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5화 (15/159)

015화

“그래. 준비는?”

“다 하였사옵니다. 위위경.”

“그래. 3령과 부장들 모두 문제없는가?”

“문제가 있겠사옵니까. 하하하하하.”

“조심해서 다녀오게. 개경에서 보세나.”

“예! 위위경! 박 장군, 위위경을 잘 모시게.”

“걱정하지 마시게…….”

고득시는 곧장 몸을 돌려 군사들이 집결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이의방 역시 박존위와 함께 천천히 군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얼마 멀지 않은 북문에 다다르자, 우화유가 몇몇의 부장들을 대동하고 이의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가세.”

“예. 위위경.”

“전군! 행군하라!”

두웅! 두웅! 두웅!

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이의민과 박존위가 역시 앞에 나가 출발하였다.

“어제 잘 잤나?”

“예. 그리고… 어제 말씀하신 거 말입니다.”

“그래.”

“해볼 만합니다.”

“오, 그래?”

“예. 위위경.”

“말만 하게. 노비랑 죄수가 얼마나 필요하든 다 보내 주겠네. 요즘 승려들도 썩어빠진 승려들이 얼마나 많아. 까짓거 다 잡아 죽이면 그만 아닌가. 하하하하!”

“또 있습니다.”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산적 놈들과 왈패들… 그런 놈들까지 합치면 넘쳐나지요. 나라에 골칫거리들 말입니다.”

“하하하하하하!”

이의방은 그의 말에 크게 웃었다.

우학유의 말이 맞는 말이다.

그런 것들을 깡그리 잡아다가 강제 공역시켜버리면 그게 국익이며 백성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리라 생각하는 이의방이었다.

“돈장.”

“예! 위위경!”

“서북면병마사의 말을 들었겠지!”

“물론이옵니다!”

“왈자들을 적어도 4놈 이상씩… 몰려다니는 놈들 있으면 남자고, 계집이고 전부 다 잡아들여라.”

“예! 위위경!”

“그리고 내 개경에 있을 때 듣자하니 귀족 자제 놈들이 보쌈한다면서?”

“예. 위위경. 저도 얼핏 들었습니다.”

“그쪽 기방부터 시작해보게. 다 잡아서 감옥에 일단 처넣고. 자네는 서경 유수랑 잘 이야기 해서 실행해봐.”

“예! 위위경!”

“예. 알겠습니다.”

아주 상세하고 자세하게 알려주는 이의방의 말에 돈장은 고개를 숙이었다.

“그럼 수고하게.”

“예! 위위경!”

우학유는 고개를 숙이었고 이의방은 전군을 몰고서 곽주로 향하였다.

* * *

얼마 후.

“아직인가?”

“예…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청년의 몸에 침을 꽂고는 안색을 살피는 의원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짓 꾀병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무장이라 해도 각기 급소를 알고 있고, 경락이 어디인지는 알 수 있다.

정말 아픈 부위에 여러 개의 침을 놓았는데도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의원에 말이 사실인 듯했다.

“고생하고. 깨어나는 대로 즉시 알려주게.”

“예.”

우학유는 다시 밖으로 나갔고, 의원을 청년을 정성스럽게 살피어 주었다.

* * *

다음 날 아침.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생각보다 이르게 곽주에 들어설 수 있었다.

“어서 오시오소서! 위위경! 곽주 방어사 이철용이라 하옵니다!”

“반갑네.”

“소장이 뫼시겠사옵니다.”

이의방이 먼저 말에서 내리자, 다른 부장들도 말에서 내려 방어사 이철용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돈장은 군사들을 이끌고 편히 쉬게 하라.”

“예! 위위경!”

이의방의 말에 돈장은 고개를 숙이며 군사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얼마나 있었나.”

“예. 십 년 되었습니다.”

“그렇구만… 이곳의 사정은 어떠한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방어사가 말을 하려다가 멈추자, 이의방은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어 선 채 이철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모든 것을 개경에서 싹쓸이해서 힘들다… 이 말인가?”

“…….”

역시나 말을 잇지 못하는 이철용의 모습에 이의방은 미소를 지었다.

“개경으로 돌아가면 내가 받았던 만큼에서 좀 보내 줄 테니, 군비에 쓰고, 축성도 하고, 병장기도 바꾸고 그렇게 하게.”

“아, 아… 아니옵니다! 위위경!”

“아니야. 자네 덕에 4년 동안이나 잘 썼으니… 이제 돌려줘야지. 하하하하하.”

이의방은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어차피 온 김에 다 둘러 봐야겠어. 일단 성부터 시작해서 병장기와 이것저것 다 살펴볼 테니, 방어사인 자네가 안내하게.”

“예. 위위경.”

곽주 방어사 이철용은 고개를 숙이며 이의방을 곽주 곳곳으로 안내하였다.

우선 이의방은 병기 창고부터 열어서 살피었다.

번쩍일 정도로 날이 서 있는 검과 창, 월도, 활.

궤짝 안에 잔뜩 들어있는 화살들도 적어도 3만여 개 이상으로 보였다.

“병기가 얼마나 되나?”

“예. 검 300개, 창 2000개, 월도 500개, 활 3천 개, 화살촉은 총 5만 3천 2백…….”

“내가 자네에게 물었지. 부장에게 물었나?”

이의방은 곽주 방어사를 꾸짖었다.

“비록 내가 글 하나 모르지만, 적어도 병기 창고에 뭐가 있는지는 정도는 알 수 있네. 그런데 자네는 내가 묻는 거에 대답도 못 하고 그저 여기저기 안내만 해주고 또 대부분의 설명은 부장이 하는구만… 자네 여기 십 년 된 거 맞나?”

