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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72화 (72/159)

072화

뻐억!

“크하악!”

정강이 한 곳을 제대로 맞고 검을 떨어트린 부장에 현수는 그대로 따귀는 날렸다.

짝! 짝! 짝!

따귀를 연속 날리자, 주위에 있는 부장과 군사들은 감히 대들지도 못하였다.

“이 새끼 봐라…….”

현수는 인상을 쓰며 부장의 검집을 들고서 지난날 국자감 학생을 패듯, 부장을 쥐어패기 시작했다.

퍽퍽퍽.

“지사는 어디 있느냐!”

현수는 실컷 주어 패다가 나가 떨어진 부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주, 주무시고 계십니다.”

실컷 맞고 맞아야 정신을 차린 듯 고운 말투가 나왔다.

“거기 너!”

현수는 창을 부여잡고 서 있는 군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지사가 처자고 있는 곳으로 가서 육위 대장군 정주 공 유현수가 왔다고 전해라.”

정주 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주위는 싸늘해졌다.

부장부터 군사들까지 침을 꿀꺽 삼켰으며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정주 공의 말을 빙자(憑藉)하여서 뜯어낸 것만 얼마이던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뭐하느냐!”

“예!? 예!”

군사는 곧장 창을 들고서 지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고, 현수는 뒷짐을 지었다.

“대장군!”

뒤에서 천시호 목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그대로 서 있었다.

천시호가 천천히 다가와 고개를 숙이었다.

“어찌 되었나?”

“송구합니다. 어디에 있는지…….”

“…되었네. 나중에 자기가 스스로 오겠지.”

천시호는 민망함에 고개를 숙이었다.

그리고 건너편에서 허겁지겁 뛰어나오기 시작하는 중년인, 기주가 보였다.

기주는 급하게 나오느라, 관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서는 계단을 허겁지겁 내려와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었다.

“자네가 기주인가?”

“예? 아, 예예! 제가 정주의 지주사입니다.”

“내가 정주 공이네.”

“…….”

벌써부터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지주사의 모습에 현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저, 정주 공… 제가 안으로 뫼시겠습니다.”

“그전에… 세금을 얼마나 거두었는지 확인을 하고 싶네만.”

지사는 침을 꿀꺽 삼키었다.

갑자기 통보도 없이 나타난 정주 공, 유현수 때문에 그대로 얼어붙은 지사였다.

“대, 대감 그건 왜…….”

“왜라니. 내가 내린 적도 없는 세금을 긁어냈다면서. 그럼 분명 자네가 가지고 있을 거고, 이에 대한 장부가 있을 게 아닌가? 가져오게. 그래야 내 걸 확인하지.”

지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장부를 보여주면 모든 게 다 들통날 것이 뻔했다.

“뭐 하는 거야! 얼른 가져오지 않고!”

“예! 예!”

현수의 불호령에 지사는 허겁지겁 뛰었고, 그런 모습을 보는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한심한 자식…….’

그리고 내심 궁금하였다.

현수가 정주 공이라고 봉작을 받은 후부터 정주에서는 얼마나 세를 거두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세를 정말 어떻게 하였을지도.

물론 본인 배 속에 넣은 건 확실하였다.

얼마 후, 지사는 장부 한 권을 들고 와서는 현수에게 두 손으로 건넸다.

“이것인가?”

“예, 예! 그, 그렇습니다. 정주 공.”

“집무실로 가세.”

“아, 예! 예!”

지사는 곧장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하였다.

현수는 집무실로 들어서서 상석에 앉아 장부를 확인하였다.

장부를 펼쳐서 언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였는지 살피다가 문뜩 이상함을 느꼈다.

“이게 단가?”

“예! 물론입니다! 정주 공.”

현수는 지그시 지사를 바라보았다.

“이게 다가 아닌 듯한데…….”

“저, 정말입니다!”

“혹시나 내가 이곳을 뒤져서 장부가 하나 더 나온다면… 자넨 여기서 죽을 것이네.”

정색하며 말하는 현수였다.

“천 부장.”

“예.”

“자네가 한번 뒤져보겠나?”

“예. 알겠습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싹 다 뒤져봐.”

“예! 알겠습니다!”

천시호가 집무실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였다.

“대, 대감!”

“응?”

“더, 더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자그맣게 이야기하였다.

“그럼 다 가지고 나오게.”

“예예…….”

지사는 천천히 집무실 밖으로 나갔고, 천시호는 다시 현수 옆에 딱 붙었다.

“하…….”

한숨을 내쉬며 현수는 장부를 재차 살피었다.

몇월 며칠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였는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보름에 한 번씩 아니면 스무날에 한 번 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인 게 없었다.

“이러니 욕을 하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알고 그런 건지 이해가 안 되는군.”

“무엇이 말입니까?”

“내가 봉작을 받았을 때 말이야. 봉작을 받고 나서 며칠 후에 봉작(封爵)을 받았단 말이야… 내가 봉작을 받았다는 걸 어떻게 안 걸까?”

“소문이 소문을 타고 흐르는 법 아니겠습니까. 대장군.”

“흠…….”

소문치고는 너무 빨랐다.

누가 진짜 작정하고 귀띔을 해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

“천 장군.”

“예.”

“자네가 한번 뒤 좀 밟아봐. 지사에 뒤에 누가 있는지 말이야. 그러면 혹시나 뭐가 나오지 않을까?”

“예. 알겠습니다.”

천시호는 고개를 숙이더니, 곧장 밖으로 나갔다.

지사와 연결된 이들을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현수는 장부를 다 살펴본 후에야 장부를 덮었다.

한 권을 다 읽는 데만 여섯 시간 정도 흘렀다.

