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11화 (11/159)

011화

말로 달려가자,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화전민이 보였다.

이의민은 곧장 말에서 내려 화전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산적들을 보며 소리쳤다.

“이놈들! 멈추지 못하겠느냐!”

“뭐야!”

흉포하게 생긴 산적 놈이 도리깨를 들고서 이의민을 노려보다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갑주 때문에 산적은 애써 인상을 풀고서 곧장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곧이어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산적은 조용히 말하였다.

“저희 일에 나서지 말고 그냥 가시지요…….”

“뭐라? 너야말로 당장 저 처자를 놓고 썩 꺼지거라!”

이의민은 매섭게 노려보며 꺼지라 말하였으나, 산적은 이의민을 우습게 보며 뒤로 몇 보 물러서더니 소리쳤다.

“쳐라!”

“이야아아아!”

겁도 없이 이의민에게 덤벼드는 산적들의 모습에 이의민은 고개를 저으며 곧장 들고 있는 도끼를 휘둘러 산적의 머리통을 박살 내 버렸다.

퍽!

퍼퍽! 빠악!

산적들의 머리통만 도끼로 깨부숴 버린 이의민은 마지막으로 남은 산적 두목을 노려봤다.

산적 두목은 이의민의 모습에 뒷걸음질 치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사,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

“이야아아아아!”

빠아악!

도끼로 머리통을 찍어 버린 후 도끼를 빼내자, 피가 튀어나오며 이의민의 얼굴과 갑주에 묻어났다.

이의민은 대충 얼굴을 닦아낸 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으시오?”

여인은 떨면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치워라.”

“예!”

박존위의 명에 군사들이 곧장 시신들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역시 도끼 쓰는 건 대장군이 천하제일인 듯싶소이다.”

“천하제일은 무슨… 평생 도끼만 들고 살아보게.”

이의민은 도끼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며 도끼로 못 하는 게 없을 정도였다.

박존위는 그런 이의민을 보며 크게 웃었고 이의민은 여인에게 다가갔다.

“이곳에서 혼자 사는 거라면 우리가 안전한 곳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리다. 가시겠소?”

이의민에 말에 여인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민은 그런 여인을 일으켜 주었다.

“집에서 필요한 게 있다면 챙겨 나오시오.”

이의민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돌아서자, 이의방이 화전민 마을로 와서 살핀 뒤 이의민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산적인 듯하옵니다. 아무래도 화전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의민의 말에 이의방은 주위를 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산적들에 의해서 모조리 죽임을 당한 화전민들을 보며 한숨을 내리 쉬었다.

“위위경.”

“그래.”

“생존자가 있사온데… 안주에서 정착해서 살 수 있도록 부디 위위경께서 도와주셨으면 하옵니다.”

“그래. 그렇게 하세. 거기에는 매제도 있고, 누이도 있으니… 정착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야.”

“예. 감사하옵니다. 위위경!”

이의방이 고맙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이 영령이 이의방의 뒤를 따르고, 나머지 장졸들은 화전민 시신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하아…….”

화전민 시신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리 쉬는 이의방.

이영령은 지금 이의방의 한숨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는지 아무런 말 없이 묵묵히 이의방을 지켰다.

‘나라가 개판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던 것인가…….’

지난 보현사의 난 이후로, 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다시 한번 짚어 보는 이의방이었다.

“거병을 주도해서 황제를 폐위하고… 이고와 채원을 제거한 후에 권력을 잡았는데도 그 권력이 참으로 부질없구나.”

“위위경… 어인 말씀이신지요…….”

이영령은 위위경 이의방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품은 뜻은 있었는데 권력을 무작정 잡고 보니 내가 너무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네. 내 자리 하나 지키자고 백성을 핍박하고… 문신을 핍박해서… 당한 만큼 갚아 주었는데 그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단 말이야. 정작 고통받는 건 백성이라는 걸.”

다시 깊은 한숨을 내리 쉬는 이의방.

그의 모습을 보는 이영령은 아무런 대답도 못 하였다.

고려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이의방의 모습이 이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권력자가 아닌 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였다.

* * *

다음 날 저녁쯤 돼서야 안주성에 들어섰다.

안주성에 들어간 이의방은 우선 군사부터 물려 피곤했을 군사들은 쉬게 해주었다.

우학유는 자신을 아주 반갑게 누이와 맞이 해주었다.

“매제, 오랜만이오.”

“어서 오십시오. 위위경.”

“아, 위위경은 무슨… 그냥 편히 대해주시오. 그나저나 군사들에게 먹을 것 좀 챙겨주시겠소?”

“걱정하지 마십시오. 준비는 미리 다 해두었습니다. 자, 그럼 우리는 관아로 가시죠…….”

우학유는 미소를 지으며 이의방을 안내하였다.

“매제, 우리가 화전민 마을에서 데려온 여인이 있는데 가능하면 이곳에서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게. 화전민 마을에 놔뒀다간 산적들에게 안 좋은 일을 당할 뻔해서 말이야. 물론 그 화전민 사람들은 다 죽었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학유는 고개를 끄덕였고, 집사를 시켜 데려온 여인을 챙기게 하였다.

“그나저나 매제… 이곳 안주는 어떠한가?”

