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천하의 주인-7화 (7/159)
  • 007화

    한편.

    퍽! 퍼퍼퍽!

    군사들은 승려들을 나무에 매달아 박달나무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 시작하였다.

    재갈까지 물린 상태였기에 신음조차 쉽게 내뱉지 못하고, 맞을 때마다 몸을 꼬아대기 시작하였다.

    “더욱더 쳐라!”

    “예! 장군!”

    돈장은 병사에게 계속 구타를 명하였고, 이의방은 상석에 앉아 승려들이 약탈하고 있던 것들을 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저놈들이 보아하니, 나보다 더한 놈들이 아니냐.”

    이의방은 헛웃음을 치며 어이없어하였다.

    패악질을 하고 약탈이라고 한 것이 고작 살림살이다.

    가져가도 쓸 데가 없는 것들을 가져가려고 패악질을 놓은 승려들이었다.

    “재갈을 풀고, 멈추어라!”

    “예!”

    군사들은 이의방의 말에 곧바로 대답한 뒤, 재갈을 풀고 한걸음 물러났다.

    “네 이놈들… 대낮부터 패악질한 이유가 무엇이냐! 승려라는 것들이 산에서 불경 공부는 하지 않고 이런 패악질을 일삼는 이유가 무엇이야!”

    이의방은 으름장을 놓으면서 승려들을 질타하였지만, 어느 승려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자, 이의방은 한쪽 서 있는 노부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이런 패악질을 하는 것인지 네가 말해 보거라.”

    “위위경께서 물으신다. 말씀 올리거라!”

    이영령은 화가 난 목소리로 노부에게 말하였고, 노부는 곧장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예… 지난해 화전에서 농사가 잘되지 않아 이곳에서 약 이십 리 떨어진 율진사라는 사찰에서 곡식 다섯 섬을 빌렸사온데… 그것이 고리인지도 모르고… 아이고, 살려 주십시오… 나리…….”

    노부는 말을 하다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며 애걸복걸하기 시작하였다.

    “승려가 고리를 놔?”

    이런 일은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다.

    견룡행수 전부터 승려들의 악행은 너무 많이 들어 왔다.

    승려가 계집질하고, 도박하고, 고리를 놓고.

    하지만 여기서까지 고리 승려를 볼 줄 몰랐다.

    정말 승려가 술 먹고 고기 먹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자기들도 사람인데 안 먹고 배길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계집질하고, 도박하고, 고리까지 놓다니.

    대체 이건 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특히나 무술 좀 한다고 저자에나 와서 행패 부리는 중들도 있으니.

    다는 아니더라도 불교의 폐단은 도를 넘고 있었다.

    “노부에게 묻겠다. 그 절을 어찌 해주랴. 저 중놈들은 당연히 이 자리에서 참해버릴 것이다. 말해 보거라. 어떻게 하면 네 속이 시원하겠느냐?”

    “율진사를 없애 주십시오!”

    뒤에서 노부 대신 어느 한 아낙이 소리쳤다.

    “아예 이곳에 사찰이 없게끔 해주십시오! 그곳은 스님들이 아니라 악귀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제발 없애 주십시오!”

    “없애 주십시오… 없애 주십시오!”

    여러 사람들이 율진사라는 절을 없애 달라며 입을 모아 소리쳤다.

    율진사라는 절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사찰인지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율진사라는 절에 대해 들어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이의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흥위위, 장수들은 들으라.”

    “예! 위위경!”

    “지금 율진사라는 절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승려란 승려는 모조리 무릎을 꿇리고 사찰의 재산들을 모두 거두어들여라. 재산들은 여기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뒤, 사찰을 다 태워버려라. 하나도 남김없이 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위위경!”

    이영령을 중심으로 고득시, 돈장은 부장들과 군사들을 이끌고서 즉시 율진사 라는 사찰로 향했다.

    이의방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백성들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사찰의 모든 재물들은 너희들 것이니, 율진사로 가서 그 절이 타는 걸 보고 제물과 양식을 골고루 나눠 가지도록 하여라.”

