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화
조용한 곳에서 승려들이 빙 둘러앉아,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실체는 따로 있었으니.
이의방 암살 모의였다.
그들은 귀법사, 흥왕사, 중광사, 홍호사, 묘지사, 복흥사, 용흥사 등 수많은 절의 승려들이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이의방에게 제물을 강탈당하고 절이 태워진 사찰의 승려들이었다.
오로지 흥왕사의 승려들만 용케 이의방에 손에 죽지 않고 살아서 개경에 모여 승려 종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덜컹.
그때 방문이 열리며 종참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무 관세음…….”
종참은 승려들과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잘들 살아 계셨습니다.”
“스님이야말로 살아계셔서 다행이십니다. 이의방이 개경에 없다는 소식을 듣고서 부랴부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틈타 이의방을 죽여 버릴까 합니다. 이의방… 그놈이 우리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시오.”
승려들 모두가 이의방에게 복수심을 드러내었다.
“우리의 힘만으로 이의방에게 복수하기엔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니 문하시중 정중부의 장남 정균 장군의 수하로 들어가 이의방을 죽여 버리는 게 어떻겠소.”
종참의 말에 승려들은 속닥거리기 시작하다가 종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법사에서는 참여하겠소. 나 포함하여 스님들 30여 명이 가담할 것입니다.”
“홍호사 28명도 가담하겠소.”
중광사, 복흥사, 중광사의 승려들도 모두 다 동참하겠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종참은 승려들의 말을 듣고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지금부터 승려들은 어디서 어떻게 모일지 상세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얼마 후, 종참의 설명이 끝나고 나서야 대표로 온 스님들은 모두 각자 해산하였다.
“흐음… 오합지졸은 아니겠지?”
병풍 뒤에서 말없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정균 장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참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지도 않았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래 보여도 무승들입니다.”
“흥왕사에서도 이의방에게 원한이 있다니… 놀랍군.”
“흥왕사는 저희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사찰만 안 태웠지. 계속해서 빼앗아 갔으니까요.”
“거참… 스님이야말로 재물 욕심이 우리 중생보다 더 심하네. 하하하하하.”
정균은 웃기 시작하였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암… 암요… 압니다. 알아요. 하하하! 그럼 자네가 확실하게 준비를 해준 후에 보고하도록. 또한 이의방의 형제들을 예의주시하게. 더불어 문극겸이라는 자는 속을 알 수 없는 자이니 잘 살피도록 해. 자칫하다가는 우리의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 있어. 아니지… 지금쯤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서 이의방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해 보낼지 고민할 수도 있네.”
“예. 정 장군.”
종참의 말에 정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 * *
정중부의 집에서는 이광정을 따로 불러들였다.
이광정은 사리사욕이 지나치고, 권력욕이 강하며 제물을 탐하는 자로서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이었다.
그 욕심이 얼마나 지나쳤는지, 이의방보다 한술 더 뜬다고 할 정도였으며 그로 인하여 암살시도를 몇 번 받기도 하였다.
암살시도 이후, 이광정은 사병을 늘렸고 정예병 못지않을 정도로 군사 훈련을 시켰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군사들 역시 훈련을 시키면서 밤낮으로 개인 사저를 지키게 할 정도였다.
그런 그를 불러들인 이유는 단 하나.
그의 군사 때문이었다.
“하하하… 그러니까… 내 말만 들으면 자네는 만사가 다 풀리는 거라니까.”
정중부는 이광정을 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넘어오지 않는 이광정이었다.
권력이 떠오르는지 기울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잘 알고 있는 이광정으로서는 문하시중이자, 벽상공신이며 용호군의 상장군인 정중부의 말은 도통 신빙성이 없었다.
“그렇게 불안하면 내 집에 기거하도록 하게. 벌써 조원정, 석린 그리고 이영진 이 세 사람은 나를 따르기로 하였네. 자네가 모든 걸 안 상태로 계속 이러면 나도 그냥 놓아둘 수가 없어.”
“예!? 예에…….”
겁을 지레 먹은 이광정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조원정, 석린, 이영진 이 세 사람이 정중부에 붙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이의방을 따르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 이광정은 순간 계산적으로 생각을 하였지만, 이를 미리 알고 있는 정중부는 계산할 틈 따위를 주지 않고 벼슬을 던지며 이광정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자네에게 금오위 상장군을 주겠네. 자네가 나를 돕기만 하면 말이야. 금오위 상장군 겸 형부상서… 어떠한가? 이 정도면 그 누구도 자네를 업신여기지도… 아니… 자네를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할 것이네. 그렇다면 자네의 안위는 더욱더 보장되는 셈이 아닌가.”
정중부의 말에 이광정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개경 전체의 치안을 담당하는 금오위에 수장이 되고, 거기에 형부를 관장하는 상서가 된다니.
정중부의 끌리는 제안이었다.
금오위와 형부를 갖게 된다면 사병이 천명이 있어도 두렵지 않을 것이었다.
다시는 그 누구도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가 없을 것이라고 더 생각하니, 이광정은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하시중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고맙네! 하하하하하!”
정중부는 크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하나는 자신의 편으로 세워두었으니, 군사 보강은 확실해진 셈이었다.
이제는 조원정, 석린, 이영진 이 세 사람만이 남았다.
두경승과, 경대승은 애초에 오지도 않을 인사들이라 아예 제외해버렸다.
다만, 응양군이 어찌 나올지 모르니 두경승과 경대승 이 두 가시 같은 존재들은 어떻게 해서든 지방으로 보내버려야 할 구실을 찾아야 하였다.
