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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58화 (58/159)

058화

“백 대장군이라… 하긴 두경승 못지않을 정도로 폐하께서 신임하는 자이니… 알겠소이다.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그리하게 해드려야지. 백 대장군에게 자세한 훈련보고를 좀 받아보게.”

“예. 합하.”

한문준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고 이의방은 눈이 침침한지 장계를 더 이상 보지 않고서 상석에 등을 기대었다.

“지금부터 작은 것들은 알아서들 처리하고 보고만 하시오. 군사와 관련된 것들은 따로 보고하도록 하시오.”

“예. 합하.”

이의방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중신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의방은 이내 중방 밖으로 나갔고, 중신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중신들은 행정 처리를 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일할 때는 일만 하고, 잡스러운 이야기는 하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일 처리만 해 나아갔다.

* * *

“폐하, 상국 합하께서 폐하를 알현하길 청하옵니다.”

“들라 하라.”

덜컹.

문이 열리자, 이의방은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황제를 알현하고 있던 백임지, 두경승은 이의방에게 군례를 올리었다.

“어서 오시오. 그래… 무슨 일로 짐을 찾았소?”

“폐하, 용호군과 응양군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더불어 숙직 군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시옵소서.”

“하하하, 절대 그런 것이 아니오. 뭔가 오해가 있는 듯싶은데…….”

“폐하, 환관을 가까이 두시는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상국…….”

황제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신이 폐하를 위해라도 가할 듯싶어서 그러시는 것이옵니까?”

이의방은 진지한 목소리로 사실을 묵직하게 내뱉었다.

두경승과 백임지 역시 이의방에게 대꾸할 수조차 없었다.

“지, 짐은… 응양군과 용호군을 믿으나… 황실의 경비는…….”

황제는 살짝 말을 더듬으며 이의방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폐하, 황실의 안전은 견룡군이 지키고 있사옵니다. 더불어 견룡군의 대부분은 응양군, 용호군에 속해 황도를 지키고 폐하를 지키는 친위군이옵니다. 어찌 그들을 멀리하고 환관을 옆에 두려고 하시는 것이옵니까?”

“짐은 황실의 내부 안전을 위하고자 시작하려는 것이오.”

황제의 말에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며시 숙이었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오니, 신이 무어라 더 말씀을 드리겠사옵니까. 폐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허나… 견룡군과 순검군은 그대로 두셔야 합니다.”

“알겠소. 그리고 고맙소…….”

이의방이 웃으며 뒤로 물러나 밖으로 나가자, 황제는 그제야 숨을 토해냈다.

“하아…….”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괜찮소이다. 그보다 백 대장군.”

“예. 폐하.”

“짐은 그대를 믿으니, 부디 훈련을 잘 시키도록 하시오.”

“예. 폐하.”

* * *

늦은 저녁.

아직 퇴청하지 않은 채로 이의방은 술을 마시며 장계를 살피었다.

“합하! 급보(急報)이옵니다!”

밖에서 들린 천시호의 목소리에 이의방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들라!”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천시호가 군례를 올리었다.

“무슨 일이냐?”

“강화도에 왜구가 상륙했다는 급보이옵니다!”

천시호의 말에 이의방은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강화도에 왜구가 상륙하였다니!”

“강화도에서 전령이 왔사옵니다. 합하!”

천시호는 곧장 강화도에서 올려보낸 장계를 건네었다.

이의방은 끈을 풀고서 펼친 후에 빠르게 살피었다.

짧고 간략하게 쓴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이의방은 장계를 집어 던져 버렸다.

“당장 비상령을 내려 전군을 소집하라!”

“예! 합하!”

천시호는 곧장 밖으로 나갔고, 이의방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걸어둔 지도를 바라보았다.

벌써 왜구가 강화도에 상륙하였다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성강 하구에 있는 벽란도가 약탈당할 확률은 매우 컸고, 그뿐만 아니라, 배가 오가는 길목을 잡아 약탈할 수도 있다.

자칫하다가는 외교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대식국 상인이 고려 황실로 바치는 조공품만 해도 양이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고려는 상거래로 구하지 못하는 것들을 외국 물품에 의존하여 사용하고 있었고, 고려의 상인들 역시 중간에서 약탈을 당한다면 크나큰 피해를 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만일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신이 변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고려의 바다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식국과 송나라 사신이 오는 게 뜸해질 것이었다.

“미치겠구먼… 대체 어떻게 강화도까지 들어올 수 있게 하였는가. 서해안이면 바닷길이 험하여 왜구들도 쉽게 넘어오지 못하는 곳인데…….”

의문이 들었다.

사실 침범한 게 왜구가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왜구를 가장한 고려인일 수도 있었다.

왜, 송, 대식할 거 없이 상선이 돌아다니는 바닷길에는 늘 해적들이 상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적들은 대부분 뭍으로 상륙하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뭍의 군사들에게 전부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려의 해안방어책은 타국에 비해 가장 월등했다.

지난 몇 년간, 고려인으로 구성된 해적들로 인해서 숱한 피해를 보았기에 해안방어책을 촘촘히 구성하였다.

