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71화 (71/159)
  • 071화

    “합하… 혹…….”

    “네가 생각하는 게 그거면 맞다.”

    “민심을 달래라 하시는 게… 귀족들을…….”

    “그래 맞아. 다 처벌하거라.”

    “하오면… 땅도 말씀이십니까?”

    “나눠라. 네 땅이니까 알아서 해라. 허허허!”

    “흐흐하하하하하!”

    이의방과 현수는 마주 보면서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둘이서 웃다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웃음기를 멈추었다.

    “강화는 육지가 많지만, 주위는 온통 바다이다. 강화에서 네가 따로 해군을 키우거라.”

    “서해 해군 절도사 이경수가 있는데 제가 굳이…….”

    “예비군이지. 서해 해군이 전투에 임하면 예비 병력으로 사용하려는 것이야.”

    “예. 알겠사옵니다. 합하.”

    “강화는 중요한 곳이 될 것이다. 날이 좋으면 금나라와 남송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이 보인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또한, 네가 모르는 것이 있을 것인데… 식읍을 받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조정에서 때가 되면 식읍을 얼마를 받았든 세금징수를 할 것이야. 그때가 되면 세금에 맞추어서 항시 준비하거나.”

    “예. 합하. 그리하겠사옵니다.”

    이의방은 문뜩 정주로 가는 현수가 걱정되었다.

    아직 배울 것도 많은 현수였기 때문이다.

    “내 북방을 시찰하며 많은 걸 보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니 할 일이 많구나. 서북면과 동북면은 안심이 된다. 조위총과 우학유, 박수영이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이제 귀족 놈들이 문제야.”

    “합하, 음서제도를 폐지한 지 오래이옵니다. 과거를 하루빨리 시행하시어 인재를 뽑는 게 어떠하시옵니까?”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과, 무과, 잡과를 동시에 시행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문과는 한 삼십여 명을 정해두고, 무과는 오십, 잡과는 한 칠십여 명을 생각해두고 있는데… 그건 예부 상서가 알아서 할 것이고…….”

    음서제도를 폐지한 이후로 과거를 몇 번 시행하였으나, 응시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귀족가 자제들이었고, 양인의 신분으로서는 넘을 수 없었다.

    과거 시험장에 귀족가가 우선순위로 들어올 수 있도록 사병들이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후에 이 사실을 안 이의방은 과거를 임시 중단 해버렸다.

    귀족 자제 중, 됨됨이가 된 이가 있는지 신료들에게 시켜서 알아본 결과, 제대로 된 놈이 한 열 놈밖에는 없었다.

    됨됨이가 되지 못한 귀족 자제들은 국자감, 태학으로 보내 다시 공부시켰다.

    죄다 머릿속에 든 게 어떻게 백성들 재물을 많이 탈취할지에 대한 것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이준의는 그때 당시 ‘나보다 더한 놈도 있네!’라고 하여 다들 웃음보가 터져 나오기도 하였다.

    “합하, 남쪽 지방에 관리들과 귀족들을 모두 체포해왔사옵니다. 이번 일은 그들 때문이라고 판단이 되어 말이옵니다. 재산 또한 몰수하였습니다. 그 재산으로 남쪽지방을 살려보심이 어떠하시옵니까?”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내 그렇게 하마.”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고, 현수는 고개를 숙인 뒤 인사를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현수는 밖으로 나와 대부인 조씨와 임씨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조심히 가게. 정주에 가서도 몸 챙기고.”

    “예. 대부인 마님”

    “수년간 함께 지냈는데… 이제 이곳에서 떠나간다니, 참으로 아쉽네. 부디 건강하시게.”

    “감사하옵니다.”

    임씨 또한 현수에게 잘 가라며 인사를 하였다.

    현수는 모두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밖으로 나갔다.

    개경 서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부장 천시호이었다.

    “나 때문에 자네가 고생이 많네.”

    “고생이라니요.”

    천시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주에 가면 할 일이 태산일 것이네. 그나저나… 자네 마나님과 딸 아이를 못 봐서 어찌하나?”

    “뭐… 돌아오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못 돌아오면 어찌하려고.”

    “…….”

    “하하하하하!”

    현수는 그렇게 웃으며 말 위에 올라타 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말안장에 단단히 묶어놓았다.

    천시호 역시 말에 올라탔고, 두 사람은 말머리를 돌려 정주로 향하였다.

    * * *

    정주에 도착한 지 사흘 정도 흘렀다.

    정주에 도착한 현수는 바로 저택으로 가지 않고, 저자 근처에 주막에 머물러 정주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살피었다.

    간간이 색목인(色目人), 남송 상인들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색목인 상인들이 주막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었다.

    “아휴! 또 세금이라니…….”

    “정주 공? 확 뒈져버려라! 퉷!”

    바닥에 침을 뱉으며 자신을 욕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현수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에 천시호는 매섭게 인상을 찡그리며 검을 뽑아 들려 하였고, 현수가 이를 제지하였다.

    “일단 들어보세.”

    “욕보이는 것을 어찌 듣고만 계십니까.”

    “가만히 있게.”

    “…….”

    “이보게, 정주 공을 왜 욕하는가?”“

    상 위에 앉아 있던 이들이 현수와 천시호의 옷차림을 쓱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행색을 보아하니, 지방에서 올라오신 귀족분들 같은데… 관아에서는 정주 공의 명이라고 벌써 열두 차례나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빌어먹을… 우리 상인들은 물건 팔아서 세금 내야지, 정주 공이 거두어 오라는 것까지 내야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지요.”

