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68화 (68/159)

068화

“망이 장군! 만세!”

“만세! 만만세!”

“망이 병마사! 만세!”

만세를 외치면서 망이를 띄어주는 군사들이었다.

망이는 이에 못지않게 자신 있게 두 팔을 벌려 들었다.

* * *

“반군의 위세가 대단합니다.”

또 다른 장계를 받은 현수였다.

이에 관해 이의방의 명령도 받았지만, 쉽게 명을 내릴 수가 없었다.

‘듣지 않으면 모두 죽여라.’

참으로 자신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명령이었다.

더불어 이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현 자신의 말과 행동 하나로 사람 열이든 백이든 죽일 수 있는 자리이니 말이다.

“정주 공… 언제 명을 내리실 겁니까? 합하께서 이미 명을 내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좌복야 문극겸이 말하였다.

우복야 이준의는 잠자코 있었다.

“너무 보채지 마시오. 정주 공도 이런 상황에는 적응을 좀 하셔야겠지요.”

이준의의 말에 문극겸은 순간 아차 싶었다.

반란을 빨리 진압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현수의 생각은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지난번처럼 몇십 명을 반 때려죽이는 일도 아니고, 이번에는 완전하게 학살이었다.

향, 소, 부곡민이 천민이라도 같은 말을 하고 걷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라는 게 얼마나 어렵겠는가.

물론 다른 신료들이었다면 지나가는 개라고 생각하고 죽여 버렸을 것이지만, 이건 한 명이 아닌 수백 수천을 죽이는 일이었다.

“좌복야, 잠시만 나가주시겠소?”

이준의의 말에 문극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현수는 말없이 이준의를 바라보았다.

“혹시 하실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현수야.”

이준의는 잠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고자, 문극겸을 내보낸 것이었다.

“너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나, 내 아우 이의방의 명령은 황제가 내린 명과 같으니라.”

“하지만… 다 죽인다는 건…….”

“알고 있다. 너무 하다고 생각이 들겠지. 하지만 반란이 지속된다면 전라도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 너의 명이 늦어진다면 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준의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하였다.

이의방이 왜 이러한 명령을 내렸는지 이준의와 문극겸은 알았다.

반란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한번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는 게 반란 그리고 민심이었다.

그렇기에 한번 난이 일어나면 본보기를 보여주어야만 하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말이다.

“해주를 보거라. 정중부가 이의방을 죽이려 하였을 때, 이의방은 해주를 도륙 내었다. 그 후로 정중부를 따른 이들이 이의방에게 쉽게 대들더냐? 아니면 다른 신료들이 이의방에게 반기를 들더냐?”

“…….”

“그 후로 이의방은 신료들을 예전처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어. 왜? 존중을 해주는 것이지. 굳이 누르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설설 기니까 말이다. 이제는 너도 달라져야 한다.”

생각이 복잡한 현수였다.

신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명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자신이 내릴 수 없는 명이었다.

“합하께서…….”

“합하께서는 여기 오지 않을 거다.”

“…예?”

현수는 깜짝 놀랐다.

“나만 받은 소식인데 서경에서 정중부가 다시 한번 더 아우를 노렸다는구나. 그 일로 해서 처리할 게 많아.”

“합하는요?! 괜찮으신 겁니까?”

현수는 이의방부터 생각하였다.

“다행히 무탈하다.”

“하아…….”

순간 가슴이 철렁한 현수였다.

“아우가 서경을 갈 때 그러더구나. 너를 부탁한다고. 처음에는 그냥 권력을 잡으니,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다니다가 점점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닥치니… 신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할 줄 알게 되었지. 좌복야와 나는 너에 대해서 많이 의논을 한단다. 내일은 어떻게 살펴봐야 할지, 또 부족한 게 없는지 말이다. 그러면서 너는 예전의 네가 아니라는 걸 매일 같이 느낀다.”

“…….”

이준의는 현수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

“이게 너에게는 고비일 것이다. 여기서 네가 선택하거라. 네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진행하거라. 나는 따를 테니. 하지만 확신이 없다면 이의방의 명을 따르거라.”

현수는 차분하게 생각에 빠져 들었다.

이준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말이다.

* * *

그날 저녁.

현수는 백관들을 불러들였다.

문무 장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자, 이의방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는 말하였다.

“우복야.”

“예. 정주 공.”

“더 이상 백성들이 반군에게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하니, 각 수령들에게 명을 내려 백성들을 살피라고 하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정주 공.”

“좌복야.”

“예. 정주 공.”

“전국 저자에 반군 중에 항복하는 자들이 있다면 살려줄 것이나, 반항하는 자는 삼족을 멸할 것이라고 크게 공문 하시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병부상서.”

“예. 정주 공.”

“남경에 있는 남적처치병마사 대장군 최원호에게 적들이 남경으로 올라와 공격하면 수성을 하고, 그 사기가 꺾이면 성문을 박차고 나가 반군을 몰아붙이라 하시오. 항복한 자는 살려주되, 반항하는 자는 죽이라 명하세요. 그리고 반드시 수괴는 사로잡아 개경으로 데리고 오라 하시오. 또한 반란이 진압되는 대로 남도의 현령들과 살아있는 귀족들에게 엄벌에 처하겠소이다. 이 지경까지 왔다는 건 조정의 명을 무시하고 백성을 탄압하였다는 증거가 되니 합하께서 돌아오신다면 반드시 그 죄를 엄히 물으라 청할 것이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정주 공.”