그런데 그 방어책이 뚫리고, 도성 코앞인 강화도에 상륙하였다고 하니 이의방으로서는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합하, 좌우위 상장군께서 오셨습니다.”

“들라 하여라.”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좌우위 상장군 겸 문하시랑평장사 이의민이 안으로 들어서며 이의방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군사들은 소집하였겠지?”

“예! 합하! 이리로 오면서 명령을 내려놓았사옵니다.”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하! 각 군의 상장군들께서 오셨사옵니다!”

“들라!”

방문이 다시 열리면서 각 상장군이 들어섰다.

“합하!”

상장군들도 이의방에게 고개를 숙이었다.

“왜구가 강화도로 상륙한 것은 미리 들어서 알 것이다. 먼저 금오위 상장군은 도성 안팎의 치안을 유지해야 할 것이며 벽란도로 속히 5령의 군사를 파견하여 상인들을 보호하게. 좌우위 또한 사태가 시급하니, 대장군에게 명을 내려 금오위, 감문의를 지원하여 수도 안팎을 사수해야할 것이네. 또한 감문위는 도성의 외성, 내성할 것 없이 단단히 성을 지키거라.”

“명 받드옵니다! 합하!”

금오위, 좌우위, 감문위 상장군들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먼저 좌우위 상장군은 속히 강화도로 출병하여 왜구의 확산을 막도록 하고, 신호위는 교동도로 가서 해안을 방비하라. 그리고 흥위위는 각 지방군이 집결하는 대로 흥위위 상장군이 통솔하여라. 용호군과 응양군은 황실을 지키는데 단단히 경계할 것이다.”

“예! 합하!”

장수들은 큰소리로 답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추밀원과 상서령 신료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합하…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옵니다.”

“어서 오시오.”

신료들은 자리에 앉았다.

“경들도 다들 들었다시피, 왜구가 강화도에 상륙하였소이다. 이에 따라 군사들을 강화도로 보내었소. 왜구가 강화도에 상륙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라 보는데… 이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시오? 현재 병부의 책임자로 있는 병부상서가 직접 이야기해 보시오.”

이의방은 병부상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합하. 소신의 생각으로는 강화도 수군을 맡은 장수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리하면 강화도 방수 장군을 누구로 두면 좋겠는가?”

이의방은 병부상서의 말에 아니꼬운 말투로 묻자, 병부상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다가 답하였다.

“수군 장군으로는… 먼저 물길을 잘 아는…….”

“생각해둔 이라도 있소?”

이의방이 곧장 말을 끊어 버리며 재차 물어왔다.

병부상서가 끝까지 대답이 없자, 이의방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도망가는 왜구를 어찌 잡을 것이야!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장수에게 책임을 묻는다니! 그러고도 병부상서라 할 수 있는가!”

이의방의 말에 병부상서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예부상서.”

“예. 합하.”

“이번 사태에 있어서 어찌하면 좋겠소? 잘하면 외교적 문제가 생길 듯싶은데.”

“그러하옵니다. 합하. 하오나, 아직 생각해놓지 못하여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송구하옵니다. 합하.”

“…그러한가?”

예부 상서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상황에서 어떻게 처리를 할지 방도를 물으면 누가 쉽게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누구 시원하게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자가 없구만…….’

이의방은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리 쉬었다.

“합하, 육위 장군 응양군 상장군께서 합하를 알현하기를 청하옵니다.”

“오, 어서 들라 하여라!”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선 경대승과 유현수.

둘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고, 빈자리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현수를 지그시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4년 동안 서찰만 받아왔다.

현수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바로바로 처리를 해주었다.

몇 년만에 다시 현수를 보아하니, 이제 나름 사내다웠다.

4년 전만 해도 철없는 아이 같았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경들은 그만 물러가시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여 보고하시오.”

이의방이 신료들에게 말하자, 신료들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간 남쪽 사정은 계속 이야기를 들어왔다.”

현수와 경대승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었다.

“합하, 개경에 들어서며 들은 이야기인데… 정말 왜구가 강화도에 상륙한 것이 사실이옵니까?”

경대승의 물음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 아니야… 왜구만 잡으면 되니,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현수야, 내 너에게 말하였던 것 말이다.”

“아… 예! 합하.”

현수는 바로 답하였다.

“합하께 계속해서 서찰을 보내면서 보고를 드렸던 내용은 한치의 틀림이 없사옵니다. 제가 동경에서 직접 본 것은 너무나 처참했습니다. 동경에 사는 백성들의 반 이상이 노예이옵니다. 더군다나 어디 제대로 정착할 수 없는 양수척들은 남해안의 무인도로 들어가 해적이 되어 남쪽 일대를 약탈을 일삼고 있었고, 지주와 귀족을 죽이고 노예에서 풀려난 이들은 대부분이 산으로 들어가고 있었사옵니다.”

“좋지 않구나.”

이의방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동경유수가 문제였다.

동경유수를 바꿔 버리지 않는 이상, 상황은 더욱더 악화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동경의 내정상태도 불안했다.

동경이 대부분이 귀족들의 터전이다 보니, 백성들의 민심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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