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33화 (33/159)

033화

“하하하하하하!”

“와아아아아!”

장수들은 크게 기뻐하고 군사들은 이겼다면서 좋아라 하였다.

“문하시중! 저희의 승리입니다!”

정중부는 오도 가지도 못하는 흥위위와 이의민의 군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맹화유가 지금 얼마나 남아 있지?”

“심려치 마시옵소서. 맹화유는 아직 많이 남아 있사옵니다. 하하하하하!”

상장군 진준의 말에 정중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중부는 매캐한 연기에 코를 막고 군사들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진 상장군.”

“예. 문하시중.”

“우리의 상황을 좀 살피게.”

“알겠사옵니다.”

정중부는 전투만큼은 권력에 미쳐 있는 권신이 아닌, 그야말로 군부의 수장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뻐하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글자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무장으로 살아온 정중부였고, 타들어 가고 그을리는 냄새 또한 마다하지 않고 당당히 자리를 지키니, 주위 군사들은 정중부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보며 든든하게 느꼈다.

이의방 진영에서 검은 연기 사이로 보이는 정중부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느낌을 주었다.

“…….”

“이거 어쩝니까. 상장군.”

이춘부의 물음에 두경승은 고개를 저었다.

“어려운 싸움이 되겠구먼.”

“예? 그 무슨 말입니까.”

두경승도 차마 이 전투의 승부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의방이 현재 이러한 상황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지금 흥위위 전체는 사기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상장군…….”

이춘부가 답답해하며 다시 말하였다.

“두고 보면서 생각을 해야겠지. 개경이 뚫리는 순간, 백성들의 피해도 이만저만 아닐 것인데…….”

두경승은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죄 없는 백성들이 다치거나 죽는다면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혼란한 틈을 타서 백성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도 문제였다.

“하아…….”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 두경승은 말에서 내려 다시 군영으로 향했다.

장수들과 군사들도 모두 두경승을 따라 군영으로 들어갔다.

* * *

그날 저녁.

고득시, 이의민, 돈장, 이영령, 두경승, 이춘부, 박존위가 한자리에 모였다.

아직까지도 정중부 측의 군대는 지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교대를 하며 근무를 서는 게 군영에서도 보였으니, 쉽게 성곽의 벽을 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자는 건가?”

이의민이 먼저 물었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아… 위위경께서 일어나지 못하신다면 오히려 군의 사기는 더 꺾일 것이네.”

쾅!

이의민은 상을 내리쳤다.

“나라도 올라가서 정중부의 목을 가져오겠네.”

“경거망동(輕擧妄動)해서는 아니 되네!”

이의민과 두경승, 두 사람이 언성이 높아지자, 고득시가 중재에 들어갔다.

“그만! 우리가 싸우려고 모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고득시의 말에 두경승과 이의민은 목을 가다듬으며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고득시는 지도를 펼쳐 살피었다.

“지금 우리가 북문에 있는 한… 저들은 계속해서 북문에 주둔할 것입니다. 그럼 남은 건 경계가 제일 취약한 동문입니다. 다만 북문에서 동문까지 가는 데는 가장 험난하기 그지없으니, 최소한의 병력으로 동문 쪽으로 가서 성벽을 타고 올라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 북문으로 다시 이동해 신호와 동시에 빗장을 떼어내고 성문을 연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을 거로 보는 데… 다들 어떠합니까?”

“고 장군, 동문에 군사가 적을 것이라고 해도 주의해야 할 것인데…….”

“지금 상황으로는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고득시가 두경승에게 말하자, 두경승은 고득시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해봅시다. 고 장군의 말대로 성공한다면 우리는 일제히 북문으로 들어가 재빠르게 개경을 장악할 수 있을 거요.”

“그럼 소장이 군사 50명을 데리고 가리다.”

박존위가 말하자, 장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세. 앞으로 두 시각 후, 전군을 이끌고 북문을 공격할 것이니, 박 장군이 군사 50을 이끌고 동문으로 가게. 정신없는 틈을 노린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네.”

두경승의 말에 박존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또다시 선봉에 서겠네.”

이의민이 다시 선봉에 선다고 하자,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홀로 성곽으로 올라가 일당백 아니, 일당 천을 할 장수가 나가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특히나 아까 성곽에서 이의민이 싸우던 모습을 보았던 이영령, 고득시, 박존위, 돈장, 두경승, 이춘부는 다시 치러질 전투에 이의민에게 은근히 많은 것을 걸었다.

이의민 홀로 성곽을 정리하는 것을 군사들이 보게 된다면 사기는 다시 충천될 것이고, 군사들은 더욱더 맹렬하게 공격할 것이 자명하니 말이다.

* * *

한편.

“그래?”

“예. 위위경.”

천부장이 전투 소식을 이의방에게 알려 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를 한다는 소식은 없더냐?”

“예. 위위경. 두 시각 후에 다시 전투를 시작하면 박 장군께서 군사 50을 대리고 동문의 성벽을 넘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늙은이가 그리 호락호락한 양반이 아닌데…….”

“…….”

“지금 당장 박존위에게 가서 동문으로 갈 때 반드시 주의하라 이르거라. 매복이 있을 수 있다고 전하라.”

“예. 위위경.”

천 부장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군막 밖으로 나갔다.

이의방은 한동안 계속 생각했다.

뭔가 자꾸 이상하다.