그래야 응양군도 자신의 손에 둘 수 있으며 용호군 7령, 응양군 3령 합쳐서 총 1만의 가까운 친위대를 다 움켜쥘 수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6위의 상장군들 역시 자신의 편으로 대거 돌아섰으니, 더 이상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또한 이의방을 제거해버리면 이공정은 저 촌구석으로 보내버릴 요량이었다.
“그럼 소장은 이만 물러가옵니다!”
“고맙네. 이 상장군. 하하하. 내 멀리는 나가지 않을 테니, 조심히 가시게… 하하하하.”
“예! 상장군!”
이광정을 상장군이라고 치켜 주면서 정중부는 이광정을 내보냈다.
이광정이 나가는 것을 본 정중부가 자리에 다시 앉아서는 한숨을 내리 쉬었다.
“이제… 조원정, 석린, 이영진 이 세 사람만 남았구나.”
세 사람을 불러들일지, 아니면 중방에 왔을 때 따로 설득을 시킬지 관건이었다.
이렇게 이의방이 떠난 사이에 군부를 장악해 가는 정중부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 * *
“문하시중 어른, 조원정 장군과 다른 장군분들이 오셨사옵니다.”
밖에서 안 집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중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으로 뫼시게!”
“예…….”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조원정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시오. 조 장군, 석 장군, 이 장군. 자, 앉게.”
“예. 상장군.”
조원정이 먼저 대답하고 자리에 앉자, 석린과 이영진 또한 자리에 앉았다.
“어인 일로 저희를 부르셨는지요. 그리고 아까 보니 이광정 대장군도 나가던데…….”
“아, 그 일로 불렀네.”
막상 조원정과 휘하 장수들이 오니,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였다.
일단 만나기는 했지만, 잘못 설명했다간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 뻔하였다.
“조 장군.”
“예. 상장군. 말씀하시옵소서.”
이렇게 된 마당에 무엇이 두려우랴.
정중부는 속 시원하게 그들에게 말하였다.
“본론부터 말하겠네. 자네들… 내 사람이 되어주겠나?”
콰앙!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정중부의 말에 탁상을 내리치며 조원정이 격하게 노하였다.
종 4품의 장군이 정 3품의 상장군에게 대든다는 것 자체가 항명이지만, 현재 상황으로써는 조원정은 격노할 만하였고, 석린과 이영진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검을 뽑아 들려고 하였다.
“억울하지도 않은가!”
“무엇이 말입니까!”
“누구는 대장군이 되고! 누구는 몇 년 동안 장군직에, 별장에, 중랑장이 말이 되나 이말 이네!”
“그, 그건! 위위경께서 뜻이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오! 어찌 그따위 소리를!”
촤아앙!
검을 뽑아 든 조원정은 정중부의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
“네놈을 죽여 위위경에게 바칠 것이다!”
“하하하하하하!”
조원정의 말에 정중부는 크게 웃었다.
“넌 이의방한테 평생 개같이 끌려다닐 것이다. 위위경의 영원한 개가 되려고 하였으니, 네 놈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
“닥치시오! 그 무슨!”
“하하하하하!”
정작 좋지 않은 소리를 들어도 조원정은 쉽게 정중부의 목을 베지 못하였다.
이걸 노린 것인지 정중부는 계속 말하였다.
“이의민은 장군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의방의 추천으로 대장군 직에 올랐지. 물론 김보당의 난을 제압하였다는 명분이 있지만… 그런데 자네들은 뭔가? 평생을 위위경을 지키며 살아왔지 않는가? 자네들도 나름 북방의 변란과 승려들의 난을 진압하였는데도 아직 장군이라니… 자네들은 억울하지도 않은가 보오.”
“닥치시오!”
“요설이라 생각되면 나를 베어서 위위경에게 가져다 바치시게. 하지만 이거 하나만 명심하게나. 위위경을 끝까지 따른다면 대장군은커녕 오히려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할 것이네. 사냥을 다한 개는 주인에게 잡아먹힐 테니. 하하하하하!”
정중부는 자신이 할 말을 다 했다며 두 눈을 감았다.
여기서 조원정이 칼을 휘두른다고 해도 조원정은 살아나갈 수 없고, 자신을 차마 죽이지도 못할 것이다.
이를 대비하여 부장들을 시켜 사병들을 옆방에 대기 시켜 놓았으니 말이다.
완벽하게 사전준비를 한 정중부이었다.
“저… 조 장군.”
이영진이 살짝 다가와, 조원정에게 무어라 말을 하자 조원정은 인상을 찡그렸다.
“문하시중의 말이 맞는 듯합니다. 우리도 할 만큼 다한 거 아닙니까.”
“위위경을 배반하자는 소리인가?”
“솔직히… 나도 불만은 있습니다.”
이영진의 말에 석린 역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이의민보다 못한 게 뭐요. 보현사부터 우리가 지금까지 위위경을 따라지만, 정작 우리가 받은 게 뭐란 말이오. 겨우 벼슬 한자리에 위위경이 주는 재물만 받았지 않았소. 우리도 이제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 살아봅시다. 조 장군.”
“자… 자네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조 장군, 이의민 그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솔직히 위위경의 오른팔은 장군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의민 그놈이 나타난 후로는 조 장군은 점점 뒤로 밀렸습니다. 내 말이 틀립니까?”
이영진 역시 조원정을 설득시켜 나가자, 조원정은 마음이 흔들리는지 그들의 시선을 회피하였다.
의리냐 힘이냐.
이 두 개의 갈등이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