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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천하의 주인-13화 (13/159)

013화

조원정은 옥공(玉工)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어머니와 할머니는 관기였다.

옥공의 자식이라고 해서 경군으로 발탁되어 있다가, 이의방의 눈에 띄어 조원정은 하급 장교인 7품직에 오를 수 있었다.

보현사 난 때 이의방을 도와서 장군직에 올랐지만, 4년이 흘러도 대장군 직은커녕 점차 이의민에게 밀리자 조원정 나름의 불만이 있었다.

“문하시중을 따릅시다!”

“따릅시다! 형님!”

“후우…….”

이영진, 석린 두 사람 모두 미천한 출신이었기에 조원정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이의민 역시 천출이었다.

아버지는 소금장수, 어머니는 옥룡사 노비 출신.

자신과 별반 차이가 없는 데도 누구는 장군에, 누구는 대장군.

조원정이 끝내 자신의 검을 내려놓자, 정중부는 살며시 눈을 뜨며 조원정과, 석린, 이원정을 바라보았다.

“상장군… 우리가 상장군을 따르면 무얼 주겠습니까.”

조원정의 말에 정중부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양군 상장군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응양군 대장군 직을 주겠네.”

“뭐요…? 응양군은 두경승과 경대승이 있는데 어찌 주겠다는 거요.”

“내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자네들이 나만 따라온다면 절대 위위경처럼 그대들을 홀대하지 않을 것이야. 자, 어떻게 하겠는가.”

“단,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조 장군을 상장군에, 그리고 우리를 대장군에 앉혀야 우리가 따를 것입니다.”

“허허, 이 사람들아. 생각을 해보게… 벌써부터 이렇게 되면 아니 되지. 일이란 건 순서대로 차분히 진행해야 하는 거야.”

“그 자리는 위위경을 배신하는 대가가 아닙니까. 문하시중.”

“그래. 알고 있네. 조 장군.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모든 것이 순서가 있는 법… 자네들이 지금 이 상태에서 나를 따라 준다면 내 약속한 자리는 물론이고, 조 장군 자네는 공부상서에 앉혀 주겠네.”

조원정은 깜짝 놀랐다.

“모든 세공품은 자네의 눈을 피해갈 수 없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잘만하면 자네가 원하는 세공품들은 모두 자네의 것이 아닌가. 그리되면 자네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문제는 없다 보는데.”

정중부의 말에 조원정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정중부의 제안을 덥석 물어 버렸다.

“좋습니다. 문하시중. 내 그렇게 하지요.”

뇌물만큼 좋은 건 없다.

거기에 공부상서가 되면 최상품의 세공품을 가로채어 석린, 이영진과 나눌 게 분명하니 말이다.

“하하하하하하하!”

정중부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제 이의방의 측근들도 자신에게 넘어왔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하지만 정중부는 그들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이의방을 죽인다는 것.

나중에 이의방이 오게 되면 말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조원정, 석린, 이영진은 빼도 박도 못 할 것이니 그걸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 * *

“하아…….”

“왜 한숨을 쉬시는지요.”

경대승이 두경승에게 물었다.

“중방이 또 시끄러워질 거 같아 그러네. 위위경이 자리를 비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문하시중이 무언가를 꾸미고는 있는 거 같은데… 그걸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그럼 제가 제 아버지께 여쭈어보지요.”

“그러지 말게.”

두경승은 경대승을 만류하였다.

“예? 어찌하여 그러십니까.”

“괜히 나서다가는 문제가 더욱더 커지네.”

“방관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방관이 아니라, 황실을 지키자는 것이네. 위위경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지 않는가.”

“알겠사옵니다.”

경대승은 뜻을 굽히며 고개를 숙이었다.

“상장군!”

이춘부가 찾아왔다.

“아, 이 대장군… 무슨 일인가?”

“지금 폐하께서 상장군을 찾으시옵니다.”

“가세.”

“예!”

