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화
정말 기묘한 꿈이라고 해야 하는지.
그 꿈을 꾸고 나니 정말 생각 자체가 바뀌지 않았는가.
이의방은 그래도 서운하지 않게끔 이야기하였다.
“자네들 그렇다고 소임에 소홀히 하지 말고 잘들 하고 있게. 내 북방을 다 돌아본 후에 돌아오거든… 반드시 자네들의 품계를 올려줄 테니 말이야.”
이의방의 말 한마디에 장수들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이의방에게 놀라, 헛기침을 하는 장수들도 있었다.
“하하하! 자, 우리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응양군 상장군으로는 두경승을 말하고 싶고… 더불어 응양군 대장군으로는 견룡행수인 경대승으로 하고 싶소만… 사돈의 의견은 어떠하시오?”
“무신들의 인사권은 위위경께서 가지고 계시니, 그 부분은 위위경 뜻에 따르겠습니다.”
“고맙소이다. 하하하!”
문극겸에 말에 이의방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밀어줄 때는 확실하게 밀어주는 게 이의방이다.
자신이 벼슬에 오르기 전에 하급 무관부터 먼저 챙겨서 진급시키기도 했다.
그리해서 옛날부터 하급 무관들이 자신을 많이 따랐다.
그중에서도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자신을 따르는 장수가 있었는데 이영령, 고득시, 이의민, 돈장, 박존위 이 다섯 장군이었다.
“그나저나 아까 이야기하던 이야기 품계 말이오. 어떻게 해서든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니겠소.”
“무신들의 품계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문신들의 품계는 이미 다 잡아 놓은 지 오래… 무신들의 품계만 잡으면 그만입니다. 2군 6위의 상장군들은 정3품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럼 이제 6위가 문제군요. 6위에는 각 상장군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 6위 군을 총괄할 상장군을 뽑고 그 상장군의 품계를 종1품으로 옮긴다면 지방군들조차 1품의 해당하는 6위 상장군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까와 같은 말을 했듯이 지휘체계는 확실히 잡힐 것입니다.”
문극겸의 말에 여러 문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그리고 지방의 하급 무관들의 말이라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하시오”
무신들이 왜 난을 일으켰는지 그걸 자세히 아는 문신들은 당연히 옳다고 여기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요. 위위경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아우님의 말에 동의하네.”
문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우승선, 중추부에 속한 승선들이다.
황제의 명을 전달하고, 군사기밀을 담당하는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들은 황제의 오른팔과 같았다.
우승선은 대부분 군사기밀을 담당하여 군사 보고에 관련된 것들을 따로 정리해 병부에 올리거나, 이를 직접 황제에게 전할 수 있는 중책 중의 중책을 담당했다.
좌승선은 주로 황제의 명을 전달받아 움직였다.
“또한 병부는 우리 무신들이 직접 움직일 것이니… 다른 문신들은 앞으로 병부에 관한 일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소.”
“예…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위위경.”
앞으로 병부를 관장할 이의방이니, 문신들은 탐탁지 않았어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것이다.
병부는 이의방이 무조건 관장할 테니, 관여하지 말라는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었다.
“하하하! 이렇게만 되어도 우리 무신들이 아주 편안할 것이오. 그놈의 핍박 때문에 우리가 거병한 거 아니오!”
“예… 그렇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위위경.”
다시 한번 더 문신들에게 이를 새겨 주는 이의방이었다.
경인년 1170년에 보현사의 난이 왜 일어났는가.
문신이 무신을 핍박하여 참고 참다 결국에 터져 버린 게 보현사의 난 아니었는가.
그 난을 통해 결국 황제를 폐위시키게 되었고, 수많은 문신들을 참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다시는 그런 일을 보지 않으려면 무신들을 달래야만 하건만.
오히려 무신들은 문신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당한 것만큼 갚아 주기 시작했다가 이제는 이의방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으니, 문신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
“이의방… 이놈이 정녕… 나를 허수아비로 만들려는 속셈인가?”
“아버지, 위위경이 설마 아버지를 버리겠사옵니까.”
정중부가 부들부들 떨었다.
독단적으로 처리를 하려고 하는 이의방에 분노한 것이다.
그게 불만인 정중부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보였다.
중방에 사람들을 불러 모든 걸 자신의 힘대로 처리하려고 했던 이의방이 인제 와서 모든 걸 되돌려 놓겠다는 듯 말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거병하기 전 그때로 되돌아가겠다니.
그럼 무신들은 어찌 되는 것인가.
자칫 잘못하면 다 죽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자신의 목숨과 가문이 위험하다고 느낀 정중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균아.”
“예, 아버님.”
“이의방을 죽여야겠다.”
“예!?”
정중부의 말에 정균은 깜짝 놀랐다.
“이의방… 그놈에게 숱하게 당한 것만 생각한다면 내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경인년에 거병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중에 우리가 받을 고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균아, 그러하니 반드시 이의방을 죽여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아버지…….”
정균은 고개를 끄덕였고, 정중부는 한쪽에 새워둔 상장군 검을 바라보았다.
* * *
“황제 폐하,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위위경, 정녕 위위경이 북방으로 간다는 말이오?”
