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8화 (8/159)

008화

“워워…….”

이의방이 관아 앞에 도착하였다.

흥위위군의 대부분을 성문 앞에서 대기시킨 채 부장들과 십의 병사만 데려온 이의방 곧장 말에서 내렸다.

부장들 또한 이의방의 뒤를 따라 자리에서 내렸다.

서경은 고려의 제2수도이자,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이다.

이곳은 북방의 요새이자, 두 번째 수도로서 고려 태조 왕건이 유독 이 평양을 그렇게 좋아하고 많은 공을 들인 곳이다.

그래서인지 관아는 도호부의 두 배에 달하는 크기를 보여 주었다.

성안에 작은 성이라고도 보이는 곳이 바로 이 서경 관아였고, 서경 관아의 오른편에는 행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군사와 백성의 수는 개경 못지않고, 상인들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서경이었다.

간혹 여진족의 상인들이 서경으로 와서 물건을 거래하고 가기도 하는 도시였다.

“가세.”

“저… 위위경.”

“왜…….”

“송구하오나… 관아를 먼저 살피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기분이 좀…….”

이의방도 진작 느꼈다.

관아의 안이 너무나도 이상할 정도로 인기척이 없다.

보통 관아라면 바쁘게 움직이는 게 정상이고, 노비들도 빠르게 움직이면서 관아를 청소한다든가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단단히들 경계해.”

“예. 위위경.”

이의방의 말에 부장들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관아 안으로 들어가자, 한쪽에서 조위총의 부장이 이의방에게로 다가왔다.

“소장 좌장 김존심이라 하옵니다. 위위경께서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사옵니다.”

“아, 반갑네. 유수는 어디 계시는가?”

위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저 안에 계시옵니다.”

김존심은 회의장 쪽을 가리켰다.

군사들 배치하기도 좋은 곳이다.

거기서 여차하면 자신을 칠 분위기이었다.

“소장이 모시겠사옵니다. ‘

“그래. 그렇게 하게나.”

김존심은 몸을 돌려 조위총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였다.

이의방과 부장들은 김존심의 뒤를 따라갔다.

덜컹.

방문이 열리자, 상석에 조위총이 갑주를 입고 탁상에는 검을 놓아두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의 뒤에는 부장들이 자리하였다.

“그대가 위위경인가?”

“무엄하다!”

고득시가 소리치며 말하자, 이의방은 피식 웃었다.

“되었어.”

위위경 이의방은 당당하게 자리에 앉았고 좌장 김존심은 조위총에 곁으로 돌아갔다.

“환영인사치고는 너무 조촐하구먼. 안 그런가, 유수.”

“네놈 따위를 환영해줄 사람들은 없다.”

이의방과 조위총이 주고 받는 한마디 한마디는 팽팽함을 넘어서 살기가 돋았다.

“그래… 서경까지는 어인 일로 오셨는가?”

조위총이 먼저 묻자, 이의방은 말하였다.

“북방을 시찰하려고 나오다 서경부터 들렀지. 흉흉한 소문이 돌아서 말이야. 자네가 반란을 일으킨다지?”

뒤를 생각하지 않고 이의방은 대놓고 물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정말 조위총은 그때의 그 모습처럼 반란을 일으키려는 듯하니 말이다.

떠보기 없이 그냥 상대를 몰아가는 이의방이었다.

“오냐… 네놈이 이곳까지 친히 들어와 목을 내어 주겠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 이 난신적자… 여봐라!”

쾅쾅쾅!

곳곳에서 문이 열리면서 도끼를 들고 있는 군사들과 장수들이 눈에 들어왔고, 조위총 뒤에 부장들은 검을 뽑았다.

“위위경!”

미끼를 제대로 물어준 조위총이었고, 이의방은 이에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꿈에서처럼 조위총이 반란을 준비했던 것이다.

“…어찌해서인가.”

“뭐라?”

콰앙!

“어째서! 반란을 도모한 것이냐고! 이 미련한 유수놈아!”

