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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24화 (24/159)

024화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집안을 감시하는 눈이 있을 것이야.”

“예.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지금부터 사저 전체의 경계 강화를 게을리하지 말고,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을 불러 위위경에게 가도록 하게.”

“예? 위위경에게 말입니까?”

“그래 내가 서찰을 써 줄 테니, 속히 달려야 하네. 이곳을 벗어나서는 정중부의 시선에 띄어도 된다네. 어차피 올 때까지 온 듯 보이니 말이야.”

“형님… 너무 성급한 거 아닙니까.”

이거가 물었다.

“아니다. 그렇지 않아. 의방이가 집에 없으니… 이제 내가 책임져야지. 자네만 믿네.”

박지영은 고개를 숙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박지영은 다시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이준의는 종이를 자신의 앞에 놓고는 붓을 들어 현재 개경의 상황에 관한 내용을 써내러 가기 시작했다.

* * *

그날 저녁.

이의방은 통주를 지나, 철주성에 도착해 통주와 마찬가지로 군사 훈련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개경 일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하였다.

정중부가 지금 자신을 어떻게 하려고 단단히 준비하는 것 같은데 그 내막을 모르니, 섣부르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위위경! 위위경!”

“응?”

“훈련 모두 맞추었습니다.”

“아, 그래. 고생했어. 쉬게.”

“예.”

철주 방어사는 곧장 군사들에 해산하라 명을 내리었고, 이의방은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향하였다.

“이 대장군.”

“예. 위위경.”

“사람을 시켜 개경 소식을 좀 알아보라 하게. 아무래도 불안하기 그지없어.”

“예! 위위경!”

이의민은 고개를 숙이며 곧장 다른 곳으로 향했고, 이영령만이 이의방을 곁에서 보좌하였다.

* * *

다음 날 아침.

군사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위위경, 이쯤 되면 먼저 개경으로 내려가시지요. 이곳은 제가 쭈욱 둘러보겠습니다. 동북면도 포함해서요.”

개성 생각에만 빠져 있는 이의방을 보던 끝에 우학유가 말한 것이다.

“서북면은 제 소관이라 할 수 있는 곳 아닙니까. 여기까지만 하시고, 그만 개경으로 돌아가시지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돈댁의 집사가 다녀간 이후로는 단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개경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건 확실했으니 말이다.

“위위경, 어찌하시겠사옵니까.”

이의민 역시 이의방에게 행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왔다.

“이 대장군.”

“예. 위위경.”

“해주로 가게. 거기서 만일 내가 무슨 일이 생긴다면… 해주에 있는 정씨들이란 정씨들은 모조리 죽여 버리게.”

“하오면… 소장이 반군을 진압하였던 그 군사들만 이끌고 가겠사옵니다.”

“그리하게. 그리고 매제는 여기서 내 대신 일을 본 후에 개경으로 사람을 보내든지 그렇게 하게. 아무튼 자네만 믿겠네.”

“예. 위위경.”

“이영령만 나를 따르게.”

“알겠사옵니다.”

차라리 잘되었다.

이의민은 경주에서 끌고 왔던 군사들을 따로 소집하였고, 이영령과 부장들은 흥위위만 따로 헤아렸다.

“이 장군!”

“예! 위위경!”

군사를 집결하던 도중에 이영령을 부르자, 이영령이 곧장 이의방에게로 다가왔다.

“부르셨사옵니까.”

“내가 기병들만 추슬러 개경으로 들어갈 테니, 자네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오게나.”

“예!? 아니 되옵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어찌하려 하시옵니까?”

이영령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보병까지 전부 추슬러서 개경으로 향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개경에서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니, 어쩌겠는가.

속히 출발하여 개경에 하루… 아니, 한 시진이라도 빠르게 도착해야지만 내부사정을 얼른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의방이 곧 외쳤다.

“흥위위의 기병들은 모두 나를 따르라!”

쩌렁쩌렁하게 이의방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기병들은 속속히 앞으로 나와 이의방의 명에 의하여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 대장군!”

“예! 위위경!”

“해주의 관아부터 장악하게!”

“예! 위위경!”

“이 장군!”

“예!”

“자네는 개경으로 군을 이끌고 오면서 박존위와 돈장 또한 함께 데려오게!”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이의방은 말머리를 돌리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기병들 역시 속도에 맞추기 시작했다.

“부디 조심하시옵소서!”

“조심하시오소서! 위위경!”

“이럇!”

속도를 높이며 치고 나가자, 수천의 기병들이 이의방을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 * *

“그게 무슨 말이오! 폐주의 복권이라니!”

이준의는 탁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럴 수는 없소이다! 폐주의 복권이라니!”

“우리 중방은 이미 모든 뜻을 모았소이다.”

“위위경이 없는 틈을 타서 폐주의 복권을 노리는 뜻은 무엇인가!”

“말을 가려 하시오! 정3품 좌승선이 어디 감히 종1품의 문하시중에게! 말하는 본새가 무엇이오!”

진중이 이준의에게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뭐라! 폐주의 복권은 내 아우인 위위경과 나를 죽이겠다는 말이 아닌가! 내 아우 위위경은 이 나라 황실을 위해 들고 일어선 것이네! 폐주는…….”

“닥쳐라! 어디서 그따위 말을 내뱉는 것이냐!”

“뭐… 뭣이야!”