“…….”

완전히 기를 죽여 버리는 이의방의 말에 곽주 방어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던데… 자네는 여기서 십 년 동안 뭘 한 건가?”

본격적으로 부장들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기 시작하는 이의방이었다.

“말을 해봐. 왜 말을 못 해 벙어리야?”

“본래 병기와 군량 파악은 부장이 하는 것이 관례…….”

“관례 같은 소리하네. 자네 여기 방어사 맞는가? 방어사가 어떻게 이리도 무책임할 수가 있어. 이런… 정신 나간 놈을 봤나… 군량도 그렇고, 병기도! 자기가 방어사라면서 하나도 파악을 못 하는 게 말이나 돼!”

“소, 송구하옵니다. 위위경…….”

“송구하다… 나중에 전쟁 나서도 지면 송구하다 하겠구먼.”

“…….”

“후… 병기 창고는 이 정도면 되었고. 그럼 이제 군사 훈련이나 한번 보세.”

“예!?”

“왜? 문제라도 있나?”

“아니옵니다. 문제라뇨… 곧 준비시키도록 하겠사옵니다!”

곽주의 병영을 두루 살핀 이의방은 성과 관리는 마음에 들지만, 방어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저자로 한번 가보려 하였다.

그러자 이철용이 따라왔고, 이의방은 이철용을 거절하였다.

“되었네. 자네는 준비나 해.”

“예… 위위경.”

이철용은 고개를 숙이며 곧장 훈련준비를 하라고 부장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이의방은 미간을 찌푸렸고, 이의민 역시 아니꼬운 눈으로 이철용을 바라보았다.

“이 대장군.”

“예. 위위경.”

“나중에 훈련 끝나고 자네가 한번 병사들 앞에서 개망신을 주게.”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이의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 채 힐끗 뒤편의 곽주 방어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곽주 방어사 종3품의 대장군… 그런 대장군을 개망신 준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이의민은 순간 어떻게 이철용을 망신을 줘야 하나 생각하였다.

들어 올려 내팽개치랴, 아니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랴.

또 아니면 던져 버리랴.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이 되어 웃는 이의민이었다.

왁자지껄한 저자에 나오니, 성민들은 쌀을 사기 위해 비단과 물물교환을 하고 있었다.

또한 닭이 필요하면 계란을 주고, 계란이 필요하면 고기를 받거나 그러고 있었다.

한마디로 뭐든지 바꿔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었다.

약 70~9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화폐가 유통되었지만, 화폐를 만들더라도 잘 사용하지 않게 되니 끝내 폐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화폐가 아닌, 물물교환 형식으로 장이 열렸고 아랍 상인이나 서역 상인들이 올 때면 은병이나 금병 또는 금 화폐로 거래를 하고 있었다.

소은병 하나의 가치가 포목 5필이고, 대은병의 가치가 포목 15필이었다.

이러하다 보니 대규모 거래가 활성화될 때마다 은병과, 금병을 또는 금화를 사용하였다.

소금병은 포목 8필이요, 대은병은 26필이니,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금병, 은병을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6개월에서 일 년은 거뜬히 먹고살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은병의 근수를 속이는 사람이 늘어나자, 결국에는 은병의 활성화를 일시 중단시켰다.

모든 은병을 회수하여 녹였고, 그 녹인 것을 다시 은병으로 제작하여 새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은병과 금병의 화폐제도가 확립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귀족 집 여자는 비단을 들고나와서 이것저것 사고 그 비단을 준 후에 포목으로 바꾸어 또다시 물품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비단을 값어치에 따라 잘라내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만큼 고려의 화폐제도가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잘 돌아가는 거 보니 괜찮구먼.”

“예. 위위경.”

“잘 먹고 가요…….”

한쪽에서 식사를 마치고 화폐를 놓고 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폐의 가치성이 아무래도 미미하다 보니, 밥 한 그릇에 두 개의 화폐를 내었다.

그럼 그 주인은 화폐를 통해 물건 교환을 또 하거나, 주전도감(鑄錢都監)으로 가져가서 화폐를 포목으로 바꿔 오기도 하였다.

주점, 식점, 다점 이 세 곳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바로 화폐 해동통보(海東通寶)였다.

물론 여러 가지가 있긴 했지만, 고려에서 유일하게 통하는 화폐는 해동통보였다.

거기다가 화폐의 거래 가치가 그렇게 없다 보니, 아직까지도 주전도감을 열어 놓고 있는 고려였다.

“크히히히… 하하하하!”

한쪽에서 미친놈처럼 웃어젖히면서 돌아다니는 두 귀족 집안 자제들이 눈에 들어왔으나, 이의방은 그냥 무시한 채로 차나 한잔 마실 겸 다점을 향해 갔다.

툭!

“에이씨!”

“뭐야!”

이의방과 어깨가 부딪친 귀족 집 자제의 공자들이 이의방과 눈이 마주치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송구합니다요…….”

일단 갑주 자체부터 개경에서 온 장수 느낌이 확 나니, 촌구석의 귀족 자제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장수가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무장들은 옛날의 무장들이 아니라는 걸 더 잘 아는 공자들은 고개를 숙이며 뒤꽁무니 빠지게 뛰어 가버렸다.

“하아…….”

이의방은 다시 천천히 저자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의방이 살피어 보고 지나가는 이들은 모두 이의방에게 고개를 숙이었다.

더군다나 눈에 잘 띄는 금색의 경번갑과 투구를 쓰고 있으니, 사람들은 이의방의 옆을 피해가고 있었다.

“흐음…….”

이의방은 그렇게 부장들과 함께 다점으로 들어가 다점의 2층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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