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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27화 (27/159)

027화

“창!”

창이라고 크게 외치자, 군사들이 틈을 만들어 내어 일제히 창과 장병기들을 들이밀어 버렸다.

푹!

푸푸푸푸푹!

“커헉!”

“크헉!”

피를 토해내며 쓰러지는 승려들.

군사들은 찌르고 빼고, 찌르고 빼고를 반복하면서 이의방의 원진과 함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나가야 한다.”

“예! 위위경!”

돌격하며 공격을 감행해 오던 승려들은 공격도 해보지 못한 채 원진을 뚫지도 못하고,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지레 겁을 먹은 승려들은 등을 보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그런 모습을 보는 정균은 소리를 질렀다.

쓸모없는 중들임을 확실히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복수심만 불타오르던 이들이었지 정작 한번 사기가 꺾어지니, 일반 백성보다 못한 상황이 아닌가.

“공격하라!”

정균이 다시 공격령을 내리자, 이번에는 이광정의 군사들이 뛰어나갔다.

“하암!”

이광정이 당당히 정균 앞에 걸어 나와 정균 옆에 섰다.

“승려들보다는 내 군사들이 더 잘 싸울 것이니, 너무 염려치 마시오.”

“뒤에 또 군사들이냐?”

“예… 이광정입니다.”

이의방은 미간을 찌푸렸다.

개경에 자신이 없으니, 배신자가 속출한 것이다.

더 이상 개경에 믿을 놈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래도 조원정은 기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조원정도 본인을 배신하였을지 안 하였을지 모르지만, 어떻게든 조원정의 상황을 살펴야 했다.

그렇지만 조원정을 기다리기엔 검에 찔린 부위가 너무 깊었고, 출혈도 상당했다.

독으로 인한 감염과 상처가 정신력을 흩트리고 있었다.

“위위경! 조금만 참으십시오!”

“위위경을 보호하라! 원진! 밀착시켜라!”

부장들이 소리치자, 원진들이 속속히 밀집되면서 원 안에 원을 만들어 빙 둘러싼 채로 이의방을 보호하며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의방은 이미 정신을 놓아버렸다.

부장들이 큰 소리로 이의방을 추스르면서 대신 명을 내리며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갔다.

푹!

푸욱! 푸푸푹!

이광정의 군사들도 원진에 달려들었지만, 승려들과 마찬가지로 공격 한 번 제대로 못 한 채 창에 찔려 죽어갔다.

“이… 이런!”

멀리서 지켜보던 이광정은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군사들을 보며 너무나도 아까워하고 있었다.

저들 전체가 자신을 보호하는 군사들이었고, 또 군사를 만들자니 그 나가는 돈이 아까워서였다.

이광정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목숨과 재물만 있으면 끝인 인사였으니까 말이다.

“아이고! 아이고! 내 돈!”

“…….”

이광정의 한마디 한마디가 듣기 거북한지 정균은 눈썰미를 찌푸리며 이광정을 노려보았다.

이광정은 정균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상황만 지켜볼 뿐이었다.

“퇴각! 저렇게 가다가는 우리 군사 다 죽는다!”

부장에게 명을 내리는 이광정이였다.

“그 무슨 말이오! 멀리 따라가게끔 하면 되는 거 아니오!”

“그 무슨 소리! 만약 뒤에 군사들이 있으면 어찌할 것이오! 정 장군!”

이광정과 정균의 의견이 서로가 맞지 않아 다투는 동안 결국 이의방을 놓치고 말았다.

오로지 이광정의 명만 듣는 부장의 원인이었다.

“…송구하옵니다.”

“승려들이란… 훈련을 한 것이야! 안 한 것이야!”

정균은 종참에게 가장 먼저 크게 소리치며 다그쳤다.

“하지만 이의방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정확하게 찌르시지 않으셨사옵니까. 출혈과 살점이 괴사가 되어 죽을 것이옵니다. 독은 쉽게 퍼질 것이니, 어디를 찌른들 반드시 효과를 볼 것이옵니다!

종참은 이를 장담하였고, 정균은 들고 있던 단검을 땅에 내팽개쳐버렸다.

채앵!

이의방이 죽는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봐야만 했다.

확실히 해야했으니 말이다.

밑의 것들을 어찌 믿고 어찌 죽었다고 확신하겠는가.

결국 이의방을 치려던 1차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의방이 살아 있다고 하여도 2차 전투는 개경에서 벌여야 할 것이었다.

“자네는 여기를 수습하게!”

“예! 장군!”

정균은 곧장 자신의 말을 타고서 정중부에게로 향하였다.

* * *

“폐하!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중방의 신료들이 모두 나와 시위를 하고 있었고, 정중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황제가 명령을 내리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정중부는 이의방을 확실히 제거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용호군으로 하여금 태후를 감금시키라 명했다.

완전히 앞뒤 안 가리고 끝을 보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응양군 역시 손발이 묶여 버렸다.

경대승은 아버지 때문에 손발이 완전히 묶여 버렸고, 이춘부는 두경승과 함께 관부에서 연금을 당하였다.

그로 인해 완전히 응양군 전체에 명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리하여 모든 황실이 반강제적인 정중부의 세상처럼 돌아가는 듯 보였다.

덜컹!

대전의 문이 열리면서 내관이 급히 두루마리를 가지고 정중부에게 달려왔다.

“받으시지요. 문하시중께서 원하시는 그 답이라 하셨사옵니다.”

정중부는 미소를 지으며 두루마리를 받았다.

황제가 정중부의 힘에 굴복한 것이다.