이광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이준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중방의 결론이 이미 났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야! 문하시중께서도 찬성하신 마당에 좌승선이 돼서 황제 폐하와 문하시중의 뜻을 거스르겠단 말이냐?!”

“이광정… 이 쥐새끼 같은 놈! 위위경이 있을 때는 개처럼 빌붙더니만! 위위경이 없으니, 감히 배신해!”

“하, 무슨 배신이란 말인가!”

“조 장군!”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이준의는 조원정을 불렀다.

조원정이 묵묵부답에 아무런 반응도 없자, 이준의는 정중부를 바라보았다.

정중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

더 이상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고, 정중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준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폐주는 복위될 것이고, 위위경에겐 폐주를 시해하였다는 죗값을 물을 것이네. 아시겠는가? 좌승선.”

“이럴 수는 없소이다! 어떻게… 위위경이 없는 틈을 타서 이런 짓을 꾸미다니!”

“꾸민 게 아니라… 폐주의 아우님 되시는 충희 승통께서 청하여 일이 벌어진 것이네.”

“뭐… 충희?”

충희 승통을 들먹거리는 정중부의 말에 이준의는 털썩 주저앉았다.

승통까지 폐주의 복위를 주장하였다면 이건 문제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고려 전국의 승려들을 적으로 돌려 버린 것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이상… 모두 같은 뜻인 걸로 알고, 폐주의 복위를 황제 폐하에게 건의하도록 하겠소이다.”

정중부의 말은 자신들 또한 역적으로 만들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태자비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아는 이준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먼저 밖으로 나갔다.

중방은 온통 이의방의 적과 배신자들로 가득한 곳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준의는 먼저 급히 우승선 문극겸에게로 향하였다.

‘사돈이라면 무슨 방도가 있을 것인데… 아니, 그나저나 사돈은 왜 중방에 나오지 않은 것인지… 대체!’

타들어 가는 속을 누가 알아주지는 않았다.

좌승선 이준의는 급하게 문극겸에게 급히 뛰어갔다.

툭.

“어이쿠, 조심하지 않고!”

“송구합니다. 좌승선.”

어깨를 부딪친 이준의는 크게 소리쳤다.

“아, 자네 양경이 아닌가… 잘 좀 보고 다녀야지…….”

“송구하옵니다.”

김양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었다.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십니까?”

“아, 그래. 우승선을 만나러 가야 해서.”

“어… 우승선께서는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금 좌승선을 뵈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우승선이 관저에 없나?”

“예…….”

이준의는 침을 꿀꺽 삼키었다.

대체 문극겸은 어디로 간 걸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꼴이란 말인가.

“급한 용무라니… 그게 뭔지는 알고 있나?”

“송구하옵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우승선께서 이리 전하라 하셨습니다.”

“어?”

대충 상황판단이 되었는지 이준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 하였는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저… 그리고 이것 좀.”

두루마리를 건네어 주자, 이준의는 두루마리를 받아 바로 풀어헤쳤다.

“이게 뭔가?”

펼쳐본 두루마리는 백지였다.

두루마리에는 아무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다.

“…….”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김양경은 고개를 숙이며 곧장 몸을 돌려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게 무슨 의미야… 어……?’

백지의 두루마리를 한참 보던 이준의는 두루마리를 다시 둘둘 말아서는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 * *

한편 중방에서는 어떻게 이의방을 처리할 것인지 의논에 들어갔다.

조원정은 아무런 말 없이 두 눈을 감고만 있었다.

“문극겸이 중방 회의에 안 나온 것을 보아하니… 이의방의 편도, 우리의 편도 아닌 듯싶습니다.”

송유인이 말하였다.

“예. 소장 또한 같은 생각이라 사료 되옵니다. 더군다나… 지금 제 군사들을 개경으로 들어오는 길목마다 배치하였으니, 이의방이 나타나는 대로 보고가 들어올 것입니다.”

이광정의 말에 중방의 신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준의에게 대들었던 이광정이다.

그런 이광정의 속셈은 뻔하지 않은가.

‘역시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할 놈이구나. 여차하다가는 나를 배신하겠다.’

이젠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의방이 개경에 오기 전까지 모든 걸 갖추고, 준비하고, 처리해야 한다.

폐주 복귀는 실행이 되었으니, 이제 이의방과 이의민을 역적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수월하기 때문이다.

“자자, 내 말 들으시오.”

“예. 문하시중.”

“지금부터 우리는 이의방을 대역죄인으로 만들어야 하오이다. 금상께서 윤허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가 빠르게 처리를 해야 할 것이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두 다 이의방에게 죽은 목숨이다. 이 말이오. 아시겠소이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심려치 마시옵소서.”

“예. 금상 폐하께서 우리의 충정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솔직히 그동안 이의방의 행동이 너무나도 과격했습니다. 한때는 상장군의 아래 있던 이의방이지 않습니까. 너무 괘씸해졌습니다! 손을 봐볼 필요도 있어요!”

이소응의 말에 진준 기탁성 등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보는 게 아니라, 완전히 제거를 해버리는 겁니다. 이의방과 그의 가솔들까지 말입니다. 태자비도 포함해서요.”

정중부의 뒤에 있던 정균이 말하였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께오서는 알고 계시는 분들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의방을 협박하는 게 아니고, 완전히 제거를 해버리는 일입니다. 확실하게들 기억 해두십시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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