“닥치지 못할까! 선황의 은혜를 저버리고, 선황을 시해한 네놈에게 무슨 말을 더해주랴! 그뿐이냐! 문신들을 쳐 죽이고, 권력을 찬탈해서 황실을 겁박한 네놈들을 모조리 죽이기 위해 거병을 하려고 한 것이다!”

“…….”

“이미 서경 북쪽의 40여 개 성에서 나의 뜻에 동참하였으니… 이 자리에서 네놈을 쳐 죽이고 개경으로 진격하여 난신적자 놈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황실의 권위를 되찾을 것이다!”

조위총의 말에 이의방은 주먹을 꽉 쥐고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폐주가 어떤 짓을 했는지 네놈이 보았다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우리 무신들이 잘못한 일은 내가 인정을 하겠다만, 폐주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는가!”

“어디서 요설을 늘어놓으려 하는 것이냐! 우리가 너희들에게 반기를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네놈들이 한 짓을 먼저 생각해보아라! 척박한 이 땅에서 나오는 것들을 단지 네놈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몇 년간 다 빼앗아 가지 않았느냐! 나는 백성의 소리를 듣고 일어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닥쳐라! 감히 백성을 팔지 말아라! 백성들의 것을 무차별적으로 뺏었으나, 나는 어느 한 계기로 인하여 다 돌려주었다! 또한 유수, 네놈이 정말로 백성을 생각한다면 성민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저 성 밖에 백성들도 생각해야 한다.”

“…….”

“내 오늘 오면서 율진사와 그 승려들을 작살을 내고 왔느니라. 승려라는 것들이 없는 백성을 핍박하고, 패악질을 일삼았는데 서경 유수는 그런 것도 몰랐는가! 성안에 사는 백성들만 백성인가! 저 밖에 사는 서경의 백성은 백성이 아니란 말인가.”

이의방은 확고히 자신의 생각과 주관을 조위총에게 전하였다.

지금 개경에서 오면서 봤던 것들을 말해주자, 조위총은 머뭇거렸다.

이의방의 말처럼 율진사는 자신이 잘 아는 사찰이다.

그런데 그런 사찰이 백성들의 것을 탐하며 패악질과 핍박이라니.

더군다나 절대 그 율진사의 승려들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유수는 들으시오. 나 이의방은 지난 사 년간 내가 해온 일들에 대하여 부정은 하지 않소이다. 허나, 내 말이 틀렸거든 그 말에 한 번 반박해보시구려. 인종께서 이자겸의 전횡과 반란, 묘청의 난 등으로 많은 것들을 희생하시었고, 황실은 그야말로 위엄이란 것을 찾아볼 수도 없었소. 언제 다시 반란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소이다.”

“…….”

“그뿐만이 아니라, 인종께서 승하하신 후 폐주가 황위에 오른 뒤, 그는 처음에는 우리 무신들을 등용하여 친위군을 강화함에 있어서 소홀히 하지 않았소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폐주의 총애를 받아 견룡행수에 이어 폐주를 곁에서 모셨소이다. 헌데, 왜 우리가 폐주를 폐위시켰는지 아시오? 그 진실 말이오. 그대는 알면 얼마나 알겠소.”

조위총은 이의방을 바라보았고.

조위총에 눈에는 분노의 눈길이 사그라져 있었다.

“잘 들으시오. 인종 황제께서 돌아가시면서 정습명에게 폐주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부탁하였으나, 폐주가 향락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정습명이 옳은 소리, 바른 소리를 해도 듣는 척 하면서 정습명을 스스로 죽게 했소이다. 또한, 문신들이 우리 무신들을 차별하고 무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정습명이 우리의 편을 들어주었으나, 그걸로 인하여 다른 이들에게 미움을 받기 시작했고 우리는 정습명 때문에라도 참았소이다.”

“…….”

