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63화 (63/159)

063화

“나라에서 배운다는 놈들이 그 모양이니… 나라 꼴 잘 돌아가겠구나. 네놈들은 과거를 보지 말거라.”

“뭐요!?”

“틀린 말을 하였더냐. 국자감에서 학업을 하는 놈들이 예의는 어디다 버리고 와서 이리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이러고 다니는 거 네놈들의 부모는 아느냐? 알고 있다면 참으로 장하다고 생각하겠구나!”

“이런…….”

부모까지 들먹이는 현수.

그러자 학생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뭐 하는 짓입니까!”

기방의 행수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저는 이곳의 행수입니다. 듣자하니 학생분들께서 정말 너무한 게 아닙니까?”

“뭐? 어이, 행수! 돈 가져왔잖아!”

퍽!

국자감 학생이 전대를 내팽개치며 행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이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 천시호와 관원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수, 돈 주면 알아서 기어야지! 왜 지랄이야!”

“여기는 기루입니다. 시정잡배(市井雜輩)처럼 행패를 부리시면 국자감 학생이라고 하여도 끌어내겠습니다! 그리고 저분들이 누군지 아시고 이리 함부로 대하십…….”

퍼억!

“크헉!”

듣다 못한 한 학생이 행수의 배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행수는 몸을 굽히다가 옆으로 툭 쓰러졌다.

“돈 받고 웃음 파는 것들이 말도 많아요…….”

강하게 복부를 맞았는지 쉽게 숨을 내쉬지 못하는 행수였다.

그걸 비웃는 학생들의 행동에 보다 못한 현수가 소리쳤다.

“이런, 개만도 못한 놈들이 있나!”

현수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자, 학생들은 모두 현수를 노려보았다.

“네 이놈들! 이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추밀원부사겸육위대장군이시자, 정주 공이시다! 어서 예를 갖추어라!”

천시호의 외침에 학생들은 시퍼렇게 얼굴이 질려가기 시작하였다.

추밀원 관원들 역시나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추밀원에 회포를 풀고 있는 자리에서 감히… 그것도 정주 공 앞에서 무슨 추태이냐!”

“대체 국자감에서 어찌 가르치길래 이리 개판인 것이냐!”

추밀원 관원들은 한마디씩 내뱉으며 질타하기 시작하였다.

현수가 말없이 행수를 가리키자, 천시호는 곧장 행수에게로 다가가서 등을 여러 번 쳐주기 시작했다.

툭툭툭.

숨이 제대로 쉬지 않아, 얼굴이 붉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던 행수였다.

“대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국자감 학생들이 넙죽 무릎을 꿇고서 싹싹 빌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꼴도 보기 싫으니, 저놈들을 모조리 끌고 나가라! 어서!”

현수의 외침에 밖에서 행수의 명을 기다리고 있던 장정들이 검을 들고 들이닥치더니, 학생들을 모조리 끌고 나가기 시작하였다.

“대감! 대감!”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학생들의 행동에 불쾌감을 느낀 현수는 주먹을 꽉 쥐고 밖으로 나갔다.

추밀원 관원들과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행수를 살피던 천시호도 뒤를 따라 나갔다.

이미 밖에는 무릎을 꿇고, 불이 나도록 손바닥을 비비며 빌고 있는 국자감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현수는 이걸로는 부족한 듯싶었다.

“네놈들은 국자감의 명성을 더럽혔다. 또한 내 앞에서 감히 말로 표현이 아니 될 정도로 무례를 범하였으며 개돼지도 안 할 짓을 했으니…….”

현수는 천시호가 들고 있던 검을 빼앗아서는 검 자루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검집으로 기세 좋게 나왔던 놈부터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퍽! 퍽! 퍼억! 퍽!

사정 봐주지 않고서 두들겨 패버리는 현수.

머리, 등 가릴 것 없이 계속 구타했다.

다른 학생들 역시 골고루 미친 듯이 쥐어패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의 피가 온몸에 튀었고, 그 누구도 현수를 말릴 수 없었다.

“대감! 죽겠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천시호가 보다 못해 나서서 소리쳤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현수는 천시호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쥐어 패댔는지 현수는 온몸에 피 칠갑하였는지도 몰랐고, 머리가 산발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학생들은 맞을 대로 맞아서 끙끙 앓는 소리만 해대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 팬 것인데도 말이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피 묻은 검집을 본 현수는 바닥에 내팽개쳤다.

“…검은 내가 하나 사주겠네.”

“아닙니다. 손에 오래 익혀서 괜찮습니다. 대감.”

“미안하네… 내 것으로 쳤어야 했는데… 그나저나, 이대로 돌아갔다가는 마님들께서 놀라실 텐데. 허참…….”

“소장의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하하하하하.”

현수가 크게 웃기 시작하다가 뒤를 다시 돌아보았다.

널브러져 있는 개만도 못한 국자감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이다.

“부사 대감, 송구합니다… 앞으로는…….”

“괜찮네. 행수. 자네 몸이나 잘 챙기게.”

현수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천시호는 곧장 떨어진 검집을 집어 들고서 검을 집어넣고는 현수의 뒤를 따랐다.

“행수, 어찌합니까?”

이제 손님은 다 받았다.

세상 잃은 표정을 짓는 행수는 시선을 돌렸다.

“가서 일들이나 해.”

“예… 행수.”

* * *

“나 때문에 미안하네.”

“어인 말씀이십니까. 부사 대감.”