이제 이루어질 것은 이루어진 셈이었다.

정중부는 그 자리에서 두루마리를 펼쳐 내용을 살피었다.

대역죄인 이의방, 이의민이라고 시작하는 내용문이었다.

이거 하나로 고려 전체에 이의방을 죽이라는 명을 내릴 수 있었고, 이의방의 세력은 완전히 끝이 나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정중부는 마치 이겼다는 듯이 대전 코앞에서 미친 듯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하하!”

황제가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 * *

고려의 현재 상황과 이의방 그리고 무신정권의 주역이었던 이들의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며 고려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은근히 갑이라는 무사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정보가 빠삭하였다.

주인인 우학유를 개경에서부터 모시면서부터 못 볼 거 다 본 인사였던 것이다.

무신정권의 원인과 원흉, 그 시작부터 끝까지 설명을 다 들었다.

선황제를 폐(廢)하고, 현재의 금상이 황제가 되었고 황제를 옹립하였던 이들 중에 이고가 역심을 품자, 이의방이 그를 제거함으로써 고려의 유일무일한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정중부와 이의방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 또한 들었다.

또 언제 둘의 관계가 부수어질지도 모른다며 갑이가 말하였다.

‘이상하다… 이의방은 죽는 거로 아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무신정변의 시작과 끝은 이의방으로 시작해서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최우, 최항, 최의, 김준, 임연, 임유무를 지나 100여 년의 무신정권이 끝이 난다.

이번에 결판이 난다는 게 이의방의 죽음일까.

“개경까지 얼마나 가야 하지?”

“예. 나리. 이 상태로 가신다면 일주일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갑이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탈 줄 안다면 더 이른 시일 내에 도착할 것이지만 말을 탈 줄 모르니, 계속 걷고 또 걸어야 하였다.

* * *

몇 시진 후.

모두 개경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2군 용호군은 황실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고, 응양군 역시 용호군 상장군이자, 문하시중인 정중부의 명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응양군은 조원정이 맡아 움직이게 하였다.

6위 중 5위는 개경 성곽에 전원 배치시키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머지 군은 한곳에 모았다.

그러던 중, 문하시중 정중부가 단상에 올라섰고 다른 신료들 역시 갑주를 입고서 단단히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하였다.

물론 정중부 역시 이의방이 칼에 찔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끝을 내야만 하였다.

“황제 폐하께서 대역죄인 이의방과 이의민을 주살(誅殺)하라는 명을 내리셨느니라. 우리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대역죄인 이의방과 그의 식솔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참형에 처할 것이며, 그에 따라 태자비 또한 황실에서 끌어낼 것이다! 이제 각자의 임무를 맡은 자리로 돌아가 준비하도록 하라!”

“예! 상장군!”

각 장수들은 문하시중이라는 말 대신에 정중부에 상장군이라고 외치면서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장들도 그들의 뒤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

정중부 역시 바짝 긴장하였는지 주먹을 계속 쥐었다 피었다 하고 있었다.

이 결정 하나에 모든 걸 끝낼 수 있으니 말이다.

정중부는 크게 숨을 내쉬더니, 동문, 서문, 남문으로 전령을 띄워 이 사실을 각 성과 귀족들에게 알렸다.

이제 이의방은 독 안에 든 쥐였고, 흥위위 군사들 역시 이 사실에 우왕좌왕하며 해산될 것은 분명하였다.

* * *

“어떠하신가?”

“계속 열이 펄펄 끓고 계시네. 그나저나 고 장군… 이 대장군, 이 장군에게 연통은 보냈는가?”

“진작에 넣었지, 이 사람아. 근데 내 밖에서 듣고 온 소식으로는… 위위경과 대장군이 지금 대역죄인이 되었다는데…….”

“그 무슨! 조용히 하시게! 아무리…….”

“…무슨 말인가.”

대역죄인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진 이의방이었다.

“하…….”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이의방은 간신이 부장의 어깨에 손을 짚고서는 일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대역죄인이라니…….”

“위위경…….”

정균에게 찔린 부분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움직이시면 아니 됩니다. 위위경. 독이 몸에 퍼져 있습니다. 그나마 천 부장의 아버지가 약초꾼이라 다행이지… 하마터면 목숨을 잃으실 뻔하였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한 뒤, 다행히 아버지를 약초꾼으로 둔 부장이 있어서 손쉽게 약초들을 찾아서 급히 빻아 검에 찔린 부위에 붙일 수 있었다.

“천부장을 데려오게. 위위경께서 일어나셨다고.”

“알겠네.”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던 이의방은 자리에 다시 천천히 누웠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상처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깊게 찔렸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정균이 칼로 찔렀을 때 한 번 찔렀다 뺀 것이 아니었다.

찌르고, 다시 한번 깊게 찌르고 비틀어서 빼버렸다.

한마디로 제대로 골로 보내 버리려고 작정을 했다는 의미였다.

자신의 부장 중에 약초꾼을 둔 아버지가 있었다는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꿈처럼 허망하게 죽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흐흐…….”

“위위경.”

“고맙다…….”

이의방은 자리에 누워 겨우 고맙다는 말을 내뱉었다.

“내가 대역죄인이 되었다는 말을 들어도 나를 옆에 이렇게 챙겨주는구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위위경께서 저희들을 챙겨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위위경. 이 대장군과 이 장군, 고 장군들에게도 모두 연통을 넣었으니 조금만 버티시옵소서.”

부장들의 말에 위안이 되는지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로 정중부를 처단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죽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대역죄인이라고 공표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이렇게 옆에 있어 주는 부장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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