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62화 (62/159)

062화

이의방의 사병은 일반 사병의 몇 배는 되어, 수천에 달했다.

사병이었지만, 사병조직으로 일구어낸 군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즉 이의방의 근위병 같은 존재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추밀원부사겸육위대장군이라는 것은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있는 자리라고 볼 수 있었다.

허울뿐인 황제를 옆에서 모시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왕명 출납과 숙위군의 의장 역할을 하였다.

명목상으로는 왕명 출납이었지만, 현재 추밀원은 이의방의 명을 출납하는 곳이 되었다.

황제가 아무 짓도 못 하도록 만든 자리가 바로 추밀원부사, 추밀원이었다.

또한 위위경이 부재일시, 견룡, 순검의 지휘권도 갖게 되었다.

“합하, 추밀원부사는 한문준 대감이 계시는데… 왜… 저를…….”

“한문준을 남경 유수로 보내려 한다. 남경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한문준이 나을 듯하여 남경 유수로 가라 하였다. 추밀원부사 자리가 공석이니… 네가 들어가면 된다. 임시적으로 유응규가 맡고 있으니, 그리 알고 인계를 받거라.”

“예. 합하.”

“추밀원에 있으면서 괘서에 대한 것도 좀 알아보거라. 필시 주변에 괘서를 쓴 자가 있거나 아니면 시킨 이가 있겠지.”

“아, 예… 알겠습니다. 합하. 하오면 추밀원으로 갑니까 아니면 훈련장으로 갑니까?”

“훈련장으로 가거라.”

“예. 합하.”

* * *

개경 동문 밖, 도성에서 약 40리 떨어져 있는 곳에 주둔지가 있었다.

바로 이의방의 사병으로 만든 군대가 말이다.

겉에는 티가 나지 않게 목책을 이용해 방벽을 쌓았다.

평소에는 가택을 지키는 사병 백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고, 이의방을 호위하는 사병만 오십 명 정도 됐다.

“오셨습니까. 합하께 미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현수를 맞이하는 건 다름 아닌, 사병 대장 박지영이었다.

“가세.”

“예. 대장군.”

박지영은 먼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였고, 현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수많은 군사들이 박지영이 아닌, 현수가 지나갈 때 모두 고개를 숙이었다.

이제 이곳의 지휘관은 박지영이 아니라, 유현수였기 때문이다.

계단에 오르고 장대에 도착하자, 십여 명이나 되는 박지영급의 대장들이 현수에게 고개를 숙이었다.

“사병들은 모두 집결시켰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천의 사병들이 일렬로 쭉 서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오늘부터 너희들을 지휘할 추밀원부사 유현수다!”

“추웅!”

사병 전체가 외치며 군례를 올리었고, 현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희열이라는 것을 느껴본 현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계속해서 훈련에 전념하라! 너희들은 합하를 옆에서 모시는 게 우선이니, 단 한 명도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추웅!”

현수의 외침에 답을 충으로 끝낸 사병들이었다.

“천시호 장군이 중간중간 들를 것이다.”

“예. 대장군.”

“이제 나는 황궁으로 가봐야 하니, 나머지는 잘 부탁하네.”

“예! 대장군.”

짧게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주둔지 밖으로 향하였다.

* * *

황궁으로 가서 추밀원의 일을 처리하고 나면 요즘 들어 항시 문을 열어 놓는다.

주위에 돌아다니는 궁녀들 보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따금 한 번씩 괜찮은 궁녀들을 보면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그걸 아는 듯, 궁녀들은 현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다가 자기 갈 길로 가버렸다.

벌써 이렇게 생활한 지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의방은 북방을 다시 시찰하겠다며 일주일 전 군을 이끌고 출발하였다.

“천시호입니다.”

“들게.”

덜컹.

방문이 열리고, 천시호가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석 달 전, 추밀원부사겸대장군이 된 후로 부장 후보를 뽑아서 우복야 이준의가 건네었지만, 현수는 천시호 한 사람만을 뽑았다.

부장을 한 사람씩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뽑고 싶어서였다.

게다가 이준의가 가져온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귀족들의 자제였고, 칼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놈들이었다.

청탁을 받았으니, 현수의 부장 자리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한 것이었다.

“부사 대감, 준비가 다 되었다는 연통입니다.”

“가세.”

현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천시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현수와 천시호가 온 곳은 시끌벅적한 기루(妓樓)였다.

“크군.”

“예. 이곳이 개경에서 제일가는 기루입니다. 부사 대감.”

천시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시지요.”

천시호가 먼저 앞장서니, 현수는 뒤를 따라갔다.

기루는 정말 오랜만에 오는 곳이었다.

그동안 이의방의 명령만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일 처리만 계속하였기에 도통 시간이 없었다.

신료들이 여기저기서 불러대니, 가지 않을 수가 없어서 쉬지 않고만 달렸다.

추밀원이라는 자리가 정말이지 권력의 꽃이라고 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거기에 이의방과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사이다 보니, 현수에게 청탁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대부분은 거절하였지만, 거절치 못한 건 그냥 받아들였다.

머리는 좋은데 운이 없어서 낙방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뇌물 먹고 받아들였더니, 관료 두세 몫은 해내고 있었다.

이게 웬 횡재일까.

