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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54화 (54/159)

054화

현수는 중방으로 들어가 이의방과 차를 마시며 대면하고 있었다.

“그래. 요즘 전의감은 어떠하냐?”

“예… 평소랑 똑같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합하.”

“하하하, 그래… 네가 이야기를 한 대로 전부 다 실행을 해 보았는데 오히려 나라의 이익이 계속 창출되니… 너에게 무엇을 해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드는구나. 더불어 폐하께서도 좋아하시고.”

이의방의 말에 현수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었다.

현수가 일 년간 추진해왔던 것은 이러했다.

첫째, 백성들의 건강이었다.

혜민국에 찾아오지 않아도 나을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기본적인 처치방법을 알려 주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친히 약방문을 써주며 가르쳐 준 지가 벌써 육 개월이었다.

그리고 그건 효과를 제대로 보았다.

두 번째는 바로 위생이었다.

뒷간과 어물전과 같은 더러운 곳은 여름철이 되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 석회가루를 뿌려 항시 청결함을 유지하도록 했다.

물 또한 가려서 먹게 하였다.

처음 개경의 수질 상태를 생각한다면 지금 개경의 상황은 최고였다.

윗물 아랫물 가리지 않고 목욕하고 마시고 빨래를 하니, 아이들을 피부병에 걸렸고 어른들은 위장병에 걸려 혜민국을 많이 찾았다.

현수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의방에게 확실하게 선을 긋자 하여 추진한 게 바로 윗물과 아랫물을 가리는 것이었다.

개경에 흐르는 강은 우물 쪽으로도 가게 해놓았다.

그렇다 보니 우물 역시 깨끗할 수가 없었다.

이에 현수는 개경의 모든 물길을 막아 버리고 물을 파냈다.

치수를 정비 한 지 석 달이 되자, 이제는 빨래는 아랫물.

마시고 씻을 물은 윗물로 정해 버렸다.

우물로 이어지는 물들을 따로 정비해두었으며, 곳곳에 우물을 더 사용할 수 있도록 땅을 파 우물을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윗물과 아랫물에서 물놀이를 금지시켰다.

개경 밖에 있는 강을 이용하라고 하였다.

그게 그나마 청결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이렇게 정비를 하여 개경 사람들에게 모두 알리니, 개경 사람들은 듣고 따랐다.

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개경에 잡을 것은 단단히 잡아 놓았고, 이제 각 관찰사들을 파견하여 개경에서 하던 그대로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대부분 이의방이 생각하고 추진하려고 했던 것들이다 보니 쉽게 누구의 반대도 듣지 않고서 진행할 수 있었다.

중신들 역시나 문제점을 고치는 데 있어서 함부로 의견을 내지 않았다.

아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동안 자신들도 겪었던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호소하니, 더욱더 일 처리는 쉽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현수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현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현수의 자리를 누군가는 반드시 해줄 사람은 있을 것이었다.

“현수야.”

“예. 합하.”

“그동안 개경에서 잡아 놓을 것은 다 잡아 놓았으니… 이제 살펴야 하지 않겠느냐. 서북면, 동복면에서도 계속해서 보고가 들어온다. 물론 북방은 사람들이 됨됨이가 되어서 걱정이 되지는 않으나, 남쪽이 문제야. 너도 내가 없을 때 보고를 몇 번이고 받아서 보았을 것이다. 형부 말이다.”

“예. 합하.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네가 직접 남쪽의 상황을 보고, 듣고 나에게 보고하거라. 너도 알다시피 경대승과 이의민 말이다.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니… 잘하면 둘이 검이라도 뽑을 기세다. 내 경대승에게 따로 일러 놓았으니, 준비되는 대로 응양군 상장군 경대승과 함께 남쪽으로 가도록 하거라.”

“…예?”

현수는 깜짝 놀랐다.

응양군 상장군 경대승과 함께 내려가라니.

더군다나 경대승과는 제대로 한번 말도 못 붙여 보았다.

그리고 분명 혼자 다녀오라고 했던 이의방이었다.

급히 일정이 변경이 되자, 부담스러웠다.

상대는 경대승에, 심지어 자신의 상관이다.

상관 모시고 남쪽으로 내려가라는 건 이의방을 모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렇다 보니 조금 불편감도 없지 않았다.

만일 싫다고 한다면 이의방이랑 또 입씨름해야 했다.

아니, 입씨름보다는 힘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차마 그럴 자신은 없었다.

이의방은 힘과 기술면에서 모두 뛰어나 무인 중에 최고의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은 이제 무예라는 것에 첫발을 내디딘 아기나 다름없었다.

“부담스러운 거 안다. 그래도 몇 년만 고생해.”

“예… 알겠습니다.”

이의방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합하,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아뢰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거라.”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현수는 정중히 인사를 하며 몸을 돌아서 중방 밖으로 나갔다.

“하아…….”

이의방은 한숨을 내리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북방에서 올라온 장계를 살피었다.

“이놈의 여진족들이 조용하다 고개를 치켜 들으려 하는구나.”

* * *

일주일 후.