“내일 아침 되면 지랄 나겠구만.”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천시호는 장담하였다.

“응?”

“현재 합하의 대행 일을 하신 겁니다. 게다가 학생들이 잘못하여 벌어진 일입니다.”

“그렇지. 자네 말이 맞네.”

현수는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나와 자리에 앉았다.

이에 천시호도 자리에 앉아 술병을 들었다.

“산삼주입니다.”

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천시호가 현수의 술잔에 잔을 채우자, 현수는 짓궂은 농담을 하였다.

“내가 이거 먹고 쓸 데가 없는데… 내가 잠을 못 이루면 천 장군이 책임지게.”

“예! 책임지겠습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 * *

다음 날 아침.

산삼주를 들이키고 난 후에 푹 잤다.

어제 얼마나 마셨는지 머리가 띵하여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속은 멀쩡하였다.

어제 천시호의 부인이 솜씨를 발휘하여 맛난 것들을 해주어서 그런지 아직도 속이 든든하였다.

“아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감, 괜찮으십니까?”

관원이 물어왔다.

“아직 머리가 띵하네. 그나저나 어제 일로 분위기를 망쳐 미안하네.”

“아니옵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대감.”

현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사 대감, 국자감 박사께서 대감을 뵙기 청하옵니다.”

어제 일로 인하여 온 듯싶었다.

하긴 반 죽여 놓았으니, 안 쫓아오면 이상한 일이었다.

“모셔라.”

덜컹.

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오는 국자감 박사였다.

그의 표정에서는 내심 좋지 않은 안색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앉으시죠.”

“아, 예.”

박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저…….”

“어제 일로 오셨습니까? 내가 반 죽여 놓았지요.”

“송구합니다.”

박사는 현수에게 사죄하였다.

하지만 현수는 사죄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왜 박사께서 사죄하십니까? 사죄하려면 그놈들이 와서 해야지요. 어제 정말 불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해 국자감 박사는 두 눈을 찔끔 감았다.

현수의 말 한마디에 현 국자감 박사라는 자리를 잃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말이 나오든지 그냥 듣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제 난동을 부린 그놈들 전부 국자감에서 퇴출시키세요. 그리고 다시는 국자감 및 태학에 절대 입격(入格)을 허락하지 마세요.”

“대, 대감… 그건…….”

“왜요? 너무하다고 생각합니까? 학생이라는 놈들이 기방으로 들어와 난장판을 만들어 놓지 않나, 사람을 폭행하지 않나… 그게 국자감 학생입니까? 시정잡배들도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요.”

“알겠습니다. 대감의 뜻에 따르도록 하지요.”

박사는 고개를 살며시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제 일이 잠시 떠오르자,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학생인지 잡배인지 모를 듯한 추한 행동이 떠오른 것이었다.

“잘하셨습니다. 그런 놈들은 관원이 되어서도 사고치고 다닐 게 뻔합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자네들이 봐도 그렇지?”

“예. 대감.”

현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추밀원이 이렇게 조용해서야.”

명을 출납하는 곳인데 조용하다.

실권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황제의 명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신료들은 추밀원으로 문건을 가져와서는 현수에게 보여주었고, 현수는 문건을 살펴보고는 수결(手決)을 해주었다.

다만 수결할 때 애매하거나, 군에 관련되어 있어 중요한 것들은 전부 한쪽으로 빼놓았다.

이의방이 와서 보고 수결해도 늦지 않으니 말이다.

* * *

어느 한 마을 환하게 불이 켜진 상태에서 장정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더는 못 참겠습니다. 나라가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이오.”

“형님 말이 맞소이다. 내 자식 놈들까지 이렇게 살게 할 수는 없어요. 사람 취급도 못 받으면서 이리 못 살겠소.”

장정들은 맞는 말이라며 수군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들고 일어납시다. 더 이상 귀족 놈들에게 휘둘리며 살 수는 없소.”

“맞네. 나는 자네를 따르겠네. 내 자식 놈들도 이렇게 살게 할 수는 없네.”

“망이, 자네 말이 옳아. 나도 따르겠네.”

“나도 따르겠소. 내 딸아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안 풀리오.”

이들을 선동하는 이는 다름 아닌, 망이었다.

현수가 우려했던 대로 망이 망소이의 난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많은 장정들은 망이의 말에 선동되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귀족들의 수탈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대… 우리 어찌합니까? 무기도 없는데 어떻게 들고 일어납니까?”

“새벽 시간에 관아에 들이쳐서 우두머리부터 베어 버린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소. 그리고 매일같이 기방에 틀어박혀서 우리에게 가져간 것으로 놀고먹는 놈들도 죽여 버립시다. 그렇게 그놈들의 곡창과 재물로 우리가 먹을 양식들을 채우면 됩니다.”

“그건 그렇지만… 재물을 쌓아 뭐하나. 우리가 일어나면 역도라고 나라에서 말할 것이고 함부로 활동할 수도 없지 않은가.”

변화를 위해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뭔가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들. 내 미리 생각해놓은 것들이 있으니. 각 마을에도 미리 연통(煙筒)해놓았네. 귀족들과 나라에 불만이 많은 이들이 우리와 함께하기로 하였네. 이제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나는 따르겠네. 자네가 어디를 가든 말이야.”

“형님, 우리는 형님에게 줄곧 의지를 해왔으니… 이번 형님의 결정에도 무조건 따르리다.”

망소이의 말에 망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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