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화
“…….”
이불을 거두어 내자, 환부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아무래도 이의방도 악취가 느껴져서인지 냄새를 숨기기 위해 이불을 덮고 있었다.
“흠…….”
시선을 회피하는 이의방과 인상을 찡그린 유현수.
현수는 이의방의 다리가 심하게 부어있는 것을 보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허벅지에 이어, 이제 무릎 부분도 점차 부어오르고 있었다.
이에 무릎을 살짝 만져보자, 이의방은 과민반응을 하듯 움직였다.
“으억.”
현수는 아무런 말 없이 환부를 싸매고 있는 천을 풀어헤쳤다.
피고름과 알 수 없는 진액이 살을 타고 흘러내렸고, 덮고 있는 천에도 고름이 묻어나왔다.
새살이 돋고 있음에도 뱀독으로 인하여 물린 곳이 마치 타박상을 입은 것처럼 색이 변해 있었다.
심지어 몇 군데는 검게 살이 썩어 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참고 버텼는지 용하기까지 했다.
계속해서 상처 부위를 살피다가 현수가 이의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렇게 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며칠 지났다.”
“약은요? 혹시 약을 드시는데 맛을 못 느낀다든가… 아니면 손발에 감각이 없다든가… 그런 증상은 없으세요?”
“…….”
이의방은 깜짝 놀랐다.
독이라는 것에 처음 당한 것인데, 자신을 살피던 의원은 현수처럼 자세하게 묻지 않았다.
감각이 없는 게 다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번엔 전혀 아닌 것 같았다.
“뱀독 때문에 그런 겁니다. 누군지 몰라도 응급처치는 잘했으니… 이제…….”
썩은 살점들을 도려내고 새로 약을 발라야 했다.
의학 드라마 실컷 본적도 많아서 대충 야매로는 할 수는 있겠으나, 그 후가 문제다.
예전에 문지방에 찍히거나 커터 칼에 다쳐서 병원에 못 갈 때 아버지가 직접 꿰매준 적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여봐라! 천부장 밖에 있느냐!”
이의방이 큰 소리로 천부장을 찾자, 막장이 걷히면서 천시호가 들어와 군례를 올리었다.
“예! 위위경!”
“의원을 데려오거라. 그리고 여기는 유현수라고 하는데… 앞으로 내 옆에서 나를 도울 녀석이다.”
“예! 위위경!”
위위경의 한마디에 천시호는 현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선생.”
자신에게 선생이라 말하는 부장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예… 저… 일단 백반(白礬) 있어요?”
“…네?”
‘고려에는 백반이 없나?’
현수는 당혹감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백반이라고 하면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 뭐냐… 광물인데 약으로 쓰는 거요… 하얗게 해서 화상 치료에 쓰거나 아니면 가래 많을 때 먹으면 효과 보는 약인데. 그…….”
“아, 명반(明礬)이요? 혹시 명반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명반!”
현수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필요한 게… 한… 이 정도 되는 칼이 필요합니다. 여기 보시면 검게 그을린 부분을 제거해야 하거든요…….”
천시호에게 이의방의 상태를 상세하게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여기서 이의방을 살피었던 의원들을 모두 데려오게 하였다.
지금부터 야매 수술을 해야 하니, 보다 전문적인 것들은 의원들에게 시켜버리기 위함이었다.
현수가 하는 것보다는 의원들이 하는 게 백번 천번 나으니 말이다.
“그리고 술에 양귀비 좀 타서 가져다주세요. 식초 있습니까? 있으면 두 사발 가져다주세요.”
“예. 선생.”
천시호는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이의방은 현재 최악의 상태였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썩은 부분만 도려내서 새살을 돋게 하면 그만이었다.
칼로 곳곳을 째어 피를 내고, 붓기를 빼주면 되는 것이기에 최대한 긴장을 풀려고 노력하였다.
“처음이냐?”
“…예?”
“칼을 잡는 거 말이다. 보통 칼을 처음 잡는 사람들은 누구나 너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 두렵고… 불안하고… 잘못되면 어쩌나… 이런 생각을 하니까.”
이의방의 말이 맞았다.
혹여나 수술하다가 이의방이 잘못되면 자신도 꼼짝없이 죽을 것이다.
그 생각에 현수가 침을 꿀꺽 삼키었다.
“하하하, 두려워하지 마라. 이미 나는 너에게 모든 걸 맡기었다.”
용기를 주는 이의방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을 하였다.
‘보기보다는 좋은 사람인 듯하네…….’
* * *
다음 날 아침.
군영이라 수술 준비가 빠르게 되지 않았고, 아침이 되어서야 준비를 마쳤다.
하룻밤 사이에 마치 제집인 것처럼 어느 정도 편안해진 현수였다.
어제 만났던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의방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설명을 해주었다.
“의술은 대식국에서 배운 것입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예? 아… 예.”
현수는 의원에 물음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전 깨끗하게 손을 씻었고, 깨끗한 천을 구해서 손도 닦았다.
의원들 역시 모두 그렇게 하였고, 천은 곧장 화로에 태워 버렸다.
그리고 이의방에게 식초 두 사발과 양귀비를 탄 술을 한 사발을 들이키게 시켰다.
이를 단숨에 마신 이의방은 곤히 잠이 들었다.
이제 시작해야 한다.
