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55화 (55/159)

055화

이의방은 계속해서 말하였다.

“전국의 승려들과 사찰들이 너무 많아요. 이 고려에는 중들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당신네 승려들이 세금을 냅니까 아니면 군역을 지기를 합니까. 나라의 인구가 800만이 넘는데 승려들은 십만이 넘지요. 내가 다 확인했습니다.”

“합하! 그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이 고려의 국교는 불교이옵고, 고려가 탄생하기 전부터 이 땅에 불교와 함께 해왔습니다. 불교는 태조 성조께서 나라를 창건하실 때도 있던 종교입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 올리지만… 합하께서는 불교를 심하게 핍박을 하고 계시옵니다.”

“핍박이라?! 하하하하! 핍박이라… 이거 봐! 불교의 병폐(病弊)는 생각하지 않는가! 당신부터 한번 다시 조사해볼까! 얼마나 비리가 나올지!”

“…….”

“평생을 편안하게 살던 자네들이 정녕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가! 승려들이 백성들에게 고리를 놓고 있고, 귀족 집안 자제들과 술과 고기를 밤새도록 처먹으면서 남의 집 부녀자와 처녀들을 보쌈하여 욕보이고 있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

“승려들이 불경 공부를 하는 것보다 집에 재물을 쌓아두는 걸 더 좋아한다고 들었네. 그뿐인가! 황실의 일에 간섭하여 이래라저래라하고, 함부로 정치에 간섭해서 굶어 죽고 있는 백성을 구휼(救恤)하지는 못할망정, 승려들부터 구원해달라고 하였었지! 귀족들보다 더 많이 빼앗는 게 바로 불교야! 알아!”

콰앙!

이의방은 다시 한번 더 상을 내리치면서 시선을 돌리었다.

“합하의 말씀도 맞는 말씀이십니다. 합하가 되신지 삼 년도 아니 되었지만, 합하께서는 많은 것을 시정하고 잡아 놓으셨사옵니다. 하지만 부디 승려들을 더 이상 죽이지 마시옵소서. 제가 이리 부탁드리옵니다. 합하…….”

승통 충희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이의방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죄 없는 승려들은 모두 풀어주겠소이다. 그리고 승통도 쥐 죽은 듯이 불경 공부나 하며 사시구려. 아시겠소이까?”

“예.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합하.”

“그리고… 승려들 단속 좀 하시구려. 툭하면 날 죽이네 마네 하면서 내 집으로 쳐들어오게 하지 말라 이 말이오. 그리고 한 가지 더… 더는 나랏일에 신경 쓰지 마시오. 아시겠소?”

“예… 합하.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였사옵니다.”

충희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얼마 안 있어 장군 천시호가 안으로 들어섰다.

“합하, 전의감에서 어의가 왔사옵니다.”

“들라 하라. 그리고 형장에 일러, 승려들의 죄의 무게를 따져 큰 죄를 지은 놈들은 공역장에 남기고, 나머지는 흥황사로 돌려보내도록 해주게.”

“예? 합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그들은 합하를 시해하려 한 놈들이옵니다. 결단코 살려두면…….”

“그렇게 해. 그리고… 네가 상약국을 현수 대신에 살핀다지?”

“아… 예. 그렇게 되었사옵니다. 합하.”

“그래. 알았으니, 그만 나가보거라.”

“…예. 합하.”

천시호는 고개를 숙이며 다시 밖으로 나갔고, 전의감에서 어의가 들어와서는 고개를 숙이었다.

* * *

현수와 경대승이 남경(南京)에 들어선 지 하루 정도가 흘렀다.

남경 사람들은 다행히 불편한 점 하나 없어 보였다.

남경이 삼경 중 하나인지라, 나름 치안 유지도 잘 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성곽들이었다.

경대승과 성곽길을 함께 걸으면서 살펴보았는데 특별히 남경에 문제는 없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이렇게 성곽에서 강을 내려다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한강을 타고 수많은 배가 오가고 있었다.

특히 예성강을 통해 벽란도로 가는 배들과 한강을 타고 서해안으로 나가고 있는 상선들이 정말 장관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저 대식국의 상선도 남경까지 올 수 있다는 게 신비로울 뿐입니다.”

현수의 말에 경대승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려가 어떻게 대외무역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대식국뿐만이 아니라, 벽란도에서 구하지 못하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이곳까지 오고 있었다.

대식국은 옛 아랍 지역의 국가로, 일찍이 통일 신라 시기에도 교류한 바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천축 즉, 인도에서 오는 상인들도 있었고, 저 먼 유럽의 상인들도 고려에 한 번씩 오고 있었다.

현수는 수많은 국가의 깃발들을 꽂은 배들이 한강을 타고 남경으로 들어오고, 떠나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려가 그 강한 몽고와 싸워서 어떻게 수십 년을 버텨왔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인재도 많았고 더불어 대외무역으로 부를 쌓아 올렸으니 가능한 것이었다.

“합하의 명대로라면… 자네가 길을 먼저 잡아 이동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이제 어디로 갈지 자네가 택해야지.”

“음… 이제 경주로 갈까 합니다.”

“경주… 동경 말인가?”

“예. 삼한갑족을 먼저 두루 살피어 볼까 합니다. 합하께서도 동의하셨습니다. 동경으로 가기 전에 곳곳을 살피면서 내려갈 것이고, 경주를 거쳐 전라도로 들어가 그곳을 살피다 개경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현수의 말에 경대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이렇게 내려가서 남경을 살피는 게 임무이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아. 앞으로 일을 할 때 내 눈치 볼 필요가 없네.

