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추웅! 추웅! 추웅! 추웅!”
개경 밖으로 나오자, 흥위위 군사들이 충이라 외치며 이의방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대장 수기에는 벽상공신 전중감겸 위위경 지병수사 흥위위 섭대장군 이의방이라고 적혀 있었고, 고려 국을 상징하는 깃발과 의장 깃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깃수들은 높게 깃발을 들어 올리었다.
“자랑스러운 고려국의 정예병은 들으라!”
이의방의 우렁차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흥위위 전체 군사들에게 울려 퍼지며 ‘충!’ 소리가 단숨에 멈췄다.
“오늘 우리 흥위위는! 저 서경으로 향하여 장성과 각 국경을 돌 것이다! 이에 너희들은 대고려국의 중앙군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추웅! 추웅! 추웅!”
군사들이 깃발과 수기를 드높게 치켜 올리며 ‘충!’이라고 다시 외치기 시작하였다.
경번갑을 입고 투구를 쓴 이의방은 대장군 검을 들고서 곧장 단상으로 내려가 말 위에 올라탔다.
말 머리를 돌리며 천천히 개경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부장들과 군사들은 이의방의 뒤를 따라갔다.
앞으로 나아가자, 자신에게 쌀과 죽을 받았던 도성의 백성들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표하고 있었다.
이의방은 백성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성루에 올라 이의방이 떠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응양군 상장군 두경승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었다.
“상장군, 여기 계셨사옵니까.”
두경승 옆에 서서 이의방의 출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경대승이었다.
“황실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중방의 실권자가 북방으로 향하였네. 그리고 위위경은 나를 잘 알기에 응양군 상장군을 맡긴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소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네. 자, 이제 내려가세. 응양군을 집결시켰으니 훈련을 해야지.”
“예! 상장군!”
경대승은 고개를 숙이며 다시 성루 아래로 내려갔고, 두경승은 이의방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성루에서 내려가 북문으로 향하였다.
* * *
그날 저녁.
“어찌 되었느냐.”
정균의 말에 승군부장 종참은 정균에게 다가와서는 작은 병을 건넸다.
“독초와 까치 독사의 독을 섞어서 만든 맹독이옵니다. 어렵게 구한 것이옵니다.”
“정말 이거면… 이의방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인가?”
“정 장군, 대신 깊숙이 찔러 넣어야 합니다.”
종참의 말에 정균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방으로 갔으니… 돌아오는 그 날… 선의문 앞에서 끝장을 내줘야겠어. 그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하하하하하!”
정균은 그렇게 말하곤 크게 웃었다.
북방으로 갔다고 하여도 북방 생활에 지친 이의방이 금방 돌아오리라 생각한 정균이였다.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정중부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버님.”
“밖에서 들었다.”
“예. 이의방만 죽으면 권세는 우리 차지입니다. 이의방이 북방에서 버틴다고 해도 얼마나 걸리겠사옵니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이의방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야. 그리고 한번 한다고 하면 반드시 해내는 게 이의방이다. 그러니… 이의방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중방의 자신을 따르는 이들도 데려가지 않았어. 그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
정중부의 말에 정균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이의방이 올 때까지 중방의 모든 힘을 이 애비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전을 시켜 놔야 이의방도 돌아온대도 쉽게 손을 쓰지 못할 것이니… 이제 네가 이 애비를 돕거라.”
‘권력을 어떻게 하면 손에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 정중부였다.
이의방이 없는 지금.
현재 자신이 최고의 권력자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이의민도 개경에 없다.
지금 있는 사람이라고는 고작 조원정, 석린 등의 장수들이었다.
거기에 이광정은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니, 이의방이 없는 상황에 자신에게 붙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또한 황실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응양군 상장군 두경승은 안 봐도 그만, 봐도 그만이다.
권력욕이 없는 데다가 오로지 황실을 보호한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인사이니… 밀어내는 데 그리 어려운 존재는 아니었다.
“허나… 아버지… 문신들은 쉽게 돌아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정균의 말에 정중부는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도 아실 것 아니옵니까… 6위를 총괄하는 상장군을 만들어 종1품 관직에 넣는다는 이야기를… 이는 6위의 군권을 이의방이 가지겠다는 것이고, 문극겸은 그런 이의방과 사돈지간입니다. 또한 그의 형 이준과 이린도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이옵니다.”
“허…….”
정균의 말이 옳았다.
고민에 싸인 표정으로 정중부가 정균을 바라보았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중방의 모든 군권을 아버지께서 다 가지셔서 칼로써 문신들을 협박하여 6위의 군권을 이어받으셔야 합니다. 그리된다면 흥위위를 이끄는 이의방 역시 6위의 수장인 종1품의 상장군 직을 가지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할 테니까요.”
“크하하하하!”
정중부는 크게 웃었다.
제법 그럴싸한 말이었다.
이제 더 이상 골머리를 앓을 필요 없었다.
“또한 아버지를 따르는 대장군들께서 계시고… 이들의 사병들까지 합한다면 중방의 모든 힘은 아버지께서 자연스럽게 쥐실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의방이라는 호랑이가 없는 개경은 곧 우리가 주인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하하하하하!”
