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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51화 (51/159)

051화

국자감 학생들을 불러들여서 일을 시키려고 하니, 또 가르쳐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관직에 있는 신료들은 더욱더 힘들어질 게 뻔했다.

형부, 공부, 호부 상서들 역시나 인력 문제 때문에 힘들다며 하소연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된다면 많은 업무가 돌아가기는커녕, 마비가 될 게 틀림없었다.

전의감 쪽에는 의관들이 많아 전혀 문제가 될 것은 없는데 고려 전역의 보고를 먼저 받는 육부는 달랐다.

일단 이 문제는 반드시 타개(打開)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여봐라! 밖에 있느냐!”

“예! 문하시중!”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오는 녹사.

이의방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중서문하성, 상서성, 중추원, 삼사의 수장들을 들라 하라.”

“예, 문하시중.”

녹사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현재 모든 중신들의 인사이동이 완료된 상태였다.

상서성에는 문극겸을, 좌복야에는 이준의를, 우복야에는 윤인첨을, 중서시랑평장사에는 한문준을, 지문하성사와 중서문하성에는 조영인을 두었다.

참지정사에는 박육화를 두었는데, 원래 좌복야에 있던 것을 좌천시켜 추밀원부사에 두었다.

박육화가 좌복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의종 당시에 부도덕함을 알면서도 옳은 말은커녕, 여러 대신들에게 강요를 당해서 사령장을 쓰다가 결국 많은 간관들에게 욕을 먹었다.

그런 인간이 좌복야에 있다는 건 결단코 인정할 수 없어 추밀원부사로 보내었다.

추밀원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아니기에 그리로 보낸 것인데 예상외로 일을 잘하고 있었다.

홍중방은 무관이지만, 그래도 옳고 그름은 알아 어사대에 부로 명하였다.

이렇게 수많은 중신들을 인사이동을 시켰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틀은 잡아 두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문제가 될 것들을 지적해서 보고를 올리면 이의방이 살피고 시정 명을 내리었다.

가끔 중요한 일은 황제의 재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몇 달간 하나하나씩 처리를 하였지만, 아직도 갈 길은 태산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다면 재물이었다.

정중부와 그의 일파들이 귀족들에게서 받은 재물은 상상 그 이상이었고 토지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더욱더 다행인 것은 이광정의 재물이었다.

이광정의 창고에만 재물이 있던 게 아니라, 이광정의 침소 침상 밑에 따로 땅굴을 파내어서 창고를 만든 것이 드러났다.

그 안을 살펴본 결과 가히 상상초월이었다.

그곳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그냥 영원히 묻혀버린 재물이었을 것이다.

* * *

한편 전의감에 들어선 현수는 혜민국의 상황과 모든 장부를 밝힐 준비를 하였다.

전의감의 태의를 주축으로 하여 소감, 주부, 겸주부, 직장, 박사, 검약, 조교를 한 명씩 참여시켰으며 검약, 조교 또한 각각 20여 명씩 준비시켰다.

이로써 혜민국 조사를 마칠 준비를 하였다.

“장군, 그럼 보고는 후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저도 같이 갈 겁니다. 저도 전의감의 소속되어 있는 전의이자, 박사가 아닙니까.”

“그럼 같이 가시지요.”

“네.”

태의와 현수는 인원들을 이끌고 함께 혜민국으로 향하였다.

‘정말 미치겠네… 감을 못 잡겠어.’

이의방이 대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현수였다.

차라리 대놓고 시원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 * *

촤악!

채찍을 휘두르며 군사들과 부장들이 매섭고 가혹하게 죄수들을 다루었다.

“서경유수께서 오늘까지 해놓으라고 하셨다! 하지 못한다면 다들 오늘 죽을 것이다! 이놈들아! 어서 서둘러라! 이놈들아!”

촤아악!

채찍을 강하게 휘두르면서 죄수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공역장의 인원은 남녀 모두 합쳐 수천여 명이나 되었다.

여자라고 하면 문제 있는 기방의 기녀들이 대부분이었다.

전부 잡아 와 역수 고개에 관문을 짓는 인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불안하게 후들거리면서 돌들을 지게에 이고 옮기는 이들도 있었고, 통나무를 맨몸으로 옮기는 이들도 있었으며 흙을 나르는 이들도 있었다.

쿠웅! 쿠웅!

지반을 다지는 공사가 한창 이어졌다.

관문을 세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지반이었다.

부실하다면 관문을 지어도 와르르 무너지게 되니, 잘 다져놓아야 했다.

이미 석공들은 역수 고개 정상에서부터 밧줄을 몸에 이어서 절벽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며 절벽을 깎아 내려가고 있었다.

지반이 완성된다면 돌을 올리고 끼워 넣어야 할 곳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따앙! 따앙! 따앙!

양측 절벽에서 쇠못을 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어서 움직여라! 이 미련한 늙은이야!”

퍼억!

“어억!”

퍽!

퍽!

가혹하게 때리는 군사들은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았다.

“네 이놈! 이분이 뉘신 줄 알고 함부로 하는 것이냐!”

“누구긴, 오늘내일 뒤질 늙은이지.”

“뭐라!”

“이놈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촤악! 촥!

군사는 더욱 강하게 채찍질을 가하였다.

덥석!

“어? 어쭈… 안 놔?”

채찍을 잡아 버리며 버텼다.

퍼억!

“커헉!”

“균아!”

채찍을 잡자, 뒤에서 머리를 가격해버린 또 다른 군사였다.

“어이, 전 문하시중… 상황파악이 안 되쇼?”

“미안하네… 내 일을 할 테니…….”