    “고맙사옵니다!”

    “아이고! 고맙사옵니다!”

    백성들은 고맙다며 연신 외치기 시작했다.

    이의방은 그런 백성들을 뒤로하고, 곧장 다시 말 위에 올라타서는 율진사로 남은 군사를 이끌고 향하기 시작했다.

    * * *

    콰앙!

    퍼억! 퍼퍼퍽!

    승려들은 반항 한 번 못한 채 중앙군 흥위위에게 된통 처맞아가면서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군사들은 승려들을 제압하면서 율진사를 박살을 내고 있었다.

    “이놈들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율진사의 주지는 방방 뛰면서 소리쳤지만, 군사들에게는 들리지도 않았다.

    사찰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 불상을 들어내어 밖에 두고, 탱화는 찢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런 사찰 따위 어찌 되든 안중에도 없는 군사들이었다.

    “망할 놈의 승려들 같으니라고. 얼마나 빼앗았길래 이리 쌓아 둔 거야!”

    이영령이 율진사의 곳간 문을 열자, 순간 기겁하였다.

    금, 은, 옥부터 시작해서 비단, 여러 장신구들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이것들을 모조리 꺼내어라!”

    “예! 장군!”

    군사들은 곧장 안으로 들어가 잡히는 대로 밖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말을 탄 이의방은 사천왕문에 잠시 서서 사천왕상들을 바라보았다.

    으리으리하게 거대하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 사천왕은 무섭기는커녕 이의방에게는 탐욕스러운 사천왕들로 보였다.

    “하!”

    이의방은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사천왕문을 지나갔다.

    부장들과 군사들이 이의방의 뒤를 따랐다.

    얼마 후, 율진사의 상황이 정리되었다.

    사찰 전체를 작살을 내버린 것이다.

    이의방은 무릎을 꿇고 있는 승려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주지가 누구냐.”

    무릎을 꿇고 전부 다 잃은 듯한 표정을 짓던 주지가 일어섰다.

    “네놈이 여기 주지냐.”

    “그렇다… 이 도적놈들아.”

    “도적놈은 네놈들이 도적놈이지! 누가 누구더러 도적놈이라고 하는 것이냐! 백성들 걸 빼앗고 고리를 올렸다지. 오죽하면 백성들이 네놈들보고 승려가 아니라, 악귀라고 하였다.”

    “…….”

    주지는 아무런 말을 잊지 못하고 찔리는 게 있는 것인지 시선을 회피하였다.

    “오늘 백성들을 대신하여 네놈들을 처단할 것이다. 이 장군.”

    “예. 위위경.”

    “저놈들을 한 데 묶어 땅을 파서 매장해버리게.”

    “…예?”

    “…….”

    “살려주시오! 살려주십시오!”

    매장을 해버리라는 말에 삼십여 명의 승려들은 기겁하였다.

    “매장해버려. 이 승려도 짐승들이나 다름없는 것들이니… 아니,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니… 매장해버리고 다 태워버려라!”

    “…….”

    “뭣들 하느냐. 땅을 파고 매장해버릴 준비 하라!”

    “예!”

    군사들이 속속히 움직였고, 승려들은 부들부들 떨며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군사들은 횃불을 들고서 대웅전부터 시작해 사찰 전체에 불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타닥타닥.

    타다닥.

    나무에 불이 붙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화염은 사찰 전체를 삼켜갔다.

    “돈장.”

    “예! 위위경!”

    “재물들을 가지고 내려가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해.”

    “예! 위위경!”

    “군사들은 제물과 양식을 가지고 내려간다!”

    “예!”

    돈장이 이끄는 군대가 소리치며 답하였고, 다들 속속히 제물과 양식을 챙겨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율진사에서 백성들이 사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아 수레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한 번 내려가면 끝나는 것이니 말이다.

    * * *

    “유수! 유수!”

    덜컹.