그리고 그렇게 뽑은 신료들은 자신만 보면 넙죽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남에게 허리 굽히면서 인사만 하던 현수가 이제는 대부분에게 인사를 받으니,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청탁뇌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들이 오고 갔다.

현수는 정주와 강화도의 토지를 받았고, 정주와 강화 통틀어서 식읍 1만 호가 있었다.

‘정주 공’이라는 봉작도 받았으니, 감히 이의방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기어오를 수가 없었다.

덜컹.

방문이 열리자, 추밀원에 관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현수에게 인사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정주 공.”

“다들 앉게.”

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상석으로 가서 자리에 앉자, 관료들 역시나 자리에 앉았다.

천시호는 현수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가지는 술자리가 되었네… 하하하.”

“정주 공 덕분에 일도 많이 배울 수가 있어서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별말을… 하하하하.”

빈말이라도 듣기 좋았다.

“정주 공의 은혜로 현재 추밀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하하! 이 사람아! 그 이야기는 왜 해? 누가 들으면 어찌하려고.”

“아… 송구합니다. 정주 공.”

“하하하하! 자, 일단 술잔에 술 좀 채우고 마시세!”

“예! 정주 공!”

“예! 부사 대감.”

각자 술병을 들고서 술에 잔을 채웠다.

일 인당 한 병씩 주어졌다.

“자, 그럼 기루에 왔으니… 놀아봐야지… 아니 그런가! 밖에 누구 있느냐!”

현수는 크게 외치자, 문이 활짝 열리며 기녀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각자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찾아가 앉기 시작했다.

어디 흠잡을 데 없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기녀들이었다.

아무래도 현수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행수라는 자가 직접 골라 들여보낸 듯싶었다.

“그래. 하하하하.”

한쪽에 현수의 눈에 딱 들어오는 기녀가 앉자, 좋다고 밝은 미소를 짓는 현수였다.

천시호 역시나 밝은 미소를 띠었다.

추밀원 관원들 역시나 불만스러운 표정이 없었다.

“어디 한번 놀아보자!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웃음 소리와 함께 악사들이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풍악 소리와 모든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기 시작했다.

* * *

“아니 됩니다!”

“무엇이 아니 된다는 거냐? 국자감 학생들은 여기 와서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법이 있더냐?”

젊은 국자감 학생이 기녀 하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하였다.

“죄송합니다. 큰 채는 중요한 자리가 아니면 들어가실 수 없는 게 규칙입니다.”

“규칙? 규칙은 깨라는 것이지. 아니 그런가!”

“하하하하하!”

십 수 명의 국자감 학생들은 기녀를 크게 비웃었다.

국자감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큰 채로 발을 옮겼다.

“이리 오너라! 국자감 행차시다!”

“하하하하하!”

학생들은 만류에도 이동하였고, 큰 채로 들어서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는 큰 채.

그중에서도 유난히도 시끌벅적하게 풍악이 울려 퍼지는 곳에 시선을 두었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기녀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하였다.

“아니 됩니다. 어서 내려가시지요. 여기는…….”

“닥쳐라.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냐? 자, 여기 있다.”

툭.

전대(纏帶)를 던져주는 한 학생이었다.

기녀는 끝까지 아니 된다고 말하였으나, 학생들은 오기가 들었는지 이곳에서 무조건 들어가겠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때 어느 한 학생이 풍악이 울리는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로 가겠네!”

“거긴 안 됩니다! 지금 연회 중인데 거기를 어찌 들어가려 하십니까. 더군다나 저기는 회포를 푸는 자리이온데… 절대 아니 됩니다.”

“자! 가세!”

“하하하하하!”

국자감 학생들은 기녀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서 풍악이 들려오는 곳으로 향하였고, 기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곧장 어디론가 뛰어갔다.

“하하하! 이거 자리까지 뺏게 생겼구먼!”

“돈 주면 알아서들 모셔야지. 행패를 부려야지 말을 들어 먹는구만. 하하하!”

국자감 학생의 말에 다른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들 문 앞에 멈추어 서더니, 문을 활짝 열었다.

“…….”

술을 마시다가 문이 활짝 열린 상황에 추밀원 관원들은 당황스러워하였다.

국자감 학생들이 이렇게 떼거리로 몰려왔으니 말이다.

현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술잔을 내려놓았다.

“누구인가?”

“아이고, 나리들 송구합니다만 지금 이 자리를 저희에게 주셨으면 합니다만.”

“네 이놈!”

천시호는 학생들의 말에 분개하면서 소리쳤다.

“감히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느냐!”

“내 그걸 알아야 하오? 그거 보아하니… 그냥 관원 같은데… 중요한 자리 아니면 우리 국자감 학생들도 회포나 풀게 좀 비켜주시는 게 어떻겠소?”

“저, 저런!”

천시호가 검을 집어 들고 일어나려 하자, 현수가 이를 말렸다.

“회포를 푼다… 그럼 하나만 묻겠네. 무릇 국자감 학생이라면 기본적인 예의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니겠나?”

“나으리, 그럼 나으리는 기생집에서까지 예의를 차리시며 술을 마십니까?”

“푸하하하!”

“크하하하하!”

학생들은 웃기 시작하였고, 그런 학생들을 보는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