다리를 베어버렸다.

자객들은 깊게 베이지 않았는지 약한 신음을 내며 인상을 구기었고 현수는 발검 자세를 취하였다.

한 놈이 들어오면 강하게 베어버리기 위함이었다.

양손으로 검을 꽉 쥔 채 누가 먼저 들어올지 눈 하나 끔뻑이지 않고서 자객들을 주시하였다.

“흐아아압!”

기합 소리와 함께 자객 하나가 달려들자, 현수는 곧장 몸을 옆으로 피하며 자객을 그대로 강하게 베어버렸다.

솨아악!

자객은 자기가 베인 것도 몰랐는지, 앓는 소리 한번 없이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면 털썩 주저앉아 쓰러졌다.

현수도 어깨에 통증이 밀려오자, 눈썰미를 찌푸렸다.

“어깨를 집중공격하라!”

자객 중에 한 놈이 소리치며 말했다.

현수는 공격해 들어오는 자객의 검을 튕겨내며 다시 한쪽으로 굴러 자객들을 피하였다.

하지만 두 번은 먹히지 않았다.

뒤이어 자객들이 연달아 공격해 들어오자, 현수는 공격이 아닌 자객들의 검을 막아내다 오른쪽 어깨를 베였다.

급히 지혈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툭툭.

깊이 베인 것인지 손으로 막아도 뜨거운 피는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옷에 점점 피가 물들어가더니, 피를 머금은 옷에서 피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된다면 현수는 십중팔구 과다출혈로 죽을 수 있었다.

“쳐라!”

자객들은 일제히 달려들었다.

일제히 검으로 현수를 내려치자, 현수는 양손으로 검을 막아내었다.

타앙!

소리와 함께 힘으로 밀어붙이는 자객들.

그리고 있는 힘껏 검을 막아내는 현수.

하지만 힘이 부족했다.

어깨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연달아 뒤에서 다시 자객들이 검을 들고서 현수의 복부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쉬익!

퍼억!

“커헉!”

일순간 뒤에서 장검 하나가 날아와 자객의 등을 뚫고서 가슴팍에 꽂히자, 자객들은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갓을 쓴 이가 죽장 검을 들고 서 있다가 곧장 뛰어들어서는 자객을 연달아 빠르게 베었다.

그리고 달려와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자객들의 등을 한 번에 베어버렸다.

솨악!

“커헉!”

일제히 신음을 내자, 현수는 검을 밀쳐내고는 그대로 자객들의 복부를 있는 힘껏 그어버렸다.

툭!

투툭!

자객들은 그대로 쓰러졌다.

현수 역시나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정신을 놓아버리자, 삿갓을 쓴 이는 장검을 내려놓고는 천시호와 현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남자는 탁상 위에 놓인 표문을 보고서 표문을 챙긴 후에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 * *

“아니! 자객… 자객이라니!”

콰앙!

이의방이 탁상을 내리치며 노발대발하였다.

아침에 정주에서 온 이를 통해 서찰을 받은 이의방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현수가 잘 도착해서 상황보고 형식인 줄만 알았다.

중방에 들어서서는 별 생각 없이 서찰을 열어보았는데 현수가 자객의 습격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느 놈이…….”

이의방은 이를 갈았다.

“밖에 녹사와 서리 있느냐!”

“예! 합하!”

문이 열리면서 녹사와 서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사옵니까, 합하.”

“당장 형부 상서와 금오위 상장군을 들라고 하라!”

“예. 합하.”

녹사와 서리는 허리를 숙이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이의방은 현수가 표문을 올린 것을 마저 펼치어 보았다.

표문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자신의 명인 척하여 지사가 세금을 거둬들여 귀족과 나누었으며 심지어 주기적인 세금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세금이 아닌 갈취를 하였다고 했다.

더불어 군사의 기강이 말이 아닐 정도로 해이해져 있으니, 중앙군 7령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주에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서 지원을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며 해안가에 목책 설치할 예정이니, 설계도는 추후에 보내겠다는 표문이었다.

“중앙군이라…….”

중앙군이라고 하면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육위 중 삼군이 주력군이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의방이 현수를 너무 성급하게 보낸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였다.

부장 한 명 딸랑 같이 보낸 게 잘못이었다.

자신의 사병을 딸려 보내지 않을게 화근이라 생각하였다.

더불어 그 넓은 저택에 노비 하나 두지 않았으니, 이 일에 있어서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이의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의방이 밖으로 나와 장군 방으로 오자, 상장군, 대장군, 장군들은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의방을 맞이하였다.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에서 각 1령씩 보병과 궁병을 준비하여 서문 밖에 집결토록 하고, 감문위는 당장 성벽보수에 들어갈 수 있는 군사 3령을 준비하도록 하라.”

“예! 합하!”

이의방은 그렇게 명을 내리고서 장군 방에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이의방 신변을 보호하고 항시 곁을 따르는 부장에게 명을 내렸다.

“너는 박지영에게 가서 사병 500명을 무장시켜 서문으로 오라 하라.”

“예! 합하!”

얼마 후, 이의방은 경번갑을 입고서 서문에 있는 군사들을 이끌고서 정주로 급히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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