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화
퍼억!
올라오면서 자신의 앞길을 막는 군사의 머리를 도끼로 찍고, 그대로 끌어당겨서 성곽 밖으로 떨어트린 이의민이 성곽으로 다시 올라섰다.
“저, 저런!”
이소응이 성곽으로 올라온 이의민을 보자, 그대로 이의민에게로 뛰어갔다.
“네이노오옴! 이의민… 이 역적놈!”
“오냐! 네놈부터 죽여주마!”
이의민은 도끼를 꽉 쥐더니, 성곽의 군사들을 제거하면서 이소응에게로 향하였다.
다른 부장들과 장수들 역시 성곽을 장악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성곽 위로 올라오기란 만만치가 않았다.
밀고 밀리는 상황이었다.
겨우 올라왔던 군사는 몇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다시 성곽 아래로 추락하기 일쑤였다.
정중부 군사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이 원인이었다.
퍼퍼퍼퍽!
반대편에서 사다리 쪽의 군사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대자, 사다리에 올라와 있던 군사들은 등에 화살이 꽂힌 채 추락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올라가라! 올라가!”
강공세를 펼치는 흥위위와 흥위위에 맞서는 2군 5위의 군사들은 막상막하였다.
“장군, 이렇게 가다가는 그냥 소모전밖에는 안 됩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보게!”
“그러다 다 죽어!”
푸욱!
“으아악!”
창이 돈장의 어깨를 관통해 버리자, 돈장은 힘없이 검을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살을 뚫고 튀어나온 창을 꽉 부여잡았다.
고득시가 곧장 창으로 찌른 병사의 목에 검을 찔러 넣고 빼자, 병사는 피를 뿜으며 철푸덕 쓰러졌다.
돈장은 창의 무게 때문인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이 위태로워 보였다.
“안 돼! 빼지 마!”
고득시는 창을 빼내려고 하는 듯한 돈장의 움직임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자칫 하다가는 과다출혈로 죽을 수 있었다.
“탁!”
부장들이 와서 곧장 돈장을 부축하였고, 고득시는 그대로 창을 뒤로 젖히고는 양손으로 검을 잡고서 최대한 관통 당한 부분으로부터 멀리 자루를 절단 해버렸다.
파악!
자루가 잘려나가자, 고득시는 부장들을 시켜 돈장이 바로 성곽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조치시켰다.
그러면서도 최대한으로 달려드는 적병들을 홀로 사수하였다.
솨악!
푸욱!
적의 창을 빼앗아 그대로 반대편 군사의 복부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숨을 가다듬은 뒤 주변을 돌아보았다.
쉬지도 않고 밀려드는 군사들 때문에 앞으로 진격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 * *
몇 시간 후.
“어찌 되어가고 있느냐.”
아직 밖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이의방은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했다.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니, 자신의 목숨을 살렸던 천 부장을 시켜 틈틈이 알아보게 하였다.
천부장이 다시 군막으로 들어와 이를 고하였다.
“현재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성곽으로 올라는 가는데… 상대 군사의 수가 많아 쉽게 밀고 올라갈 수가 없사옵니다. 게다가 돈장 장군께서는 크게 부상을 당하신 채로 군영으로 돌아오셨사옵니다. 다만 이의민 장군께서는 무사히 성곽에 올라가셨으며…….”
“그래서 불리하다는 것이냐. 아니면 밀어 볼 수 있겠다는 것이냐.”
“소장이 그걸…….”
“너도 장수가 아니냐. 별장이라면 곧 장군반열에 들 수가 있는데, 별장이나 되어서 상황이 판단을 못 한다면 장군직에는 올라갈 수 있을 듯싶으냐.”
별장이라는 직책은 장군 방에 입실하여 회의를 참관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반면 대정, 교위, 산원은 장군 방은커녕, 회의에 일체 들어올 수가 없다.
그만큼 권력이 필요한 자리였다.
“소장, 천시호… 솔직하게 위위경께 아룁니다.”
“오냐. 이야기해 보거라.”
“지금 군을 빼고, 다시 정리하여 공격하는 것이 옳은 줄 아룁니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는가.”
“소장이 보건대, 흥위위가 기세가 좋고 일당백의 군사라 할지라도 현재 개경 안에 있는 군사들은 저희 군사들보다 배 이상이 많사옵니다. 따라서 지금 공격을 계속해보았자, 이득 될 건 없다는 것이옵니다.”
“이득이 될 것은 없다?”
“그러하옵니다. 개경의 군대 또한 막강한 군대이옵니다. 소장이 생각하기에는 성문을 안에서 열어야 승산이 있사옵니다.”
“안 그래도 박존위가 가지 않았느냐.”
“만일 실패한다면… 저들 스스로가 문을 열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옵니다.”
“흐음… 가능하겠느냐?”
“응양군 두경승 상장군께서 다행히 이곳에 와계시니, 두경승 상장군의 외침으로 응양군 태반이 동요할 것이라고 판단되옵니다.”
천시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고, 천시호에게 명을 내렸다.
“퇴각 신호를 올리고, 제장들을 속히 모이라 하라.”
“예. 위위경. 저… 하옵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이야기하거라.”
“만약… 만약이옵니다만… 문하시중이 태자비를 인질로 새운다고 한다면 어찌할 것이온지요…….”
천시호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의방에게 물었다.
개경에는 가족들이 있다.
어찌 되었든 해주를 박살을 내버렸으니, 태자비를 인질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무릎을 굽힐 수는 없었다.
이의방은 주먹을 꽈악 쥐고 말하였다.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 아니겠느냐? 더군다나 내가 해주를 이미 박살 내 버렸는데… 내 가족들 죽인다고 하여도 굽힐 수는 없다. 끝까지 갈 것이다.”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이의방이었다.