“괜찮습니다. 거란족도 조용하고, 서북면 치고는 조용합니다.”

“하하하! 그런가?”

“예…….”

“조용하면 좋지. 자, 관아로 가세…….”

* * *

관아로 들어와 보니, 연회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상석은 이의방이 차지하고, 그 오른편으로는 우학유와 누이 이씨 그리고 가족들이 앉았다.

왼편에는 이의민, 이영령, 박존위, 고득시, 돈장이 차례대로 자리하였다.

“우리가 얼마 만인가.”

우학유는 먼저 이의방에 잔에 술을 따라 주고, 이의방은 우학유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4년 가까이 되어 가는 듯합니다.”

“벌써 그리됐나. 하하하. 자, 마시세. 누이도 한잔하고.”

“예…….”

이의방은 오랜만에 우학유와 누이 이씨를 찬찬히 살펴보았고, 어느새 자란 조카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기쁘기 그지없었다.

안 본 지 4년 가까이 되었는데 조카들은 어느 정도 커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도 될 정도로 성장하였으니 말이다.

“캬하!”

이의방은 술을 마신 후에 잔을 내려놓았다.

“솔방울로 담근 술입니다. 국화주보다 좋은 술이지요.”

“오, 그래… 안 그래도 솔향이 깊이 배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솔방울로 담았다니… 대단하구만.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우학유와 이의방은 크게 웃었다.

“그나저나 여기 안주는 어인 일이십니까.”

“북방을 돌아보려고 하네. 그중에 자네가 서북면 병마사이니, 안내도 받을 겸 해서 겸사겸사 왔지.”

“…그러십니까.”

“왜… 내가 반갑지 않은가? 아, 그래. 어찌 보면 반갑지 않겠지. 내가 자네를 황도에서 쫓아내었으니까…….”

“어인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족들도 그렇고요.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학유는 진심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의방의 말대로 황도에서 쫓겨난 기분이었지만, 서북면병마사로서 안주에 정착하니 생각보다 이곳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국방 경계선과 군사 훈련에만 매진할 수 있었고, 남는 시간에는 백성들을 살피고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런 삶에 우학유는 만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만족하는 삶인가?”

“예, 형님. 그렇습니다. 만족합니다.”

우학유가 다시 한번 만족한다는 말을 내뱉자,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하니 고맙구먼… 솔직히 여기 안주로 오는데 마음이 좀 불편하였어. 자네도 나를 보기에 불편할 테니까. 하지만 북방을 돌아볼 생각으로 왔던 것이라 안주를 비켜 갈 수도 없고… 서북면 병마사인 자네의 안내도 필요할 터이니, 이곳으로 먼저 온 것이네.”

“아… 예…….”

이의방은 우학유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우학유는 이의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서북방의 모든 진과 성을 살펴보고 싶은데 마땅치가 않아서 말이야. 현재로서는 백성들의 삶이 형편이 어떤지 제일 궁금하네.”

“하아… 간단히 말씀을 드리자면 서북방의 백성들은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양광도, 전라도, 경상도보다 더 힘들다고 보시면 되지요. 더군다나 땡중놈들이랑 함께 못 살겠다고 산으로 들어가 산적이 된 백성들은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나마 성민의 삶은 나쁘지는 않은 편이지만… 밖에서 사는 성민들은 그렇지가 않지요.”

“이 사람아, 그럼 자네라도 살펴줘야지. 성민이 아니라고 손을 놓은 건가?”

“그게 아니라, 애초에 그들이 원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나라를 못 믿고 높은 사람들의 말을 믿지 못한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니 위험하더라도 자기 발로 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위험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아…….”

이의방은 한숨을 내리 쉬었다.

나라가 얼마나 착취를 하였으면 백성들이 산으로 들어가 살고, 내려오라고 해도 안 내려온다는 말인가.

모든 게 자신의 탓처럼 느껴졌다.

자신도 심하게 백성들 것을 빼앗았던 적이 있다.

심지어는 사찰도 빼앗고 불태웠다.

“이런… 빌어먹을… 어찌해야 하나… 어찌…….”

상황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백성들이 나라를 못 믿는다고 할 정도면 이미 민심 자체가 떠나 버린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도저히 자신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다 보니, 연거푸 술만 계속 들이켜던 이의방이 우학유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라면 어찌하겠나?”

“…예?”

“솔직히 자네는 배웠잖지 않나. 글도 읽을 줄 알고.”

“아… 예… 그렇기는 합니다만… 제가 정치를 압니까.”

우학유는 슬슬 옆으로 비켜나갔다.

이 문제에 너무 깊게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다.

우학유의 말뜻을 대충 이해한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국방 일만 잘 보면 되지. 백성들도 살피고. 그럼 되네. 그나저나… 서북방은 언제부터 안내할 수 있겠나.”

“우선 오늘은 편히 쉬시고. 내일모레부터 어떠십니까. 안주 주위도 살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그때가 좋겠군. 자네 말 대로하지. 자, 이제 마셔보세!”

“예! 위위경!”

“하하하하하!”

이의방의 필두로 부장들, 우학유, 그리고 이의방의 누이 이씨까지 모두가 함께 자리하며 오래전부터 이야기하지 못하였던 이야기를 나누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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