    “정주 공이? 그런 X새끼를 봤나… 해 처먹어도 적당히 해 처먹어야지!”

    현수는 자신이 아닌 척 스스로 욕을 하자, 주위에 있던 이들 역시 맞장구를 쳐대며 같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말이 바른말이지요. 상인들은 돈을 버니 문제가 없지만, 농사짓는 우리는 매달 세금을 내야 합니다. 이러다 자식까지 팔아야 할 지경입니다.”

    “그럼 개경에 가서 정주 공에게 따지면 될 게 아닌가?”

    “그게 말이 됩니까? 장을 안 맞는 게 다행이지요.”

    “그래도 내 듣자하니… 백성들에게는 인자하다던데…….”

    “인자는 X미!”

    “하하하!”

    개경과 가까운 정주였지만, 민심이 뒤숭숭했다.

    자신이 내린 명도 아니었다.

    명을 방자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인 지사 역시 문제가 크다고 생각하였다.

    상인들은 그나마 걱정거리 없이 사는 듯 보였다.

    세금을 빼면 말이다.

    “관에서 세금을 거두면… 그 관에서 세금을 귀족들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젊은 한 청년의 말에 현수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정주 공의 자산을 나누다니.”

    “저는 별장직을 맡았던 문지환이라 합니다. 귀족 나으리께서 지나가시는 분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그럼 정주 공이 아니라, 지사가 X새끼 아닌가?”

    “아니! 지사가 무슨 힘이 있어서 정주 공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합니까!”

    술을 한잔 마신 정주민(定州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럴 수도 있지.”

    “목이 달아나려고! 그건 미친 거죠!”

    그 말을 들은 문지환이라는 별장도 버럭 소리쳤다.

    “이보게 별장… 자네는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나? 순찰 같은 거 안 하나?”

    “옳은 소리 했다가 잘렸는데 순찰은 뭐하러 합니까?”

    허탈한 웃음이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네는 이제부터 무얼 할 생각인가?”

    “글쎄요… 어디 사병 자리나 한번 알아봐야죠. 그나마 별장에라도 있었으니 사병 대장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현수는 그런 별장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주모, 여기 이 사람들 것까지 값을 치르고 가겠네.”

    “예!”

    상위에 소 은병 하나를 놓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천시호 역시 일어나 현수의 뒤를 따랐다.

    주막에 있던 이들은 소은병을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지금 먹고 있는 거에 몇 그릇을 더 먹어도 남는 값어치였기 때문이었다.

    “많이들 들고 가시게.”

    주막을 나와선 현수는 어디론가 바삐 움직였다.

    “어디로 가십니까?”

    “관아로 가야지. 지사에게 내가 언제 그런 명을 내렸냐고 물어는 봐야 할 게 아닌가.”

    “대장군.”

    “아, 그리고.”

    현수는 잠시 걸음을 멈추어 천시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정균은 어디 있는가.”

    “…….”

    정주에 와서 찾아봐야 했던 정균을 잊고 있던 현수였다.

    “알아서 오겠지요. 굳이 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둘이 가는 것보다 낫지. 안 그런가?”

    현수의 말에 천시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균을 데려오는 것이 내키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의방에게 해를 가하였고, 정균이 또 무슨 짓을 꾸밀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수 역시 그가 내키지 않았지만, 이의방의 말이니 어쩔 수 없이 정균과 함께해야 하였다.

    “자네가 한번 찾아보게.”

    “대장군은요?”

    “나는 뭐… 관으로 가기 전에 좀 더 둘러보겠네. 정균을 찾으면 다시 주막에서 만나지.”

    “예. 알겠습니다.”

    천시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였고, 현수는 천천히 저자가 아닌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을 지나서 밖으로 나오니, 민가들이 수두룩하였다.

    그 사이에 중간중간 귀족저택도 눈에 들어왔다.

    장으로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 이들도 눈에 들어오자, 현수는 지나가는 한 행인을 부여잡았다.

    “이보게. 말 좀 묻겠네.”

    “예? 아… 예.”

    “이곳에서 장사하면 보통 세금을 얼마나 내나?”

    “세(稅)요? 세는 매일 냅니다. 아무렴… 허구한 날 정주 공이 세를 걷으라고 하는데.”

    “흐음… 정주 공이?”

    “예.”

    “알겠네. 가보게.”

    정주에서 얼마나 자신을 팔아먹었는지 전부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얼마나 해 처먹었는지조차 모르는 일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 * *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여기 지사를 좀 보러 왔는데.”

    병사는 현수의 옷차림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치웠다.

    이에 현수가 관아 안으로 들어섰다.

    관아 안으로 들어서자, 펼쳐진 풍경은 개판이었다.

    기강을 보여야 하는 부장들은 계단에 앉아서 시시덕거리고 있었고, 군사들은 아예 한쪽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또 어떤 군사는 창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사가 어떤 인간인지 안 봐도 뻔한 상황에 현수는 미간을 좁혔다.

    개경과 가까운 정주라면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조정의 명이 내려졌을 것인데, 조정의 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판 상태이니 말이다.

    “지사! 지사는 어딨는가!”

    현수의 외침에 모든 이들이 시선이 현수에게로 향했다.

    “이보쇼, 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귀족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사님을 그리 함부로 부르면 쓰나.”

    스르릉.

    위협을 가하려고 검을 빼든 건지, 아니면 기를 죽이기 위해 빼든 것인지, 또 아니면 진짜 죽이려고 검을 빼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성큼성큼 현수에게로 다가가는 부장.

    현수는 당당하게 부장에게로 가서는 발로 정강이를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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