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67화 (67/159)
  • 067화

    “정주 공, 어서 오시오.”

    “폐하, 찾아계셨사옵니까.”

    “반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데…….”

    “폐하, 최선을 다하고 있사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뭐, 이 상국이 시찰을 한다고 가기 전에 정주 공에게 맡겼으니, 정주 공이 알아서 할 것이라 짐은 믿네.”

    “황공하옵니다. 폐하.”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국이 사람 보는 눈은 있습니다. 만약 이 상국이 대신들에게 맡겨 놓고 떠났다면 지금쯤 군사를 보내는 게 아니라, 탁상공론이나 하면서 이 상국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아니 그렇소?”

    태후는 황제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황제와 더불어 태후, 태비, 태자와 태자비까지 함께 하고 있는 자리였다.

    반란의 상황이 무척이나 궁금한지 황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정주 공, 반란이 빠른 시일 내로 잡힐 듯하오?”

    태자가 날카롭게 질문을 가해왔다.

    “태자, 어찌 그런 질문을 하느냐?”

    “폐하, 이번 반란은 심상치가 않기 때문이옵니다.”

    “그만하거라. 조정에서 알아서 할 것이고 정주 공이 군사를 보내지 않았느냐. 정주 공도 이번 일로 민감해져 있을 것이니, 태자는 더 이상 나서지 말라.”

    황제는 태자에게 엄포하였다.

    나서지 말라.

    하지만 현수는 태자도 알아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하였다.

    “태자 전하께 아뢰옵니다. 반란군은 공주에서 현이 아닌, 주를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로 선동하기 때문이지요. 반란의 수괴는 망이, 망소이 형제로 자칭 산행 병마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건 내 들어 알고 있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해 반란이 오래 지속될 것 같사옵니다.”

    “그럼 남쪽지방은 반군들이 계속 들고일어날 것이란 이야기요?”

    태자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그렇사옵니다. 태자 전하.”

    “세상에… 어찌하다 이런 꼴이 났는가!”

    “그만… 그만하라. 태자는.”

    “폐하, 이번 반란…….”

    “내가 그만하라지 않느냐!”

    황제는 태자를 나무라 하였다.

    “왜 그리 태자에게 매몰차게 그러시오. 황제. 태자가 못 물어볼 걸 물어본 것도 아니고, 나도 궁금하던 차였는데 말입니다. 어찌 태자에게 그리 못되게 구는지…….”

    태후는 내심 황제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혀끝을 차며 고개를 저었다.

    황제는 그런 태후의 행동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태자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 때문에 부황의 명예가 실추되었음을 말이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태자의 사죄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자리를 박차고서 다른 데로 가버렸다.

    “일국의 황제라는 자가 어떻게 저리 속이 좁은지… 아이고… 저러니 이 상국에게 제대로 말도 못 하는 것이지. 궁금하면 물어봐야 할 것이 아닙니까.”

    태후 역시나 황제의 저런 행동에 못마땅해하였다.

    답답했는지 황제가 들으라고 일부러 소리치며 말하였다.

    일국의 황제라는 자가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저렇게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몰상식해 보였기 때문이다.

    “태후마마 소손의 잘못이옵니다. 부디 역정을 거두소서.”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국정이 이 상국에게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알건 알아야지!”

    현수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혀가 두 부자(父子)지간, 또 두 모자(母子)지간을 깬 것이 아닌가.

    “태후마마, 고정하시지요.”

    “태비, 황제의 행동을 보시오. 얼마나 답답한 일이오.”

    태비는 그런 태후의 성정을 알기에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내 정주 공에게 못 볼 꼴을 보였네…….”

    “아니옵니다. 태후마마.”

    “그나저나… 정주 공은 아직 미혼이시지 않습니까. 언제 장가를 가실 생각이오?”

    태후에 물음에 현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하였다.

    “하하, 아직 생각이 없사옵니다. 태후마마.”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시오. 하루라도 빨리 장가를 들어야지요.”

    “전 아직 할 일이 많사옵니다.”

    “아… 그건 그렇겠네요. 정주 공이 이렇게 개경에 남아서 일 처리를 수월하게 하니, 황실의 복이 아닐 수 없소이다.”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현수는 정중한 어조로 답하며 허리를 숙이었다.

    “일전에 듣기에는 정주 공이 태조 성조의 첫 신혜 황후 마마의 후손이라 들었소이다. 그 가문이 어떤 가문이오. 삼한을 통일하는 데 일조하였던 집안의 후손이 아니오. 그러하니 황실을 지탱하고 이 상국의 대행을 하는 게 아니겠소. 위로는 황실을 받들고, 아래로는 신하와 백성을 살피는 데 정주 공이 합당하다고 여겨 이 상국이 옳은 선택을 한 듯싶은데 아니 그렇소, 태비?”

    “왜 아니 그러하겠습니까, 정주 공은 항상 깊게 생각하고 일 처리를 하니… 정주 공을 이 상국의 대행자로 남긴 것은 다행이라 여겨지옵니다.”

    “하하하하.”

    태후는 웃음을 보였고, 현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정주 공이 거처하고 있는 곳이 이 상국의 처소라고 하였던가?”

    “예. 그러하옵니다.”

    “쯧쯧, 어찌 정주 공이 집 한 채가 없는가.”

    “송구하옵니다. 태후마마.”

    태후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태비, 태비의 아우에게 막내딸이 있다 하지 않았소?”

    “아, 예. 그렇습니다.”

    “이참에 정주 공과 맺어주는 게 어떤가 싶소만.”

    현수는 깜짝 놀랐다.

