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화
“이 의원님……?”
“혹시… 도라지… 어떻게 생긴 지 아세요?”
“도라지요? 네. 당연히 알지요.”
병사의 말에 현수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현재 군영 내 병자들 대부분이 가래 낀 목소리를 하고, 기침을 계속해서 심하게 했다.
우선 이것만 잡아놓아도 병사들은 어느 정도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었다.
일단 군영 자체의 먼지가 문제였으니 말이다.
“지금 군사들에게 막장을 전부 다 열어 놓고 공기가 통하도록 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도라지, 쑥, 더덕 가리지 말고 모두 캐오세요. 눈에 보이는 거 전부다.”
약초 따위는 필요 없다.
이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모두 먹이는 거다.
물을 끓여, 캐오는 거 전부 씻고 말린 다음 한 솥에다가 다 부어서 끓여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식자재랑 파, 무 같은 것도 상관없습니다.”
“아… 예!”
병사는 알겠다며 답하고 몸을 돌려 곧장 움직였다.
‘내장 튀어나온 사람 빼고는 전부 다 먹여야 해. 그래야 좀 나을 건데…….’
아버지가 집에서 떨어질 틈 없이 매일 끓이던 것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채소, 약재 가리지 않고서 집에 있는걸 깨끗하게 씻어서 한 번에 끓였다.
약 24시간 이상을 끓여 내어 병에 담아두고서는 냉장고에 넣고 가족들에게 사시사철 동안 먹였다.
덕분에 잔병치레한 적이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그것대로의 영양분도 있어서 나름 좋은 보조제가 되어 주었다.
“후우…….”
현수는 털썩 주저앉아서 생각에 빠졌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산에 다녔다.
뱀이고, 뭐고… 몹쓸 것도 엄청나게 보았으며 못 볼 꼴도 많이 보았다.
아버지는 오장육부의 생김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현수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해에 가르쳐 주셨다.
현재는 이놈의 고려로 와서 이 짓을 하고 있다는 게 생각해봐도 황당하며 적응해 가려고 해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여기서 뭐하나?”
“아,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이영령이 현수에게로 다가와 함께 자리하였다.
“할 만하냐?”
“아니요…….”
“하하하하하.”
현수의 말에 이영령은 웃었다.
“처음이지? 곧 적응될 거다. 전쟁이 뭐 있나… 사람이 죽고 사는 게 전쟁이지.”
“…….”
“개경으로 들어서면 모든 게 다 끝이 날 테니… 그때까지 잘 참아봐.”
위로인 듯 아닌듯한 말에 현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놈의 무신 정권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심했나 싶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권력 싸움이 이 정도였을까 하면서 말이다.
부우우우우!
나팔과 소라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영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싸우러 가는 모양이었다.
성문을 뚫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그래야 전투에 이기든 뭐든 할 것이니 말이다.
“수고해라.”
이영령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바로 일어나서 집결 장소로 향하였다.
“하… 또 밀려오겠네.”
현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군영으로 돌아갔다.
* * *
“문하시중! 또 놈들이 오려는 모양이옵니다!”
기탁성의 말에 정중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몰려온다고 해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오. 더군다나 이의방의 생사가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잘만 한다면 이의방이 죽는 것을 우리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될 것이오. 그리만 된다면 흥위위는 삽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외다.”
정중부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정중부는 이의방의 상태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는 몰랐다.
그렇기에 한편으로 정중부는 불안해하였다.
이의방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면, 그때는 진짜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이의방의 등장이 흥위위에게 사기를 북돋아 줄 것은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하시중.”
“자네가 여기는 어인 일인가?”
“이상하게도 쥐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송유인의 말에 정중부는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을 하였다.
“일단 균이부터 오라고 해야겠네. 매복지로 나가 있으니, 이참에 그걸로 이의방의 진영을 쳐야겠어.”
“가능합니까?”
“가능은 하지. 대신, 은밀하게 준비해야 하네. 두경승이 균이가 매복하고 있는 지점을 알고 있을 테니 이의방에게 보고하였겠지. 그렇다면 그쪽을 경계할 것이 아닌가. 그 경계병에게 절대로 들키지 않게 기습을 해야지.”
“매제를 데려오겠습니다.”
“사위, 곧 적들이 들이닥칠 테니 일단 전투가 끝나고 가게. 우선 자네는 제자리로 돌아가게.”
송유인은 고개를 숙이며 곧장 재 위치로 가버렸다.
다음으로 진준과 경진이 왔다.
“서문과 동문은 부장들에게 맡겼으니, 이곳에서 이소응 대신 지휘를 하겠사옵니다. 문하시중.”
“음… 어서 오시오. 경 장군.”
정중부는 미소를 지으며 경진을 환대하였다.
두웅! 두웅! 두웅!
북소리가 울리었고, 준비를 모두 마친 흥위위들이 재공격을 준비하였다.
“자, 각자 위치로 가시오.”
“예!”
장수들은 각자 위치로 이동했고, 정중부는 몸을 돌려 흥위위들을 바라보았다.
군대가 천천히 오면서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사다리에 올라탄 군사들.
완전히 성곽을 넘어오려는 수단이었다.
‘이의방… 이놈…….’
정예군 흥위위는 전투에서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훈련이 되어 있는 최강의 군대였다.
물론 이광정이 키운 군대도 강하기는 했지만, 지휘관이 형편없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단지 개개인의 훈련성만 높였을 뿐,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군사들과 같았다.
하지만 5위의 군사들은 달랐다.