“움직이란 말이야!”

촤악!

퍽!

“크흑! 아, 알겠소… 알겠소이다.”

채찍을 맞던 정중부는 돌을 다시 이어 짊어지고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 달간 공역장에서 일하면서 정중부는 잔뜩 초췌해져 있었다.

문하시중이었던 정중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어느새 볼품없는 늙은이로 변해 있었다.

그의 아들, 정균 역시나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돌 지게를 이어 매고서 아버지인 정중부의 뒤를 따랐다.

목덜미를 맞아 몸 전체가 후들거리던 정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의방… 네놈을 기필코 죽여 버릴 것이다.’

깔끔하게 죽이려면 죽일 것이지.

이 지옥 같은 곳으로 보내어 명예를 실추시킨 이의방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이고! 알았소! 알았소이다!”

저 위에서 송유인이 몽둥이찜질을 당하는 모습을 본 정균은 당장이라도 뛰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함부로 나섰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지잉! 지잉!

징 소리가 울리면서 식사 시간을 알리자, 모든 죄수 역부들은 모든 걸 다 내팽개치고 배식을 받으러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많이 먹는 놈이 살아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 운 좋은줄 알아! 가서 처먹어!”

“아이고! 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송유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려갔다.

이를 지키던 군사는 몸을 돌려 어디론가 가버렸다.

“올라가요!”

“어! 알았어!”

절벽에 올라가서 일하는 석공에게 외치는 군사였다.

군사들은 죄인인 이들에게는 절대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서경유수 조위총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죄수가 아닌 이들은 달랐다.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 * *

한편 공역장을 조위총이 공역장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옆을 좌장 김존심, 우장 서언이 지키며 이야기를 하였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납니다. 유수.”

“…인원보충은?”

“계속 오고는 있습니다. 지반을 다지는 데는 문제 없습니다.”

“그럼 위로 올려보내게.”

“…예?”

“석공들이 깎는 돌을 옮기라고 하면 되지 않나. 석공들도 돌을 깎고 다지는 데 하루종일 걸리네. 하나를 깎고 나면 옮겨야 하니, 더 힘이 들겠지.”

“아… 예.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유수.”

서언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아무튼 오늘까지 할당량 채우라 명을 전하게.”

“예! 유수!”

조위총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계속해서 공역장 쪽을 천천히 쭉 둘러보았다.

“아, 정중부 일파들은 잘 감시하도록.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말이야.”

“예. 유수!”

* * *

한편 정균은 정중부, 송유인의 몫까지 바가지에 음식을 챙겨서 함께 나누어 먹고 있었다.

“아버지, 조금만 더 버텨 보십시오. 소자가 반드시 이곳을 나갈 준비를 하겠사옵니다.”

“…….”

정중부는 우걱우걱 밥을 먹으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송유인 역시나 아무런 대답 없이 밥을 먹었다.

그럼에도 정균은 계속해서 눈이 충혈된 채로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자신… 그리고 가족과 가문까지도 멸문시켜버린 이의방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 * *

“샅샅이 뒤져라!”

“예!”

끝내 전의감에서 조사를 나온 상황.

혜민국 집무실부터 약재창 약방까지 전부 샅샅이 뒤졌다.

더불어 약재를 말리던 의원들을 전의감으로 이동시켜 심문하기로 했다.

혜민국에서 조사하면 말단 의관들은 눈치를 볼 게 뻔했기 때문이다.

관원들은 펄쩍 뛰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이내 끌려갔다.

분명 해 처먹은 게 많다는 것이었다.

현수는 뒷짐을 쥐고 계속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나오려나…….’

현수는 혜민국에서 뒤로 빼먹은 걸 대충 상상해보았다.

대체 이들은 얼마나 많은 재산을 두었을까.

이미 어사대 쪽에서도 관원들의 집에 들이닥쳤을 것이다.

어사대는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을 규찰하고 탄핵하는 곳이지만, 비리 및 감찰수사 또한 어사대에서 맡아 하고 있었고, 문제 되는 것들은 전부 형부로 보내버리곤 했다.

관원들이 형부로 가게 되면 다들 알아서 불게 될 것이니, 자연스럽게 일이 마무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장군.”

“아, 예…….”

그때 전의감 태의가 다가왔다.

“이거 보시지요…….”

그는 집무실에서 나온 장부를 현수에게 건넸다.

현수가 이를 펼치면서 훑어보다 침을 꿀꺽 삼켰다.

약재들을 받아서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나오고 있었다.

한 장을 넘기면서 계속해서 보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혜민국에 녹용, 인삼, 사향, 웅담 등 값나가는 약재들도 종종 들어왔는데 관원들은 이 대부분을 약재로 쓰지 않고 고관대작들에게 선물로 보냈다.

그중에서는 이고, 이의방, 정중부의 이름도 보였다.

아무래도 이 장부 한 권만 있을 게 아니라고 생각한 현수는 태의에게 물었다.

“혹시 이거 말고 더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해, 월, 일 모두 적혀있습니다. 또한 약재 처리해서 누구에게 바쳤는지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군.”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근데… 혜민국에서 웅담도 씁니까?”

“예. 가끔 열이 심한 아이들에게 급히 처방할 적에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이 허한 노인들에게 가끔 보약이라도 달여 먹으라고 처방을 내리기도 하고요.”

“오, 진짜요?”

현수는 깜짝 놀랐다.

보약은 그냥 귀족 집 자제들에게나 바치는 약인 줄 알았다.

학교 다닐 적에 고려가 효는 정말 중요시하는 국가였다고 들었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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