우복야 이준의는 현수의 말에 적극 동감하였다.

“선유사는 어찌하시려 합니까?”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를 들어주면 또 들어달라고 반란을 일으킬 게 당연합니다. 우린 그걸 또 달래기 위해서 또 들어주어야겠지요.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황실을 내어달라 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이제 선유사는 없습니다.”

단호한 현수의 결정에 좌복야 문극겸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수의 말을 받들었다.

“지금 이 시각 이후로, 반란군은 단 한 곳에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예! 정주 공!”

백관들이 고개를 숙이며 현수의 명을 받들었다.

이준의와 문극겸은 현수의 명에 만족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백관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현수 역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6위를 총괄하기 시작하였다.

각 대장군들에게 훈련과 진법훈련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기병보다는 보병과 궁병 위주로 훈련을 배로 늘려 시키라 명하였다.

* * *

시간이 꽤 지났다.

충분히 쉴 만큼 쉰 반군들은 어느새 남경 앞까지 와 있었다.

남경에서는 반군들이 다리를 건너 넘어오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하여 반란군은 더욱더 자신들이 남경을 함락시킬 수 있을 거란 자신감에 북받쳐있었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경에 군사들은 이미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좌장 이거와 우장 선유동은 각 성문을 맡았고, 최원호와 남경 유수 한문준은 반군이 보이는 장대에 올라서 반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법 군사 티가 납니다.”

“군사라고 하지만 오합지졸들이지요. 저런 것들에게 당하였다는 게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최원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정주 공이 명을 내린 것을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검을 빼 들었다.

이제 곧 반군이 남경을 칠 것이란 걸 직감하였기 때문이다.

둥! 둥! 둥!

지이잉! 지이잉!

징과 북을 울리면서 공격 신호가 울려 퍼졌다.

망이와 망소이 그리고 그 아래의 반군 장수들은 말을 타고 검을 뽑아 들었다.

거기에 아주 커다랗게 산행 병마사 망이라고 붙여진 수기가 걸려 있었다.

“전군 공격하라!”

망이가 외치자, 장군들 역시 외쳤다.

“공격하라!”

반군들은 소리를 지르며 남경으로 향해 돌격하였다.

무수한 화살비가 반군들에게 떨어졌다.

하지만 반군들에게 그렇게 여타할 피해를 주지 못하였다.

어느 정도 일정 거리에 다다르자, 반군들은 화살을 쏘며 응사(應射)하였고, 그 뒤를 이어 사다리를 들고 뛰는 반군들이 사다리를 땅에 꽂아 그대로 성곽으로 걸쳐버렸다.

탁! 타타탁!

반군들이 사다리를 성곽에 걸치더니,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어어어!”

군사들은 반군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그대로 밀어내자, 매달려 있던 반군들은 그대로 사다리와 함께 넘어갔고 곳곳에서 사다리에 매달려 있던 이들 모두 떨어져 나갔다.

“반군에게 거노의 맛을 보여주어야겠다!”

최원호가 외쳤다.

“거노를 쏴라!”

곳곳에서 거노를 쏘라며 명이 내려졌다.

쐐애애애액!

거노가 날아가자, 거대한 화살은 엄청난 속도로 반군들에게 떨어졌다.

퍼억!

퍼퍼퍽!

순식간에 대여섯 명의 반군의 몸통을 뚫고서 바닥에 꽂힌 거노살.

그 한발의 위력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거노의 위력을 본 반군들은 순식간에 겁을 먹었다.

일반 화살도 아니고, 큰 화살이 몸통을 뚫고 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거노를 쏘아라! 반군들에게 지옥을 보여주어라!”

화살과 거노 공격이 연거푸 반군에게 빗발쳤다.

거기다가 남경 유수 한문준까지 가세하여 성내에 있는 석포를 쏘아붙이니, 반군은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형님!”

망이 역시 현 상황에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화살과 거노 그리고 석포까지 날아 들어올 줄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곽까지 들어가서 사다리를 걸치는 건 좋았다.

하지만 사다리가 무너지고 거노 공격을 받자, 반군들은 일제히 사기를 잃어버렸고, 혼비백산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았다.

“퇴, 퇴각하라! 퇴각하라!”

망이는 곧장 퇴각령을 내리고서 그대로 말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성문을 열고 나가라! 적들을 몰아붙여라!”

최원호가 명을 내리자마자 성문이 활짝 열리더니,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장들이 약 일천의 기병을 이끌고 뛰쳐나왔다.

솨아악!

기병들은 도망가는 반군들을 찌르고 베기 시작하였다.

무자비하게도 기병은 멈추지 않았고, 반군들은 말에 치이고 짓밟혀서 죽어갔다.

거기에 망이의 수기를 가지고 도망가던 반군 하나를 창으로 찔러버리며 수기를 탈취하였다.

“으어어어!”

반군들은 겁을 먹었다.

기병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반의 반도 되지 않았다.

반군들은 제자리에 드러눕거나 엎어져서 벌벌 떨었다.

최원호의 기병들은 일제히 반군들이 장악하였던 주를 빠르게 공략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내달렸고 반군으로 생각되는 이들은 가차 없이 베거나 죽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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