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64화 (64/159)

064화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신분에 구애받지 않을 세상을 열 것이라고, 굳게 마음을 다잡고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흘 후 당산나무에서 만나세. 우리와 함께할 이들은 당산나무 아래로 모이라 전하게들.”

“알겠네.”

망이와 망소이 그리고 모여 있던 장정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흩어졌다.

“소이야, 확실하게 우리 소민들은 모두 모이느냐?”

“물론이오. 우리 마을은 전부 형님 말이라면 다 듣지 않소.”

망이는 살짝 걱정하였다.

저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모일 사람만 당산나무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하지만 조금 불안한 건 있었다.

이 일을 가지고 누군가 고변(告變)이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아찔했다.

한편으로는 괜히 이야기하였나 싶었다.

* * *

조정에서 이의방을 대신하여 일하던 현수는 신료들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건에 대한 수결도 번갈아 하였다.

“정주 공, 남쪽지방에 가뭄이 심하여 세금을 내기 곤란하다는 상소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금을 감면 해주심이 어떠신지요? 구휼미마저도 점점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옵니다.”

“조정 재정은 어떠합니까?”

“일 년 정도는 문제가 없습니다.”

“일 년… 확실한 겁니까? 확실치 않으면 다시 조사해서 올리시오. 그나저나 구휼미가 문제군요. 병부상서.”

“예. 정주 공.”

병부상서가 답하였다.

“군량미는 얼마나 확보되어 있습니까?”

“군량미는 모든 군영으로 보내었습니다. 묵힌 쌀들이 있긴 한데…….”

“급한 대로 묵은쌀이라도 풀고, 귀족들에게만 세금을 매겨 세금을 징수하세요.”

“허면… 귀족들이 반발할 것이온데…….”

“없는 자에게는 걷어 들이고, 있는 자에게는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지금 나를 떠보는 겁니까? 호부 상서.”

“아… 아니옵니다. 정주 공, 어찌 그런 말씀을…….”

현수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호부 상서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귀족들의 반발이 있으면 내게 말하세요. 합하께 서신을 올리겠습니다.”

“아, 예… 정주 공.”

호부 상서는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정주 공, 어사대에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예. 말씀하세요.”

“해주에 있는 지방관이 제 일을 하지 않고 일들을 모두 미루고 있다고 하옵니다. 돈을 받아야지만 일을 처리해준다는 상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사옵니다.”

“금오위 상장군과 의논하여 금오위를 보내 지방관을 참형에 처하시오.”

“예. 정주 공.”

일사천리 알아서 답을 내주는 현수였다.

권한대행을 한 첫날에는 아주 난감하였지만,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예부 상서 유응규가 현수를 많이 도와주었다.

읽는 법부터 시작해서, 현수가 고민하고 있으면 그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해결 방안을 내놓아 주었다.

그중에서 들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였고, 좋다고 싶으면 수결해 버렸다.

이제는 유응규가 내주지 않아도 들어보면 뭐가 문제인지 바로 인식이 되어 답이 나왔다.

“정주 공, 이번 은광개발권 말입니다.”

“아… 예. 어찌 되었습니까?”

“살피어 보건대 위험 수가 많습니다.”

“그럼 위험을 배제하고 개발하는 건 어려울까요?”

“송구하오나, 그건 어렵습니다. 정주 공.”

“그럼 이리합시다. 은광개발은 합하께서 오시면 결정하는 것으로 합시다.”

어려운 사안인 만큼 현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정주 공, 이번 이부에서 인사에 대해 말씀드릴까 하옵니다. 경인년 이후로 관리들은 급한 대로 새로이 뽑았지만, 아직도 관원이 부족한 실태입니다. 어찌 처결해야 할지 답을 내어주시옵소서.”

“이부에서는 답이 나왔습니까?”

“예. 다시 과거를 재개하여 귀천을 가리지 않고서 뽑는 것입니다. 음서제도로 등용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도록 하시오.”

이부상서는 고개를 숙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방관리들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이 귀족들이 지방을 운영하였다.

지방을 관리하기 위해 어사들을 많이 파견하여 살피고 살피어 장계를 받아왔다.

어사들을 매수하는 귀족들이 있었기에 장계 등으로 속여 오는 것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다.

이에 따라 어사를 파견하면 몰래 다른 어사를 파견해서 살피었는데 거기서 또 문제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나마 개경과 가까운 곳들은 안정적이었지만, 동북면과 남쪽 지방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 * *

당산나무 아래,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예상치 못한 인원수에 망이는 놀랐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나라에 불만이 있는 것이었다.

소부곡민뿐만 아니라, 귀족의 수탈에 못 이겨서 나온 양민들까지.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당산나무 아래에서 모여들었다.

낫, 괭이, 죽창 그리고 몽둥이까지 무기로 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들고 나왔다.

“형님…….”

망소이는 망이를 바라보았다.

며칠 만에 약 오백여 명이 모여든 것이다.

“망이, 우리는 자네와 함께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네!”