응양군 대장군 이춘부가 두경승을 따라 황제에게로 향하였고, 경대승은 고개를 숙이며 응양군 숙영지로 향하였다.

* * *

며칠 동안 오랫동안 안주에서 마시고 먹고 즐기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말술이 되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크하하! 그러니까 대장군이 폐주의 등뼈를 움켜잡고 꺾으니까 우두둑! 소리가 나면서 등뼈가 아주 그냥 박살이 났다는 겁니다! 하하하하하!”

박존위는 실실 웃으며 이의민이 황제를 어떻게 죽였는지 웃으면서 자랑이라도 하듯 크게 말하였다.

이의민은 꽤나 민망해하는 표정이었고, 주위 사람들은 불쾌한 이야기에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의방은 술을 마시며 말없이 박존위를 노려보았다.

눈치가 있는지 없는지, 박존위는 계속해서 끝을 보려는 듯 주절대기 시작했다.

“이 대장군이 폐주를 죽이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더라고요! 실성했나 싶어서 빨리 이 대장군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킨 다음, 일단 폐주의 시신을 어떻게든 처리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커다란 솥을 구해 왔습니다. 등뼈가 완전히 작살나니 몸 자체가 구겨지는 폐주를 꾸역꾸역 솥에 넣어서…….”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늘어놓느냐! 이노오옴!”

콰아앙!

그대로 상을 뒤집어 버리자, 다른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의방이 천천히 일어나 박존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곧장 따귀를 날렸다.

빠악!

묵직한 따귀 소리가 나며 박존위가 그대로 엎어졌다가 다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이놈… 박존위… 아무리 자랑할 게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걸 자랑이라고 떠들어 이 덜떨어진 놈아!”

빡!

이의방이 다시 한번 더 강하게 따귀를 때렸다.

“소, 송구하옵니다! 위위경!”

술을 이미 먹을 만큼 먹어서 취기가 올라 아픈지 안 아픈지도 모르는 박존위였다.

이미 상을 엎었을 때부터 정신이 든 박존위였으나, 이의방에 호통에 완전히 정신을 차려 버렸다.

“할 이야기가 있고, 안 할 게 있지… 생각이 진짜 없구나.”

이의방은 한숨을 내쉬었다.

“송구하옵니다! 위위경!”

박존위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술을 먹다 보니, 못 할 말을 해버린 박존위.

그리고 시선을 피하고 있는 이의민이었다.

침묵 속에 고득시가 말하였다.

“위위경, 저자가 많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부디 용서해 주시지요.”

“용서…? 저따위 막말을 하고 용서라니! 여기가 아니라 밖에서 그런 소리 했으면 사람들한테 맞아 죽었을 거야. 명심해!”

“예, 위위경.”

불같이 화내는 이의방에 박존위는 금방이라도 울듯 말듯한 표정이었다.

이의방이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리자, 우학유가 곧장 뒤를 따라 나갔다.

“거… 말조심 좀!”

“미, 미안하게 됐네.”

이영령이 이의방에 이어 한소리 하자, 박존위는 고개를 푸욱 숙이었다.

민망함에 이의민도 못 쳐다볼 지경이었다.

이의민 역시나 안에 있기 불편한지 몸을 일으켜 천천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박 장군, 진짜 입조심 해야겠소. 그런 말을 다시 내뱉었다가는 그때는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아요. 백성들 앞에서 그런 소리 일절 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맞아 죽기 딱 좋은 예가 될 테니.”

“알겠습니다. 고장군… 내 명심하리다…….”

* * *

“형님…….”

“후우… 내일 출발하겠네.”

“아, 예… 준비하겠습니다. 어디부터 가시겠습니까.”

“어디부터 가다니… 1차 방어선이라 할 수 있는 강동 6주부터 가야지.”

“예.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래. 서북면병마사가 안내해야지. 아, 그리고 말이야.”

“예…….”

“그 어디였더라… 거…….”

