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화
“문하시… 아니… 정중부가 개경의 모든 군을 장악하였겠지?”
“그러하옵니다. 알아본 결과, 정균이 3령의 군을 이끌고 어딘가에 매복하였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송유인 또한 보이지 않는다고 하옵고…….”
“…….”
“또한 대역죄인이라고 황제 폐하께서 공표하신 후로 양강도, 전라도, 경상도로 파발을 띄웠다 하옵니다.”
부장들은 상세한 소식을 이의방에게 전해주었다.
지금 이루어진 일로 보아, 정중부가 확실하게 이의방을 끝을 보겠다는 소리였다.
대역죄인이라 하였으니, 황실파의 귀족들은 자신을 치러 올라올 것은 자명한 일.
그들이 올라오기 전에 이 상황을 정리해야만 하였다.
하지만 저들도 군사가 군사인 만큼 섣부른 공격은 참아야 했다.
“이의민이 올 때까지를 기다려야 하는가? 자네들 생각은 어때?”
“위위경, 속전속결이 좋을 듯합니다. 대장군이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이고… 먼저 선공격을 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저 또한 돈 장군과 같은 생각이옵니다.”
“이 장군, 자네는?”
이영령에게 물었다.
“개경의 상황을 살피면서 공격하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아니면 날랜 군사들을 한 이백 정도 투입시켜 북문을 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료 되옵니다만.”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투 초반부터 그렇게 한다면 저들은 우리의 상황을 쉽게 알아차릴 것입니다.”
모든 장수들의 말에 일리가 있었고 어느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세. 목책을 세우고 경계태세를 갖추게. 어차피 지금 상황으로써는 정중부가 갈 데까지 갔네. 끝을 볼 때가 왔단 말이야. 나도 해주 정씨들을 죽여 버리라고 명을 내렸으니… 서로 불을 붙인 꼴이 아닌가. 내가 이기든, 정중부가 이기든 둘 중에 하나만 살아남는 싸움이야! 이건!”
이의방의 말에 장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끝내 막다른 길까지 왔다.
이제 정중부와 이의방의 끝자락에 다다른 것이었다.
“조원정, 석린, 이영진… 이 세 사람 정중부에게 붙었나? 확실히?”
“예. 위위경.”
조원정과, 석린, 이영진이 확실하게 붙었다는 말에 이의방이 두 눈을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 이 셋이 자신을 배신할 줄은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었다.
“배신자들의 처리는 소장이 하겠사옵니다.”
박존위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소장도 함께 처리하겠사옵니다.”
돈장 역시 나와서 말하였다.
“마주치자마자 죽일 기회를 주고 싶은데. 평생을 나를 위해 싸웠고, 내 옆을 지켰던 사람들이네. 왜 정중부에게 붙었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의방은 화가 나기는커녕 조원정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린, 이영진도 마찬가지였다.
석린은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 창고 옆에서 쌀을 주워 먹고 살다가 주위 사람들의 추천으로, 금군으로 발탁이 되었다.
타고난 체격이 좋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들어온 금군에서 이의방의 눈에 띄어 이의방이 동생처럼 챙겨주곤 했다.
이영진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단들 나가서 준비들 하게.”
“예! 위위경!”
장수들은 군막 밖으로 나갔다.
의원들은 이의방에게로 다가와 진맥을 하고 다시 환약을 건넸다.
이의방은 군소리 없이 환약을 꾸역꾸역 씹어서 삼키며 자리에 드러눕자, 의원이 침을 들었다.
다른 의원들은 침술 의원을 보조 해주었고, 천을 다시 갈 수 있도록 빠르게 준비를 해주기 시작했다.
* * *
“보이십니까? 저게 이의방의 진영입니다.”
진준이 문하시중 정중부에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던 정중부는 깊은 생각을 하였다.
“북문에 군사들을 대거 배치해놓았으니, 이의방 역시 쉽게 공격은 해오지 못할 것이옵니다. 문하시중.”
“자네도 알다시피… 북쪽의 능선의 길을 따라온다면 바로 저쪽으로 내려올 수 있어. 능선 쪽도 확실히 지켜야 하니 방심하지 말게. 물론 내 아들 균이 능선 쪽으로 이동했지만… 그래도 자네가 한 번 더 살피도록 해.”
“예! 문하시중!”
정중부는 차분하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살피기 시작했다.
* * *
얼마 후.
“아버지!”
정균이 급히 정중부를 찾았다.
“어인 일이냐.”
“이의방이… 이의방이!”
“이의방이 죽었느냐?”
기대에 찬 눈치인 정중부.
하지만 실은 반대였다.
“살아 있습니다. 그것도… 멀쩡하게요.”
정균의 말에 정중부는 눈을 질끔 감았다.
일이 쉽게 풀릴 줄 알았건만, 정작 아니었다.
“살아 있다면 어쩔 수 없지. 결국 싸움밖에 더 있겠느냐.”
“그래도… 다시 시작…….”
“아니 된다. 이의방 주위에 있는 놈들이 호락호락한 놈들인 줄 아느냐. 이의방의 명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밀어버리는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지키고 있는 저 호랑이 굴로 들어갈 참이더냐.”
자신의 아버지 정중부의 말에 정균은 고개를 숙이었다.
“…송구합니다.”
“되었다. 그리고 이의방을 죽이기에는 너무 늦었어. 고득시가 오기 전에 처리해야 했단 말이다. 균아, 너는 군사들을 잘 단속하거라. 이번 이의방과 싸움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야.”
“명심하겠사옵니다. 아버지.”
“가보거라.”
정균은 인사를 하고서 곧장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진 상장… 응?”