“모두 들으시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순간, 우리는 한 형제나 다름없소이다! 우리는 먼저 현을 공격하여 병장기를 확보한 후에 차례대로 귀족들을 공격할 것이오! 귀족들의 사병들이 문제이지만, 우리가 당한 수모를 고작 사병들 따위에 지지 않을 것이오!”

“옳소! 옳소!”

많은 이들이 소리치며 외치기 시작하였다.

“이 썩어 빠진 세상을 뒤집어 봅시다!”

“와아아아!”

“이제부터 우리의 대장은 망이요! 아니 그렇소!”

“옳소! 옳소!”

많은 이들이 호응하며 나서기 시작하자, 망이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자, 갑시다! 더러운 세상을 뒤집는 첫걸음을 말이요!”

“갑시다! 가자!”

“우선 지휘체계가 확실해야 하오! 내 아우가 부대장이 될 것이오! 소이야, 매일 같이 술판을 벌이는 기루로 향해라. 그곳에 웬만한 지주들이 다 붙어 있을 것이다.”

“맡겨만 주시오. 내 확실하게 밟아 놓을 것이니.”

망소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나를 따라올 이들이 누구요! 앞으로 나서시오!”

망소이의 외침에 수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다.

이렇게 망이 망소이의 난은 공주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난이 일어날 거라고는 공주 귀족들은 상상도 못 하였다.

곧 어떤 일이 들이닥칠지 말이다.

콰앙!

관아의 문을 부숴버리면서 수많은 인파들이 들어갔다.

문이 뚫리자마자 군사들과 지방관은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지사를 잡아라!”

“와아아아!”

수많은 사람들이 군사들을 몽둥이로 쥐어패기 시작했다.

검을 뽑아 든 군사들을 향해 낫과 괭이를 휘두르면서 위협을 가하다, 어느 한 이가 뒤에서 낫으로 군사의 등을 찍어 버리고 말았다.

솨악!

“커헉”

뒤에 있던 군사가 낫으로 찍은 이를 베어버리자, 이를 본 이들은 분노하여 미친 듯이 군사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낫과 몽둥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군사들을 죽였다.

그 모습은 마치 너 죽고 나 죽자는 형식이었다.

군사를 무참하게 찍고, 패고 하는 이들은 야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고, 군사들은 그들의 분노의 희생양이 되어 가고 있었다.

“당장 개경으로 가서 소식을 알려라. 들리는 곳마다 민란이 일어났다고 알리란 말이다!”

“지사는…….”

“지사가 무슨 소용이냐! 이미 관아는 뚫렸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사는 무슨 지사!”

한 남자가 외쳤다.

“예! 알겠습니다!”

젊은 군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하아…….”

지사는 자리를 비웠고, 관아를 지키는 건 산원 한 사람뿐이었다.

예전부터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다.

향, 소의 부곡민부터 시작해 많은 이들에게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해온 지사였다.

반란이 일어나자마자 지사는 어디로 꽁무니를 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쾅!

관아의 문이 부서졌다.

반군들이 안으로 들이닥치는 소리가 들렸다.

산원은 이미 졌다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검을 빼 들어 그대로 자신의 목을 그어 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며 그대로 산원은 털썩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와아아아아아아!”

공주 관아를 접수한 망이었다.

자신들을 수탈하였던 귀족들의 목이 관아 앞에 내걸렸다.

그리고 망이는 이렇게 외쳤다.

“이제부터 나는 산행 병마사로서 여기 있는 이들을 이끌 것이오!”

“망이 산행 병마사! 만세!”

망소이가 외치자, 수많은 이들이 소리치면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에 망이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향, 소 부곡민에 이어,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사노비들까지 합세하면서 천여 명이 되었다.

이 소식은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민란의 불씨가 붙여진 것이다.

* * *

며칠 후.

“부사 대감! 부사 대감!”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급히 찾는 목소리로 인하여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부터 따라 마신 후에 밖으로 나갔다.

“천 장군, 새벽부터 무슨 일이오?”

“급보입니다.”

“급보? 합하께 무슨 일이라도 있소?”

“그게 아닙니다! 공주에서 민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하필 이의방이 없을 때 공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현수는 덤덤하게 천시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규모는? 반란의 주동자는 누구인가?”

“그건 아직 보고된 게 없습니다. 부사 대감.”

“신료들은?”

“지금 중방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추밀원에 일러 황제 폐하께 반란이 일어났다고 보고토록 하여라. 그리고 2군 6위의 모든 장수들을 집결시키고, 사병 대장에게 명을 내려 합하의 저택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 오지 못하도록 해라. 모두 내 명이 있을 때까지 경계태세를 갖추도록 하라 이르라.”

“예! 부사 대감!”

‘대체… 누가 반란을…….’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막 시작하려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아…….”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현수는 스스로 갑주를 입기 시작했다.

호갑을 착용하고, 완갑을 착용한 후에 경번갑까지 입었다.

마지막으로 어검을 패용하고는 밖으로 나가 중방으로 향하였다.

중방에 모여든 신료들.

2군 6위의 장수들도 모였다.

감문위, 좌우위 등의 상장군들은 모두 이의방을 따라갔고, 그 휘하의 대장군들이 중방에 참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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