“소장은 이만 나가보겠사옵니다.”
천시호는 군례를 올리고 밖으로 나가자, 이의방은 두 눈을 감았다.
해주를 작살을 내었으니, 가족들이 어떻게 돼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태자비와 임씨가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이의방은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더듬어 만져 보았다.
“윽!”
딱딱하게 굳어 있는 건지, 부어 있는 건지.
환부를 살짝 만졌다고 통증이 확 밀려 들어왔다.
* * *
두웅! 두웅! 두웅!
부우우우우우~ 부우우우우우~
퇴각 신호를 알리는 소라와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퇴각 신호입니다! 상장군!”
이춘부가 말하자, 두경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군! 퇴각하라!”
성곽으로 올라가던 군사들이 일제히 사다리에서 내려왔고, 사다리를 통해 올라가려던 군사들 역시나 퇴각 신호를 듣고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결말이 없는 싸움에 개경군도, 흥위위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다만 흭득한 것은 이소응의 수급(首級)이었다.
“퇴각하라! 어서! 내려가!”
이영령이 성곽에서 싸우며 군사들을 내려갈 수 있도록 지휘를 하다가 마지막에 자신도 사다리에 몸을 맡겨 성곽에서 내려와 곧장 진영으로 뛰어갔다.
뒤를 돌아볼 시간 따위는 없었다.
와아아아아아!
2차 전투를 승리로 이끈 개경군사들은 이겼다며 드높은 함성을 질렀다.
“하하하하하하!”
지휘소에서는 장수들이 뭉쳐서 크게 웃었다.
두 번째에도 맹렬하게 공격해 오는 이의방의 군대를 막아 내었으니 말이다.
“웃을 게 못 되네.”
정중부의 말에 모든 장수들이 웃음을 멈추고 정중부를 바라보았다.
“문하시중, 왜 그러시옵니까?”
“이소응 상장군이 전사를 하였지 않은가. 평생을 우리와 함께한 장수를 잃었는데 어찌 크게 웃을 수가 있겠나. 우리는 전투가 완전히 승리한 후에 웃어야 할 것이네.”
장수들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밖의 함성소리도 곧 잦아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이불 덮고, 한솥밥 먹고, 같이 훈련하던 군사들끼리 서로 적이 되어 싸운다니.
훈련이 아닌 실제상황이었다.
군사들은 아는 얼굴만은 만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아는 얼굴을 만나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눠야 하는 상황은 너무나도 잔혹했기 때문이었다.
* * *
“다들 무사히 들어왔겠지?”
박존위와 50여 명의 수하는 작은 소리로 답하였다.
이의방이 조심 또 조심을 일러주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낭패를 볼 뻔하였다.
박존위가 동문으로 가는 도중, 동문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는 송유인을 만날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수천의 군사들을 데리고 있던 송유인을 만났다면 생포를 당했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개죽음을 당했을 것이었다.
다행히 송유인의 눈에 띄지 않고 동문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장군, 이제 어찌해야 하옵니까?”
돌아오기는 했으나, 다음 문제는 이 상황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느냐였다.
박존위 또한 어디로 가는 게 맞는지 몰랐다.
동문을 지나 이의방의 저택으로 가자니, 경비가 삼엄할 것이 분명하였다.
“장군, 들어온 김에 조원정, 석린, 이영진 이 세 놈의 목부터 베어 버리는 게 어떠하시옵니까?”
부장의 말에 박존위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라도 조원정, 석린, 이영진의 수급(首級)을 취할 수 있다.
우선은 성문을 여는 것이 더 중요하였다.
“장군, 응양군 경대승에게 청해보는 것이 어떠하시옵니까?”
“경대승? 아… 아니야… 아니야…….”
박존위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찾아간다면 경대승이 뭔 짓을 할지 모르기에 섣부르게 찾아갈 수는 없었다.
경대승은 특히나 이의방을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의방은 그런 경대승을 싫다고 내팽개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잘 대해주었다.
“장군, 더 이상 이 상태로 있는 건 무리입니다. 전투도 끝이 났고, 저들은 다시 경계태세를 강화할 것입니다. 그 틈에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이다. 일단…….”
그때 순간 박존위의 머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박존위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광정.”
“예?”
“이광정, 그놈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우리는 안전하지… 그놈은 겁대가리가 너무 많아서 살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우리에게 협조하려 들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안심하고 한눈을 팔게 되면 이광정이는 반드시 정중부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들것이니… 이광정만 잘 지켜본다면 우리는 안전하다.”
“좋은 수인 듯합니다.”
부장들의 말에 박존위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어 이광정의 집으로 향하였다.
* * *
얼마 후.
늦은 시각인데도 경비가 삼엄하였다.
그것을 보여주듯 이광정의 저택 대문을 그것도 4명씩이나 지키고 있었고, 마당에는 횃불을 들고 이리저리 순찰하는 사병들이 보였다.
언뜻 본 이광정의 저택은 으리으리했다.
주위에 민가들을 빼앗아서 집을 확장시킨 결과를 보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존위는 이광정의 저택을 자세하게 살피었다.
최대한 조용히 이광정에게 가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다.”
박존위가 작게 말하자, 50여 명이 한 번에 움직여 바로 담장을 뛰어넘었다.
턱! 터터턱.
착지를 안정적으로 한 후에 재빠르게 이광정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어?”
“왜?”
시찰(視察)하던 사병이 자리에 멈추어 섰다.
“이상한 소리 못 들었나?”
“이상한 소리라니? 잘못 들었겠지. 이 집에 어느 X친 놈이 들어오겠는가.”
동료의 말을 듣던 다른 사병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른 곳을 시찰하러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