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66화 (66/159)

066화

“방진! 합하를 지켜라!”

장수들의 외침에 군사들은 방진 대열을 짰다.

하지만 무소용이었다.

“지금이다! 공격하라!”

정균의 명령과 동시에, 낙석을 쌓아 놓은 것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것에 군사들은 속수무책 돌에 맞거나 깔려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군사들이 오고 가는 길목까지 낙석을 떨어트려 공역장 전체를 완전히 고립 상태로 만들었다.

공역장 아래에 자욱하게 먼지가 올라왔다.

낙석을 떨어트린 이들은 대나무로 만든 단창을 들고서 정균의 명을 기다렸다.

정균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쉽사리 단창을 던지라는 명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점차 먼지가 걷어지기 시작하였다.

정균은 널브려져 있는 군사들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건 군사들의 일부일 뿐이었다.

진 안에 있던 이의방과 서경 유수 조위총 그리고 그의 부장들은 단 하나의 상처도 나지 않았다.

“이의방을 공격하라!”

정균은 이의방을 보자마자 공격 명을 내렸다.

주위에 있는 모든 죄수들이 이의방을 향해 단창을 던졌다.

쉬이익.

매섭게 날아오는 단창.

이의방은 검을 뽑아 들고서 날아오는 단창을 내리쳤다.

“계속 단창을 날려라!”

정균은 명을 내렸다.

하지만 대나무로 만든 단창은 죽창보다 덜 위험하였다.

때문에 경번갑을 입고 있는 이의방과 그의 수하들에게 치명상을 내기란 어려웠다.

턱!

때마침 이의방에게로 날아 들어온 단창을 이의방은 손쉽게 잡아들었고, 그대로 다시 던져 버렸다.

이에 죄수 하나가 죽창에 찔려 죽었다.

멀지 않게 느껴지는 곳으로 던지니, 적중한 것이다.

“공격하라! 이의방을 죽여라!”

“와아아!”

정균의 명령에 일제히 사방에서 죄수들이 죽창을 부여잡고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의방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눈 하나 꿈쩍한 지 않고 검을 꽉 부여잡고서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죄수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합하를 따르라!”

서경 유수 조위총 역시 이의방을 따라 뛰었다.

점점 가까이 들어오는 죄수들에 이의방은 조금 더 속도를 올려서는 죄수를 향해서 검으로 죽창을 쳐냈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죄수들을 일제히 베어내기 시작하였고, 부장들 역시 이의방을 지키며 죄인들을 베어 나갔다.

하지만 고작 아홉의 장수들로 하여금 밀려드는 죄수들을 상대하는 것은 벅찼다.

“정균! 네놈이 사내라면 당장 내려오지 못할까!”

이의방은 호되게 소리치면서 당장 정균에게 내려오라 했다.

하지만 정균은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이의방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의방이 최대한 지칠 때까지를 엿보고 있었다.

“빨리 치워 이놈들아! 안에 합하께서 계신단 말이다!”

금오위 상장군 박존위와 더불어 신호, 이영령, 최숙청까지 쓰러진 돌무더기들을 치우기 시작하였다.

한시가 급하였다.

돌무더기를 치우지 않고서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돌무더기를 치우고 어느 정도 길이 안전하게 확보가 되지 않는 이상은 쉽사리 들어갈 수가 없었다.

특히나 저 위에서 단창을 던져대니, 경상을 입은 군사들이 숱하게 나와 난처하기가 이를 대가 없었다.

* * *

몇 시간 후.

이의방의 무용(武勇)은 대단하였다.

장졸들이 들이닥치는 상황임에도 이의방의 주위로 약 백여 구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의방의 갑옷은 피 칠갑한 채 뒤덮여 있었다.

가히 고려 최강의 장수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의방도 갑주의 무게 때문인지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조위총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조위총의 안색이 안 좋았다.

죽창에 찔리는 바람에 피를 너무 많이 흔들렸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용하였다.

“이의방! 너의 군대는 이곳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이제 그만 그 목을 내놓거라!”

반대편에서 정중부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의방은 검을 더욱더 강하게 부여잡았다.

“나를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개경에는 입성 못 할 것이다!”

“닥쳐라! 나는 개경으로 가지 않고 이 서경에 남아 정씨 왕조를 새울 것이니라. 너의 희생이 그 첫걸음 될 것이니라.”

“닥쳐라! 이 역적놈!”

“역적은 네놈이 역적이 아니었더냐! 여봐라! 공격하라!”

“와아아아아!”

죄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부장들은 대부분이 죽어서 부장들은 겨우 네 명 남짓 남았다.

“와아아아아!”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장졸들이 들이닥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의방의 군대였다.

“합하를 호종(扈從)하라!”

“합하를 뫼시어라!”

“하하하… 하하하! 유수! 조금만 기다리게!”

“예. 합하.”

조위총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바닥에 대고서 몸을 지탱하였다.

“유수! 유수! 괜찮으시옵니까?”

서경 좌장 김존심이 다가와 물었다.

“…나는 괜찮다.”

“부상이 심각하니, 속히 데려가 치료케 하라.”

“예! 합하.”

좌장 김존심과 우장 서언은 조위총을 호위하며 공역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의방은 바로 장졸들에게 호위를 받고, 다른 장졸들은 죄수들을 진압하며 학살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모두 죽여라! 정씨 일가는 남겨두고 모두 모조리 죽여라! 나에게 도전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해줄 것이다!”

군사들은 죄수들을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기 시작하였다.

죄수들은 군사들의 기세에 겁을 먹고 도망치려 하였지만, 군사들은 봐주지 않았다.