이의방의 명을 받은 현수와 경대승은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향하였다.

이의방은 그들에게 남쪽 곳곳을 누비며 살피고 보고하게 하였다.

둘은 개경도를 살피며 나성 일부분에 붉은색 점을 곳곳에 찍어 넣어 확인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가보니, 개경도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현 개경은 인구와 민가가 밀집해 있어 길이 매우 좁아져 있었다.

화재라도 난다면 개경 전체 아니, 개경의 반 이상이 타 버릴 것이 분명하였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라, 이참에 개경 구조를 바꿔 보려는 이의방이었다.

호부에서는 이미 이에 대한 예산 편성이 나왔고, 공부에서도 역시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이의방의 명 한마디면 저택들을 전부 다 부숴버리고 새로 지을 수 있었다.

개경의 비어 있는 땅을 나라에서 사들여 집을 새로 지었다.

그리고 철거 대상의 집들의 주인들을 모두 새 주거지로 안착시켜 놓았다.

개경은 점점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합하, 공부에서 사람이 왔사옵니다.”

“들라 하라!”

덜컹.

문이 열리면서 젊은 관원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이의방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황제를 알현하는 듯, 젊은 관원들은 꽤 긴장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새로 그린 개경도를 내게 올린 것이냐?”

“예… 합하.”

관원들이 답하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물었다.

“허면… 내가 돈을 주면 개경이 새로 그린 개경도처럼 변한다는 것이냐? 길목은 얼마나 넓어지느냐?”

“마차들이 오가는 길목을 만들고도 사람 두세 명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이옵니다.”

“더 크게 만들면 수십, 수백여 명도 가능하다는 소리냐?”

“그러하옵니다. 합하.”

그 크기가 대충 짐작이 간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빈집을 다 때려 부수고, 도로를 재정비하는 것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적어도 육 개월은 걸릴 듯싶사옵니다.”

“그래… 그 정도는 걸리겠지.”

이의방은 관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상서가 추천하여서 너희들을 중히 쓰는 것이니… 개경의 일들이 탈 없이 끝나면 너희들 에게 내 직접 큰 상을 내릴 것이다.”

“예, 합하. 명심하겠사옵니다.”

관원들은 모두 다시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따로 명이 있을 때까지는 빈틈없이 준비하도록 하라.”

“예. 합하.”

관원들은 그렇게 다시 밖으로 나갔다.

“합하, 승통께서 합하를 뵙고자 하시옵니다.”

승통, 충희가 왔다.

충희는 정중부 이후로 단 한 번도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흥왕사에서 쥐죽은 듯이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던 충희가 자신을 만나고자 온 것이었다.

물론 이의방 역시 충희를 만나기 껄끄러웠다.

지난날, 정중부와 짜고 자신을 제거하려고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아니하였다.

그동안 나라에서 지원해준 덕에 불교는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승통 역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권위 있는 승통의 말이라면 황실을 움직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국교가 불교인 만큼 승통의 힘은 황제 못지않았다.

그런 승통을 죽이게 된다면 승려들이 들고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현재 자신을 안 좋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승통 충희까지 죽인다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승려들의 반란이 도처에서 일어날 것이었다.

“뫼시거라.”

저벅저벅.

충희가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었다.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승통 충희가 들어와 합장하며 이의방에게 인사를 하였다.

“승통께서 나를 보자고 하셨다고요?”

“예. 합하. 그렇습니다.”

“무슨 연유로… 나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충희가 먼저 자리로 가서 앉더니, 이의방을 당당하게 바라보며 말하였다.

“합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승려들을 핍박하지 마시옵소서…….”

“하, 핍박이라… 대사, 지금 핍박이라 하였소이까? 내가 승려들을 깡그리 잡아다가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합하…….”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해서 내가 승려들에게 죽을 뻔한 게 몇 번인지 아시오?”

“…….”

“귀법사의 승려 백여 명과 다른 절의 승려 이천 명이 나를 죽이겠다며 개경까지 쳐들어와서 내가 그 승려들을 다 때려죽여 버린 일이 있었소. 어디 그뿐이오? 정중부의 아들, 정균과 뜻을 함께한 종참이라는 승려도 있지요. 그리고… 승통께서도 정중부와 손을 잡으려고… 아니, 아예 잡으셨었지요? 그렇게 해서 나를 제거하고 더욱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

“불교의 위상을 더욱더 높은 자리에 올리려고 한 이유를 나는 승통께 묻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내 집안까지 승려들이 침범하여 나를 죽이려고 하였소이다. 그런데도 나는 승려들을 모두 잡아다가 죽여 버리지는 않았소이다.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니오? 어찌 그리 욕심을 부리십니까.”

이의방의 말에 충희는 당당하게 말하였다.

“정치라는 것을 운영하시다 보면 오해와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현재의 합하께서 하시는 일에 얼마나 많은 승려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아실 것이 아니옵니까?”

“허허허, 지금 승통께서 나를 협박하는 것이오? 승려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알아서 처신하라… 이 말이오?”

“협박이라니요… 합하…….”

승통 충희는 이의방의 태도에 살짝 당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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