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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69화 (69/159)
  • 069화

    “하아…….”

    그리고 뒤를 이어 보병과 궁병들이 나아가자, 살아남은 반군들은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보병들은 포승줄로 반군들을 묶기 시작하였고 남경 유수 한문준은 반군들을 모두 개경으로 좌장 이거를 통하여 압송케 하였으며 최원호는 보병과 궁병을 먼저 이끌고서 기병이 천천히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보급은 남경 한문준이 보내기로 하였으니, 보급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망이와 망소이 그리고 반군 장수들은 말을 버리고서 산으로 들어가 몸을 피하였다.

    산적출신의 두령은 자신의 산채로 가자고 하였으나, 망이는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난 공주로 돌아가겠소. 거기서 수성을 할 것이오.”

    “예? 산채에서 정비하고 남경으로 간다면 바로 개경입니다. 형님, 왜 돌아가자는 것이오? 우리가 점령한 곳은요?”

    “다 무너졌어. 차라리 공주로 돌아가서 항쟁(抗爭)한다면… 저들은 쉽게 우리를 꺾을 수 없을 거다.”

    망이는 공주로 돌아가서 항쟁하면서 수성을 한다면 저들은 선유사를 보내어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선유사는 보낼 생각이 없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 * *

    며칠 후.

    조정에서는 반군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장계가 올라왔다.

    청주, 충주 그리고 각 군현을 수복하였다는 장계들이었다.

    조성 신료들은 발 빠르게 새로운 지사들을 뽑아서 내려보내기 시작하였고, 금오위 대장군 송경보는 금오위를 내려보내 반군 지역의 수령들과 귀족들을 모두 잡아 개경으로 압송케 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 명은 현수가 내린 명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귀족과 수령들의 자산을 몰수하라는 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수탈로 인해 반란이 일어났으니, 그걸 가지고 새롭게 일으키려는 현수의 생각이었다.

    “압송한 반군들은 어찌 처리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형부상서 최인이 물었다.

    젊은 장수였고, 능력이 있어서 형부 상서에 앉혔다.

    “신분을 대조하여 사노비는 관노로 배속하고, 천민들은 모두 공역장으로 보낼 것이오.”

    “그리된다면 전라도에 있는 향, 소, 부곡에서의 진상품 등은…….”

    “진상품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현수는 크게 소리쳤고, 최인은 고개를 숙이었다.

    특수촌락인 향, 소, 부곡의 가치는 이미 없어졌다고 봐야 했다.

    “정주 공… 금에서 사신이 온다고 합니다.”

    “사신이요?”

    사신이 온다는 소식에 현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신 영접은 예부에서 알아서 하시고… 합하는요? 오신다는 이야기는 없습니까?”

    현수가 문극겸을 바라보며 물었다.

    “합하께서는 금사신이 온다는 소식을 먼저 받으셨습니다. 사신을 서경에서 영접하고 같이 오실 것입니다.”

    “반란의 내용은 조용히 처리해야 합니다.”

    “예. 당연하지요.”

    “호부 상서, 난을 진압하는 즉시 전라도 반군이 일어났던 곳의 호구(戶口)를 재조사하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자칭 예산 병마사라고 하는 손청을 누가 진압하겠소? 최원호 대장군은 그대로 공주로 밀고 가겠다고 하는데… 장수들 중에 누가 가시겠소?”

    “소장이 가겠습니다!”

    당당하게 스스로 일어서는 건 좌우위 대장군 정황재이었다.

    “군사 3천을 이끌고 예산으로 가서 진압하시오.”

    “예! 정주 공!”

    정황재는 이번에 크게 공을 세워 상찬(賞讚)을 받을 생각에 기뻐하며 곧장 밖으로 나갔다.

    * * *

    금나라 사신이 온다는 소식에 서경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사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금 사신이 국경을 넘었다는 보고를 받는 지 벌써 사흘이 흘렀다.

    “오늘인가?”

    “그러합니다. 합하.”

    조위총 또한 몸이 많이 좋아져서 이의방 옆에 붙어 있었다.

    서경 좌장 김존심, 우장 서언이 사신을 맞아 서경으로 데려오기 위해 군사 1천을 이끌고 나갔다.

    “실수 없도록 준비를 해주게.”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합하.”

    서경 유수 조위총은 고개를 숙이며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이의방은 지금 묶여있는 정균을 바라보았다.

    “풀어주거라.”

    “합하!”

    박존위가 깜짝 놀랐다.

    “풀어주라고 하지 않느냐.”

    이의방의 명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박존위는 천천히 정균에게로 다가갔다.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네놈의 목이 아니라, 팔을 잘라주마.”

    “…….”

    정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서 독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이의방을 노려볼 뿐이었다.

    박존위는 뒤로 가서 천천히 오라를 풀어주었다.

    “앉아라.”

    정균은 꿈쩍도 하지 않자, 박존위는 정균의 목덜미와 팔을 부여잡고서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

    “나를 죽이려는 것이면 이리 모욕을 주지 마시오.”

    “너를 죽이는 것은 당연하나, 나는 너에게 기회를 주고자 불렀다. 네 아비와 너는 나를 죽이려 했다. 이에 너희를 죽여 마땅하나… 난 너의 능력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대 밑에서 일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 나를 살린다면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될 것이오.”

    퍼억!

    박존위는 정균의 말을 듣고서 정균의 머리를 탁상에 박아 버렸다.

    “박 장군!”

