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자, 이제부터 시작이오. 위위경 이의방이가 오늘 올지 아니면 내일 올지 모르는 상황이오. 아니, 지금 왔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 각자 긴장들 하시고. 이광정 대장군.”
“예? 아, 예! 문하시중!”
“자네가 훈련이 잘되어있는 군사들을 북문에 배치하도록 하게. 이의방은 북방을 순시한다고 하였으니, 서경을 거쳐 오게 될 것이야. 반드시 그곳에 훈련이 잘된 병사들을 배치하게. 또한 자네가 직접 군을 지휘해야 하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정중부의 말에 이광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좋네. 내 자네만 믿도록 하지. 더불어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으니, 하는 말인데… 지금부터 확실하게 제압을 해 나아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응양군이오. 응양군을 반드시 제압을 해야 하는 데 누가 하시겠소이까?”
“소장이 하지요. 소장도 하지요.”
기탁성, 경진이 말하였다.
경진은 응양군 장군 경대승이 있으니, 자식이 아비를 벨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응양군은 쉽게 넘어올 것이었고, 문제는 상장군 두경승과 이춘부였다.
이춘부는 두경승의 분신 같은 존재로 늘 두경승을 따라다녔으며 두경승의 명이면 물불 안 가리기로 소문이 났다.
본래 이의방의 사촌 형이지만, 두경승 덕에 사람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니, 두경승을 따르는 계기가 되었다.
“응양군을 제압한 뒤에 태자비를 반드시 끌어내야 할 것이오.”
“예? 태자비를 끌어내다니요… 그러면 태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만히 있게 만들어야지. 그리고 이준의, 이린, 이거뿐만이 아니라, 이의방의 가솔 모두 연금시켜야 합니다. 이건 조 장군 자네가 할 수 있겠나?”
정중부가 조원정에게 묻자, 조원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군례를 올리었다.
“예! 문하시중! 소장에게 맡겨만 주시옵소서!”
정중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6위 중, 5위가 있으니, 흥위위를 대동하고 있는 이의방 따위는 무섭지 않았다.
“이제 태후가 그토록 반대하였던 것을 이제 실행을 해야 합니다. 임무를 맡지 않은 자들은 모두 대전으로 가서 연좌시위를 하세요. 그렇다면 황제 또한 우리의 뜻을 따라 줄 것이오!”
“예! 그렇게 하시지요!”
“자! 그럼 가시지요!”
신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중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 *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예. 장군. 승군들이 곳곳에 매복하고 있습니다. 신호만 주신다면 이의방 군사들에게 독화살을 날려 전부 제압할 것입니다. 그들이 갑주를 입었다 할지라도 스치기만 하면 효과가 나타날 것이니, 항우장사(項羽壯士)라 할지라도 버티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정균은 종참의 말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만 믿지. 더군다나, 승통께서도 우리와 동참을 하였으니… 말 다 한 거 아니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승통께서도 위위경을 원수처럼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하하하하하하!”
정균은 크게 웃었다.
위위경이 도착하면 어떤 최후를 어떻게 맞게 될지 뻔히 보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독화살로 쏴서 흥위위 군사들을 무력화시키고, 위위경을 추격해서 잡을 것이다.
아니, 죽일 것이다.
위위경을 죽여야지만 모든 게 생각한 대로 돌아갈 것이다.
이의방의 여식인 태자비를 황제의 명으로 당분간 살려둔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위험할 수 있으니,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지금 조정에서 몰이가 잘 진행되고 있다면 이의방은 역적이 되어, 수많은 귀족들에게 공격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황제가 버티고 있으니 문제였다.
“이보게. 종참.”
“예. 장군.”
“다시 한번 더 짚어 보게. 성문 안까지 끌어들여 공격한 후, 이의방이 퇴각하기 시작하면 후방에서 역시 승군들이 공격한다… 이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장군. 만약 이의방이 퇴각하지 않고, 성문 안으로 쭉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이광정의 군사들과 맞닥뜨릴 것입니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후방에 있는 승군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이의방의 군대를 뒤에서 칠 것이니, 이의방은 독 안에 든 쥐이옵니다.”
“하하하! 좋아 좋아… 일단은 내가 크게 한번 찔러줘야 하는데…….”
정균은 독이 묻은 단검을 뽑아 들며 살피었다.
군데군데 묻어져 있는 독들 치명상을 주기에는 딱이었다.
* * *
며칠 후.
서경을 확실하게 넘어 개경 코앞까지 온 이의방이었다.
지쳐 버린 군마(軍馬)와 군사들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위위경… 잠시라도 군사들을 쉬게 해주시지요.”
불안감에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이의방은 부장의 말대로 주위 군사들의 상태를 살펴보니, 더는 가기 어려운 얼굴들이었다.
갑옷을 입은 채 말 위에 타고 계속 달리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곧 개경이니, 개경에서 쉬자 꾸나.”
“예! 위위경! 조금만 더 힘을 내라! 개경에서 쉴 것이다!”
“예!”
군사들은 크게 소리쳤다.
이의방은 다시 말을 타고 시작했고, 군사들 이의방을 따라 역시 내달렸다.
* * *
얼마 후.
“워워워!”
굳게 닫혀있는 성문을 본 이의방은 말을 천천히 이끌고서 앞으로 나아갔다.
성문을 지키고 있어야 할 초병들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초병이 없다니?’
혹시라도 늦은 게 아닌가.
성 내부는 조용한 듯 보였다.
잠시 분위기를 살피던 이의방이 이내 소리쳤다.
“게 누구 없느냐?! 여봐라!”
곧이어 성문이 열리며 나오는 이는 정균이었다.