누구에게서 얼마의 세금을 거두어들였는지까지 정확하게 장부에는 적혀있었다.

미곡(米穀)부터 시작해서 다 긁어모을 수 있는 건 다 긁어모은 듯하였다.

세금이라 치고 너무하다고 싶을 정도였다.

“이러니 욕을 할 수밖에…….”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집무실 밖으로 나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장부에 적힌 그 이상의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은병부터 금병 그리고 비단.

정말이지 이걸 어떻게 긁어모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하였다.

“저, 저… 정주 공! 이게 전부입니다!”

“지사.”

“예, 예. 정주 공.”

“자네를 어찌해야 하나?”

“…….”

“장부를 보아하니 상상 이상이더군… 해 먹어도 적당히 해 먹어야 할 거 아니야!”

현수는 버럭 화를 내었다.

“감히 내 이름을 팔아서 세금을 거두어? 그리고 그걸 또 귀족들에게 나누어 주다니. 자네 제정신으로 한 짓인가?”

“소, 송구하옵니다. 정주 공.”

“송구하면 다 되는 건가? 내 조정에 표(表)를 올려 자네를 파직하고, 그 죗값을 묻도록 하겠네.”

“예! 예!? 정주 공! 정주 공! 한 번만… 한 번만 살려주시옵소서!”

지사는 무릎을 꿇더니, 싹싹 빌어대기 시작하였다.

어찌 되었든 죽을 죄인 건 확실하였지만 이선에서 끝내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만 하였다.

지사는 침을 꿀꺽 삼키었다.

“내 명도 아닌, 자네의 명으로 이것들을 거두었고… 자네가 백성의 것을 마음대로 취하고 사용하였으니… 이 모든 걸 백성에게 다시 되돌리게. 귀족들에게 준 것까지 말이야!”

“정주 공… 저…….”

“왜 무슨 할 말이라도 남았는가!”

현수는 무섭도록 지사를 몰아붙였고, 지사는 고개를 숙이었다.

“정주 공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뭐 하는가! 당장 시행치 않고! 자네가 누구에게서 빼앗았는지 기억은 못 해도 백성들이 기억할 테니, 당장 돌려주게! 나는 여기서 정식적으로 내가 직접 세금을 거두겠다고 밝힐 것이니!”

현수는 그렇게 외치고 곧장 관아 밖으로 나갔다.

* * *

그날 저녁.

지사는 현수가 말한 대로 일 처리를 했지만,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표문(表文)을 올린다고 하였으니, 필시 이의방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였다.

“지주사, 저희 왔습니다.”

“들어오게.”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십여 명의 부장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정주 공을 죽여야겠다.”

“…예?”

부장들은 당황했다.

“지, 지주사… 그 무슨… 자칫하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

“어차피 정주 공이 표문을 올리면 우린 다 죽는다. 말이 파직이지… 이의방의 성정(性情)을 못 들어봤는가?”

“그, 그래도…….”

“자네들도 나에게서 많이 받아먹었잖아!”

부장들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사에게 받아먹은 것도 무시할 순 없었다.

“지사, 그건 저희들이 지사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가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는 진심으로 지사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정주 공을 죽이는 건…….”

자칫하다가는 삼족… 아니, 구족이 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성공만 하면 내가 너희들의 뒤를 봐주마. 아니, 너희 자식들까지 내가 뒤를 봐주마. 어떠하냐?”

지사의 말에 산원, 별장인 부장들은 침을 꿀꺽 삼키었고, 재물에 슬슬 눈이 멀어 가기 시작했다.

자식들까지 뒤를 봐준다고 했으니, 모 아니면 도인 셈이었다.

“정주 공, 그자는 여기에 단둘이 왔다. 사병이나 군사도 없이 왔으니, 너희들이 정주 공을 죽이기에는 수월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부장 또한 죽여라.”

“그럼 시체는 어찌합니까?”

별장 한 명이 물었다.

“돌을 매달아 예성강에 버려라.”

지사의 말에 부장들은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고, 지사는 입꼬리를 올렸다.

* * *

현수와 천시호는 주막이 아닌, 현수의 저택에서 술을 함께 마시고 있었다.

“알아본 건 어찌 되었나?”

“예. 예상보다 쉽게 알았습니다. 지사의 뒤를 봐주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정황재였습니다.”

“정황재? 내가 지난번에 예산으로 보낸 그 정황재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정주 공. 관아에 서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더니, 정황재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정황재가 서신을 자주 보낸 듯합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마셨다.

“표문은 어찌 되셨습니까?”

천시호의 물음에 현수는 탁상 위에 있는 봉투를 가리켰다.

“미리 다 써놓았지. 그리고 군사 3령을 청하였네.”

“…예?”

“못 봤나? 관아의 군사들의 기강 말이야. 그 정도의 군사로는 성을 하나 지키기는 어려워.”

“3령으로도 어렵습니다. 최소 7령은 되어야지 정주성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정주성은 보기보다 큰 성입니다.”

“알고 있지. 곳곳에 보수할 데도 보여. 외성, 내성 전부 말이야. 그뿐만이 아니야, 강화에 해적들이 상륙하지 않았나.”

“예. 그렇지요.”

“정주라고 올라오지 말란 법은 없지. 그래서 해안가에 목책을 설치할까 하네. 한 면에는 목책을 설치하고, 그 뒤로는 돌을 쌓아 올리고. 이에 더해서 돌을 지탱해줄 목책을 세울까 고민이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흐음…….”

정주에 와서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해본 현수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생각이 깊어졌다.

보수 공사비용은 조정에 청하면 될 것이고, 해안가에 목책도 설치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목책을 설치하려면 설계도가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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