    “합하, 이놈의 말을 들을 가치도 없사옵니다. 당장 베어버릴 수 있도록 윤허하시옵소서.”

    두 눈을 부릅뜨며 금방이라도 정균을 죽일 듯한 눈빛이었다.

    “나가보게.”

    “합하!”

    “어서!”

    박존위는 이의방의 명에 따라 손을 놓고서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쌍코피를 줄줄 흘리는 정균은 옷소매로 피를 닦고서 이의방을 바라보았다.

    “굳이 내 밑에 있을 필요 없다. 나 말고도 다른 이들이 많으니까 정주로 가거라. 정주에 가 있으면 사람 하나를 보내마.”

    “대체 무슨 꿍꿍이요. 거기에 정주로 가라? 거기 가서 목이라도 매라는 소리요!”

    “다시 한번 더 이야기하지만… 넌 너의 재능 덕에 산 것이다. 그 재능이 없었으면 진작에 죽었을 거다.”

    이의방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정균은 대체 이의방이 무슨 꿍꿍인지 인수가 없었다.

    속으로는 이의방을 지금이라도 죽일까 고민했다.

    하지만 무모한 일이었다.

    뒤에서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확률은 없기 때문이었다.

    “하아…….”

    끝내 복수를 하지 못한 정균은 벌컥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인 정중부가 죽었고, 송유인은 공역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다.

    그뿐인가. 동생들 역시나 죽음을 맞이하였고, 고향인 정주는 쑥대밭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자신밖에 없었다.

    “어찌해야 합니까…….”

    정균은 작게 말하였다.

    복수를 할 것이냐 아니면 이의방의 말을 따라 정주로 가있느냐는 정균의 선택이었다.

    * * *

    그날 저녁.

    “하하하하하!”

    많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의방은 크게 웃으며 기뻐하였다.

    금 사신 아전보를 접대하고 있었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중에서 아전보에게 눈에 띄는 무희가 있었는지 입맛을 다시는 걸 보았다.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서경 유수에게 말하였고 서경 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 폐하의 탄신일을 감축하는 사신으로 오셔서 정말이지 기쁩니다.”

    “저 또한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니 감읍(感泣)합니다. 특히나 서경 좌장 김존심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놀라다니요. 폐하 대신에 집정 대신이 시찰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금 사신 아전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의방과 술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셨다.

    “그나저나… 금의 상황은 어떠십니까?”

    “말도 마십시오. 몽고족 때문에 골치가 여간 아픈 게 아닙니다. 툭하면 국경을 공격하니 말이지요.”

    “금나라가 그렇게 골치가 아플 정도면 토벌군을 보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보냈습니다만 얼마나 날랜지… 하하하하하!”

    아전보의 말을 대충 파악한 이의방은 술병을 들어 아전보에 술잔에 채워주었다.

    “유독 저 아이가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천천히 즐기십시오.”

    이의방은 작게 말하자, 아전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저벅.

    이의방 곁으로 부장이 다가와 작게 고하였다.

    “정균이 정주로 떠난다고 합니다.”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장에게 명을 내렸다.

    “정균에게 6위장군직을 내리라고 개경으로 파발을 띄우거라. 그리고 이걸 내 형님에게 전해라”

    이의방은 품속에서 서찰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예. 합하.”

    부장은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이동하였다.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아전보는 많이 마셨다며 더 이상 술을 받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침소로 이동하였다.

    그 침소에는 준비해둔 계집이 있으니 알아서 할 것이었다.

    이의방은 연회를 마저 나와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남쪽 반란이 어찌 되었는지 상황보고가 계속 올라오니 장계를 읽고 있었다.

    [남경에서 적을 격침하고,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산에서 병마사라고 자칭하며 있는 반군을 치기 위해 좌우위 대장군 정황재를 내려보냈습니다. 또한 제가 감히 합하의 명을 무시하고 항복한 자들은 관노와 공역장으로 보내었습니다.]

    현수의 글씨였다.

    이의방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장계를 한쪽으로 치우고 동북면병마사 박수경의 장계를 펼쳐 살피었다.

    [금에 수복하지 않는 여진이 계속해서 약탈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여진을 몰아내 야합니다. 또한 요의 잔존 세력인 거란족과 여진이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어 급히 장계를 띄웁니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다.

    “우선 큰 문제는 반란인데…….”

    동북면 일은 금 사신이 마침 와있으니, 이 문제에 대해 의논을 해보면 되었다.

    하지만 남쪽은 달랐다.

    최대한 빠르게 진압을 해야 하였다.

    다행히 이의방은 현수의 처리는 문제 삼지 않았다.

    * * *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지만, 아전보는 아직 기침 전이었다.

    아전보의 침소에 그 누구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서경 관아에는 음식 냄새가 진동하였다.

    사신이 왔으니, 이의방은 백성들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관아 밖에서는 백성들이 음식을 받아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음식은 넉넉하니, 먹고들 또 오시오!”

    “아이고! 감사합니다!”

    비록 술은 주지 못하더라도 음식은 양껏 나누어 주고 있었다.

    계속해서 방앗간에서는 떡을 만들기 위해 쌀을 찧고, 떡을 만들었다.

    갖가지 강정들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에서 음식들을 공수해와 사신에게 부족함 없이 먹이고 백성들에게도 나눠줄 만큼 들여온 것이다.

    “합하, 금 사신께서 합하를 뵙기 청하옵니다.”

    “어서 뫼시어라.”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이의방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신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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