정중부라면 반드시 후미를 칠 게 분명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혹여 황실파 귀족들을 기다리는 건가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절대 아니었다.

정중부의 성격은 치밀하지마는 자신과 관련된 중요한 일은 절대 다른 이에게 맡기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거나, 누군가 처리하는 것을 직접 자신이 봐야지 안심하는 작자였다.

이의방은 그런 정중부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펄럭.

막장이 걷히면서 의원이 약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섰다.

“두경승과 이춘부는 어떠한가?”

“예.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탕제와 환약입니다.”

의원이 탕제를 건네자, 이의방은 사발을 받아들고서 꿀꺽꿀꺽 삼키고는 환약을 삼키었다.

“하아… 이놈의 탕제… 엄청 쓰네.”

“쓴 약이 몸에 좋은 법입니다.”

“하하하하하!”

이의방은 크게 웃었다.

* * *

두 시각 후.

군사들이 재집결하였다.

재공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고, 소라가 울려 퍼졌다.

“대열을 갖추어라!”

부장들이 외치자, 후방 측의 군사들이 집결시키었다.

성벽 쪽에는 시체들이 적군, 아군 가릴 거 없이 어느 정도 널려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 시체들을 밟고서 성을 넘어야 했다.

처음에는 사다리로만 공격하였다면 이번에는 충차까지 준비를 하였다.

비록 조잡한 충차였지만, 군사들의 힘으로 강하게 계속 밀어붙인다면 빗장 정도는 깨부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상장군! 대장군! 준비를 모두 하였사옵니다!”

부장의 말에 두경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민은 도끼를 꽉 부여잡았다.

다시 한번 더 성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첫 번째처럼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 이의민이었고, 이의민의 뒤를 따라 올라갈 부장들 역시나 죽을 각오를 하였다.

“어디 한번 신명나게 놀아보자!”

이의민은 힘껏 외치자, 부장들은 답하였다.

“예! 대장군!”

부우우우! 부우우우!

소라가 다시 울려 퍼졌다.

저벅! 저벅! 저벅!

장수들이 앞으로 나아가자, 군사들이 한발 한발 크게 내딛으며 성곽에 있는 군사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시작하였다.

이에 군사력으로 지지 않을 정중부 측의 군사들은 크게 위축되어 가고 있었다.

그만큼 이의방이 얼마나 군대를 잘 키워놨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목책을 들고 움직이는 군사들이 일정 거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곤 그 자리에 목책을 내려 둔 채 왼손에는 방패, 오른손에는 도끼를 들고 적들을 위협하는 자세를 취하였고, 그 뒤로 궁수들이 일제히 자리를 잡더니 시위에 화살을 걸고 당기었다.

* * *

“방패! 화살을 막아라! 두려워하지 마라! 적들은 오합지졸이다! 떨 거 없다!”

성곽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들이 소리치면서 이의방의 군대를 노려보았다.

아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른 상황이었다.

“적들은 절대 성곽을 넘을 수 없다! 아니, 이 개경으로 절대 들어올 수 없다!”

정중부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개경 전체의 군사들에게 울려 퍼졌다.

“황제 폐하를 시해한 역도의 군사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곧 남쪽에서 정의로운 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군대들이 속속히 모일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군사들이 당당하게 적들을 맞이하여 싸우게끔 힘을 돋우었다.

그러한 말 때문인지 몰라도, 정중부의 군사들은 굳었던 어깨를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용기를 다시 가지며 적들을 맞이하였다.

와아아아아아!

이의방의 군사들이 강렬한 기세로 몰려왔다.

정중부의 눈에 아예 사다리에 미리 매달린 채로 성곽에 착지할 전략이 눈에 들어왔다.

“궁수들은 쏴라!”

양측에서 화살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팅! 티티팅!

방패에 맞아 튕겨 나간 화살은 성곽의 궁수들이 주워서 다시 쓰고 있었다.

날아오른 화살을 맞은 군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크하아악!”

“끄아악!”

“커헉!”

화살을 맞고 죽어 나가는 장수나, 군사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재수 없게 목덜미나 머리에 맞아 즉사한 군사들은 종종 있었다.

군사들은 부상병들을 성곽에서 끌고 내려가면서 전투에 응하였다.

이의방의 군은 맹렬하게 공격 해오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고, 성곽에서는 기름이 가득 찬 항아리를 던져 불을 붙여 버리거나, 통나무를 굴려서 적들을 공격하였다.

“궁병들을 향해! 노포를 쏴라!”

정중부가 소리치자, 부장들 역시나 소리치며 명을 내렸다.

“노포(弩砲)와 거노를 장전하라! 궁병을 향해! 쏴라!”

성곽에 배치된 노포를 군사들이 장전하였다.

활보다 월등히 사거리가 길고 활보다 파괴력이 좋은 노포.

그걸 궁병에게 쏘려고 하는 것이다.

군사들은 노포뿐만이 아니라 공성 병기를 부술 수 있는 거노 역시 장전을 하였다.

끼기긱.

군사들이 양측에서 손잡이를 돌려가며 장전하자, 시위가 당겨졌다.

“쏴라!”

투웅!

노포가 쏘아지면서 궁수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퍼억!

아수라장 속에서 노포가 방패를 뚫고 나가 궁병을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노포와 거노를 쏘아라!”

장수들이 곳곳에서 소리를 치면서 명을 내리더니, 올라오는 상대 군사들을 보이는 대로 찌르고 베어 떨어 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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