죽창을 버린 죄수들까지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이의방은 수염을 매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공역장은 점점 피로 물들었고, 시체들로 산이 이루어져 가기 시작했다.

* * *

공역장 정중부 정균의 반란을 진압한 지 사흘이 흘렀다.

이의방은 정중부와 서경의 공역장 죄수들의 목을 베어 서경 저자에 걸었다,

하지만 정균의 처분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죽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수들을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그 용병술만큼은 정말 인정하고 싶었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무기를 만들고, 죄수들을 하나로 규합하여 자신의 수하로 부리고 있을 줄 생각도 못 하였다.

거의 4할 이상은 성공하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었다.

이의방은 정균을 죽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 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살려두면 자신을 또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고, 죽이자고 하니 그 재능이 너무 아까웠다.

“하아…….”

이의방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합하! 개경에서 온 전서입니다.”

“들라.”

흥위위 상장군 이영령이 급히 안으로 들어와 이의방에게 4개에 달하는 쪽지를 전달하였다.

이의방은 이를 살피었다.

“…….”

이의방은 미간을 좁혔다.

반란, 반란의 대한 보고였다.

[공주 내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보고였다.

[공주에 급히 군사를 파견하였습니다.]

두 번째 쪽지였다.

[보통의 민란의 규모가 아닙니다. 선유사를 보내기 전에 바로 진압군을 보냈으며 지휘 장수는 감문위 대장군 최원호입니다. 더불어 군기 감장 이거를 남경 좌장으로 보냈습니다.]

현수의 글임을 알 수 있었다.

반란이 일어나자마자 발 빠르게 처리한 현수의 행동에 이의방은 화를 내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에게 명을 내릴 파발 하나를 준비하거라.”

“예. 합하.”

이영령은 고개를 숙이었다.

이의방은 필을 부여잡고서 종이에 글을 적었다.

[몰아붙인 후, 선유사를 보내 달래 보고 그래도 아니 된다면 모조리 죽여라.]

짧게 글을 마친 이의방은 팔짱을 끼었다.

앞뒤로 문제가 발생하니 골치가 아팠다.

서경에서는 정중부와 정균.

이제는 남쪽 공주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그것도 보통 민란이 아니라, 반란으로 보고 있다는 현수의 글에 개경이 걱정이 되었다.

“합하! 파발이 준비되었나이다!”

“들라!”

파발을 띄울 준비가 되었다.

파발을 받아갈 군사가 안으로 들어와서 이의방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받아라. 추밀원부사 유현수에게 전해야 한다.”

“예! 합하!”

파발 군사는 곧장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 * *

“이게 지금 말이 됩니까! 연패라니요… 최원호는 뭐 하고 있답니까! 내가 이딴 보고를 받자고 보낸 게 아니지 않습니까!”

현수는 노발대발하였다.

진압군을 보냈더니, 여기저기서 반란군들에게 된통 당하고 있다고 했다.

“정주 공, 화를 내기 전에 이야기부터 들어보게.”

용호군 상장군 두경승의 말에 현수는 입술을 꽉 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부 상서 유응규가 말하였다.

“반란군이 계속해서 북상하며 선동을 한 모양입니다. 진압군이 내려가기 전에 일어난 일이고 그걸 미처 알지 못한 진압군이 대패(大敗)하게 되었습니다.”

“정주 공, 군사를 많이 내려보내 한 번에 진압하심이 어떠하시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백성들이 그냥 막 죽이자는 말입니까?”

“반군의 입김이 어디까지 퍼졌을 리 모를 일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백성들까지 죽이는 건 좀…….”

문무관의 설전이 시작되었다.

무관들은 쓸어버리자 주장하였고, 문관들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현수는 어떻게 해야 옳은 방도가 될지 생각에 빠졌다.

만약 이의방이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최원호 대장군은 어찌하고 있답니까?”

현수가 물었고, 문무 대신들은 설전을 멈추더니 현수의 물음에 답하였다.

“남경에서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다 합니다.”

“사상자와 부상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라 전하세요.”

“예. 정주 공.”

병부상서 이문저가 고개를 숙이었다.

“정주 공.”

“말씀하세요.”

금오위 대장군 송경보가 말하였다.

“교통은 미리 다 끊어 놓았습니다. 정주 공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남경에도 교통을 미리 끊어 놓으라는 명을 내리심이 어떠하온지요? 남쪽 지방에 반군세력이 들끓고 있다 봐도 무방하지 않습니까… 그들 중에 뱃길을 아는 자가 남경으로 들어와 공격해 올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현수는 금오위 대장군 송경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병부상서, 금오위 대장군의 말대로 서해 해군 절도사 이경수에게 명을 내리시오. 서해안에 모든 교통로를 끊고, 일제히 검문을 하라고. 더불어 남경으로 가는 뱃길을 단단히 지키라 하시오.”

“예. 정주 공.”

일개 장군에서 이의방의 명을 받아 서해 해군 절도사가 된 이경수에게 명을 내렸다.

처음에는 장군직에서 절도사는 받을 수 없다면서 거절하던 장수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려보내었다가 이경수에게 교서를 내렸다.

서해 해군 절도사라는 직책이었다.

교서를 돌려보낼 수도 없던 이경수는 결국 받아들이게 되었고, 현재는 서해를 확실하게 잡고 있는 해군 절도사가 되었다.

또한 이경수는 서해안 해군기지를 영종도에 설치하여 개경의 수비를 완화하였고 교동과 더불어 작은 섬에는 망루를 많이 새워 경계를 엄히 하고 있었다.

“정주 공,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밖에서 들리는 내관의 목소리에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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