    방문을 열고서 서경의 우장, 서언이 안으로 급히 들어섰다.

    “무슨 일이냐?”

    “밖에 나가보셔야 합니다! 지금 율진사가 있는 곳에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뭐, 뭐라!”

    서경 유수는 율진사가 왜 검은 연기에 휩싸여있는지 궁금하였다.

    더불어 검은 연기가 일어날 일도 없는 율진사였다.

    “설마 이의방… 이놈이!”

    영문을 알지 못하는 조위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부장, 속히 알아보라. 율진사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예! 장군!”

    * * *

    “하아…….”

    율진사를 태워버리고, 재물을 백성들에게 다 돌려주었다.

    율진사를 뒤지던 중, 전답 문서까지 나와 그걸 일일이 한 명씩 제 주인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나마 글을 읽을 줄 아는 돈장 덕에 쉽게 이루어지고 망신살도 면하였다.

    “곧 서경이옵니다.”

    “알고 있다.”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기가 매우 불편한 듯 보였다.

    조위총, 그가 난을 일으켰을 땐 초반에는 이의방이 승기를 잡았지만, 서경에서 항전하여 결국 이의방은 패하였다.

    그러다 돌아오는 길에 정균에게 살해를 당하는 꿈을 꾸지 않았는가.

    모든 게 마치 현실처럼 느껴졌기에 조위총과 서경이 영 달갑지는 않았다.

    “미리 가서 내가 왔다고 유수에게 전하라.”

    “예. 위위경”

    이영령은 부장들과 함께 깃발을 들고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조위총… 그래. 어디 한번 보자. 그리고 정말이지 네놈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인지도.’

    “북소리를 더욱더 높이고, 소라 또한 크게 불어라.”

    “예! 위위경! 북소리를 더욱더 높이고, 소라 또한 크게 불라는 위위경의 명이시다!”

    두우웅! 두우웅!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아주 크게 북을 치고, 소라를 울리면서 서경으로 향하였다.

    * * *

    “멈추어라! 어디서 온 누구이냐!”

    “나는 개경에서 위위경을 모시는 부장이오. 지금 흥위위를 이끌고, 섭장군께서 서경으로 입성할 것이니 속히 서경 유수께 아뢰길 바라오.”

    “성문을 열어라!”

    끼이이익.

    빗장을 제치자 성문을 활짝 열렸다.

    흥위위군의 부장들은 곧장 서경 안으로 들어갔으며 곧이어 뒤에서 수기가 드러났다.

    수기에는 벽상공신 흥위위 섭대장군 지병부사 전중감겸위위경 이의방이라고 적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의방이 맞구나.”

    저 멀리서도 이의방에 풍채와 총사들만 입는 경번갑이 눈에 들어왔다.

    금색을 띄우는 경번갑과 투구, 그리고 말안장에는 어검이 들려있었다.

    두웅! 두우웅!

    이의방이 다가오자, 북소리가 점차 성안까지 울려 퍼졌다.

    장대에 서 있는 수문장은 침을 꿀꺽 삼키었다.

    “위위경 이의방…….”

    수문장은 나지막이 이의방의 이름을 읊었다.

    늠름하게 말을 타고 당당히 서경으로 입성하는 모습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그의 모습은 훤해 보였다.

    30대에 견룡행수가 되어 선황제를 모셨고, 결국에는 선황제를 폐위시키면서 권력을 가진 이의방.

    귀족의 자제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친위군 중에서도 견룡행수는 그야말로 으뜸의 자리였다.

    황제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장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최악의 상황이 나오게 되지 않았는가.

    “어서 오시오소서!”

    부장은 이의방을 보자, 곧장 군례를 올리었다.

    “오냐… 서경 유수는?”

    “관아에 계시옵니다.”

    서경 유수 부장의 말에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위경께서 오셨는데 감히 유수 따위가!”

    “그만 되었네… 그만해.”

    조위총이 불만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왔다는 소식을 받았을 것인데 이리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