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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65화 (65/159)

065화

“일단 합하께 전서(傳書) 매를 띄웠습니다. 합하의 답을 들은 후에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너무 늦어.”

“그럼 합하의 명령 없이 군을 움직이시겠다는 겁니까?”

“전서매를 띄웠는데 합하께서 소식을 받지 못하셨다면? 아니, 다른 데에 계시면 어찌 할거요? 그럼 시간을 버릴 게 뻔하지 않소. 반란군들이 여기저기 쑤셔 놓게 놔두자는 말입니까?”

“정주 공, 합하의 대행을 맡고 계신다고 하지만… 이건 아닌 듯합니다. 합하의 명 없이 군을 움직이는 것은 반역입니다!”

“반역…? 지금 반역이라 했소? 나는 지금 합하의 대행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거요 명을 따르지 못하겠거든,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자네의 직위를 박탈할 수 있소이다.”

현수는 무섭게 노려보며 말하였다.

감문위 대장군은 시선을 회피하였다.

“그럼 선위사부터 내려보내심이 어떠합니까? 저들이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군사들도 아니고 민란입니다. 민란을 진압하기에 군을 바로 투입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예부 상서 유응규가 말하였다.

하긴 민란에 있어서 그 원인을 알아야 하였다.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도 들어봐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

“선유사를 보내시지요. 왜 민란을 일으켰는지 알아보세요.”

다시 한번 더 강조하는 유응규에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됩니다. 소장은 반대입니다. 민란을 일으킨 연유를 들어볼 수는 있으나, 이미 사상자가 많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내어준다니요… 만약 그랬다가는 다른 곳에서도 이를 노려 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감문위 대장군 최원호가 말하였다.

유응규와 최원호의 말에는 틀린 말이 없었다.

“그럼 이리합시다. 선유사를 보내어 이야기를 들어보고 진압합시다.”

“…예?”

“정주 공,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압이 아니라… 선유사를 보낸 후에 진압한다니요?”

유응규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게 현수의 선택으로서는 최선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부 상서.”

“선유사는 백성을 타일러서 무마시키는 게 선유사입니다. 그런 선유사를 보내 놓고 진압을 한다니요.”

좌복야 문극겸 역시나 발끈하였다.

“최원호 장군의 말에 일리가 있기에 내가 내린 결론입니다. 좌복야.”

단호하게 문극겸을 바라보며 현수가 답하였다.

이에 문극겸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부터 문관과 무관의 팽팽한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완전한 탁상공론이었다.

현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는커녕, 자신의 생각에 푹 빠지게 되었다.

얼마 후.

중방에서 새로운 소식이 올라왔다.

공주의 반란군이 충주까지 파죽지세로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빨라도 너무 빠른데…….”

현수는 팔짱을 끼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반란군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였다.

반란군이 점령하는 곳은 무기들이 많은 주(州)였다.

“설마…….”

“왜 그러십니까? 정주 공.”

“군을 만들어서 군량과 병기를 확보하겠다는 건가… 이 정도면 민란이 아니라, 진짜 반역인데.”

현수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제 충주에서 현(縣)으로 간다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고서 또 다른 주로 가게 된다면 현수의 예측이 확실시되는 것이었다.

“군기 감장을 남경좌장으로 제수(除授)하여 보내야겠으니… 군기 감장에게 명을 받들라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정주 공.”

군기감에 있는 이의방의 동생, 이거는 형들과는 다르게 매사에 판단력이 아주 뛰어났다.

더불어 신망도 있어서 이거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자신의 밑에 있는 수하는 확실하게 챙기는 이거였기 때문에 남경 좌장으로 보내려는 것이다.

“남경유수 한문준에게 명을 내려 반군이 남경 근처까지 온다면 싸우되, 수성(守城)에만 집중하라 하세요.”

“알겠습니다. 정주 공.”

“금오위 대장군.”

“예. 정주 공.”

“지금부터 각 교통로를 철저히 감시하여 서역 상인들을 최대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각 교통로를 통제해 신원이 확실한 이들만 드나들게 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금오위 대장군과 이부상서는 속히 밖으로 나갔다.

“용호군과 응양군은 계속해서 황궁과 황성의 경계를 단단히 해주십시오.”

“그리하겟소이다.”

“그리하겠네.”

“최원호 대장군.”

“예. 정주 공.”

“그대를 남적처치병마사로 명하니, 군사 2만을 꾸려 준비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감문위 대장군 최원호는 중방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주력군 대부분이 이의방의 행렬을 따라갔고, 남은 건 감문위, 금오위, 좌우위였다.

이 셋은 개경에 남아있는 주력군이었다.

* * *

부우우우!

군사들이 집결하였다.

남적처치병마사라는 수기와 함께 감문위 대장군 최원호가 현수를 맞이하였다.

“정주 공! 반란군을 진압할 군사 2만을 집결시켰사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개경밖에 주둔한 군사들을 쭉 둘러보더니 외쳤다.

“반란군을 진압하고 나면 너희들에게 큰 포상이 주어질 것이니, 반군들이 북상하는 것을 필히 막아야 할 것이다. 내 너희들에게 합하의 권한으로 명하노니, 반란군의 수괴와 반군을 토벌하라. 알겠는가!”

“추웅!”