그때 저 멀리서 태후전 상궁이 눈에 들어왔다.
태후전 상궁이 급히 자신에게로 다가왔다.
“진 상장군.”
“예. 문하시중.”
“북문에 병력을 좀 더 투입시키게. 성문이 뚫린다는 가정 하에 시가지(市街地) 전투 또한 예상해야 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문하시중. 하지만… 시가전까지 갈 일이 있겠는지요. 우리가 가진 군대와 곧 지방에서 올라온 군사들을 생각한다면…….”
“그렇지가 않아. 대비해야지. 대비를 말이야.”
“예. 문하시중의 뜻이 그러하시니, 그리하겠사옵니다.”
진준의 말에 정중부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야기가 끝난 것 같자, 상궁이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아니… 태후전 상궁이 여기는 어인 일인가?”
“태후마마께오서 뵙자고 하시옵니다.”
“나를? 무슨 이유로 말인가? 태자비 건이라면 듣고 싶은 생각 없네.”
“문하시중. 어찌 그런 불경스러운 말씀을 하시옵니까?”
“최상궁, 자네도 재물 좀 만져 볼 생각이 있으면 내게 태후전 소식이나 전해주게나.”
“…예?”
최상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태후전도 무섭지 않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태후마마이시옵니다. 인종 황제께서 계실 때 무척이나 문하시중을 아끼셨고, 태후마마 역시…….”
“그건 지난 일이야. 지난 일.”
정중부는 상궁의 말을 끊어 버렸다.
인종의 총애를 받은 건 사실이었다.
선황제의 총애 역시 남달랐다.
하지만 주위 문신들이 점차 무신을 천대할 때, 그런 문신들의 행동에 선황은 모르는 척 방관만 하였다.
또한 한뢰가 이소응에게 면박을 주었을 때도, 대놓고 굴욕을 주었을 때도 화가 들끓어 올랐지만, 의종은 자신을 따로 불러서 위로하였었다.
그만큼 정중부를 아꼈던 황제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정중부는 권력을 탐하고, 이의방을 어떻게든 죽일 생각밖에 없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돌아가게. 내 일이 끝나는 대로 태후마마를 알현하겠네.”
“문하시중!”
“돌아가라지 않는가!”
정중부는 그대로 진준과 함께 곧장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최상궁은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태후전으로 돌아갔다.
* * *
“이거… 큰일 아닙니까?”
대장군 이춘부의 말에 두경승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현재 본인들은 무장해제 된 채로 연금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응양군 전체의 군권까지 빼앗겨 정중부가 지휘를 하고 있었다.
“하아… 내 위위경을 어찌 뵐꼬…….”
이의방이 자신에게 맡기고 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니, 이의방에게 그게 제일 미안할 뿐이었다.
“상장군, 다른 사람들은 위위경이 죽었다라고도 하고… 살았다라고 하네… 이거야 원… 답답해서.”
이춘부는 계속해서 불안한 듯 산만하게 왔다 갔다 했다.
“이 대장군.”
“예. 상장군.”
“이곳을 나가야겠소. 군사나 부장 하나를 족치면 무슨 답이라도 나오겠지.”
“내 말이!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이춘부는 미소를 지었다.
“나가세!”
관부 마당까지만 허락이 된 두경승과 이춘부는 당당하게 아무것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덜컹.
방문이 열리자, 검을 패용한 채로 있는 수십의 용호군 부장들이 이춘부와 두경승을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시옵니까?”
한 발자국 나서자, 부장이 경계하며 두경승에게 물어왔다.
빠악!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감히 응양군 상장군이 어디를 가시는데 네까짓 게 뭘 물어보느냐?! 네 이놈!”
이춘부가 용호군 부장의 머리를 가격하며 호통을 쳤고, 그 부장은 이춘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네 이놈! 어디 감히 낭장 따위가 대장군을 노려보는 것이냐! 내 오늘 네놈을 군율로 다스릴 것이다!”
두경승은 밖에까지 들릴 정도로 호통을 치며 부장의 검을 뽑아 들었다.
촤앙!
푸욱!
두경승은 검을 뽑아 들어 그대로 부장의 가슴을 찔러 버렸고 이춘부 역시 찔러 버린 부장의 검을 뽑아서 주위에 부장들을 제압하였다.
솩!
푹!
“이야아아!”
솨악!
부장들은 당황하며 검을 뽑으려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솨악!
팟!
“크아아아아!”
검을 잡던 손목을 잘라버리자, 부장이 비명을 내질렀다.
푸욱!
이춘부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는 부장의 목에 검을 쑤셔 넣었다.
“끄어어아아…….”
부장들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순식간에 여럿을 제압한 두경승과, 이춘부는 슬슬 마무리를 지어갔다.
두 사람의 옷에는 온통 피 칠갑 되어 있었고, 얼굴에도 선명하게 피가 튀어 있었다.
겨우 치명상을 피한 부장들이었지만, 곳곳을 베인 결과 부장들 모두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부상을 당하였다.
“하아…….”
두경승은 옷소매로 대충 얼굴의 피를 닦아 내었다.
“황궁을 둘러본 후에 나가야 하네. 그래야 소식을 전해주든지 할 게 아닌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가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밖에 군사들이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는지 아십니까? 여기엔 우리를 따랐던 군사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대동하고 밖으로 나가기에는 역부족이니… 우리라도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쾅!
검을 내던져 버렸다.
부장들을 모두 죽였는데.
아무 소득 없이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에 두경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부장이 안으로 들어서자, 멈칫하였다.
주위에 있던 부장들이 모두 죽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