정균이 곧장 위위경에게로 뛰어오자, 이의방은 말에서 내려 정균에게로 다가갔다.
무방비 상태가 아니라, 아주 긴장한 채로 말이다.
“북방 시찰은 다 하신 것입니까?”
정균은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서북면병마도사 우학유가 내 대신 일을 하기로 하였네. 그나저나 초병들은 다 어디 가고 자네가 나오는가?”
“아, 예. 초병 몇몇이 심한 열병에 걸려 급히 수문장과 함께 의원에게로 가라 일렀습니다. 모두 자리를 비워 제가 잠시 자리를 지키는 길이였습니다.”
“그건 감문위가 해야 할 일이지 자네가 할 일인가. 자네는 용호군의 장군이야…….”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해 보여 그리하라 하였습니다.”
이의방은 정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경계를 하였다.
정균이 뭔 짓을 하려는지 모르기 때문이었으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니, 단단히 대비해야만 하였다.
“자, 가시지요.”
“음… 가자!”
“예!”
부장들과 군사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말 안장에 달아둔 방패를 꺼냈다.
왼손에 방패를 끼우고, 오른손에는 장병기를 들어 위위경 이의방의 뒤를 따랐다.
정균은 이의방 옆에 서서 그와 맞춰 걸으며 기회만을 노렸다.
갑주가 있기에 쉽게 치명상은 힘들 듯 보였으나, 조금이라도 살에 스치게라도 한다면 독이 퍼질 것이니, 별문제는 없을 것이라 보였다.
“북방은 어떠하였습니까.”
“어떻기는 척박하기 그지없지. 때가 되면 자네도 한번 갔다 와보게.”
“하하하, 소장이 말이옵니까?”
정균은 그저 이의방의 말에 웃으면서 답할 뿐이었다.
이제 이의방이 성문 안으로 거의 들어서자, 정균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단검을 뽑아 들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네… 허리춤에 단검은 왜 차고 다니는가? 검이 왜 불편한가? 고리에 달고 다니면 그나마 편할 것인데.”
“예? 아, 아니옵니다. 그냥 급하게 필요할 때가 있어서 하하하…….”
정균이 평소에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단검이 유난히 신경 쓰이는 이의방은 계속해서 힐끗힐끗 단검을 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방어를 해야 하니 말이다.
정균은 대화하면서 계속 기회를 보았지만, 쉽게 기회가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순간 이의방이 한눈을 판 사이에 정균은 단검을 뽑아 들어 경번갑 사이의 허벅지에 칼을 꽂아 넣었다.
푸욱!
“으아악!”
푹!
정균은 경번갑 사이에 드러난 이의방의 허벅지를 정확하고도 깊게 찔러 비틀었다.
“죽어라! 이의방!”
정균은 그렇게 크게 외치면서 이의방의 허벅지에서 단검을 뽑아 들더니, 뒤로 바로 빠졌다.
이의방은 고통에 털썩 한쪽 무릎을 굽히었다.
“이… 이런!”
쉬쉬쉭!
퍼퍼퍼퍽.
“크아악!”
“크헉!”
곳곳에서 화살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위위경을 보호하라! 위위경을 보호하라!”
군사들은 당황하여 외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속수무책 화살 공격을 당하고 있는 군사들은 픽픽 쓰러져 갔고, 독화살에 맞은 병사들은 급격히 경련하며 반응을 보였다.
“독화살이다! 피해라! 퇴각하라!”
부장들은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퍽!
“크허억!”
의의방을 보호하려다 가슴팍에 화살을 맞은 부장이 털썩 쓰러져 버렸고, 이의방은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방패를 들고 있는 군사들이 속속히 모여들어 원진(圓陣)을 만든 뒤, 성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팅! 티팅!
허벅지에서 뜨겁게 통증이 밀려 들어왔다.
금세 피부가 붉게 변해가기 시작했고, 자신이 독에 당한 걸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최대한 알리지 않고, 바로바로 군사들을 보채며 성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서둘러라. 빈틈을 주어서는 안 돼!”
“예! 위위경!”
군사들은 이의방의 명에 소리치며 답하였다.
틈틈이 흥위위를 훈련시켰던 보람을 여기서 보게 되는 셈이었다.
‘가족들은 어찌 되었으려나…….’
자신의 몸 상태는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가택에 있을 집안사람들이 문제였다.
“공격하라!”
“와아아아아!”
정균의 외침에 앞뒤에서 보병들이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원진(圓陣)이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화살 공격까지 멈춘 상황이었다.
이의방은 군사들 사이에 살짝 틈을 만들어 앞뒤 좌우를 살피어 보았다.
이의방을 둘러싼 총 5개의 원진이 만들어져 있었고, 군사들 앞뒤로 보이는 군사들은 전부 승려들이었다.
“이놈의 중들… 나중에 보자… 모두 그 사지를 절단하여 죽일 것이다!”
“죽어라!”
승려들의 외침이 가득 들려왔다.
무승들이라 병기를 잡는 게 남달라 보였다.
이의방은 명을 내릴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제대로 된 군사 훈련도 못 받아본 승려들이었다.
그걸 고려한다면 할 만한 싸움이다.
더군다나 정중부가 자신을 죽이려고 작정을 하였으니, 퇴각보다는 시가지(市街地) 전투까지 생각해야 했다.
적어도 사나흘만 버틴다면 남은 병력도 모두 도착할 것은 자명하였으니 말이다.
“윽!”
그때 허벅지에서 고통이 밀려 들어와 허벅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피가 엉겨 붙어 찐득거리며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위위경, 중들이 옵니다!”
부장의 말에 틈 사이를 재차 확인한 이의방은 곧바로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