“알겠습니다. 상장군.”

“그리고 상장군이라 부르지 말고, 편하게 형님이라 하게.”

“아… 예.”

현수가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합하께서는… 내가 개경에 돌아오기 전에 반드시 역적 놈을 개경에서 내보내셔야 할 것이야.”

경대승은 섬뜩한 말을 중얼거렸고, 현수가 침을 꿀꺽 삼키었다.

애초에 경대승이 현수와 동행 하는 조건은 이러하였다.

경대승이 개경으로 돌아오기 전에 반드시 선황의 시해한 이의민을 정리하겠다고.

하지만 경대승은 이의방이 쉽게 이의민을 내치기 어려워서 둘러댄 말이란 걸 몰랐다.

사실 거짓말이라고 해도 경대승은 이의방이 이의민을 처리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하아…….”

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인데 쉽게 일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가시죠.”

“그렇게 하지.”

현수가 먼저 앞장서자, 경대승은 천천히 현수의 뒤를 따르며 성곽길을 걸어갔다.

* * *

남경에서 한 달 정도를 보냈다.

그 한 달 내내 말을 타기도 했고, 천천히 걷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중간마다 작은 마을을 들려 상황을 보았다.

딱히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다.

작은 마을에서 뭐 뜯어 갈 게 없었던 모양인지, 귀족들은 작은 마을에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구역에만 신경 쓸 뿐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에 귀를 기울여 가며 시간을 보냈다.

길면 한 달, 짧으면 열흘씩 한곳에 머물다 계속 이동하였다.

육로를 통해서 다닌 지 어느덧 오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동경으로 가는 길은 많이 불편하였고, 험난했다.

중간중간, 머무른 곳에 있는 마을과 현에 관한 사정을 서찰에 적어 이의방에게로 보내었다.

그리고 가끔 쉴 때마다 경대승에게 수박(手搏)을 배웠다.

일부러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언제 어디서 습격을 받아 재수 없이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경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산에서 사냥 나온 산적을 만난 적이 있다.

그날 죽는 줄 알았다.

다행스럽게도 경대승이 산적을 모두 처리하였다.

수박을 배우며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경대승이 철로 만든 봉을 하나 건네주었다.

처음에는 이걸 왜 주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 의미를 알았다.

병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 제일 기본으로 휘두르고 사용할 수 있는 게 봉이라고 했다.

창날만 붙이면 창이 되니, 봉으로 먼저 실력을 키우라고 하였다.

그렇게 현수는 경대승에게 봉을 배웠는데, 처음에는 가르쳐 주는 게 몇 가지 안 되었다.

내려치고, 올려치고, 좌로 치고, 우로 치고, 사선으로 내려치고, 찌르고.

이것만 반복하라고 하였다.

경대승에 말대로 아침마다 수박을 하고, 철봉을 휘둘렀다.

철로 만든 봉은 적어도 10킬로 정도는 되어 보였다.

이걸로 맞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말을 타고 가는데 산짐승들이 많이 보였다.

어제는 저녁에 늑대를 봤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서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늑대 무리의 공격을 받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했다.

경대승은 이런 일이 능숙한 듯, 횃불을 늑대를 향해 휘두른 다음, 검을 뽑아서 베어 버렸다.

그리고 늑대 가죽을 벗겨내었다.

이런 일에 익숙지 않았던 현수는 처음으로 늑대 가죽을 벗겨내는 걸 보았다.

한참 동안 경대승이 손질하는 것을 보다가 문뜩 현수는 경대승에게 물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능숙하게 할 수 있냐고.

경대승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사냥을 자주 하면 자연스럽게 배운다.”

그날 우리는 늑대고기로 배를 채웠다.

늑대고기는 질기면서 노린내가 났다.

하지만 육질은 쫄깃해서 오래 씹으면 고소한 맛이 났고, 후추와 소금 덕에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 * *

“그게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느냐!”

경대승이 현수에게 버럭 화를 내었다.

“다리에 힘을 주라고! 질질 끌려다니잖아!”

경대승은 질질 끌려다니는 현수를 한쪽으로 세게 밀어 버렸다.

퍽!

나무에 어깨를 부딪치며 엎어진 현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런 일은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라, 익숙한 듯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이건 형이 힘이 센 거야. 평생 칼 잡고 다닌 사람을 일반인이 어떻게 당해.”

경대승과 함께 노숙하면서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서로가 너무 편해져 있었다.

현수는 이제 대놓고 편하게 형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럼 평생 마부 자세나 하고 있을 게냐. 마부 자세 한다고 느는 건 없다. 실력이 늘려면 계속 연습해야 한다. 평생 힘을 길러 싸우려는 자와, 힘을 키우지 않고 평생 연습을 한 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느냐.”

경대승의 말에 현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하였다.

“당연히 힘센 사람이지.”

“틀렸다.”

“에?”

현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힘센 사람이 이기는 게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누가 이기는데?”

“연습한 사람이지. 왜냐? 힘만 세면 뭐하냐. 기술이 없는데. 기술 있고, 없고의 차이가 정말 크다. 마른 사람도 항우장사(項羽壯士)처럼 생긴 사람을 단번에 쓰러트릴 수 있어. 기술이 있으면 말이야.”

“아…….”

경대승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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