“허나 그럼에도 문신, 환관들과 어울려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살던 폐주였소.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소이다. 그건 아시오? 길에는 무뢰배가 넘쳐나 시전 상인들을 괴롭히고, 문신과 귀족들은 무뢰배들을 이용하여 시전 상인과 백성들을 핍박하였소. 결정적으로는 무신들조차도 완전히 백정 취급하더이다. 이런 수모를 겪었소! 우리뿐만이 아니라, 각 지방에 하급 무신들은 어떻겠소. 결국 이십도 안 된 한뢰 놈이 종 3품의 대장군 이소응에게 침을 뱉고 따귀를 때리고 발로 구타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폐주와 그 주위에 신료들은 재미있다면서 웃고 손뼉을 쳤소이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일어난 것이오. 이보다 확실한 명분이 있는 난이 있소이까? 참을 만큼 참았다고 우리도!”

“그걸로 선황제를 시해한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오!”

“폐주를 죽이지 않았다면 두 번, 세 번! 아니! 그 이상 반란을 일으켰을 거고 백성들은 혼란 속에 살아가야 했을 것이오! 폐주는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으니까.”

조위총의 말에 이의방은 발끈하며 소리쳤다.

의종, 그는 초반에 성군 짓을 많이 하였다.

실추된 황실의 존엄을 회복한다며 친위대인 용호군, 응양군의 장수 인재들을 많이 등용하였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정중부였다.

정중부 필두로 하여 이의방, 이고, 이의민, 이소응, 기탁성 등 수많은 장수들을 등용하였고, 의종은 정중부와 이의방, 이의민을 많이 총애하였다.

그런 황제를 옆에서 보좌하는 건 친위대로서 정말 영광스러웠으나, 황제가 사치와 향략 거기에 문신과 환관을 가까이하며 놀기 시작하자, 무신들은 점차 자신들의 일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선황을 시해한 것을 정당화시키겠다는 말인가! 네 이놈, 이의방!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이더냐. 황제에 은혜를 받은 친위대가 어찌 그런 망극한 짓을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선황제를 시해한 것 또한 네놈의 부하라지!”

조위총은 이의민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었다.

소식이라는 건 빨랐으니까.

거기에 이의방은 부정하지 않았다.

“맞네, 이의민. 나의 수하지. 허나, 내 명을 받아 죽인 것이다. 내가 시킨 일이고. 내 수하가 받아야 할 죄라면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한다. 하지만 폐주는 죽을 짓을 한 것이지!”

“닥쳐라!”

조위총은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 말이 있는가? 있다면 다 이야기하게. 그리고 자네들 여기 있는 군사들로 나를 죽인다면 서경은 그야말로 도륙이 날것이니… 잘 새겨두게나.”

이의방은 무서운 얼굴로 경고를 하였다.

자신이 여기서 살해 당하는 상황을 본다면 흥위위의 부장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의민과, 박존위 또한 지금 서경으로 올라오고 있다.

반란을 진압한 그 군사들을 이끌고 말이다.

* * *

“어찌하겠나. 나를 죽이겠는가. 아니면 반란이고 뭐고, 없던 일로 해서 성 밖에 백성들을 살 수 있도록 지켜주겠나.”

이의방은 명령을 내렸다.

사지에 들어와서 말이다.

주도권을 잡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의방이었다.

이미 조위총은 이의방과의 기 싸움에서 진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폐주를 폐위시킨 확실한 명분을 줄줄이 옆에서 지켜봐 왔던 그가 설명하니, 조위총 역시 아무런 대답을 못 했다.

“그래. 유수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보는데… 내 개경으로 돌아간다면 확실하게 처리를 하겠네. 무뢰배든, 뭐든. 거기에 북방 백성들 살기 힘들어하니 당분간 세금을 면해주는 걸로 폐하를 알현하여 아뢰겠다. 이 말이야. 더 원하는 게 있다면 글로 작성하게. 폐하를 뵙고 그걸 올릴 테니.”

이의방의 말에 조위총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침을 몇 번이나 삼키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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