입에 자꾸 감기는 그곳.

고개였는데 무슨 고개였는지 생각이 안 나는지 대충 말하였다.

“서경 북문을 따라오니 고개가 있던데…….”

“혹시 역수 고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그래! 거기 말이야.”

“예. 그런데 거기가 왜…….”

“거기에 방어선 형식으로 관문 하나 세우면 딱 좋겠더군.”

“관문이요…? 하긴 역수 고개는 서경 북문에서 좀 험한 곳이긴 해도 관문을 세우면 좋은 곳이지요.”

“그럼 자네가 관문을 짓게.”

“…예? 관문을 지으라니요?”

“서경 유수보다 자네가 짓는 게 보기에도 좋지 않겠나.”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우학유는 뭐 씹은 표정을 지으며 답하였다.

“지을 돈이 있어야지요.”

“아니, 이 사람아… 서북면병마사가 돈이 없어서 못 짓는다는 게 말이나 되나. 세금으로…….”

“그걸 다 가져가신 게 누구십니까.”

정색하며 말하는 우학유의 말에 이의방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였다.

생각해보니 조위총의 말도 그렇고 우학유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북면 북계 할 거 없이 재물들을 싹쓸이한 게 누구인가.

바로 이의방이었다.

그러하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서북면에서 받았는지조차 가물가물했으니까.

“한 푼도 없나?”

“형님께서 말씀하신 관문하나 짓는 데 얼마가 드는지 아십니까? 성 하나 짓는 데 적어도 은병 10관이 들어갑니다. 10관이면 얼마인지는 대충 짐작이 되시겠지요. 거기다 인부도 써야 하고, 먹이고, 재우고, 다치면 치료하고. 그거 다…….”

“노예들을 두었다가 뭐에 쓰려고. 죄수들도 있지 않나. 그냥 대충 먹이고 일 시키면 되지. 굳이 백성들을 동원해야겠나. 가뜩이나 여기까지 오면서 못 볼 꼴 다 보니 좀… 그래서 그래.”

“노예도 사람입니다. 우리처럼 말을 할 줄 압니다.”

“그래서… 노예에게 돈을 써야겠다… 이 말이야?”

이의방은 내키지 않는지 시선을 돌리었다.

“계속해봐.”

“이 나라에 노예와 죄수가 얼마나 됩니까. 군사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군사도 먹이고 재우고 다치면 치료를 해줘야 합니다.”

이의방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우화유의 말을 들어 주었다.

“백성들을 동원해서 자재를 나르고, 돌을 깎는 석공들을 데려와 바위를 깎아 성벽 돌을 다듬게 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각 산에서 돌과 흙 자갈 등 많은 것들을 운반해야 하는데 노예와 죄수들의 수로는 힘듭니다. 거기라 지반까지 생각한다면…….”

“…지반?”

“예. 관문을 지으니 그쪽 지반을 다져 놓아야지요. 무턱대고 쌓으면 무너집니다.”

“알아. 지반… 그 지반을 다진다는 과정은 얼마나 걸리겠나?”

“적어도 3년은 잡아야지요.”

“그 3년 동안 노예와 죄수들을 이용한다면.”

“형님, 죄수들은 몰라도 노예는 개인 재산입니다.”

“내 말 한마디면 노예들은 자동으로 내 것이야. 내가 가져가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있겠나. 귀족들도 마찬가지지. 아니 그런가?”

“…….”

일방적인 강탈 전문가 이의방.

우학유는 한숨을 내리 쉬었다.

“그렇게 하시다 나중에 뒷감당은…….”

“뭐가 무서워서 내가 겁을 내. 사찰도 태워버리고 승려도 다 죽였어. 나 이의방에게 대든 대가가 얼마나 큰지 보여 주었는데 정신 못 차리고 다시 나에게 대들어? 그건 목 내밀고 죽여 달라는 것이나 다름없지. 안 그런가. 허험…….”

“아, 예… 듣고 보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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