“그러하옵니다. 폐하. 신은 본래 무장이옵니다. 개경에 오래 있다 보니 군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료되어 북방을 돌고 각 지방과 진을 살필까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명종은 이의방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절대 이의방이 이런 소리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 명종이었다.
‘혹여나 이의방이 다른 생각을 품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쳤다.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만들었으니, 자신과 황실에 칼을 겨눌 일은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면 대체 갑자기 왜 이렇게 나오는 건지 명종은 이해할 수 없었다.
“폐하,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신이 북방으로 가 황상 폐하의 충성스러운 군사들을 강군으로 만들어 놓겠사옵니다.”
이의방의 말에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섭대장을 믿을 것이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의방은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답하였다.
“하옵고… 황제 폐하, 신이 황궁에 없는 동안 황제 폐하와 황실을 지켜줄 장수가 필요하다 사료되어 감히 청하옵니다.”
“말해보시오.”
명종은 이의방에 말에 귀를 기울였다.
“두경승과 경대승이옵니다. 아직까지 응양군의 상장군 자리가 비었사오니… 두경승을 용호군의 상장군에, 경대승을 응양군의 대장군으로 두시어 황제 폐하와 황실을 보위케 하시옵소서.”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방의 진심이 느껴진 것인지 명종은 답하였다.
“그리하겠다. 허나, 경대승은 짐이 알기로 아직 나이가 어리니… 대장군직은 아니 되고 장군직을 하사하겠소.”
“황제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명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라… 지금 뭐라 하였느냐…? 위위경이 북방으로 간다고 하였느냐!?”
공예태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허허… 어찌 이런 일이…….”
공예태후조차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이의방이 조정을 떠나 북방을 돌겠다니.
이렇게 된다면 호랑이 없는 여우가 주인이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에 황실 또한 문제가 되는 건 확실하였다.
“박상궁.”
“예. 태후마마.”
“지금 당장 위위경을 불러오게.”
“예. 태후마마.”
얼마 후, 위위경이 공예태후를 찾아왔다.
“태후마마 찾아 계셨사옵니까.”
이의방은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공예태후는 이의방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북방으로 간다고 말하였소이까. 위위경.”
“그러하옵니다. 태후마마. 신 이의방, 북방을 돌아보고 지방군과 각 진을 살피고 돌아올 것이옵니다. 또한 장성에 주둔하고 있는 군을 살피고 강군으로 만들어 놓고 돌아올 것이오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위위경, 혹여…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겠지…….”
“태후마마, 그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이의방은 태후의 말에 살짝 당황하였다.
“아니오.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한 듯하오. 아니라면 된 것이오. 그리고 무사평안(無事平安) 하게 다녀오시구려…….”
공예태후의 말에 이의방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숙인 후에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가 곧장 밖으로 나갔다.
* * *
흥위위.
고려 6위 군에 하나로서, 3만 7천의 달하는 군대가 바로 흥위위였다.
좌우위, 신우위, 흥위위, 이 세 개가 고려의 중앙군 주력부대이며 좌우위에 3만 2천, 신우위에 2만 5천, 흥위위에 3만 7천으로 주력 부대 중에서도 최고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는 금오, 천무, 감문인데 각 치안을 담당하거나, 수문을 관리하고, 의장대의 역할을 하였으며 각각 금오에 3천, 천무에 3천, 감문에 2천씩 있었다.
이로써 개경의 총 중앙군은 10만이 조금 넘는 대군이었고, 지휘체계 역시 좌우위 상장군, 신우위 상장군, 흥위위 상장군, 금오위 상장군, 천무위 상장군, 감문위 상장군이 최고의 지휘관으로 있었다.
이에 지방군인 주현군, 주진군의 군사력까지 합한다면 엄청난 국방력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흥위위 군사들이 출정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흥위위의 섭대장군인 이의방의 필두로, 장군 이영령, 돈장, 고득시가 자리를 잡고 이의방을 보좌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문하시중, 그럼 다녀오도록 하겠사옵니다. 부디 중방을 잘 부탁드립니다.”
“음… 그래. 자네도 조심하시게나.”
“예. 그래야지요. 하하하!”
“다녀오시옵소서. 섭대장군.”
“그래… 균이, 자네도 건강히 지내게.”
이의방은 황제와 태후 그리고 태자궁까지 들려 작별 인사를 한 후에 중방으로 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다.
그들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으로는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찌하겠는가.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이의방이 떠나는 걸 서운하게 생각하는 듯했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내심 빨리 가버리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을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북방으로 가는 마당에 중방의 늙은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볼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마중이라도 하는 듯 서 있는 응양군 상장군 반열에 오른 두경승과 응양군 장군이 된 경대승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늠름한 모습의 청년 장군 경대승.
그리고 그의 옆에 응양군 최고 지휘관 상장군 두경승이 있으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상장군.”
“위위경…….”
이의방은 말없이 두경승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내가 북방으로 가 있는 동안 잘 부탁하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안심 하시오소서.”
이의방은 두 사람을 보며 든든하면서도 안심이 되니, 이내 가벼운 발걸음을 떼었다.