자신 있게 답하는 군사들이었다.

군사들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개경 전역으로 울려 퍼지었다.

“남적 처치 병마사는 즉시 출병하여 반란군을 토벌하라!”

“예!”

최원호는 고개를 숙이고서 몸을 돌려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군사들을 이끌고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 * *

그때 이의방은 서경 공역장을 살피고 있었다.

동북면을 돌아 서북면을 거쳐서 서경으로 왔다.

서경에 오자마자 조위총과 함께 공역장을 살피고 있었다.

죄수들은 곳곳에서 괭이질하며 돌을 내려치며 쪼개고 있었고, 다른 죄수들은 돌을 옮기고 있었다.

저 멀리 정중부와 그의 아들 정균이 눈에 들어왔다.

두 부자는 이의방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의방과의 거리를 벌렸다.

이의방은 두 사람을 보면서 매우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그날의 일이 생각나니 말이다.

“합하, 괜찮으십니까?”

“아, 괜찮네. 그나저나 저기 서쪽의 성벽은 다 되어가는 듯하군.”

“예. 그렇습니다. 서쪽뿐만이 아니라 남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래도 길면 2년 빠르면 1년 내로 공사가 끝날 것입니다.”

“그럼 공사가 끝나는 대로 죄수들은 철광산으로 보내게.”

“예. 합하. 그리하겠습니다.”

이의방은 그렇게 서경 유수와 함께 자리를 이동하였다.

“아버님, 준비되었습니다.”

이의방을 죽이기 위해서 수년간 공을 들였다.

비록 이렇게 있지만, 이곳의 죄수들은 자신의 명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죄수라고 해도 나라에서 밥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으며 오로지 일만 시켰다.

이에 죄수들도 불만이 많았다.

개돼지 못한 신세로 전락한 것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경범죄로 들어온 이들이 꽤 많아서 그런지, 정중부와 정균 두 부자에게 쉽게 선동을 당하였다.

정균은 공역장의 사정을 살피고 일을 하며 죄수들에게 접근하였다.

대부분이 글을 모르니,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면서 그들과 접촉하였다.

그 방법은 먹혀들었다.

몇몇의 죄수에게는 자식들이 있었는데 그 자식들을 한자라도 가르치고픈 생각에 정균의 손을 덥석 잡은 것이었다.

한때 개경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다는 것들도 대부분의 죄수들이 알기에 항상 정균을 믿고,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정균에게 상담을 청하는 죄수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가 죄인이라는 신분을 지녔음에도 말이다.

이걸 이용해서 정균은 수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약부터 시작해서 가장 필요한 신발, 무명천 등을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과 한방을 쓰는 이들에게 호감을 샀고, 그 호감을 사서 이제는 모든 이들의 두령이 되어 있었다.

“이의방의 목은 내가 직접 칠 것이다.”

정중부는 공역장에 오자마자 단 하루도 쉬지 않고서 일을 하였다.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힘쓰는 건 다른 장정들 못지않았다.

이의방을 죽일 기회를 엿보기 위하여 계속해서 자신을 단련하며 와신상담(臥薪嘗膽)한 것이다.

정균은 곳곳에 있는 죄수들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죄수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들이 움직이면서 다른 이들에게 신호를 주자, 다른 죄수들은 일하는 척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성벽 중턱에서도 역시 움직임이 보였다.

일을 하다가 점점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먼저 죽창으로 만든 단창으로 이의방의 군사들을 무력화시킨 후에, 놈들이 이의방을 보호하기 위하여 진을 짤 때… 그때 돌무더기를 넘어트린 뒤 공격을 감행한다면 이의방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공역장은 나무들과 대나무가 넘쳐났다.

성을 쌓기 위하여 많이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무기를 만들 줄 상상도 못 하였다.

칼도 쥐여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괭이질로 돌을 쪼갠 뒤, 날카롭게 돌을 갈았다.

이를 이용해 대나무를 다듬어낸 정균과 정중부는 조위총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비밀에 부치었다.

이의방이 중간 지점까지 들어오자, 곳곳에서 신호를 주기 시작하였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의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채로 깊숙이 공역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투투툭.

위에서 작을 돌들이 떨어져 나오자, 이의방은 멈추어 시선을 돌렸다.

위에서 돌무더기가 있는 것을 보고는 이의방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게 자신을 공격하게 될지는 전혀 몰랐다.

“합하, 이만 돌아가시지요. 너무 위험한 듯합니다.”

서경 유수 조위총이 이만 돌아가자며 재촉하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아섰다.

“으아아!”

그때 주위 군사 하나를 맨손으로 눕히고 병기를 빼앗아 든 정균은 창으로 군사를 찔러 죽였다.

근처에 있는 병사들 역시 죄수들에게 공격당하였다.

“이의방!!!”

공역장 전체가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이의방은 휙 몸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다가 위를 보았다.

당당하게 허리를 곳곳이 세우고 있는 정균이 있었다.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겠느냐?”

이의방은 화를 내기는커녕, 정균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내 오늘만큼 네놈의 명줄을 취할 것이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정균의 목소리.

공역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사들이 순식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합하를 호위하라!”

공역장으로 뛰어 들어오는 군사들과 장수들.

이의방의 곁에서 엄호하는 군사들과 장수들 역시 호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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