현수는 의원들이 손을 쉽게 쓸 수 있도록 이의방의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다리 사이에 대야를 놓고, 소금물에 백반을 섞은 것으로 환부를 닦아 내기 시작했다.
백반 섞은 물이 콸콸 쏟아지면서 모든 게 씻겨 내리는 듯하였고, 보드라운 천으로 상처 부위를 닦아 내었다.
“천 다시 주세요.”
현수가 말을 하자 의원들이 필요한 물건을 착착 건네주었다.
두세 번 정도 환부를 씻기고 이를 모두 닦아 낸 현수는 상처와 썩은 부위를 재차 다시 살펴보며 씻겨 내리지 않은 곳이 있는지 살폈다.
제대로 닦이지 않은 부위는 천에 직접 백반 섞인 물을 묻혀 닦아 내었다.
이렇게 반복하다가 어느 정도 다 닦인 것처럼 보이자, 의원들이 칼을 집어 들었다.
현수가 말을 한 칼을 군영에서 구할 수 없었기에 의원은 그나마 비슷한 짧은 단도를 가지고 왔다.
칼날 부근에 천을 돌돌 말고는 불로 칼을 지져 소독을 시켰다.
그리고는 남은 명반수로 재차 닦아 내고 다시 소독하기를 반복하였다.
이제 대야를 치우고서 칼을 대어 썩은 부분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하아… 흐윽…….”
잠들었음에도 이의방은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었다.
이를 자세히 살피던 현수가 침을 몇 번이나 삼키었다.
썩은 살점들이 툭툭 고기 떨어지듯 이불에 떨어졌고, 악취에 의원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속은 썩지 않아 다행이었다.
군사들은 썩은 살점 몇 덩이를 도려낸 것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멀리 던져 버렸다.
“금창산(金瘡散) 있으세요?”
“물론입니다.”
의원은 곧장 약함에서 금창산을 꺼내었다.
금창산은 일명 금창약과 같은 것이다.
주 원료는 석회였고, 칼에 찔리거나 베인 곳에 금창산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할 정도였다.
현수는 이의방의 상처에 금창산 가루를 뿌리고서는 천으로 다시 감쌌다.
“심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안 그래도 저걸 어찌 처리해야 하나 하면서 내내 조심스러웠거든요…….”
의원에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수술하다가 감염으로 인해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약과 침으로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괴사한 살을 도려내고 약을 뿌리었으니, 아마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저… 이제 처방은 어떻게…….”
“전에 하시던 대로 하세요. 맥 짚어보시고, 상황을 봐가면서 약을 드려야죠.”
“아, 예…….”
의원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 덕에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 편히 주무실 테니… 저희는 그만 나가죠. 고생들 하셨습니다.”
“예…….”
현수는 주위를 정리하면서 군막 밖으로 나갔다.
* * *
며칠 후.
이의방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쉽게 움직이지는 못하였지만, 붓기와 통증도 모두 좋아졌다.
이제 기력만 회복하면 되었다.
현수는 이의방의 상태를 확인하면서도 전투를 하다가 다친 병사들을 반강제적으로 살피게 되었다.
처음 군 막사로 들어왔을 때 괴로워하는 비명과 죽어가는 군사들을 보고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백지장처럼 머리가 새하얘져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방에서 피비린내는 진동하고, 불에 그을린 상태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고 수십번이나 구역질을 하며 속을 비워 내어야 했다.
이의방의 상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의원들을 따라다니면서 병사들을 살피고 치료를 도왔지만, 약도 부족하였기에 어려운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약초를 잘 아는 천시호 부장과 나머지 군사 몇몇을 데리고서 약초를 캐러 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현수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약이 있어야지 고치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약초를 구해온다고 하더라도 두세 사람 아니, 한 사람에게 쓰면 모두 동이 났다.
도검에 베이고, 창에 찔리고, 내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온 병사들에게 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염증을 가라앉힐 약이 필요하였다.
내장이 빠져나온 병사들을 이론상으로나마 알고 있는 방법대로 처치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떨리고 두려웠지만, 정신을 강하게 부여잡은 채로 최대한 장기가 다치지 않게 하면서 다시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늘과 실을 구해서 의원들에게 환부를 꿰매게 했고, 검을 불에 달구어서 살을 지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약이 없어 죽는 병사들이 수두룩하였다.
“후우…….”
현수는 한숨을 내쉬더니, 저 멀리 가서 헛구역질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아무리 정신을 강하게 부여잡았다고 하더라도 시체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며칠 사이에 이렇게 겪다 보니,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현수에겐 의학지식이 있었다.
다시 한번 정신을 강하게 부여잡고서 최선을 다해 병사들을 살펴야만 했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병사, 나이 있는 병사 가리지 않고 말이다.
“에이, X발!”
그럼에도 죽어가는 병사들에 현수는 자연스럽게 욕이 나왔다.
“의원님! 의원님!”
“나 의원 아니야!”
현수는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자신은 자격증도 없는 야매 의사일 뿐이었다.
의학지식이 풍부한 고등학생 야매 의사 유현수.
병사는 현수의 호통에 뻘쭘하게 현수를 바라보았다가 말하였다.
“저… 약을… 구해왔습니다만…….”
“그러면 저기 의원한테 가서 이야기…….”
순간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
다름 아닌, 건강기능식품이었다.
“아휴! 이 X신아!”
퍽퍽퍽.
자신의 머리를 몇 번 쥐어박자, 병사는 화들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