이 얼마나 옳은 소리인가.
이의방이 없을 때 모든 권력을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누가 뭐라 하여도 대장군들의 군권 그리고 사병들을 생각한다면 황실에서도 무시 못 할 정도의 군대가 되기 마련이었다.
6위의 대장군들 대부분도 자신을 따르려고 하는 이들이 있으니,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정중부는 점차 감추고 있던 권력욕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균아, 그럼 이리하자. 해주에 연통을 넣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들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고 그들을 개경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자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의방이 없는 틈을 타서 어떻게 중방과 군부를 장악할 것인지에만 신경을 써주십시오.”
“그래. 내 그렇게 할 것이다. 네 말에 따르도록 하마. 하하하하하!”
정중부는 뿌듯한 얼굴로 정균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얼마나 든든한 아들인가.
이의방이 돌아오는 길, 선의문에서 이의방을 죽인다니.
정중부는 이를 상상도 못 하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벌이려는 정균을 말리기보다는 오히려 옹호하고 싶었다.
* * *
며칠 후.
“위위경! 곧 서경이옵니다!”
이영령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리키자, 서경이 눈에 들어왔다.
서경유수 조위총이 있는 곳.
이의방이 서경으로 먼저 길을 잡은 이유는 하나, 반란을 막아 보고자 온 것이다.
막지 못한다면 당연히 싸워야겠지만, 기묘한 꿈을 꾼 이의방은 서경보다는 저 서북면이 우선이었다.
치가 떨리는 그 꿈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꿈이었다.
꿈을 꾸고, 또다시 꿈을 꾸었다.
꿈인 것을 깨달아도 계속 그 꿈을 꾸었다.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 사찰에서 뜯어온 것들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물론 사찰 승려 2천여 명이나 때려죽인 건 정말 정당성 없는 것이지만, 누가 뭐라고 하여도 손가락질을 하여도 그냥 받아넘길 생각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서경 길목으로 가던 도중에 누가 울고 있는 소리에 위위경이 말을 멈추어 시선을 돌리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라.”
“예! 위위경!”
돈중이 곧장 답하였고 부장을 시켜 알아보게 하자, 부장들이 곧장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였다.
“고 장군.”
“예. 위위경.”
“지금 용호군 대장군 이의민에게 전령을 보내 당장 서경으로 오라고 하게.”
“예! 위위경!”
고득시는 고개를 숙이더니, 즉시 말을 타고 후미로 향했다.
이의방은 천천히 앞으로 나가 부장들이 뛰어간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들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
“예. 위위경. 저쪽 위에 마을이 있사온데… 사찰 승려들이 패악질을 부리고 있사옵니다.”
“뭐, 뭐라?”
이의방은 인상을 구겼다.
승려라는 것들이 패악질이라니.
이의방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앞으로 내 눈앞에 승려가 보이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장군.”
“예! 위위경! 1령은 나를 따르라!”
1령은 1천의 군사를 의미했다.
이영령이 1천의 군사를 이끌고 마을로 향했다.
거기서 패악질 승려들이 뭔 짓을 할지 모르니, 수십 수백보다는 1령을 이끌고 가서 확실하게 제압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 한 것이다.
이의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압해버려!”
“예! 위위경!”
이영령이 자신 있게 외치자, 이의방은 미소를 지으며 말머리를 돌리었다.
“이곳에서 잠시 야영한다. 혹시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마라!”
“예! 위위경!”
장졸들은 일제히 답하였다.
* * *
“뭐라…? 다시 말해 보거라… 누가와!?”
“수기에 벽상공신 흥위위 섭대장군 지병부사 전중감겸위위경이의방이라고 적혀 있었사옵니다. 이의방이 벌써 서경 코앞까지 왔다고 하옵니다.”
“그놈이 벌써 알아차렸단 말이냐!?”
조위총은 깜짝 놀랐다.
아주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6위 중앙군중 하나인 흥위위가 온 것이었다.
거기에 흥위위 섭대장군 이의방이 직접 군을 이끌고 왔으니, 조위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유수, 명을 내려 주십시오!”
서경 좌장 김존심이 말하자, 조위총은 잠시 망설였다.
이 상황에 대해 아주 잘 생각해야 한다.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고 왔는지, 아니면 지나가던 길에 확인차 온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렸다고 하기엔 말이 되지 않았다.
이곳 위로는 장성밖에 없고, 더불어 그 북쪽으로 올라가면 황폐화된 땅들만 있다.
작물을 기를 수도 없어 거란과 여진족밖에 살지 않는 곳이기도 한데 그곳에 올라가 뭘 할 것인가.
“그저 위세를 부리고자 온 것인가?”
조위총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의방의 방문 목적을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좌장 김존심은 들으라.”
“예. 유수.”
“지금 당장 가장 날렵한 군사들로 관부에 은밀하게 준비시켜라. 여차하면 이의방을 제거할 것이다!”
“예! 유수!”
좌장 김존심은 고개를 숙이고 곧장 밖으로 나갔고, 조위총은 이의방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