    황제가 본인을 찾아서 왔는데 현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가 집안싸움이 시작되더니, 또 갑자기 혼사 얘기까지 나왔다.

    현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태후마마, 저의 조카는 이미 한번 혼례를 치른 적이 있사옵고 이미 아이도 있사옵니다. 하지만 정주 공은 아직 장가도 들지 못하였습니다. 저의 조카로서 어찌 빈자리를 메꿀 수 있겠사옵니까.”

    “그게 어때서요. 내 듣자 하니… 조카가 인자하고 기품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태비가 난처한 듯 표정을 지었다.

    장가 한 번도 안 간 사람에게 시집 갔다 온 여자를 어찌 붙여줄 수가 있겠는가.

    따라서 태비는 기어코 아니 된다고 태후에게 말하였다.

    “흠… 태비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이 상국이 돌아오는 대로 의논이나 한번 해봅시다.”

    “예…….”

    태후의 말에 태비는 금세 미소가 돌아왔다.

    현수 역시 내심 안도하였다.

    마음에도 없는 여자와는 억지로 살기 싫었으니 말이다.

    * * *

    “빌어먹을!”

    최원호는 뼈아픈 패배로 인하여 연거푸 술을 마셔대었다.

    반란군이 뭐라고 이렇게 된통 당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나 자신을 믿고 보낸 정주 공을 어떻게 봐야 할지 정말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대장군… 패배는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패배요? 한 번이면 되었지… 계속 연패를 하니… 내 정주 공을 어찌 봬야 할지…….”

    좌장인 이거도 반란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대장군 최원호가 이렇게 심하게 깨져서 왔으니 말이다.

    “좌장군, 남경의 수비를 더 강화하는 게 어떻겠소?”

    남경 유수 한문준의 말에 이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언제 남경으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니,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좌장 이거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수비를 더욱더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 * *

    이틀 후.

    남경에서 파발이 당도하자마자 정주 공 현수의 명을 받아 바로 피해 상황을 살피었다.

    서해 해군 절도사 이경수 역시나 파발을 받았다.

    “정주 공께서 반란에 대비하여 해안 교역로를 모두 끊으라는 명을 내리셨네.”

    수많은 장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주 공께서 발 빠르게 움직이시는 걸 보아하니 금세 진압될 것으로 보입니다.”

    “예. 소장의 생각도 같사옵니다.”

    장수들은 현수가 하는 일을 모두 믿고 있었다.

    이경수 역시 현수의 의견에 매우 긍정적이었다.

    “정말 다행 아닙니까. 상국께서 정말 사람을 볼 줄 아시는 듯합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조정의 이야기를 듣고 실행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박 장군!”

    “예. 절도사.”

    “지금 소선 세척을 이끌고 한강으로 가게.”

    “명을 받드옵니다!”

    이경수의 명을 받은 장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다른 장수들도 군선을 끌고 나가 순찰을 하게. 어선 하나라도 발견하면 바로 살피고 경계해야 하네. 더욱더 수상한 배가 다가오면 바로 경고의 의미로 화살을 날려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배 안을 모두 뒤지도록 하게.”

    “명을 받드옵니다!”

    장수들은 일제히 절도사 이경수의 명에 답하였고 밖으로 나갔다.

    * * *

    열흘 후.

    “와아아아아!”

    반군들이 또다시 한번 승리하였다.

    곳곳에서 민(民)들이 일어나 속속히 망이 망소이 형제들에게로 규합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반군의 숫자가 일만이 넘어섰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 군, 현 할 것 없이 곳곳에서 일어난 반군들 때문에 관군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진압에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당하였으며 전라도 일대의 귀족들 역시나 변을 당하였다.

    운이 좋은 귀족들은 산으로 도망갔으나, 산적을 만나 죽임을 당하거나 욕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 봉기 소식을 듣고 산적들까지 망이, 망소이의 난에 합류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리하다 보니 산길을 속속히 꿰뚫고 있는 산적들이 반란군에게 산길을 안내하면서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산적 두령들 중 몇 명은 반란군 장군의 반열에 앉혀 놓았으며 다른 공이 있는 자들 역시 장군에 앉혔다.

    거기에 마치 자기들이 군사가 된 것처럼 골고루 체계를 하나씩 갖추어 나갔다.

    반란군은 군관으로부터 뺏어 입은 갑주와 병기를 가지게 되어 완전한 군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제대로 훈련이 되지 않은 반군들이니, 한번 전열이 흐트러지면 수습할 수 없었다.

    이 단점을 잘 아는 망이었다.

    “자, 형님! 이 기세를 몰아! 남경으로 들이칩시다! 남경이면 바로 개경 앞 아니오!”

    “그렇습니다! 남경으로 가시지요! 산길은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승리에 도취한 이들은 남경으로 가자며 소리쳤다.

    남경으로 가게 된다면 현재와는 다를 것이라는 걸 느낀 망이는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승리에 도취해서 남경으로 가느냐, 아니면 여기까지 하고 조정과 협상을 하느냐가 중점이었다.

    “형님.”

    “우리는 섣부르게 남경으로 가지 않을 것이오! 저들은 만발의 준비를 다 하고 우리를 공격할 것이니, 지금 이대로 남경으로 간다면 승산은 없소! 충분한 휴식이 우리에게는 필요하오. 그러하니 남경으로 가는 문제는 충분한 휴식을 하고 난 뒤에 결정하겠소이다. 더불어 각 우리가 점령한 곳에 군사들을 배치할 것이니, 모두 그리들 아시오!”

    망이는 명령을 내렸고, 사람들은 한 줄기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다가 남경으로 간다면 남경을 점령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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