흥위위 못지않게 키워 왔던 군대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한평생 키워 왔던 용호군들은 최고의 정예병사들이었다.
이러하니 서로 밀리고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와아아아아아!”
군사들이 소리를 치면서 냅다 달려오기 시작했다.
“궁수! 쏴라!”
정중부가 소리쳤고, 궁수들이 화살 시위를 당기며 쏘아 대기 시작하였다.
턱! 턱! 터터턱!
땅에 사다리를 내리꽂고서 성벽에 사다리를 부착시키자, 미리 매달려 있던 군사들은 속속히 성곽으로 달려들면서 군사를 제압하였다.
어느 정도 성곽의 방어가 밀리자, 뒤를 이어 군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죽여라!”
푸욱!
푹!
정중부의 군사들은 창으로 성곽에 발을 내디딘 이의방의 군사를 찌르고, 성곽 밖으로 밀어 떨어트렸다.
“기름을 부어라! 석포를 날려라!”
양측 군에서 화살이 빗발쳤다.
퍼퍼퍽! 퍽!
툭! 투툭!
화살은 성벽과 군사들과 장수들을 보호하는 방패에 박히거나 튕겨 나갔다.
“막아라! 황상 폐하가 계시는 황성을 역적들의 손에서 지켜라!”
정중부는 자신의 군사들에게 정당성을 주입시키면서 공격령을 내렸다.
“역적들을 모두 죽여라!”
부장들과 장수들 역시 소리쳤다.
“쏴라! 노포를 쏴라! 성벽에 붙은 병사들을 제거하라!”
촤라라락!
퍼억!
“푸웁!”
낭아추가 떨어지면서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를 머리에 맞은 병사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낭아추를 끌어 올리고, 떨어트리고를 계속 반복하여 흥위위 군이 성벽에 붙지 못하도록 제거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겁먹지 마라! 저들은 오합지졸이다! 내가 응양군의 상장군 두경승이다! 누가 우리에게 역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말을 타고 내달리며 군사들에게 명을 내리는 응양군 상장군 두경승.
우리는 역적이 아니라고 외치며 오히려 흥위위들의 사기를 돋웠다.
두경승이 어떠한 인물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장수들과 군사들로서는 두경승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흥위위는 절대로 물러설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끼이익.
성곽에서 진준이 활을 들고 두경승을 겨냥하였다.
쉬익!
퍼억!
쿠웅!
명중이었다.
말에서 떨어진 두경승은 벌떡 일어나 성곽 위를 바라보았다.
진준이 성곽 위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툭!
두경승은 화살대를 부러뜨리며 부러진 조각을 뽑았다.
다행히 화살이 갑옷 깊숙이 뚫지를 못하여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대신 갑옷의 사슬이 끊어졌다.
“상장군! 상장군!”
급하게 이춘부가 말에서 내리며 두경승에게 뛰어왔다.
“괜찮으시옵니까?”
“난 괜찮네. 군사들을 지휘하게.”
“예!”
이춘부는 다시 말 위에 올라타더니, 군사들을 지휘하였다.
창, 칼이 맞닿는 소리와 비명이 한 데 아우러져 주위를 어지럽게 했다.
그 사이에서 진준의 목소리는 또렷히 들렸다.
“금상 폐하의! 교서가 있거늘… 어디서 역적 놈들이 역적이 아니라고 하느냐?! 네놈들은 모두 대역적 놈들이다!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닥쳐라! 금상 폐하를 겁박하여 받은 것을 어찌 정당화시키려 하는 것이냐!”
두경승은 다친 어깨를 움켜쥔 채 말에 다시 올라타서는 군사들을 지휘하였다.
“공격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 * *
“장군,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장의 말에 박존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광정을 바라보았다.
“시작해야지.”
이광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소. 박 장군.”
박존위는 안에서 성문을 열어버릴 계획을 모두 짜내었다.
이광정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성문을 여는 것이다.
물론 희생이 따르겠지만, 지금 이광정은 자신만 살면 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군사나 가족 따위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광정, 살고 싶다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혹시라도 수를 쓴다면 내가 죽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위경을 배신한 네놈만큼은 내 손으로 반드시 죽일 것이다.”
박존위는 섬뜩하게 말하자, 이광정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광정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허튼짓하지 마라…….”
“알겠소… 알겠소이다… 박 장군.”
이광정은 곧장 밖으로 나가서 자신의 군대를 모을 준비를 하였다.
아수라장 같은 상황에서 군대를 모으는 건 쉽지가 않았지만, 우선 밖에 부장들을 불러 놓았으니 적어도 수백은 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 *
한편.
경대승의 저택에서는 은밀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응양군 전존걸이 경대승에게 미리 두경승과 이춘부가 빠져나갔다며 알려 주었던 것이다.
경대승은 이를 듣자마자, 최대한 자신을 따르는 부장들을 미리 불러들여서 준비하였다.
어떻게 해서든 응양군을 되찾아서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조원정, 석린, 이영진.
이 셋부터 우선 제압을 해야지 승산이 있었다.
“장군, 김자격이옵니다.”
“들어오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서 문이 아닌 창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찌 되었나?”
“예. 부장들이 현재 전투하는 틈을 타서 남은 응양군들을 모두 집결시키고 있사옵니다.”
“용호군을 먼저 진압하여 황실을 지킬 것이다.”
“위위경을… 도우려는 것이옵니까?”
“나는 응양군의 장군으로서 황실을 지키려는 것이지 위위경을 도우려고 하는 게 아니다.”
김자격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